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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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가다

2021-11-24T19:23:17+00:00 2021.11.25|

루이 비통(Louis Vuitton) 베스트, 톱, 스커트에 디올(Dior) 슈즈를 신은 모델 아녹 야이와  LV 트렁크 여러 개가 카트에 오른 채 호텔 슈발 블랑 현관 로비를 지난다.

 

2020년 봄. 코로나19로 프랑스에 첫 번째 봉쇄령이 내려진 동안에는 긴급한 용무로 외출하거나 집 근처에서 운동하는 것 정도만 허용됐다. 그때부터 나는 센강을 따라 매일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다. 유럽 국경이 봉쇄되고 이 도시가 초자연적 수준으로 조용해지던 낯선 시간에 센강은 그 근처에 사는 내게 에너지와 평온함의 중요한 원천, 즉 나의 ‘시금석’이 되어갔다.

나는 예전에도 그 강변을 수없이 걸었다. 하지만 봉쇄령 이후에는 주변 환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게 됐다. 한번은 생루이섬(Île Saint-Louis) 근처에서 바지선과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유람선이 자리를 비운 센강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백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루프톱에 설치된 풍향계, 루브르박물관 파사드에 설치된 벽감 속 동상, 레지스탕스 영웅들의 이름을 새긴 명판도 눈에 들어왔다.

파리는 이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여름 어느 맑은 날 ‘슈발 블랑(Cheval Blanc)’의 두툼한 유리창 너머로 센강을 유심히 내려다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지난가을 문을 연 이 호텔은 파리에 자리한 LVMH의 첫 5성급 숙박 시설로, 파리의 역사적인 사마리텐 백화점 건물을 16년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때로 논란이 일기도 했던 이 프로젝트는 이 기업의 대서사적 초석이다. 부르주아 계급이 기성복부터 어린이 장난감까지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었던 19세기 상업의 전(殿)이었던 사마리텐이 높이 솟은 유리 천장 아트리움 주위에 층층이 연철 발코니를 설치함으로써 벨 에포크 시대의 찬란함을 되찾아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LVMH 계열 브랜드는 물론이고 보테가 베네타, 프라다, 끌로에를 포함한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했다. 리볼리가(Rue de Rivoli)와 접한 이 복합 단지의 파사드는 일본 건축 기업 사나(SANAA)가 설계한 웨이브 모양의 미래적 글라스로 둘러싸여 있다.

아녹 야이가 샤넬(Chanel) 재킷, 미우미우(Miu Miu) 톱과 스커트를 입고, 구찌(Gucci) 부츠를 신은 채 햇살 가득한 스위트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슈발 블랑은 이 복합 단지 남쪽 부분을 차지한다. 사마리텐과는 확연히 다른 아르데코풍의 위풍당당한 건물로 1607년 앙리 4세 때 건설되어 파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다리인 퐁뇌프를 내려다보고 있다. 10층 건물에 72개 객실과 스위트룸을 갖춘 호텔은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휴식처이며, 평온함을 보장하는 사생활의 보루 역할을 한다. 피터 마리노(Peter Marino)가 금빛을 가미한 베이지와 화이트의 하모니를 바탕으로 실내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1930년대와 1970년대가 조우한 듯한 분위기에 보편적인 인테리어를 살짝 가미함으로써 멋진 우아함을 발산한다. 프랑스 아티스트를 비롯해 세계적인 창작자의 가구, 조명, 실내장식 등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또 브라질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빅 뮤니츠(Vik Muniz)에게 거대하고 컬러풀한 사진 아상블라주(Assemblage) 두 점을 의뢰해 근사한 로비를 연출했다. 로비의 다른 쪽 벽면에 걸린 프랑스 아티스트 조르주 마티외(Georges Mathieu)의 1978년 작품인 커다란 블루 추상화도 로비에 한층 더 아름다움을 보탰다. 또한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의 컬러풀한 리소그래프(Lithograph)가 상부 층 복도마다 걸려 있다. 호텔 최고층에 자리한 ‘퀸테슨스 스위트(Quintessence Suite)’는 2층으로 된 풀장 딸린 650㎡(200평) 크기의 프라이빗 궁전이다. “저는 새롭고 예기치 못한 것을 원했죠.” 마리노가 내게 말했다. “전에 보지 못한 그런 스타일로 꾸며보고 싶었죠. 우아하면서도 금욕적이고 유니크하게 말이죠.”

프랑스어로 ‘예술적인 삶’을 뜻하는 ‘아르 드 비브르(Art de Vivre)’ 정신을 드높이도록 디자인한 슈발 블랑은 섬세한 디테일로 넘쳐난다. 아녹 야이가 로에베(Loewe) 드레스에 디올(Dior) 슈즈를 착용했다.

좀처럼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이 도시에서 새 호텔을 열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중 하나는 관광객이 목적지만큼 경험을 추구한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리고 관광객이 다른 5성급 호텔이 둥지를 틀고 있는 파리 제8구역의 황금 삼각지대를 벗어나리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LVMH가 실적이 다소 부진하던 사마리텐 복합 단지의 최대 지분을 인수한 2001년(그리고 안전상 이유로 그곳을 폐쇄한 2005년), 파리의 이 구역은 전혀 시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이곳은 부유한 엘리트 계층을 뜻하는 보보스(Bobos)족이 이탈리(Eataly)에서 식전주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를 즐기고, 도매상이 있던 자리가 컨셉 스토어가 대체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에 들어선 파리의 사랑스러운 리버티(Liberty) 스타일 농수산 시장이 2016년에 무지막지한 지하 쇼핑몰 레알(Les Halles)로 바뀌었고, 지금 그곳에는 거대한 유리 지붕이 설치되었다. 근처에는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도 자리한다.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리노베이션을 맡은 그곳은 케어링 그룹 명예회장인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가 소장한 현대 아트 컬렉션을 순환 전시한다. 무엇보다 선견지명을 가진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이 최근에 슈발 블랑 바로 아래 구역을 비롯한 센강 부근 일부 지역의 차량 출입을 통제했다.

겉모습은 차분하지만 내부는 화려한 슈발 블랑이 새로운 풍경과 어우러진다. “우리는 파리의 새로운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슈발 블랑의 CEO 올리비에 르페브르(Olivier Lefebvre)가 이 호텔에 마련된 레스토랑 네 곳 중 하나인 플레니튀드(Plénitude)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내게 말했다(이 호텔의 다른 다이닝 식당으로는 1층에 위치한 림바(Limbar)가 있다. 무늬목 바닥의 이 식당은 1970년대풍 샹들리에와 레드 가죽 커버를 씌운 가구로 꾸몄으며 밀라노풍 식당 란고스테리아(Langosteria)도 있다). 플레니튀드의 거울로 된 문 뒤에는 사마리텐에서 한때 팔던 접시가 가득 찬 치즈 수납장이 놓여 있다. 그리고 프랑스 아티스트 에티엔 모야(Etienne Moyat)가 사슬톱을 사용해 짙은 나무 천장에 소용돌이 패턴을 새긴 와인 창고에는 매그넘 사이즈의 돔 페리뇽이 유리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다.

 

호텔 식당 네 곳 중 하나인 플레니튀드에서 발렌티노(Valentino) 재킷을 입은 아녹 야이가 오늘의 요리를(이 호텔의 매니저 알렉상드르(Alexandre)가 내민 디올(Dior) 스니커즈 한 짝) 유심히 지켜본다. 톱은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귀고리는 까르띠에(Cartier).

나는 르페브르에게 파리의 다른 5성급 호텔과 슈발 블랑의 차이점을 물었다. 그가 국민적 자긍심이 풍기는 목소리로 “우리는 프랑스 호텔이죠”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슈발 블랑은 프랑스식 ‘아르 드 비브르(Art de Vivre, 예술적인 삶)’를 드높이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스위트룸은 고급 카펫, 우아한 드레싱 공간, 완벽한 리넨 등을 갖췄다. 일부 객실에는 센강이 보이는 발코니와 깊은 욕조가 마련되어 있다. 호텔 컨시어지에서는 몽마르트르의 숨겨진 명소 투어, 파리 보석상과 액세서리 제작업체, 깃털 세공업체(Plumassier) 프라이빗 견학, 이발소 체험 등이 포함된 ‘젠틀맨의 날’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에게 슈발 블랑은 숙박하는 곳이죠. 패션 하우스 파투(Patou)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이 호텔의 직원 유니폼을 디자인한 기욤 앙리(Guillaume Henry)가 말했다. “그렇지만 모든 요소가 하나하나 눈여겨봐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죠. 그런 곳을 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아요.”

호텔을 두루두루 안내받다 보니, 지하층에서 디올 스파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페이셜 마사지와 미세 마찰 치료뿐 아니라 ‘정기’ ‘숭고한 조화’ 같은 매혹적인 이름의 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있다. 블루와 그린 모자이크 타일을 소용돌이 웨이브 무늬로 시공한 풀장이다. 그 공간의 뒷벽은 프랑스계 이스라엘 아티스트이며 오요람(Oyoram)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요라메 메보라흐(Yorame Mevorach)의 스크린으로 센강의 물결 모양을 영사하는 비디오 설치미술로 덮여 있다. 물과 관련된 이 테마는 호텔 위치뿐 아니라 그것의 과거와도 연결된다. 사마리텐이라는 이름 역시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성경 이야기를 담은 그림으로 장식된 빗물 펌프장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 심장부에 있는 이 호텔의 위치는 그것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주요 부분이다. 센강부터 저 높이 하늘까지, 이런 전경이야말로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의 핵심 컨셉이었다”고 마리노가 내게 말했다. 스위트룸의 발코니에 서서 다시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2019년 충격적인 화재 후 여전히 훼손된 채 비계에 둘러싸인 노트르담, 에펠탑, 파베르제의 달걀(Fabergé Egg)처럼 솟아 있는 앵발리드(Les Invalides)의 황금색 돔도 보였다. 그 아래 초록빛을 띤 갈색 물결의 센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도심 속 강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차분하고 실용적이며 아름다운 이 강은 도심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른다. 가까운 곳에 이 강이 있다는 것 자체로 이미 낙원이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