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기, 우울증 (1)
10년 전 우울증은 ‘남’의 일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대중적 질병을 넘어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이 현대인에게 전하는 ‘뼈 때리는’ 조언.
VOGUE 우울증을 일컬어 ‘마음의 감기’라 칭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DR. J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추위에 노출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어요. 이전까지 우울증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나 걸리는 병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생각하면서 치료에 대한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는 긍정적 영향이 있었죠. 그러나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 때문에 우울증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감기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폐렴에 걸릴 수 있듯이 우울증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자살과 같은 가슴 아픈 결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걸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해요.
VOGUE 아이돌 출신 연예인 설리와 구하라의 안타까운 소식으로 우울증 초기 대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DR. J TV나 인터넷을 통해 매일 접하는 연예인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느껴지지만 사실 연예인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대중이 자신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잊히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죠. 특히 청소년기나 청년기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시기인데, 대중은 어린 스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배가될 수밖에 없어요. 인터넷 ‘악플’로 자살하는 연예인이 우리나라에만 유독 많은 것은 아닌지,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진지하고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VOGUE 우울증, 자가 진단법이 따로 있나요?
DR. J 요즘 병원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인터넷으로 우울증 자가 진단을 먼저 체크해보고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스스로 정신 건강을 모니터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것이죠. 그렇지만 본인이 경험하는 증상이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는 자가 진단을 통해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 증상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도에 따라 치료의 필요성을 판단하는데, 증상이 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문하시면 치료 기간도 짧아지고 일상생활에 빨리 복귀할 수 있지만, 치료를 미루면 증상도 악화되고 회복 기간도 훨씬 길어지죠. 이런 측면에서 연예인의 정신과 치료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고 볼 수 있어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치료 사실이 알려졌을 때 느끼는 부담감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바쁘고 불규칙한 스케줄 역시 치료를 늦추는 원인이기도 하니까요.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인터넷 댓글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VOGUE 지난 10년간 신경정신과를 찾는 ‘젊은’ 환자의 증가 추이가 궁금합니다.
DR. J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2018년에 발표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현황을 살펴보면 젊은 환자의 정신과 이용이 다른 연령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2017년에는 20~29세의 연령대에서 정신과 진료비 증가율이 전년 대비 10.2%로 전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죠. 이는 정신과 진료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던 기성세대와 달리, 정신과 진료를 더 이상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는 젊은 세대의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20~30대 환자를 진료실에서 접하다 보면, 병을 치료받으러 왔다기보다는 삶에 대한 멘토링이나 코칭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혼자 공부하기 힘들면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고, 혼자 운동하기 힘들면 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는 것처럼, 살아가면서도 혼자 힘으로 판단하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컨설팅이 필요해요.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도움이 될 때가 있고, 특히 젊은 층에게 느껴지는 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의료인에서 인생의 카운슬러로 의미가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VOGUE 지난 10년간 한국 신경정신과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나요?
DR. J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과 질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이 공황장애 같은 정신과 질환으로 치료받은 얘기를 오픈하면서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많이 줄어들었죠. 그로 인해 더 많은 분이 좀더 일찍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고요. 좀더 전문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우울증 진단 초기부터 양극성 장애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과거 10년간 지속적으로 보인 변화 중 하나입니다. 또한 성인 ADHD 개념의 정립과 임상 적용 역시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치료 초기부터 환자 개개인에게 알맞은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적용할 수 있고, 이는 결국 환자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죠. 제도적 측면이나 의료 전달 측면에서 보면 탈원화 및 개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증가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입원 환자의 감소는 정신과 치료의 중심이 만성질환 위주에서 우리 일상 주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단, 무리한 탈원화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만성 질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긴 합니다. 새롭게 개원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신과 진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변화죠.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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