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를 듣는다는 것
제멋대로 헝클어진 곱슬머리, 유령 같은 검은색 옷, 감기 걸린 듯한 목소리. 필립 글래스는 ‘현대음악의 거장’보다는 (구체적인 연주 기법과 발매연도 같은 것도 기억하는) 오래된 음반 가게의 터줏대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마침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서울 공연을 위해 열린 기자회견장에 그는 낡아 보이는 플란넬셔츠를 입고 와 그런 이미지를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실제로 필립 글래스는 꽤 오랫동안 볼티모어에 있는 아버지의 음반 가게를 지켰다. 그 덕분에 그는 음반 가게에서 벨라 바르톡, 파울 힌데미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서부터 존 콜트레인 같은 재즈 뮤지션까지 여러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바르톡을 주문하는 일, 존 콜트레인을 주문하는 일 모두 제역할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가게라 돈은 못 받았어요.(웃음)” 안 팔리고 쌓인 재고 뭉치는 언제나 그의 차지였다. 그는 격식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듯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질 것 같으면 이내 농담을 던졌다. 작업하고 싶은 영화 음악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같이 작품을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전화가 와요”라며 우스갯소리를했다. 그리고 영화가 다른 무엇보다 수익이 더 좋다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해서라면 마냥 웃을 순 없다.
필립 글래스는 한창 열심히 작곡을 할 때도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삿짐도 나르고 배관 일도 했다.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가 자기 집 식기세척기를 고치고 있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걸 보고 놀랐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리고 그는 마흔두 살까지 택시 운전을 했다.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그의 음악이 택시 안에서 들을 만한 곡은 아니라는 거다. 거장에게 할 소린 아니지만, 반복되는 구조의 미니멀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제아무리 불면증 환자라도 꾸벅꾸벅 졸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음악을 ‘미니멀리즘’이라는 오래된 단어보다는 “반복적인 구조를 가진 음악”으로 정의하는 게 맞다고 했으니까 기분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70년대에 발행된 신문 한 부를 지금껏 가지고 있다. 헤드라인은 이랬다. “글래스, 새로운 소리의 고문을 발명해내다”.
당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콘서트에 가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훼방을 놓았다는 게 필립 글래스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그의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일찌감치 표를 예매해두고 전날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로버트 윌슨이 연출하고 필립 글래스가 곡을 만든 인류 역사상 가장 전위적인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 공연이 열렸다. 중간 휴식 시간도 없고 서사도 없는 이 4시간 40분짜리 공연에 사람들이 가득 몰렸다. 사람들은 필립 글래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나갔다. 서울 LG 아트센터에서 열린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공연 역시 필립 글래스 추종자로 가득 찼다. 장 콕토의 영화 <미녀와 야수> 화면에 필립 글래스가 구성한 음악과 성악이 라이브로 진행되는 이 특이한 형식의 오페라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작은 기침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인터넷의 음악 너드들은 구하기도 힘든 그의 ‘카시’ 3부작(감독 갓 프레이 레지오와 함께 만든 3부작 다큐멘터리)에 열광하며 그 음악이 인류사에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 떠들어댔다. 1분의 버퍼링도 못 참는 이 시대의 성질 급한 사람들이 한 곡에 20분 가까이 되는 그의 음악을 왜 기꺼이 듣는 걸까? 심지어 필립 글래스의 [Music in Twelve Parts]는 4시간짜리 음반이다. 참을성이라면 20세기의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나? 지금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의 음악은 이 시대의 정신 나간 속도 정반대편에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한마디로 엄청난 지루함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밀어 넣는 것이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지루한 것, 단조로운 것과의 싸움이다. 그건 시간을 응축시켜놓는 과정이며 공간을 확장하는 개념이다. 어렵고 따분하게 들리던 그의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패턴이 느껴지면서 간결한 아름다움을 고취시킨다. 사이비 교주 같은 인상을 풍기고 싶진 않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새로운 공간에 자기 자신이 자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78년 매거진 <뉴요커>는 이렇게 말했다. “방의 벽 하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새로운 소리가 갑자기 끼어든다. 그리고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드러낸다.” 재밌는 것은 그의 왕성한 창작욕 덕분에 그의 음악이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 연극 무대, 영화관 등 어디에서나 들린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는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 덕분에 어떤 번잡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의 영향력은 <스타워즈> 시리즈나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 영화의 사운드트랙, 그리고 세련미를 뽐내는 자동차 광고, 방구석에서 홀로 작업하는 전자음악이나 앰비언트 뮤지션의 곡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음악은 프랙탈 구조를 닮았다. 어쩌면 그의 음악은 하나의 공간을 넘어 우주 전체라는 거대한 시공간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의 다채로운 이력, 그가 음악을 쓰는 방식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필립 글래스는 그의 음악과 달리 정말 복잡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배운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줄리어드에서는 빈센트 페리시체티와 윌리엄 버그스마에게서 현대 작곡 기법을 배웠다. 이후 파리에 건너간 그는 나디아 불랑제 밑에서 슈베르트, 바흐, 모차르트를 공부했다. 위대한 작곡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화성과 대위법을 배운 것으로 공부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이후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만한 엄청난 스승을 만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인도 작곡가 라비 샹카였다. 라비 샹카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필립 글래스는 그에게 “음악이라는 건 어디서 나오죠?” 같은 난해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라비 샹카의 더 난해한 대답을 들으며 필립 글래스는 음악의 새로운 언어를 깨닫게 됐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전방위 예술가 장콕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시인 앨런 긴즈버그,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의 영화감독들, 아방가르드 댄스나 실험 연극 등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그는 리브루어 등과 함께 실험 연극 극단 ‘마부 마인’도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교향곡도 쓰고 실내악도 쓰고 위에 언급한 전위적인 오페라도 쓰고 <디 아워스> <가늘고 푸른 선> 등의 영화음악도 작곡했다. 브라이언 이노와 데이비드 보위 등 가장 섹시한 록 스타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교향곡도 작업했다. 이게 과연 한 사람이 전 생애를 걸쳐 이뤄낸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자신에 대해 필립 글래스는 언젠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 바 있다. “전 이런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추상화를 그리지만 밖에 나가서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그리는 화가와 같은 거죠.”
필립 글래스는 인간이 지금껏 만들어온 모든 것의 총합과 같다. 그에게는 클래식 음악의 유산이 있지만 신시사이저 등 기계가 만들어낸 사운드 역시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한 축이다. 그는 배관공, 택시 운전사 등 물리적인 노동을 쉼 없이 하면서도 그 시대의 가장 지적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라비 샹카나 달라이 라마 등 영적인 인물로부터도 영감을 받았지만 거침없고 퇴폐적인 록 뮤직도 사랑했다. 그의 음악은 격조 높은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울려 퍼지지만 팝콘이 나뒹구는 싸구려 영화관에서도 흘러나온다. 그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거의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았고 쓰고 또 썼다고 했다. 그는 게으름이란 단어는 들어본 적 없다는 듯 부지런한 작곡가였다. 그가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를 만드는 과정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빨래를 차곡차곡 너는 것과 같았다”. 영화를 30개의 신으로 나누고 각각의 신을 2분 정도로 나누고 각 장면에 메트로놈을 이용해 음의 길이를 맞춰보고 각각의 음에 단어를 붙이고 그 단어가 배우들의 입 모양과 맞아떨어지게 작업하는 거였다. 그는 언제나 새벽 1시까지 깨어 있고 채식과 요가를 하며 수도승처럼 신체를 단련한다. 약간의 과장법을 허락한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음악은 정반대의 것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진보의 세계, 즉 인류가 꾸준히 걸어온 길이라고. 그의 피아노 연주는 작은 루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거대한 그림을 상상하게 해준다. 물론 그 그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의 카톡 알림 소리는 잠시 무시해야 할 것 같다.
- 글
- 나지언(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 윤혜정
- 일러스트리에터
- GILL BUTTON
- 포토그래퍼
- COURTESY OF LG ART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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