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S/S 패션 트렌드 8
2016 S/S 유행은 편안하고 로맨틱하고 여성스럽다. 봄부터 여름까지 길거리에서 당신이 마주치거나 혹은 입게 될 패션 트렌드 8.
#VERY BED THING
슬립 드레스를 옷장에 갖고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게 분명하니 당장, 반드시, 꼭 사야 한다. 상반기엔 슬립 드레스만 있으면 패션 선수처럼 보이기에 충분하니까. 매끄러운 실크 슬립 드레스라고하면 맨 먼저 캐롤린 베셋 케네디가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슬립 드레스 한 벌만 달랑 입은 런웨이 모델들은 길고 마른 캐롤린을 연상시킨다. 케이트 모스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슬립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자연스러움보다 퇴폐에 가까운 그녀의 스타일은 올해의 슬립 드레스와 느낌이 좀 다르다. 여성스러운 레이스 장식, 가느다란 스파게티 스트랩, 몸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바이어스컷 란제리를 입은 여자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신감과 아름다움. 캘빈 클라인 컬렉션, 생로랑, 알렉산더 왕, 끌로에, 크리스토퍼 케인이 제시하는 슬립 드레스 걸은 하나같이 야하다는 표현보다 여성스럽고 발랄하고 청순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농염하게 몸에 달라붙지 않고, 날씬해 보이는 낙낙한 사이즈에 정강이나 발목까지 내려오는 얌전한 길이가 포인트. 하이힐을 신으면 음흉한 눈빛의 사람들이 다가올지 모른다. 스타일링 방법이 더 궁금한가? 슬립온, 하이톱 스니커즈, 첼시 부츠 중에 골라 신고 캐주얼한 봄버 재킷이나 큼지막한 블레이저를 걸칠 것. 머리도 대충 빗고 메이크업은 베이스로 끝내면 ‘세상 쿨한’ 여자. 여자들의 워너비인 동시대 모델과 여배우들 당면한 문제가 있다. 즉 지나치게 섹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섹시해 보일 것인가? 모던한 것은 어떤 것이며 과연 우리는 모던한가?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슬립 드레스 룩은 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다.
#PAJAMA PARTY
여기서 말하는 파자마란 실제로 잘 때 입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나 낡은 스웨트셔츠가 아니다. 눈에 띄는 색으로 테두리에 파이핑 장식을 한, 낭창낭창한 실크의 반듯한 셔츠와 팔라초 팬츠다. 태생은 휴식을 위한 실내용이었으나 활동을 위한 야외용이 됐다. 물론 예전에도 파자마 세트를 입고서 침대를 벗어난 이들이 있었다. 다이애나 브릴랜드(파자마 팔라초라는 명칭을 만든), 루루 드라 팔레즈, 제리 홀, 마크 제이콥스,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와 아티스트 줄리앙 슈나벨 등등. 막 침대에서 기어 나온 듯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염려되겠지만 사실상 런웨이의 어떤 파자마도 집에서만 입기엔 너무 곱다. 동백꽃이 만발한 돌체앤가바나, 살구색 로에베(게다가 몸매에 맞게 다트까지 들어간), 힙색이 달린 발렌시아가 실크 팬츠와 브라톱 파자마를 입으면 괜히 거실 커튼을 활짝 열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 게다가 파자마 차림으로는 어디서든 편하다. 사무실은 물론 파티에도 마찬가지. 사람들의 눈에 당신은 화려하게 꾸민 초호화 아파트에서 휴식을 취하는 마나님처럼 보일 게 분명하다(한 손에 칵테일을 들고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게 관건).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다면 탐스러운 모피 스톨이나 로브까지 세트로 갖출 것. 하이힐을 신으면 멋쟁이처럼 보이고, 스니커즈를 신으면 쿨해 보이고, 슬리퍼를 신으면 유머러스해 보인다. 또 하나 파자마 세트의 강점은 스타일의 유연함이다. 위아래 한 벌로 빼입다가 지겨워지면 단정한 무릎길이 스커트나 테일러드 팬츠처럼 형태감 있는 아이템과 함께 입으시길. 파자마의 인기는 계속된다.
#COLD SHOULDER
알고 보니 힐러리 클린턴이 패셔니스타였다는 사실! 얼마 전 93년에 백악관에서 찍은 그녀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그녀는 도나 카란의 콜드 숄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터틀넥 드레스에 어깨 부위만 잘려나간 드레스는 당시 호사가들 사이에 꽤 회자됐는데, 클린턴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도나 카란과 친했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나이가 몇이고 사이즈가 몇이든 어깨는 늘 예쁘니까’ 라고 말이죠.” 사실이다. 웬만해선 살이 찌거나 주름이 생기거나 뚱뚱해지지도 않는 절대 부위가 어깨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부위라니! 디자이너들은 영원히 늙지 않는 이 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찬양한다. 완전히 드러내거나(어깨끈을 고리처럼 걸기도) 한쪽만 드러내거나(셔츠 한쪽을 끌어내려서) 어깨만 동그랗게 드러내거나(원조인 도나 카란처럼). 최근 몇 시즌 동안 셀럽뿐 아니라 블로거들도 자주 어깨를 드러냈는데, 사람들에게 어깨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삼 일깨워준 디자이너는 로지 애슐린이다. “요조숙녀 같으면서 섹시한 기분이 들게 하죠.” 왜 브리짓 바르도가 늘 양어깨를 드러냈겠나(‘콜드 숄더’의 또 다른 이름은 ‘바르도 네크라인’이다)? 이제 착즙 주스로 다이어트하고 미친 듯 사이클링하며 필사적으로 납작한 복근을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몸이 바뀌어도 어깨는 그대로니까. 이 아름다운 부위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운동이 아니다. 드러난 어깨를 더 돋보이게 할 길게 늘어지는 귀고리다.
#FLAMENCO RUFFLE
패션계의 관심은 온통 남미를 향하고 있다. 샤넬 크루즈 쇼가 열릴 곳은 쿠바 아바나, 루이 비통 리조트 쇼가 열릴 곳은 브라질 리우, 그리고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스페인. 올레! 플라멩코 드레스의 러플 장식이 여자들의 새 옷을 열정적이고 로맨틱하게 만든다. 몸 위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나풀거리거나, 계단처럼 층진 채 팔락거리고 얼굴이 꽃인 양 목 아래를 받치고 있다. 다들 단 한 번도 입은 적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여자라면 한 번쯤 입어본 게 러플 드레스. 나이가 한 자릿수였을 때, 가족 모임에 뭘 입고 갔나 떠올려보시라. 치마나 원피스를 입겠다고 떼를 부렸고 거기엔 꼭 인형 옷처럼 러플 장식이 달려 있었을 것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억이 돌아왔다면, 예뻐 보이고 싶었던 그때의 감정도 다시 가져와야 할 때다. 사라 버튼은 ‘매우 매우 여성적인, 강렬하게 여성적인’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맥퀸컬렉션의 절반을 크고 작은 러플로 장식했다. 이걸 세뇨리타 스타일이라고 부르자. 작은 움직임도 드라마틱하고 경쾌하게 표현하는 데 이만한 것도 없다.프로엔자 스쿨러 런웨이에서 가운데 가르마를 탄 번 헤어의 모델들이 걸을 때마다 리드미컬하게 울렁이던 러플, 오스카 드 라 렌타 여인의 무릎에 차여 춤추던 치맛단을 장식한 러플! 그나저나 러플을 입기에 나이가 많다는 건 얼마나 많은 걸까? 답은 없다. 조금 오싹한 이야기지만, 상복으로 입어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HAUTE DENIM
데님의 근본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말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막 입기 좋은 질기고 튼튼한 소재라고 말이다. 코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세탁기에 돌리거나 아예 안 빨아도 그만이었는데, 이제부턴 조심스러운 손빨래 혹은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한다.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이 데님을 트위드나 시폰처럼 대하고 있기 때문. 본격적으로 데님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이가 마르타 마르케스와 파울로 알메이다라는 건 과언이 아니다. 흔해빠진 진이나 재킷을 넘어서 데님으로 만든 전위적인 비대칭 스커트와 외투는 데님이 얼마나 잠재력이 풍부한 옷감인지 실감케 했다. 데님에 대한 신선한 접근은 4개 도시 전반으로 퍼졌으며 디자이너들은 앞다퉈 유행하는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팬츠(드리스 반 노튼, 마크 제이콥스), 정교한 자수 장식 테일러 코트(알렉산더 맥퀸), 러플 드레스(샤넬, 수노)와 고도의 수작업이 들어간 외투(전체에 구멍을 뚫어 올을 일일이 풀어낸 소니아 리키엘)를 갖가지 워싱 버전으로 선보였다. 새로 구입해도 좋지만, 옷장에 처박혀 있던 데님(이왕이면 사이즈가 큼지막한 오빠의 것)을 다시 꺼내는 것도 필수. 에디 슬리먼이 LA 중고 숍에서 싸게 건진 것처럼 보이는 생로랑의 트러커 재킷과 깜찍한 오버올은 한창 데님이 유행하던 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무슈 생 로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블루진을 발명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진은 표현력이 풍부하고 소박하며, 섹스어필하고도 단순하니까. 전부 내가 디자인할 때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TWINKLE TWINKLE
숨겨도 눈에 확 띄는 트윙클 트윙클! 반짝이 옷은 패션쇼 막바지, 이브닝 드레스가 줄지어 나올 때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1년에 몇 번, 특별한 저녁 모임이나 늦은 밤 클럽에 갈 때 소중히 꺼내 입었지만 올해부턴 낮에도 반짝임을 만끽하시길. 우선 디자이너들은 시끌벅적하게 밤을 새우고 바로 출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글램 록이나 디스코풍이 아닌 깔끔한 90년대풍으로 반짝이를 사용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무릎길이 펜슬 스커트, 미디 스커트, 트윈 니트, 블라우스 같은 일상적 아이템에 스팽글과 스톤을 장식했고, 알버 엘바즈는 랑방을 위해 스팽글 원단의 간결한 미니 드레스를 선보였다. 요즘처럼 불황이 계속되는 시기, 사람들은 쇼핑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365일 중 단 하루만 입을 옷에 누가 돈을 쓰려고 할까? 그게 바로 요즘 길거리에서도 점점 많은 반짝이 옷을 볼 수 있게 된 이유다. 원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밤이고 낮이고 입고 다니기 시작한 것. 스팽글 장식 재킷이나 비즈 셔츠에 데님 팬츠와 스니커즈를 매치하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활기찬 여자들! 실용적인 일상복의 범주에 들어간 반짝이는 자신감을 돋우는 비타민같은 패션이다(스트레스를 받은 다음 날 기분 전환을 위한 패션!). 단, 글리터나 세퀸은 남성적 아이템과 매치하는 게 요령이다. 남색 세퀸 톱에 남색 울 팬츠나 데님 팬츠를 입는 식으로 톤을 맞추면 딱딱한 사무실에서도 오케이.
#UNDER MY SKIN
시스루를 두려워 마라. 리한나, 비욘세, 킴 카다시안, 마일리 사이러스처럼 ‘몸짱’들만 입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1차원적이고 노골적인 섹스어필은 구식이다. 우리는 좀더 우아하고 은근할 필요가 있다. 라프 시몬스의 고별 무대가 된 디올은 특히 남녀 모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버전. 어른거리는 오간자와 시폰을 겹겹이 레이어드해 타인의 당황스러운 눈길을 받을 정도로 피부가 드러나지 않지만, 오묘한 톤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은 꽤 매력적이다. 발렌티노, 버버리 역시 우아하게 살갗을 드러낸다. 반면 미우미우는 어떤가? 미의 개념을 비트는 게 특기인 프라다 여사는 멀쩡하게 옷을 차려입은 뒤, 오버사이즈의 투명한 튤 드레스를 한 번 더 두르길 종용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극단적입니다. 사람들은 탈출을 원하고 낯선 것, 종교적 믿음, 지하 클럽과 음악에 끌리죠.” 네, 여사님. 충분히 극단적이고 일탈적입니다. 엄마 옷장을 습격해 멋 부리기에 심취한, 패션에 무지한 어린 여자아이 같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주요 디자이너들이 시스루 드레스에 대한 이 새로운 관점을 공유한다는 데 놀라게 된다. 모기장 같은 바지와 ‘뽁뽁이’ 비닐 같은 톱(J.W. 앤더슨), 면 티셔츠와 정교한 레이스 안감 드레스의 대조(로샤), 하얀 튤 실크 아래로 은은하게 드러나는 원석의 광택(메종 마르지엘라).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낯설고 이상한 시스루지만 볼수록 빠져들게 될 것이다.
#ATHLEISURE
올림픽 시즌이 가까워오면 런웨이에도 스포츠웨어가 등장하기 마련. 여태까지는 그 시즌 여자들의 욕구와 별개로 의례적인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애슬레저 유행은 올해가 올림픽이 열리는 해였나 싶을 정도다. 올림픽과 무관한 ‘진짜’ 유행이라는 것. 진짜가 나타났다! 2015년은 운동과 건강이 가장 동시대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해였고, 이 유행 아닌 유행에 동참한 여자들은 보란 듯 운동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한 손에는 착즙 주스 병이 필수). 기능성과 디자인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전문 브랜드가 대박을 터뜨렸고 무관심한 척, 곁눈질하던 하이패션 디자이너들도 결국 이 유행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패션 에디터들 사이에서 지난 시즌을 정의하는 게 구찌의 모피 슬리퍼였다면 이번 시즌은 끌로에의 트랙 수트 톱이 될 거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200만원대 가격표도 인기를 어쩌지 못할 거라는 말과 함께). 다른 후보들을 꼽자면? 위아래 한 벌인 구찌의 자수 장식 트랙 수트, 로에베의 집업, 베트멍과 알렉산더 왕의 후디 스웨트셔츠, 스텔라 맥카트니와 베르사체의 폴로 셔츠 등등. 중요한 사실은 이 유행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첫째, 스니커즈와 슬립온에 한번 맛 들인 패피들이 하이힐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처럼 지금은 모두가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기니까. 둘째, 애슬레저 열풍은 일시적이고 지엽적 유행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변화에 대한 것이므로. 셋째, 패션계를 완전히 장악했으니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만 남았기에. 그래서 이젠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애슬레저를 사 입기 시작했다. 왜? 편하니까!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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