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당신에게 ‘이 주얼리’는 어떤 의미입니까?

2022.10.13

by 김나랑

    당신에게 ‘이 주얼리’는 어떤 의미입니까?

    권오상, ‘The Flat 6’, Diasec on Lightjet Print, 180×230cm, 2004 ©Artist and Arario Gallery

    당신 손목의 롤렉스, 약지의 핑크 다이아몬드는 어떤 의미인가? 문학, 영화, 음악, 미술에서 상징이 된 시계와 주얼리.

    권오상 ‘더 플랫’의 시계와 보석

    권오상의 ‘더 플랫(The Flat)’ 시리즈(2003~2007, 2010~2014)와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직접 밝힌 작업 계기다. 1. 그림이지만 조각처럼 독립적으로 직립한 입간판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2. 동료 조각가와 대화하다 잡지 속 롤렉스(Rolex) 시계의 사진을 오려서 팔에 붙여주었는데 멀리서 보니 진짜 시계를 찬 것 같았다. 3. 조각의 역사에 정물 조각이 많지 않은데, 정물 조각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권오상은 패션 잡지에 등장한 상품을 하나하나 오리고 뒷면에 철사 지지대를 붙여 세운 뒤 촬영해 오직 커다란 사진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조각을 선보였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종 결과물은 평면이지만, 사진 속의 이미지는 모두 실재하는 공간에 조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더 플랫’은 조각 작품이다.” 권오상이 사진을 이어 붙여 완성한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1998~현재)을 잇는 또 하나의 ‘사진 조각’ 시리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리즈의 첫 작품 ‘더 플랫 1’(2003)에서 작업실 책상 위에 시계, 반지, 만년필 등의 사진을 세워놓은 후, 작가는 공간을 시계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다음은 형형색색의 보석 그리고 화장품이었다. 2010년에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는 한 권의 잡지에 실린 이미지를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작가는 사진을 오리며 작품 혹은 금은보화로 꽉 찬 작업실을 상상했다. 시계와 보석의 숲도 떠올렸다. 시계 그리고 보석이 가득한 모습이 도시 풍경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여기에는 시각적 완성도가 높은 상품과 그것을 최대한 돋보이게 촬영한 사진은 회화나 조각 같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도 담겼다. 실제로 작가는 ‘더 플랫’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시각적으로 한층 더 예리해졌다고 말한다. 이미지를 선택하고 오려서 촬영하는 과정에서 심미성이 탁월한 사물을 찬찬히 살펴본 덕분이다.

    작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든 세련되고 정교한 디자인의 시계와 형형색색의 찬란한 보석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눈을 즐겁게 하는 매혹적인 정경이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이 작품들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이다. 너무 많은 상품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회, 끝없이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 소비로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특히 실재하는 시계나 보석이 아니라 그것들의 사진을 한 번 더 촬영해 보여주는 ‘더 플랫’은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미지를 닮았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권하는 현실의 반영 같다. 상품이 사회 문화적 기호로 작동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오늘날 고가의 상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능력, 권위, 경쟁력 등을 전달하는 정보가 되었고 사람들은 상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물론 소유의 욕망은 삶에 활력을 주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분명히 무언가를 향한 욕망을 갖는다. 따라서 무조건 부정적이라 단정 짓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인간 욕망의 양면성을 고민하게 하는 ‘더 플랫’은 자연히 삶의 헛됨과 허망함을 전하는 바니타스(Vanitas)와 연결된다. 17세기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세속적 흠모의 대상과 죽음의 상징인 해골, 가면, 꽃과 식물, 초, 비눗방울, 책과 지도, 악기와 악보, 그림과 도자기, 돈 그리고 시계와 보석 등이 함께 그려져 필멸과 인생무상, 부와 성공의 덧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바니타스 정물화의 메시지는 인간의 유한함을 직면하게 한다. 그러나 그만큼 소중한 삶의 시간을 후회 없이 살도록 이끌고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실존의 조건을 고민하게 한다.

    이 밖에도 ‘더 플랫’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있을 것이다. 권오상 역시 “의미의 여백이 있는 작품이 좋다”며 결말을 열어둔다. 화려한 보석의 이미지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고, 작품에 등장한 시계의 역사를 추적해볼 수도 있다. 당대의 유행을 유추하거나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며 나의 취향을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보석이나 시계가 등장하는 또 다른 미술 작품은 없는지 찾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고정된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명확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더 플랫’이 “현대사회를 반영하고 기억하는 정물 조각”이라는 사실이다. 이문정 미술 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콰이엇 <11:11>의 롤렉스

    자주 다니는 남초 사이트에선 주기적으로 ‘시계 서열’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온다. 시계에 아무 관심이 없는 나에겐 그냥 꼬부랑말처럼 보인다. 어떻게 읽는지조차 몰라 원고를 쓰면서 검색해봤다.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등이 최상위권에 있다. 그런데 왜 저 서열표 맨 위에 롤렉스가 없는 거지? 시계라곤 군대 있는 동안 ‘돌핀’ 야광 시계밖에 차본 적 없는 나도 롤렉스가 명품인 건 안다. 나 같은 ‘머글’조차 아는 브랜드여서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 예물을 얘기할 때면 늘 롤렉스가 거론되고, 비싼 시계의 대명사처럼 묘사돼 난 롤렉스가 독보적인 브랜드인 줄 알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한층 더 롤렉스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음반이 한 장 있었으니 바로 일리네어 레코즈의 레이블 앨범 <11:11>이다.

    일리네어 레코즈는 더 콰이엇과 도끼, 빈지노가 함께 활동했던 힙합 레이블이고, <11:11>은 셋이 함께 참여한 일리네어 레코즈의 합동 음반이다. 그 유명한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담겨 있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공동대표였던 더 콰이엇과 도끼는 <11:11>의 커버 아트워크를 롤렉스로 꾸몄다. 세 개의 롤렉스가 전면에 등장하고, 이 시계 세 개의 가격을 합치면 1억2,400만원이라고 한다. 이 음반은 한국 힙합 역사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반으로 꼽힌다. 장르적으론 트랩 힙합을 유행시켰고, 동시에 정서적으론 이른바 ‘머니 스왜그’를 본격적으로 알린 음반이다.

    ‘머니 스왜그’는 한국말로 하면 ‘돈 자랑’이다. 한국에서 돈 자랑은 금기돼온 거였다. ‘금기’라기보다는 ‘지양’이 더 적절한 표현 같다. 한국인은 예부터 겸손과 겸양을 내세우는 걸 미덕으로 여겨왔고, 자신을 내세우는 건 팔불출이라 불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자랑을 하겠다며 나선 게 힙합 음악이었고, 이런 움직임을 견인하고 유행시킨 게 바로 더 콰이엇과 도끼다. 급을 나누고 자신을 뽐내는 게 시대정신이 돼가는 사회에서 힙합과 일리네어 레코즈는 일종의 상징 같았다.

    더 콰이엇은 빈지노의 노래 ‘Profile’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돈 세는 것도 질려, 이제 난. 정말로 필요해, 지폐를 세는 기계가”라는 가사를 남겼다. 이보다 앞서 또 다른 래퍼 버벌진트는 ‘My Audi’란 곡을 발표하며 자신처럼 열심히 음악을 하면 힙합으로 아우디를 살 수 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 콰이엇의 스왜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음악으로 노력해 이렇게 성공했고, 이런 돈 타령이 바로 그 성공의 증거라는 것이다.

    <11:11>의 첫 곡 ‘We Here 2’에서 더 콰이엇은 “내가 G-Shock에서 Rolex까지 온 과정 따윈 모른 채 걍 엄마나 조르겠지”라고 랩을 한다. 자수성가 서사는 힙합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고, 성공의 과정을 더 콰이엇은 노래에서 시계로 비유했다. 그리고 성공한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랩으로 이렇게까지 성공한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상 살기 힘들고 세상이 잘못됐다는 가사를 쓰는 게 오히려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래퍼는 돈과 자기 자랑 말고 다른 얘기를 해서는 안 되는 건가? 부자는 삶의 고민도 없는 건가?’ 더 콰이엇은 롤렉스를 자랑하기 9년 전 발표한 데뷔 앨범 <Music>에서 훨씬 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했다. 더 콰이엇의 말대로라면 <Music>에선 온통 가난한 이야기만 해야 하지만 그때의 더 콰이엇은 그러지 않고 여러 삶의 단상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더 콰이엇의 성공과 스왜그 이후 뽐내기 문화는 힙합의 주류가 되었고 이내 지겨워졌다. 나는 <11:11>이 2010년대의 사회상을 이야기할 때 꼭 거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파생된 문화는 사라지거나 최소한 축소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롤렉스와 파텍 필립을 우러러볼 때 지샥이나 카시오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이 자주 등장하길 바란다. 그게 더 예술을 더 다양하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한다. 스왜그가 넘쳐나던 그 시절은 힙합이 ‘지겹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던 시절이기도 했다. 김학선 음악 칼럼니스트

    권오상, ‘The Flat 2’, Diasec on Lightjet Print, 120×150cm, 2003 ©Artist and Arario Gallery

    론 하워드 <아폴로 13>의 문워치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Houston, we’ve had a problem).”

    론 하워드 감독의 1995년 작 영화 <아폴로 13>은 1970년 4월 11일 실제로 이뤄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 임무를 다룬다. 그러나 베테랑 사령관 짐 러블(톰 행크스 분)과 사령선 조종사 잭 스와이거트(케빈 베이컨 분), 달 착륙선 조종사 프레드 헤이즈(빌 팩스턴 분)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달에 가지 못했다. 아폴로 13호가 지구를 떠난 지 이틀 남짓 지난 1970년 4월 13일 지구에서 무려 32만1,860km나 떨어져 우주를 항해하던 중 기계선의 산소 탱크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연달아 이어진 기체 이상으로 그들은 우주 한복판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결과적으로는 기적적으로 세 명의 우주인은 모두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다. 우리가 ‘역사’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영화는 과장 없이 시종일관 담담하고 진지하게 그려내며,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능을 마주한다. 실패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성공을 결국은 일궈내는 영웅들의 모습이 이제는 다소 ‘아날로그’처럼 보이는 27년 전 필름 영화에 담겨 있다.

    영화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1970년 미국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냉전 체제의 한가운데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소련)은 1957년 우주에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호를 발사했다. 세계의 정점에 섰다고 생각한 미국인들(특히 정치인들)에게는 ‘스푸트니크 쇼크’로 불릴 만큼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후 그 유명한 ‘아폴로 계획’이 시작되었다.

    아폴로 계획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소련보다 먼저 달에 인류를 보내고 귀환한다’는 계획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아니 하지 못한 일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최고의 기술과 풍부한 자본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했다. 우주 비행사를 비롯한 NASA 엔지니어와 지휘관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가장 진일보한 로켓 발사 기술과 달 탐험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중요한 ‘손목시계’가 있다. 일부 마니아에게는 ‘달’과 동의어로 인정받는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오메가(Omega)의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 일명 문워치(Moonwatch)가 바로 그것이다.

    1957년 처음 스피드마스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 시계는 달 탐사나 우주 비행사가 아닌 스피드 레이서를 위한 시계였다. 스피드마스터의 상징과도 같은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 기능이란 일반적인 초침, 분침, 시침과 문자판이 있는 시계에 ‘스톱워치’와 ‘속도계(이를 타키미터(Tachymeter)라고 한다)’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크로노그래프는 초와 분, 시 단위를 11시간 59분까지 잴 수 있는 각각의 독립적인 문자판으로 이뤄진다. 특히 다이얼에 촘촘히 새긴 숫자로 1km를 이동한 속도를 알 수 있는 타키미터 기능은 자동차 경주에 필수 요소였다. NASA는 아폴로 계획을 준비하면서 우주 비행사들이 무중력 공간에서 정확한 시간을 파악하고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당대 최고의 손목시계를 시험했다. 1960년대에는 이미 유명한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있었다. 롤렉스(Rolex)의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Cosmograph Daytona)도 그중 하나였지만, ‘유인 우주 탐사 미션 및 선외 활동’을 위한 시계로 나사의 공식 인증을 받은 시계는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가 유일했다.

    고증에 충실한 <아폴로 13>에는 중요한 순간과 그렇지 않아 보이는 순간순간에 스피드마스터가 등장한다. 영화 시작 무렵, 집 마당에서 톰 행크스(짐 러블 역)는 아내와 함께 달 탐사를 상상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아폴로 13호에 탑승하기로 한 메인 파일럿 팀이 배제된 후, 아폴로 13호에 탑승하게 된 짐 러블 팀이 우주선에 타기 전 우주복을 입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두꺼운 우주복 위에 오버사이즈 스트랩으로 조합한 스피드마스터를 화면 가득 담아낸다. 그리고 영화에서 최대 위기 상황인 산소 탱크 폭발이 촉발한 이산화탄소 제거 장치를 한정된 장비로 해결한 다음, 지구로 다시 귀환하는 궤도를 정확하게 수정하는 데 바로 이 기계식 시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나 덧붙이면, 당연히 1970년에도 정확한 전자시계는 존재했다. 하지만 기기 이상으로 전자시계까지 고장 난 상황에서 스피드마스터의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우주 비행사의 ‘생사’를 결정한 14초간의 궤도 수정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기계식 시계가 당대의 첨단 기술을 누르고 생존의 문을 열었다.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도구가 되었다. 사령선이 태평양에 안착하며 무사 귀환한 후,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은 ‘성공적인 실패’를 거둔 우주인으로 인류의 달 탐사 역사에 남았다.

    2022년은 스페이스X의 민간 우주선이 지구 바깥으로 떠났다가 무사히 귀환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매일 쓰는 스마트폰에는 수십 년 전 달 탐사를 가능하게 한 슈퍼컴퓨터보다 100만 배는 많은 데이터가 들어간다. 사람들은 심박수를 측정하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스마트 시계를 쓴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이 구현하고, 태엽을 감아 시간을 유지하는 시계를 사람들은 쓴다.

    어떤 이들에게 스피드마스터를 비롯한 기계식 시계는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과거의 전형적인 손목시계를 이 시대에 찬다는 것은 신뢰의 상징이자 가장 가까이 있는 도구를 매일 몸에 지니는 것과 같다. 단단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와 몇 번의 조작으로 차분하게 돌아가는 초침과 분침의 하모니와 정교하게 제자리에 놓인 다이얼을 본다. 몇 년 지나면 쓰임이 다하는 스마트워치와 달리 잘만 관리하면 훗날 태어날 아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사치의 증명이 아니라, 도구 시계를 뜻하는 ‘툴 워치(Tool Watch)’였기 때문에 스피드마스터는 우주에 갔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딜 때 함께 달에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폴로 13호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데 실제로 큰 공을 세웠다. 우리가 우주를 탐험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더라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시계가 손목 위에 하나쯤 있다는 것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흔적을 오늘 누군가의 시간에 중첩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기분으로 나는 매일 시계를 찬다.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 더 네이비 랩(The NAVY Lab) 디렉터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의 손목시계

    책을 출간할 때마다 모여서 조촐하게 축하하는 동료들의 모임이 몇 개 있다. 새 책을 핑계로 만나 밥을 먹고 신세 한탄을 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주목적인데 대체로 작가가 서명한 책과 함께 가벼운 선물을 교환하며 마음을 나눈다. 특별한 책이나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길 때면 돈을 모아 좀 더 큰 선물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후배가 첫 소설집을 출간해서 친한 동료 몇이 돈을 모아 스마트워치를 선물했다. 최신형 스마트워치는 색도 예쁘고 날렵해서 후배의 손목과 잘 어울렸다. 그 선물을 생각해낸 사람과 주문하고 전달한 사람에게도 칭찬이 이어졌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스마트워치의 편리함과 기능으로 넘어갔고 스마트워치를 선물 받은 후배는 얘기하는 틈틈이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스마트워치의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에 감탄하면서도 묘하게 그걸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유행에 둔감한 편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하나의 물건에는 하나의 기능만 담긴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기능만 가진 물건에 끌린다. 중요한 것일수록 단순한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건 분명히 멀티의 시대에 반하는 생각이지만 다원화의 시대에 집중은 더 빛나는 것 같다.

    소설 <단순한 열정>에서 작가 아니 에르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집중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삶은 그를 만나는 시간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주인공의 시간은 세 개의 층위로 흘러간다. 그를 기다리는 시간, 그와 함께 있는 시간, 그가 떠나고 난 뒤의 시간. 주인공의 일상은 그 세 개의 시간 속에서 고통스럽게 정체되거나 황홀하게 미끄러지거나 더디게 흘러간다.

    “나는 그가 도착하기 직전이면 시계를 풀어놓고 함께 있는 동안에는 차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언제나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난 머지않아 그 사람이 조심스레 시계를 훔쳐볼 시간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사랑이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며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주인공은 그가 오기 전에 시계를 풀어놓는데 그는 차질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물론 이것은 다음 만남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일 것이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시계를 차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벅차오르면서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수록 갈증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은 뒤에도 손목에 남아 있었을 시계에 대해 상상해본다. 시계의 프레임은 어떤 모양이고 시계의 스트랩은 어떤 것이었을까. 투박하지만 길이 잘 든 가죽 시계였을까, 묵직하면서도 차가운 메탈 시계였을까. 손목시계는 그가 가진 것, 벗어놓은 것들 중에서 아주 작은 물건일 테지만 주인공은 그것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낀다. 손목에 남은 시계를 통해 머지않아 그가 돌아가리라는 것,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리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래서 이때의 손목시계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관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타이머가 된다.

    소설 속 그라는 남자는 여러 개의 기능을 가진 스마트워치 같다. 멋지고 날렵하지만 그의 사랑은 하나가 아니고 그는 여러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그의 시간은 여러 기능으로 나뉜다.

    멀티플레이어가 매력적인 시대다. 사람들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그것을 잘해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물건도 다양한 기능이 담긴 것이 사랑받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쪼개고 마음을 나누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열정이란 건 하나에 집중되고 한 사람을 향할 때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나는 점점 더 그 단순한 몰입과 뜨거움에 끌린다. 책을 읽는 시간에는 책에만, 산책할 때는 걷는 일에만, 마주 앉아 있을 때는 오직 너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흩어지지 않는 단순한 마음과 함께. 서유미 소설가

    이안 <색, 계>의 6캐럿 반지
    사랑과 증오, 황홀과 고통, 진짜와 가짜, 믿음과 배신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상태, 정체도 근원도 알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든 코스모폴리탄적 세계, 분열적 자아와 극한으로 치닫는 광기와 흥분의 시절, 이안의 <색, 계>(2007)는 이 모든 게 녹아든 ‘욕망과 경계’의 덩어리 그 자체다. 그 한가운데 위태로운 두 사람이 있다.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왕치아즈이자 막 부인(탕웨이 분), 누구보다 냉정하고 매서운 얼굴로, 누구보다 뜨거운 피를 가진 이(양조위 분). 이들의 강렬한 첫 만남은 1938년 홍콩에서 시작된다. 대학 연극반에 가입한 왕치아즈는 좋아하는 동료를 따라 친일파 핵심 인물이자 정보부 대장인 이를 암살하는 데 동참한다. 막 부인으로 위장한 왕치아즈는 이에게 접근한다. 그녀와 이 사이에 미묘한 시선이 오가고, 의도된 마음의 몸짓이 은밀히 전해진다. 그러나 이의 갑작스러운 상하이 발령으로 암살 계획은 수포가 되고 시간은 흘러 1941년 상하이다. 서로를 향한 끌림을 감지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다. 각자의 이유로 억눌러온 욕망 앞에서 이들은 파괴적일 만큼 강렬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긴다. 무섭게 서로를 파고든다.

    세 번에 걸친 <색, 계>의 섹스 신은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과격하고 지독하며 치밀하고 능란한 데다 적나라하기까지 하다. <색, 계>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꼽을 만하고 인물 간의 감정적 전이와 육체적 카타르시스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가시적이고 과시적이며 노골적이기까지 한 이 치열한 시퀀스를 지난 뒤 <색, 계>는 조용히 우리를 데리고 일본 조계지에 있는 술집으로 향한다. 막 부인을 기다리는 일은 “고문과도 같다”는 이, 그 앞에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는 바늘과 실”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러주는 막 부인. 바로 그때, 처음으로 이가 눈물을 보인다. 이어 이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며 막 부인에게 쪽지를 건넨다.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만, 그녀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이가 말한 보석상으로 간다. 이가 준비한 선물이 그녀를 기다린다. 곧 막 부인의 손에 꼭 맞는 반지가 될 반짝이는 보석. 알고 있지 않은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서로만 아는 비밀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연약한 살결을 드러낸다면 그건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누구도 믿지 않던 제국의 냉혈한 이가 아니던가. 그가 흔들렸다. 그가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반지를 찾으러 동행한다. 옅은 분홍빛이 감도는 6캐럿짜리 반지를 조심스레 제 손에 끼어보는 막 부인.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사랑스레 그녀를 바라보는 이. “거리에선 위험하다”며 반지를 빼려는 그녀에게 이는 “내가 지켜줄게”라며 한층 적극적으로 나선다. 다시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그러나 더는 그 눈빛을 받아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마는 막부인. 아니, 왕치아즈. 그녀가 다시 이를 본다. “가요.” 어리둥절해하는 이에게 더 정확히 말한다. “도망가요.” 이 순간 그녀는 막 부인의 외피를 벗고 완벽히 왕치아즈가 된다. 정체의 실토인가. 아니다. 이를 향한 왕치아즈의 고백이다. 이 파국의 드라마에 마지막 가속도가 붙는 순간이다. 그길로 그녀는 홀로 거리로 나서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우왕좌왕하다가, 가까스로 인력거를 잡아탄다. 반지는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그녀의 가만한 손가락 위에서 빛난다. 그 반지 낀 손으로 왕치아즈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옷깃에 숨겨온 독약 캡슐을 만지작거린다. 직접적이지만 충분히 의미심장한 샷.

    이의 고백에 이은 왕치아즈의 응답까지 듣고 난 영화는 이제 마지막에 이른다. 이가 왕치아즈를 포함한 암살 주동자들의 즉결 처분을 명령한다. 그 응답일까. “장관님 반지라며 전달해달라고 했다”며 반지가 이의 책상에 놓인다. 이는 “내 것이 아니다”라 한다. 그럼 대체 이 반지는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반지가 대리한다.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뭐라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 말로 설명되지 않은 마음의 잔재를. 덩그러니 반지만이 그곳에 남았다. 정지혜 영화 평론가 (VK)

      에디터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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