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야곱의 축복

2019.09.01

야곱의 축복

쉴 새 없이 뭔가를 고안해내고 늘 도발을 즐기는 마크 제이콥스. 그는 30년 동안 미국의 쿨한 매력을 새로 정의했다.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회고록을 거부하는 이 남자가 사업가로 살아온 30주년을 되돌아보 라는 압박에 시달려서는 아니다. 아니면 친구 그레이스 코딩턴이 그의 지난 30년을 묘사한 자신의 소묘로 가득한 커피 테이블 책 <마크 제이콥스 일러스트레이티드>를 출간하려 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마크는 이틀 후면 결혼하는데, 자신의 서약을 쓰는 일이 만만치가 않아서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담당 정신과 의사와 일주일 치 상담을 다 했는데, 그로 인해 ‘그에게는 행동만이 의미가 있다’는 그의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말은 그냥 말일 뿐이다.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화려한 패션쇼를 연이어 이끌며 내가 패션계에서 경험한 가장 생생한 몇 가지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지만, 우리에게 패션쇼 후기를 상세하게 제공하는 디자이너는 결코 아니다. 자신이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늘 남을 대접하는 인물이다. “저는 한 번도 제가 인정하는 음악가와 함께 앉아 ‘그 노래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라고 물은 적이 없어요.” 그는 말한다. “저는 결코 에드 루샤에게 ‘당신은 왜 저 특정 단어를 그렸나요?’라고 물은 적도 없죠.”

자신은 오직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만 신경 쓴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래서 완전히 공개하자면, 나는 그의 광팬이다. 나는 마크만큼 자신의 확신을 아주 멋진 인물들로 가득한 여러 런웨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선보인 디자이너가 그다지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크는 맹신자여서, 여러분이 패션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의 믿음은 여러분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 같이 공모해 마크를 위한 ‘이것이 당신의 인생’이라는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 단지 30주년 기념이나 그레이스의 책, 결혼만은 아니다. 마크는 파란만장한 제이콥스의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케이트 모스의 딸 릴라 그레이스 모스와 최근에 새로운 뷰티 캠페인 사진을 촬영했다. “케이트가 저의 그런지 패션쇼에 참여했을 때 그녀는 어린아이였어요.” 제이콥스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녀는 아파하면서도 패션쇼에 섰고, 다른 뉴욕 디자이너의 제안은 다 거절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이처럼 뭔가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계속 이어져온 우정을 구축하게 된 거죠.” 아마 2011년 케이트의 결혼식에서 이 둘의 우정이 정점에 달한 듯하다. 제이콥스는 당시 그녀와 5일 밤낮을 계속 함께 지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현장에서 릴라의 활동을 지켜보며 선배 역할을 하는 거죠. ‘당신의 결혼식장에서 아홉 살짜리 또래 친구들과 뛰어다니던 릴라가 이제 우리와 함께 뷰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어이쿠, 저 아이들을 믿을 수 있어요?’라고 말이죠.”

얼마나 멋진 추억인가! 그런데도 제이콥스는 자신이 향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어느 정도 향수에 젖는 것은 정말 좋아해요.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죠. 거기에 있는 게 정말 좋았거나 아니면 제가 한 번도 거기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 그걸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것은 과거의 어떤 것과 서로 똑같이 연관되어 있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고 있는 스티븐 마이젤, 안나 수이 같은 친한 친구들과 함께 모일 때 반드시 거론되는 대화 주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봤고 해봤죠.” 제이콥스는 점잔 빼며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공유하는 역사가 쌓여 2019 F/W 시즌이라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당시 크리스티 털링턴은 자신이 런웨이에 선 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제이콥스 패션쇼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제 50세가 된 크리스티가 마크 제이콥스 패션쇼에 처음 섰을 때 그녀는 16세였다. 마크는 1986년에 자신의 첫 쇼 가운데 한 곳에서 크리스티가 레드 앤 화이트 깅엄 드레스를 입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다음 시즌에는 신디 크로포드가 그녀와 함께 제이콥스의 런웨이에 섰다. 당시 그들은 길거리 캐스팅으로 활동을 시작한 풋내기 모델들이었는데, 제이콥스 덕분에 불과 몇 년 만에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보는 유명 모델이 되었다. 당시에는 마크 역시 풋내기 디자이너였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끝마칠 무렵, 그는 페리 엘리스 골드 어워드를 수상했고 ‘그해의 학생’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할머니는 클린처, 즉 빅토르 바자렐리와 브리짓 라일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옵아트 무늬가 있는 스웨터를 손수 짰다. 졸업반인 그에게 엘리스가 일자리를 제안했지만, 일찌감치 로버트 더피와 ‘스케치북’이라는 브랜드를 위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쭉 더피는 그의 ‘막후 동업자’였다. 뒤에서 부티크 샤리바리를 이끄는 선견지명이 있는 바바라 와이저는 그들의 물방울무늬 컬렉션을 정말 좋아했다. 그녀의 지원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30주년을 맞이한 마크 제이콥스의 디자인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2019년 봄/여름 컬렉션.

제이콥스와 더피는 1988년 마침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사장으로 각각 페리 엘리스에 들어갔다. 페리 엘리스를 위한 마크의 1993 S/S 컬렉션, 일명 그런지 컬렉션은 그의 디자이너 경력에서 분수령이었을 뿐 아니라 패션 역사에서 결정적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일 때문에 해고당했지만 덕분에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것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컬렉션이에요.” 이제 그는 말한다. “개인적으로 저를 드러낸 일이었지만 사과할 생각 없어요. 저는 그것을 페리 엘리스 방식으로 하려고 애쓰는 데 지쳤죠. 라이선스 계약으로 만들어낸 신발을 선보이는 것이 지겨웠어요. 저는 버켄스탁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정말로 영감을 받는 일이 벌어졌고, 그게 바로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거야말로 페리 엘리스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이콥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트워크가 마르셀 뒤샹의 ‘L.H.O.O.Q.’라고 말한 적 있다. 여러분도 그 작품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콧수염 달린 모나리자 말이 다. 너무도 친숙해서 지극히 평범해져버린 뭔가를 시대를 초월하는 인습 타파를 통해 재개념화하는 것이다. 그런지 룩 스타일의 페리 엘리스 컬렉션은 바로 제이콥스가 지닌 그와 유사한 경향이 어렴풋이 엿보이는 지점이었다.

1997년에 루이 비통에서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고용했을 때, 고리타분한 인습 타파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의 지도 아래 뉴욕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스테판 스프라우스가 LV 모노그램을 그래피티처럼 만들고 이후 일본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변형시킨 것으로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활동 이력은 인습 타파와 정반대되는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형성되어왔기에 그가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새로운 세대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이 세상에서 제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우려를 표한다. 여러분은 그의 우려에 ‘뒤 주르’ , 즉 ‘시의적절성’이라는 단어를 갖다 댈 수 있다.

부디 그를 ‘아이콘’이나 ‘전설’이라고 부르지 마라. “물론 젊은 사람들이 칭송의 표시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버질 아블로가 제게 말하기를 ‘당신 덕분에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이 스웨터를 만들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하지만 그런 유사점을 보려면 거기에 가봤어야 하는 거죠. 뭔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젊은 사람들은 기원이나 이유를 찾지 않아요. 저는 늘 기원을 찾았어요. 저는 아돌포 트위드 재킷이 어디서 온 건지 알고 싶었어요. 그건 샤넬에서 왔어요. 저는 샤넬 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건 어느 어부에게서 왔어요. 저는 그런 게 정말 좋았어요. 그것이 바로 무엇이든 끌어당기는 매력의 일부니까요. 이런 것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상징은 어떻게 실체를 얻었을까? 그건 바로 그것이 뭔가 진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죠. 모든 것은 다 어딘가에 기원을 두고 있어요.”

56세의 제이콥스가 보기 드물게 혈기 왕성한 노인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특별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구들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는 유르겐 텔러와 존 커린도 비슷한 도전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저 망할 놈의 인터넷 같으니라고!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다른 젊은 족속과 어떻게 교감하죠? 그들은 누구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나요? 그들이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때는 그게 저한테 중요한 문제가 돼요. 저는 바로 이 순간에 있는 척하지를 못해요. 저는 직감과 변덕, 정서적 욕구와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어서 갑자기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요. 저는 그저 계속 저로만 있을 뿐이죠. 현재의 저는 지난 30년간의 짐 보따리, 즉 30년간의 역사를 떠안고 있어요. 여러분이 그걸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저는 제 경험 때문에 세계를 다르게 바라봅니다. 이것은 그저 논리에 불과해요.”

그래서 이것이 그의 도전 과제다. 스스로 의구심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마크 제이콥스는 진짜 패션 아이콘이다. 간신히 끼워 맞춰 살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창의적 실체다.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 행하는 모든 것은 영혼의 햇살로부터 우리를 차단하고 있어요.” 그는 분명히 말한다. “이렇게 변화한 새로운 세상에서 제가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제가 얼마나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호기심이 제가 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요?” 그는 의구심을 갖는다. “혹은 그게 아니라면요. 젊은 친구들의 의사소통 방식에 대해 제가 수집해온 이런 자료가 제가 백팩이나 이브닝 드레스를 디자인하는 방식에 실제로 변화를 가져왔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도 그 일을 손으로 하고 싶어요. 저는 아직도 3D 프린터에 정말 관심이 안 생겨요. 저의 기술에 대한 호기심은 그냥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재미있다 싶은 수준인 거죠.”

그리고 그 방식은 계속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제이콥스의 작업에서는 손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를 과거로 이끌며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처럼 다양한 끈으로 인해 그는 기분을 고양시켜주는 뚜렷한 한 가지 신념을 더욱 확실히 붙들게 된다. 그 신념은 바로 “나에게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은 절실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가방이든 신발이든, 아니면 이브닝 드레스나 그가 어릴 때 휴가 캠프에서 만들곤 했던 세라믹 재떨이가 됐든, 그를 이끄는 힘은 바로 창조의 기쁨이다. “한때는 제가 너무 엉망진창이어서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는 인정하듯 말한다. “하지만 저는 정말 창의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무언가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게 좋아요. 그게 어떤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그들도 그것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는 저는 제가 만든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요.” 그에게 상업성은 훨씬 덜 중요한 요소다. “저는 제가 신경 쓰지 않는 수많은 사람보다 제 것을 선택해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 사람 때문에 아마 더 행복해할 거예요. 일반 사람들의 의견이 제게 최고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

뉴욕 아모리에서 열린 마크 제이콥스의 2019년 가을/겨울 컬렉션 풍경.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미국 패션을 정의하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으로 살아온 것이 최소한 그에게 성취감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나? “이것은 간단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에요.” 제이콥스는 대답한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에요. 제 오랜 치료사 중 한 명이 제게 말하길 ‘저는 당신이 그걸 결코 제대로 하지 못했으면 싶어요. 그럴 경우 당신은 그걸 부득불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는 그 자신과 그의 절친이자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물의 감독인 라나 워쇼스키 둘 다 그들의 다리에 시지프스 문신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커다란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굴려서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쿵’ 소리와 함께 그것이 맨 아래까지 굴러떨어진다. 힘겨운 싸움은 제이콥스에겐 실체와 같다. “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답변이에요. 그래도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즐거움 속에 고통이 있고,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물론 제가 한 번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만족감을 느껴요. 그건 단지 이중적인 감정인 거죠. 제가 이것이 되거나 저것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아함이란 거절이다”라는 말은 아마도 코코 샤넬이 재치 있게 한 가장 유명한 명언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결국 찾게 되는 그런 종류의 통찰력이어서, 제이콥스의 후반기 커리어도 바로 그 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나 놀랄 만한 장치는 없었다. 2019 봄 컬렉션은 거의 벌거벗은 경제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파크 애비뉴에서 렉싱턴에 이르는 아모리의 칠흑 같은 암흑 속을 가로지르는 카펫을 깔지 않은 런웨이, 오직 옷에만 중점을 둔 드라마는 놀라웠다. 그런 뒤, ‘거대한 공간 속 아주 작은 패션쇼’로 아모리에서 또다시 2019 가을/겨울 컬렉션이 열렸다. “한 번에 한 명의 여성 모델을 집중 조명하는 식이어서, 여러분이 볼 다른 무언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런웨이가 짧아야 했어요. 우리는 그 순간을 쥐어짜듯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그 순간은 바로 크리스티가 장식했다.) “다니엘 뷔랑의 에스컬레이터와 끝도 없는 예산이 동원된 루이 비통 패션쇼처럼 이번 패션쇼에도 마음과 감정이 많이 담겨 있었어요.”

그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패션쇼의 명수지만, 지금 제이콥스의 작품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인생에서 그러하듯 예술의 강렬한 친밀함이다. 지난 4월, 그는 마침내 뉴욕시 바로 북쪽에 있는 라이라는 마을에 지난 3년 반 동안 그의 파트너였던 찰리 디프란시스코와 함께 구매한 집에서 그와 서약을 주고받았다. 제이콥스가 스스로 만들어온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과 가장 가까운 지인 수십 명이 참석했다. 그다음 날에는 700여 명의 사람들이 맨해튼에서 열린 휘황찬란한 리셉션에 합류했다. 예술, 음악, 패션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고 마크가 속한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각자 일을 끝내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왁자지껄했던 뉴욕 문화의 축소판 같은 그날 밤은 정말 가까스로 이상한 친밀감에서 벗어난 듯했다. 마크와 찰리가 휴가를 즐기던 모습, 그 전날 열린 즐거운 결혼식 모습을 상영한 후 여러 단으로 된 웨딩 케이크가 등장했을 때, 난 눈물이 터져나왔다. 사랑의 메시지가 있었고 행복이 그곳을 가득 메웠다.

그들의 새집은 1950년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했다. 제이콥스는 그 집을 공들여 꾸밀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지금 완전히 빠져 있는 또 다른 일은 바로 새 컬렉션 ‘더 마크 제이콥스’ 론칭이다. 2015년에 문을 닫은 세컨드 브랜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제 선택도, 로버트의 선택도 아니었어요.” 브랜드 폐업에 아직도 마음이 괴로운 그는 말한다. “제가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다양한 인물에게 말을 걸기 위한 어휘를 애써 찾으며, 우리는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를 론칭한 바로 그 정신을 재발견하고 있어요. 그것은 40년대 드레스, 글램 록 셔츠, 세인트 마틴 청바지 등 클래식한 의상이에요.” ‘더 마크 제이콥스’는 그에게 “평등한 화장품과 향수처럼 이른바 평등한 패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두 단어로 간단히 말하자면 바로 ‘가격 문제’다. 자신은 늘 플립플랍에 볼 가운 같은 야회복 차림이나 모피 코트에 캔버스 스니커즈 차림을 아주 좋아했다고 주장하는 디자이너에게는 그게 바로 핵심이다. 이 새로운 컬렉션이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멋지게 만드는 시그니처 라벨에서의 상업적 부담을 덜어내주리라고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저는 니콜라 제스키에르나 톰 포드처럼 그것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늘 선망해왔어요.” 제이콥스는 혼잣말하듯 말한다. 패션계 외부에 있는 누군가가 그 안을 들여다보며 기록한 말처럼 들린다. 전 세계가 제이콥스를 완벽하게 쿨한 패션계 ‘인사이더’로 여긴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랍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는 주장한다. “저는 한 번도 제가 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전 모터사이클 재킷부터 시작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블랙으로 차려입은 누군가를 보면 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그가 쿨하지 않다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가 제안한다. “불안정해요. 그게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가장 정직한 말이에요.” 솔직한 그의 말이 놀랍지 않다.

    Tim Blanks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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