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디올 셀러브리티 매니저가 사는 집

2021.10.05

디올 셀러브리티 매니저가 사는 집

아제딘 알라이아와 칼 라거펠트로부터 시작된 분위기, 럭셔리 실내장식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패션은 디올 하우스의 셀러브리티 매니저 마틸드 파비에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열정과 함께 프랑스식 삶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장 즐거운 엘레강스가 여러분을 반긴다.

마틸드 파비에의 아름다운 포트레이트. 그녀는 파리의 아름다운 빛과 색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실크 커튼과 화려한 프린트로 덮인 의자는 알렉상드르 르누아르의 고전 작품을 떠올린다.

실크 커튼과 화려한 프린트로 덮인 의자는 알렉상드르 르누아르의 고전 작품을 떠올린다.

선반 위에는 클래식한 조명과 클로드 라란풍의 장식품이 가득하다.

그녀에게는 수십 가지 초상이 있다. 거기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면, 고정관념이나 반복되는 개념, 수천 번 널리 읽힌 것, 계속 증명되어온 것, 겉치레를 위해 덧붙인 이야기 같은 것은 먼저 빼놓아야 할 것이다. 마틸드 파비에(Mathilde Favier)를 만났을 때, 그녀의 혈통이나 가족, 여성에 대한 연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 아니지 않나. 마틸드는 디올의 초신성과도 같은 주얼리 디자이너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Victoire de Castellane)을 언니로, 라이프스타일 전문가 폴린 에냉(Pauline Henin)을 동생으로 두고 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잠시 가계도는 내려놓겠다. 그녀와 나눈 한 번의 대화는 다른 기사를 들춰 보고 싶게 만들었고, 그녀가 사는 라뮈에트(La Muette) 역이 있는 파리 16구를 확신에 찬 걸음걸이로 돌아다니는 우아한 실루엣은 모디아노 작품의 여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에서 뛰쳐나온 듯한 그림자 같기도 하고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느낌마저도 슬그머니 난다. 어쩌면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작품 얘기까지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메신 거리는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웃음기 가득한 커다란 눈, 진 세버그 스타일의 헤어커트, 열정적인 태도의 마틸드는 때때로 무기력해지거나 긴장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직장인 크리스챤 디올에 만족하는 것이 분명했다.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 디올에서 일하게 되었고, 뉴룩 역시 전체 룩의 방향성을 주도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 역시 때가 잘 맞아떨어져 그녀가 제시한 방향성이 되었다.

이러한 마틸드 공주의 영토에서는 제2의 제국이 시작되고 있다. 충족된 삶이란, 요즘은 어느 때보다 여러 가지를 하나로 통일성 있게 모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모브 컬러의 꽃 장식이 있는 카펫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디 시카고 같은 페미니즘의 색채를 즐기고, 동시에 영국 귀족 교육의 산실인 해로우 스쿨에 아들을 데려다주는 일 같은 것을 통일성 있게 해내는 것 말이다. 이렇게 진정한 엘레강스란 여러 특징을 단순히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행운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그녀의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패션계의 멜팅 포트에서는 어떠한 삶의 기쁨, 선물, 사람들의 관심, 긴장감, 칼 라거펠트나 아제딘 알라이아 같은 유명 인사의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금방 맞힐 수 있다. 또 큰아버지 질 뒤푸르(Gilles Dufour) 또한 흥미롭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대단한 인물들과 아주 어린 나이에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우스꽝스러움으로 가득한 속물근성(Snobisme)에 젖어드는 것을 예방하는 역할도 했다. 몇 년간 마틸드는 무게감 있는 일을 맡아왔다. 어느 정도 예술에 살짝 발을 담그면서도 균형을 맞추는 사이 어딘가의 일이라 할 PR 업무를 하게 된 것이다. 디올이 개최한 패션쇼 현장에서 마틸드는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이다. 여러 초대 손님을 맞느라 바쁘지만 미소나 윙크, 키스를 보내는 등의 제스처를 절대 빼놓지 않으며, 그곳에서 아마 가장 젠틀한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손님들의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한 뒤, 그녀는 인파에 완전히 녹아들어 홀연히 사라졌다가 돌연 다시 나타난다. 플래시 세례가 더 쏟아질수록 사람들의 기대는 더욱 끓어오른다.

그렇게 패션쇼의 첫째 줄 좌석이 채워지고, 곧 암전이 찾아온다. 그녀는 계단 쪽 통로에서 조금 떨어져 가장 마지막 줄에 앉곤 한다. 이러한 작은 배려가 특별히 어떤 가치를 위해 베푸는 것은 아니지만, 럭셔리 하우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절대적 럭셔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은 배려 같은 요소가 그녀에게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틸드의 작은 행동은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것, 특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고 간직되는 훌륭한 매너 같은 것에 쉽게 질려버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완벽한 가정교육과 매너라는 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은 사람들이 가치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가치를 잃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끝자락의 뉴욕에 살고 있을 때 모두가 힘들지는 않았다. ‘Effortless’라는 표현의 뜻을 알고 있었다.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자크 그랑주(Jacques Grange)가 설계한 상상 속에 나올 법한 아파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식사 또는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 햄프턴의 광활한 자연과 함께 보내는 주말, 더욱 신비한 여행지 같은 것이 지닌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이웃사촌 중에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은행가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저 허세가 아닌 진정한 수집가로서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푸른 잎을 프린트한 커튼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오르게 한다.

바르보틴 도자기와 앤티크 식기, 투명한 유리잔 같은 것들이 선반 위에 잘 정돈된 부엌. 프린트와 자수가 수놓인 리넨 식탁보가 이국적인 무드를 더한다.

웃음기 가득한 커다란 눈, 진 세버그 스타일의 헤어커트, 열정적인 태도의 마틸드.

그녀의 인테리어에는 행복이 조심스레 숨어 있다. 빈티지 샹들리에가 걸린 거실은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로렌초 몬자르디노풍이 가미된 리 라지윌을 오마주한 거실.

아름답게 장식한 접시, 앤티크 촛대와 꽃병 등으로 차린 우아한 테이블은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인다.

웃는 것과 사람을 맞아들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상류층 미국인들이 강제적으로 무언가 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사회생활을 해온 젊은 워킹 맘인 마틸드는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만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은 콩코르드 역에서 나오는 파리지엔의 모습을 상상하는 클리셰에 곧장 빠진다. 유럽 여자를 생각하면 어딘지 모르게 특별한 것을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이나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소설을 읽은 여성이라면 구대륙인 유럽이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에 가져다준 충격, 삶에 대한 욕구, 자유로움, 신선함, 대담함에 대한 묘사를 기억할 것이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단어 ‘Sprezzatura’는 모든 것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16세기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쓴 <궁정론(Le Livre du Courtisan)>에 따르면 최상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신선하면서도 클리셰이기도 한 사람을 맞는다는 것의 가치는 점점 더 빠르게 진부해지고 있다. 우아하게 식탁 꾸미기, 가장 잘 어울리는 요리를 고를 줄 안다는 것, 완벽한 와인과 같은 것은 적어도 마틸드의 집에서는 어떠한 노동이나 성취가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집에서는 관심을 끌기 위한 쓸데없는 대화 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맞이하고 또 그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들과 모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사진은 종종 미끼일 뿐,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사치와 같이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많기 마련이다. 아름답게 장식된 접시, 바르보틴 도자기, 앤티크 식기, 꽃무늬로 장식된 식기, 깨지기 쉬운 유리잔, 혹여 깨질까 봐 조심스레 쌓은 물병 같은 것이 잘 정돈된 선반 사이에, 더 나아가 프린트와 자수를 놓은 리넨 식탁보로 가득 찬 찬장 속에 작은 행복이 조심스레 숨어 있기 마련이다. 사무실은 더 이상 사무실이 아니라 정원이었고, 부엌 역시 풍요로운 텃밭으로 느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마법으로 거대한 시계가 방에 놓여 더 이상 늦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흰 토끼와 함께 차를 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틸드는 파리지엔이라기보다 브리티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주 심플하게 삶의 고삐를 한 번에 쥐고 있는 사람일까? 위대한 평론가 마리오 프라츠(Mario Praz)에 따르면, 인테리어는 그것을 장식한 사람뿐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의 내면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오늘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카사 델라 비타(Casa della Vita)>나 <가구 철학(Philosophie de L’ameublement)>을 아마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마틸드의 인테리어를 돌아보면 그녀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그녀의 삶과 조우하기도 하고, 행복한 우연을 붙잡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나날 같은 것이다. ‘대체 어디 써야 할지도 모를 물건을 아주 열심히 모으는 것’이나 제이콥 거리에 있는 마들렌 카스탱(Madeleine Castaing)의 빅토리아풍 상점, 포슬린 자기의 우아함과 맞부딪히는 신고전주의적 엄격함, 자크 그랑주가 만들어낸 오브제 사이에서 이뤄지는 행복한 대화, 엘시 드 울프(Elsie de Wolfe)의 <좋은 느낌의 집(The House in Good Taste)> 같은 책으로 점철되지만은 않은 수많은 서적, 섬세하게 그려진 인도 직물인 칼라마카리로 장식된 부엌, 로렌초 몬자르디노(Lorenzo Mongiardino)풍이 가미된 리 라지윌(Lee Radziwill)을 오마주한 거실, 클로드 라란(Claude Lalanne)풍의 자연스러운 흐름도 있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알렉상드르 르누아르(Alexandre Lenoir)의 나비파 화풍으로 그려진, 케르 자비에 루셀(Ker-Xavier Roussel) 스타일의 스트라이프 패턴 드레스를 입은 뷔야르 부인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틸드의 초상은 자크 프레베르의 시와 같이 도무지 한 번에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면 그녀 자체가 자크 프레베르풍일까? “새를 그리는 방법은 말이죠…” (VK)

숲을 닮은 딥 그린 컬러의 주물 냄비 두 개가 조리대의 중심을 잡고 있다.

화려한 앤티크 베이스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수국과 호접란 등 다채로운 꽃을 꽂아 작은 정원을 연출했다.

집 안 곳곳에는 한 가지 주제로 점철되지 않은 수많은 서적이 자리한다. 투명하고 신비로운 자수정은 그녀가 사랑하는 오브제 중 하나다.

    OLIVIER GABET
    사진
    MATTHIEU SALVA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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