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몰랐던 박하선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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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몰랐던 박하선의 얼굴들

2021-05-11T18:39:52+00:00 2021.04.21|

미처 몰랐던 박하선의 얼굴들. 그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SBS 파워FM <박하선의 씨네타운>을 들으면 중저음의 목소리가 새삼 매력적이에요. 라디오에 진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생방송이 부담스러웠지만 갈수록 빠져들어요. 제작진이 선해서 힘도 받고 게스트로 나온 배우, 감독들과 이야기 나눠서 좋고요. 낮은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는데 요즘엔 좋다고들 해주셔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요.

배우에게 중저음의 안정된 목소리는 장점 아닌가요? 데뷔할 때는 목소리 톤을 올리라는 주문을 받았어요. 작품 들어가기 2주 전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연습을 했죠. 드라마 <동이>의 인현왕후 역 말고는 제 목소리 톤으로 한 작품이 거의 없어요. 요즘엔 그런 요구는 거의 없고, 편하게 제 목소리를 내라고 하시죠. 오히려 이번에 들어가는 드라마 <검은 태양>에서는 목소리가 배역과 어울린다고 좋아해주시고요. 17년 동안 일하다 보니 세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목소리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목이 아프고 약해졌죠. 지금은 괜찮아요. 라디오 하면서 목 근육이 단련됐는지 더 튼튼해졌고요.

배우는 작품에 들어가면 촬영 때문에 라디오 병행이 어렵죠. 그래서 현역 배우가 디제이인 경우가 많지 않아요. 요즘엔 제작 환경이 좋아져서 주 4일 촬영에 3일은 쉴 수 있어요. 라디오를 가능한 한 오래 하고 싶으니 스태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제가 더 노력해야죠.

박하선은 요가 국제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운동에 진심이다. <검은 태양>에서도 박력 넘치는 그녀의 강인함을 확인할 수 있다. 트렌치 코트는 위켄드 막스마라(Weekend Max Mara), 브라 톱과 펜슬 스커트는 넘버 21(N°21 at hanstyle.com), 펌프스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라디오가 매일 오전 11시 시작이던데, 생방송 있는 날 아침 일상은 어떤가요? 오전 8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바로 출근해요. 본의 아니게 아침형 인간이 됐죠. 남는 시간에 운동이라도 한 번 더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필라테스, 플라잉 요가, 줌바도 하는데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네요.

플라잉 요가가 수준급이던데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제대로 하고 싶어서 국제 자격증을 땄어요. 인도에 가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요가 수업도 듣고요. 배우는 작품에 들어가지 않으면 오래 쉬잖아요. 그때 스스로 가라앉지 않으려고 뭐라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혼자 캐리어 끌고 인도까지 갔어요? 배낭을 멨죠. 혼자 여행 갈 때는 배낭이 더 편해요. 이제는 가정도 있고 코로나 때문에 자주 못 가지만, 작품 끝나면 혼자 여행을 자주 갔어요. 10여 개국을 다녔죠.

일하지 않을 때 가라앉는 자신을 달래는 방법이 여행이군요. 20대에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이 끝나고 모두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스코틀랜드에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촬영지를 보고선 ‘자꾸 가라앉지 말자, 이리 좋은 풍경을 계속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덕분에 여행을 더 다녔죠.

박하선은 이미지보다 실제가 더 활발하고 도전적이에요. 대중이 박하선에게 가장 오해하는 부분은 뭘까요? <하이킥> 때 다들 절 보고 “너무 착할 거 같다, 뭘 해도 웃어줄 거 같다, 애교가 많을 거 같다”고 하셨어요.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제가 계속 웃을 순 없고 애교도 친한 사람한테만 가능하거든요. 대중의 기대치가 커서 맞추기 힘들더라고요.

실제의 박하선은 어떤가요? 점점 봉인 해제가 되면서 사람들이 저를 알아가는 거 같아요. 낯을 가리지만 친해지면 달라지죠. 친구들이 CCTV를 켜놓고 제 모습을 퍼트려야 한대요. 할리우드 스타일이라나요. 마고 로비와 윌 스미스가 자유롭게 인터뷰한 영상이 있는데 그 정도 강도예요.

배역이나 TV에 비치는 모습으로 이미지가 설정되잖아요. 실제의 자신과 달라서 힘들 때는 어떻게 극복해왔나요? 극복이라기보단 한 번씩 ‘내가 어떤 상태지?’ 이미지를 체크해요. 댓글도 찾아보고 주변 얘기도 들어서 저를 객관적으로 보려 하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이나, <킬빌>의 더 브라이드, 한국의 짐 캐리가 되고 싶다고 했죠. 의외였어요. 성향상 반복을 싫어해요. 이전과 조금이라도 달라야죠. 캐릭터를 만들 때 제일 많이 하는 작업이 ‘전하고 어떻게 달라질까’예요.

17년 차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선함과 따뜻함이 서린 박하선의 미소. 니트 원피스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MBC 드라마 <검은 태양>에서 국정원 팀장 역할을 맡았어요. 총 12부작입니다 방영 플랫폼이 다르지만 <며느라기>(2020) 12부작, <산후조리원>(2020)도 8부작이었죠. 드라마가 점차 짧아지는 추세예요. 드라마 촬영이 예전에는 점진적으로 캐릭터를 스며들게 했다면, 이젠 처음부터 명확하게 캐릭터를 설정하고 들어가요. 배우로 서 어려울 거 같아요. 매우 공감 가는 시선이에요. <검은 태양> 첫 촬영일이 다가올수록 무서웠어요. 현장에선 신인 때처럼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다행히 잘 끝났지만요. <산후조리원> 때도 자신 있는 캐릭터였지만 막상 촬영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장점도 있어요. 확실히 캐릭터를 보여주고 시작하는 작품만의 재미가 있죠.

17년 차의 촬영 압박감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연습뿐이죠.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계속 연습해요. 대사를 외우면서 잠들어요. 이번엔 정독이 중요한 대본이라 스터디 카페에 갔어요. 우리 때 다니던 독서실과 다르더라고요. 공기청정기도 있고 책상도 좋고요. 학생 때 이만큼 열심히 독서실 다녔으면 다른 사람이 됐을걸요. (웃음) 누가 툭 치면 대사가 나올 만큼 준비해야 불안감이 극복돼요. 막상 이렇게 말하고 못하면 어쩌죠?

일 말고도 완벽을 추구하는 편이죠? 완벽하진 못한데 완벽주의자 성향은 있는 편이에요.

<며느라기>와 <산후조리원> 얘기를 뺄 수 없네요. 워낙 여성 시청자의 호응이 셌죠. 여성의 현실을 제대로 묘사한 드라마는 오랜만이었어요. 내 자리가 없을까 봐 위축되던 중 복귀한 작품이어서 감사했고, 할수록 공감 가고 위로 받았어요. 이런 작품 활동이 <검은 태양>이란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확장됐죠. 내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나를 얘기했더니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 멋지네요. 할 수 있는 최선을 골랐는데, 그것이 잘됐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많은 일이 주어졌어요. 감사하죠.

“20대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어요. 언제 변했나요? <혼술남녀>(2016) 때부터요. 이 작품 하기 전에 2년 정도 쉬었어요. 본의 아니게 쉬게 된 거죠. 그러다 오랜만에 작품을 하니까 ‘일할 수 있는 자체가 굉장히 감사하구나’ 싶었어요. 한창 일이 들어오던 어릴 때는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했거든요. 쉬는 동안 다른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고칠 점을 깨닫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시간이 약이 됐죠. 이제는 새벽에 촬영장 가려고 나서면 공기가 얼마나 상쾌한지 몰라요. 마음가짐이 바뀌니까 피곤한 줄도 몰라요.

일이 없던 시기가 전화위복이 됐네요. 이제 힘든 일이 생기면 ‘앞으로 얼마나 좋아지려고 그러지?’라고 생각해요. 인생에 좋을 때가 있으면 안 좋을 때가 있고, 그 반대일 때가 있잖아요. 그걸 받아들이니까 편해졌어요.

앞으로 박하선이 보여줄 다양한 얼굴을 기대해도 좋다. 점프수트는 페이우(Fayewoo), 피시넷 싸이하이 부츠는 지미 추(Jimmy Choo).

배우로서 현재 위치가 들어오는 작품에도 변화가 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네요. 어떤 커리어를 바라나요? 그런 권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고 계획대로 가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감사하게도 올해는 여러 작품이 잡혀 있어요. 감사한 시기니만큼 겸손하게 임하려 해요. 꿈이라면, 정말 꿈인데 윤여정, 김희애 선배님처럼 내가 앞장서서 작품을 끌고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두 분의 존재가 제게는 희망이에요.

아동 학대를 다룬 영화 <고백>(2020)이 그런 작품이었죠. 작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회복지사 오순을 연기했어요. 오순의 알 수 없는 표정을 클로즈업한 포스터도 인상적이고요. 처음엔 이런 캐릭터에 캐스팅돼서 놀랐어요. 감독님께서 제게 그런 모습이 있을 거 같다고 하셨죠. 감사하며 촬영한 작품이에요. 이전에 독립군을 다룬 영화의 출연진이 “알려져야 할 역사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출연했다”고 인터뷰하는 걸 봤어요. 저도 그런 책임감으로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 작품으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배우상을 받았죠. 제 생에 여우주연상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하죠. 데뷔할 때는 당연히 상을 타겠거니 했는데 갈수록 포기하면서 시상식을 남 일처럼 봤거든요. 이번 수상이 힘이 됐어요.

아동 학대를 다루다 보니 심적으로 힘든 촬영이 많았겠어요. 그렇기도 하지만 밤마다 아이 재우고 대본 보는 시간이 좋았어요.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 강력한 역할인지라 연습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웠어요. 언젠가 <텔 미 썸딩>(1999) 같은 영화를 꼭 찍어보고 싶었거든요. 꿈을 이뤘죠.

<고백>을 보고 박하선의 다른 얼굴을 발견한 제작진, 감독이 많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17년 차가 되니 고민이 그거예요. 새로워지고 싶은데 새롭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고, 특정 잔상이 남은 배우라서 어떻게 하면 다르게 다가갈까. 이번 <검은 태양>에서도 그런 부분을 노력했고요.

머리를 자르고 나서도 이미지가 달라졌어요. 패셔너블하게 봐주시는 분이 생겼어요. 그 부분이 고팠거든요. 사실 제가 패션을 좋아하는데 모르시더라고요. 사진기자에게 일상 패션을 찍히는 것도 재밌고요. 여행 가서도 빈티지 아이템 쇼핑을 자주 해요. 스코틀랜드, 영국, 뉴욕에서 가격이 괜찮은 빈티지 숍을 찾곤 했죠.

빈티지 패션을 좋아하는군요. 여전히 대중에게 보여줄 게 많아요. 저를 뻔히 생각하지 않도록 제가 더 노력해야죠.

“아직 보여드릴 게 많다. 나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죠. 지금이 전성기라 여기고 늘 감사히 주어진 일을 다 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아플 만큼 체력이 소진됐지만 ‘언제 또 이런 날이 오겠어’라며 즐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