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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비비안 웨스트우드

2022.12.30

by 오기쁨

    굿바이, 비비안 웨스트우드

    패션계에 펑크록 아이덴티티를 불어넣은 영국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향년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29일 외신에 따르면, 비비안 웨스트우드 패션 하우스는 이날고인이 런던 남부 클래펌 자택에서 가족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잠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세상은 더 나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비비안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고인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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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영국 체셔에서 태어난 웨스트우드는 소시지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과일 가게를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어렵게 자란 그녀는 해로우 아트 스쿨에서 한 학기 동안 은세공을 배웠지만, 주변 환경에 위축된 나머지 교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웨스트우드의 운명은 패션이었습니다. 그녀는 1962년 첫 번째 결혼을 할 때 자신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웨스트우드는 밴드 매니저 말콤 맥라렌을 만나 1971년 런던에 숍을 열었습니다. 빈티지 의류와 반체제 메시지를 담은 의상을 팔기 시작한 그녀는 섹스 피스톨즈 등 많은 밴드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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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발을 예술적인 패션으로 승화시킨 웨스트우드는 이후 50여 년간 스타일리시한 순간을 우리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녀는 자유롭고 강렬하며 예측 불가능했습니다. 어느덧 그녀는 ‘펑크의 여왕’이 되어 자신의 패션 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였죠. 1992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Courtesy of Vivienne Westwood

    기후변화와 환경보호 관련 활동에 앞장선 그녀는 미국의 기밀을 폭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를 지지하는 등 사회참여적인 아티스트였습니다. 2015년에는 탱크를 몰고 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채식주의자로서 영국 내 모피 판매 금지를 위해 영국 정부에 로비를 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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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웨스트우드는 아들, 손녀와 함께 내년에 출범할 비영리법인 비비안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재단은 “비비안의 삶, 디자인, 행동주의 유산을 보호하고 지속하기 위해 만들었다”며 기후변화와 전쟁, 인권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죠.

    웨스트우드의 사망 소식에 패션계, 연예계, 정치계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 웨스트우드를 처음 만난 가수 보이 조지는 “위대하고 고무적이며 의심할 여지 없는 영국 패션의 여왕”이라고 그녀를 추모했습니다. 

    그녀의 일부 작품을 소장한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측은 “패션계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반항적인 세력”이라고 웨스트우드를 묘사하며 그녀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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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떠나고 펑크록 패션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에디터
    오기쁨(프리랜서)
    포토
    Getty Images, Courtesy of Vivienne West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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