아트

비주얼 메이커- 이기백

2016.03.15

by VOGUE

    비주얼 메이커- 이기백

    유튜브 시대 뮤직비디오 감독들의 세대교체. 요즘 SNS상에서 화제가 되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들은 케이블TV와 인터넷이라는 감각의 제국에서 자란 80년대생 감독들이다. 디지페디, 이기백, GDW, 비주얼스 프롬. 독창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네 팀의 비주얼 메이커들을 만났다.

    이기백1

    이기백의 19금 미학 트러블메이커

    ‘내일은 없어’의 성공 이후, 이기백 감독은 19금 뮤직비디오라는 금단의 장르를 개척해왔다. 개리의 ‘엉덩이’, 박재범의 ‘몸매’와 현아가 참여한 신곡 ‘뻔하잖아’ 등 관음적인 시선과 붉은 색감으로 가득한 그의 작품은 야릇하면서도 한 편의 영화처럼 감각적이다. 정작 그의 작업실은 핫토이 피규어와 레플리카, 만화책으로 빼곡한 12세 이하 관람가다.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이름이 ’Tiger Cave’다. 무슨 뜻인가?
    <타이거 마스크>라는 만화를 보면 주인공 나오토가 악역 레슬러 훈련을 받는다. 그 양성소 이름이 호랑이 굴이다.

    만화책이 굉장히 많다. 도마뱀도 있고.
    비어디드래곤이라고 4년째 키우고 있는 애완동물이다. 만화책은 학교 다닐 때부터 모아온 것들이고. 모로호시 다이지로와 이토 준지를 좋아한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물론이고.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만화과에 가려고 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홍대 광고디자인과에 들어갔다가 서양화를 복수 전공하면서 개코 형을 만난 거고. 아메바컬쳐 초창기엔 아트 디렉터 일을 봐주면서 사무실도 같이 썼다.

    총 대신 악기를 든 군인들이 그려진 다이나믹 듀오의 5집 <Band of Dynamic Brothers>는 해외에서 디자인상도 받았다고 들었다.
    흑인음악을 다루는 <Complex>라는 매거진에서 그해의 좋은 앨범 재킷 디자인으로 뽑아줬다. 다이나믹 듀오가 군 입대하며 낸 앨범이라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컨셉으로 하고 싶었다.

    첫 뮤직비디오 작업은?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후배들이랑 같이 작업한 다이나믹 듀오의 ‘살인자의 몽타주’. 원래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이제 그림으로는 다 이뤘다 싶어 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일단 무보수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본 거지. 그다음에 나온 ‘어머니의 된장국’은 제대로 돈 받고 한 일이고. 그런데 그게 커져서 에픽하이의 ‘맵더소울’로 연결되고, 지드래곤 쪽에서도 연락이 와 ‘소년이여’라는 곡을 작업하게 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오게 된 거다.

    그림을 공부한 게 뮤직비디오 작업에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구도 잡는 거나 색감 쓰는데 있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초기 작업은 그래픽 기반이기도 했고. 촬영 기반으로 넘어온 건 서인영의 ‘신데렐라’ 뮤직비디오부터였다.

    왕가위의 영화 <2046>을 오마주한 비스트의 ‘Shadow’로 멜론 뮤직 어워드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전해 수상작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더라.
    지금도 왕가위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뮤직비디오에 색을 많이 타는 편이다. 왕가위 감독이 고콘트라스트에다가 빨간 조명을 엄청 치지 않나. 네온도 잘 쓰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최근에 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직비디오를 꼽는다면?
    올해는 박재범의 ‘몸매’! 자이언티×크러쉬와의 작업(‘그냥’)도 좋았다. 작년까지는 거의 대부분 아이돌 뮤직비디오 작업을 했는데, 힙합이 대중음악 시장의 주류로 탁 올라오면서 오랜만에 다시 힙합 뮤직비디오를 하게 돼 의미가 남다르다.

    아이돌과 힙합 뮤직비디오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나?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안무 중심이라면 힙합은 립싱크와 그림이다.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립싱크를 하니까 래퍼가 돋보이는 앵글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 정서랑 안 맞아 금기시되던 컨셉도 허용되는 부분이 많고.

    19금 이미지 말인가? 확실히 그런 쪽에 특화되어 있는 듯하다. ‘몸매’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서 보려면 성인 인증을 해야 한다. 개리의 ‘엉덩이’나 얼마 전에 나온 박재범의 ‘뻔하잖아’도 좀 야하다.
    흐흐. 트러블메이커의 ‘내일은 없어’ 찍을 때부터 19금 장인 느낌으로 가고 있는데, 내가 좀 뻔뻔해서 그렇다.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별 거리낌이 없다.

    힙합은 원래 좋아하던 장르인가?
    중학교 때 친구랑 용산 신나라 레코드에 갔다가 너바나 박스 세트가 너무 비싸 사이프레스 힐 앨범을 구입했다. 그때부터 힙합에 빠졌다. 만약 그때 너바나를 들었다면 록을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나스랑 투팍, 그리고 비기를 특히 좋아했다. KMTV 방송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인데 밤 9시인가 힙합만 틀어주던 시간대가 있었다. 흑인 방청객과 댄서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던 AFKN의 <소울 트레인>이라는 프로그램 보면서 옷도 많이 모으고 그랬다.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뮤직비디오 작업을 할 때도 더 편하겠다.
    맞다. 편집할 때 랩은 박자 쪼개는 게 좀 다르다. 웨이브 파일이 있으면 힙합은 박자가 ‘땅’ 하고 시작할 때가 제일 처음이다. 헤드폰 끼고 파일 보면서 그걸 맞추는 게 재미있다. 탁탁 튀면서 랩을 할 때. 다른 음악은 그러면 편집이 이상해지는데, 유일하게 튀어도 되는 게 아이돌 음악이랑 힙합이다.

    올 초엔 티아라 웹드라마 작업도 했다. 뮤직비디오와는 또 다르던가?
    완전 다르다. 일단 드라마는 찍을 때 그림이 안 멋있으니까. 그리고 완전히 분업화되어 있다. 편집도 내가 안 하고. 찍기만 하고 오면 끝. 일하는 거 같지 않더라.

    독특한 색감 같은 당신의 장기가 발휘되기 힘들었겠다.‘타이거 케이브’만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19금? 흐흐. 우린 남성적인 성향이 짙은 것 같다. 좀 마초스럽지.

    천장에 걸려 있는 건 운동기구인가?
    턱걸이 줄이다. 우리 스튜디오의 유일한 복지시설.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까. 10월에만 5편을 찍었다. 신승훈 형의 ‘Mayo’랑 지코의 ‘Boys and Girls’, 그리고 클릭비의 신곡이 곧 나올 거다.

    신승훈부터 지코까지. 맥주와 에너지 음료, 디톡스 주스로 채워진 당신의 냉장고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름들이다. 앞으로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더 있나?
    AOA. 장르의 다양성이랄까? 흐흐.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도는 거니까.

      에디터
      이미혜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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