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과 이모님, <더 글로리>의 애틋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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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과 이모님, <더 글로리>의 애틋한 순간

2023-01-23T20:16:44+00:00 2023.01.20|

넷플릭스

공개된 지 약 20일이 지난 시점에서 <더 글로리>에 대해 쓰는 건, 지금도 <더 글로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가 3월에 나올 파트 2를 기다리기 힘들어서 파트 1의 복선을 찾느라 반복 시청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여러 번 본 이유는 좀 다르다. 문동은과 강현남, 사모님과 이모님, 선생님과 선아 어머니. 이 두 여자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서였다. 왜 그랬을까. 문동은에게 강현남이, 강현남에게 문동은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여자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위로가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더 글로리>를 틀었다. 넷플릭스 유튜브 채널에서 아예 두 사람의 서사만 따로 떼어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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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동은(송혜교)에게는 강현남(염혜란) 외에도 여러 조력자가 있다. 성우방직에서 일할 때 만난 동생 구성희(송나영), 바둑을 가르쳐준 주여정(이도현),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은에게 시세보다 싸게 집을 내준 에덴빌라 주인 할머니(손숙) 등등. 그중에서도 강현남과의 서사에 끌리는 이유는 당연히 비중이 높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를 전면에 드러내는 조력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은은 현남을 만나고 나서야 연진에게 말한다. “가끔 궁금해 연진아. 피해자들의 연대와 가해자들의 연대는 어느 쪽이 더 견고할까?”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는 건, 동은은 현남을 자신과 같은 폭력 피해자로 생각한다는 것과 (비록 협박으로 처음 만난 후 최저시급으로 거래하는 관계이기는 하나) 자신과 현남의 관계를 ‘연대’로 여긴다는 것이다. 주여정에게 “칼춤 추는 망나니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과는 온도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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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가 보여주는 피해자의 연대가 흥미로운 이유는 피해자인데도 명랑하고, 연대인데도 비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애틋하다’는 건 그냥 느낌이 아니다. <더 글로리>가 두 사람을 보여주는 방식이 애틋 그 자체다. 동은이 세명재단 이사장 집 쓰레기봉투를 가지러 갔을 때, 현남은 자신이 오랫동안 동은을 지켜봤다며 협박하듯 말한다. 이때 그들 주변의 저택에 서 있는 벚꽃나무에서 꽃잎이 날린다. 두 여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온도와는 달리 그들이 놓인 상황은 어느 봄날 밤, 첫눈에 반한 남녀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이 자동차에 있을 때는 음악도 바뀐다. 넷플릭스 폐쇄형 자막 표기 기준으로 볼 때 <더 글로리>에서 ‘따뜻한 음악’과 ‘재미있는 음악’이 나오는 순간은 이때뿐이다. 무엇보다 <더 글로리> 파트 1을 통틀어 가장 애틋한 스킨십도 동은과 현남의 스킨십이다. 현남이 “내가 이래서 맞고 사나 봐요”라고 했을때, 어렵게 정색을 유지하던 동은은 현남의 손을 덥석 잡는다.

동은과 현남의 모습을 보다 보면 김은숙 작가의 전작에 나온 또 다른 ‘조력자’ 캐릭터들을 떠올릴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행랑아범(신정근)과 함안댁(이정은),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의 유신우 회장(김성겸) 등은 현남 못지않게 애틋한 조력자였다. 다만, 현남이 더 큰 위로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가 동은의 인생뿐만 아니라, <더 글로리>에서 유일하게 시청자가 숨 쉴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명랑할 기회가 없다가 숨 쉬어져서 자꾸만 웃게 된다”는 현남의 대사는 드라마에 갑자기 김은숙 작가가 나타나 이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누구도 명랑할 수 없는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시청자까지 명랑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져다주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연 파트 2에서도 이모님과 사모님은 명랑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추정하자면, 결국 강현남은 문동은이 자기 남편을 죽이는 것을 만류할 것 같다. 지금까지 수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온 사모님이, 복수를 위해 인생을 바친 그녀가 하찮은 인간 하나 때문에 더 고통받는 걸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무엇보다 문동은을 통해 이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강현남은 남편을 죽이는 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애쓸 듯 보인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가 배우 염혜란을 캐스팅했을 때는 분명 더 강렬한 임팩트를 준비했을 것이다. 강현남은 끝까지 명랑하겠지만 시청자는 그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연진과 전재준 일당에게 정체를 들키거나, 그래서 연진이가 부리는 서장 일당에게 큰일을 당하거나. 물론 그 와중에도 이모님은 사모님의 행복을 염원할 테고. 복선을 찾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2화 초반, 현남의 집을 엿보는 문동은의 대사가 복선이 될 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주었다면 어땠을까. 친구라든가, 신이라든가… 뭐, 하다못해 날씨. 그도 아니면 날카로운 무기라도.” 강현남은 문동은에게 그 무엇이든 다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친구이고, 신이고, 날씨이고, 무기인 조력자. 그래서 강현남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 <더 글로리> 파트 2에서 가장 애틋하고 강렬한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난 20일 동안 사모님과 이모님의 서사에 과몰입한 사람의 추정일 뿐이다.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