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왜 어떤 물은 더 고귀한가

2023.03.03

by 송가혜

    왜 어떤 물은 더 고귀한가

    드레스는 르수기아뜰리에(Lesugiatelier).

    귀하고 또 고귀한 의 역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다른 무엇보다 물의 소중함을 체감한다. 타고나길 예민한 피부 때문에 그럴 때마다 ‘피부 물갈이’를 치르기 때문이다. 오돌토돌한 트러블로 붉어진 피부만의 이야기일까. 두꺼운 머리카락은 낯선 물을 만나면 한껏 푸석하고 뻣뻣해져, 멀리서 보면 크고 까만 봇짐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정도다. 그런 뒤 귀국해 내 나라 내 땅의 물로 씻고 나면 해독제라도 마신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한 컨디션으로 원상 복구된다. 새삼스럽게도, 내가 얼마나 ‘물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애국심마저 발휘될 정도다.

    무색무취의 액체이자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 우리 몸속과 외부 환경을 통틀어 가장 중차대한 생명의 근원인 물. 본래 바다와 강, 지하수, 빗물, 수증기, 얼음 등으로 천연에 존재하며 고갈되는 자원이 아니다. 물 부족 현상은 우리가 후원 단체 광고의 스크린을 통해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간접경험한 것이며, 특히 뚜렷한 사계절과 자원이 풍부한 덕에 비교적 저렴한 값으로 우리는 깨끗한 물을 누려왔다. ‘물 부족’ 문제에서 한반도는 매번 제외돼왔지만,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당장 코앞인 2025년경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2 가까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하니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한반도 남부 내륙 지방은 가뭄이 지속되며 지역사회 차원에서 생활 속 물 절약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인 미국 서부는 지난해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집 앞 정원의 잔디를 가꿀 물이 없을 정도였는데, 도시 온도를 낮추기 위해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를 흰색 계열의 특수 페인트로 칠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목도하는 물 부족 사태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로, 그 속도는 늦춰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물이 점점 귀해지는 가운데 떠오르는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물’을 활용한 비즈니스다. 그리고 인간의 몸만큼 이 투명한 액체를 뿌리로 삼는 뷰티 월드에서 물은 그 무엇보다 럭셔리해진다.

    뷰티 산업에서 물은 다양한 쓰임으로 활용되어왔다.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방법은 우리가 ‘정제수’로 부르는, 상수를 증류하거나 이온교환수지를 통해 인공적으로 얻은 물. 화장품 제형의 베이스가 되는 동시에 안정성을 유지하는 주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이 정제수 대신 해양 심층수, 빙하수, 화산 온천수 등의 특별한 물이 활용되면서 화장품은 한 단계 고급화되고 차별화된 효능을 지닌다. 숫자 0에 가까운 상태의 정제수와 달리 천연에서 얻은 물은 자체적으로 미네랄과 무기질 등의 성분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순수한 빙하수를 함유한 라프레리의 ‘크리스탈 미셀라 워터 아이즈 페이스’, 알프스의 빙하수를 담은 발몽 ‘바이탈 폴스 알프스 빙하수 토너’ 등 극지방이나 고산지대처럼 청정 지역에서 얻은 물은 그만큼 로열티가 높아진다. 몇 년 전부터 정제수 대신 ‘좋은 물’을 사용한 화장품이 떠오르며 기술력으로 가치를 높인 물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기존 물보다 분자 수를 반으로 줄여 생체 흡수율을 높이고, 콜라겐과 배합해 피부 탄력을 증진하기도 한다. 원료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향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알코올 대신 물을 베이스로 한 수성 향수도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화장품뿐일까? 물을 가장 호화롭게 누릴 수 있는 스파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더 리트리트 앳 블루 라군(The Retreat at Blue Lagoon)’의 석호와 곧장 연결된 스파에선 차가운 북극풍과 대비되는 섭씨 38도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외부 세계와 단절되며 모든 근심과 걱정이 잊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실리카, 조류,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만끽한 피부가 매끈해지는 것은 덤이다. 스파 이용이 포함된 이곳의 1박 숙박 비용은? 주니어 스위트 기준 한화로 약 160만원.

    몇 년 전 킴 카다시안은 집 안의 체력 단련장을 소개하면서 다섯 개의 냉장고에 가득한 보스(Voss), 플로우(Flow) 등 여러 종류의 프리미엄 워터를 자랑했다. 만인이 웰니스 라이프를 꿈꾸는 최근에는 프리미엄 식수에 대한 수요도 부쩍 증가하고 있다. 그 가격대와 취수 지역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천차만별이다. 바다에 녹아들기 직전 북극 인근의 빙산을 통해 물을 얻는 노르웨이의 생수 브랜드 스발바르디(Svalbarði)는 리터당 한화로 약 23만원을 호가한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장식으로 물병을 디자인한 미국의 블링 H2O는 리터당 약 27만원. 일본 고베의 누노비키 폭포를 원천으로 한 필리코 주얼리 워터는 리터당 약 165만원으로, 보석으로 병을 장식한 한정판은 1,700만원을 훌쩍 웃돌기도 한다. 미국의 에센시아(Essentia)는 이온화한 pH 9.5 이상의 알칼리성 생수로, 출시 이후 꾸준히 할리우드와 운동선수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그들이 추구하는 슬로건은 ‘더 나은 수분 공급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개선’이다. 바야흐로 수질이 ‘삶의 질’까지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한 걸까?

    “깨끗하고 좋은 물이 내면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프리미엄 워터는 럭셔리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세심한 영역이죠.” 수돗물을 마셔도 되는 몇 안 되는 나라인 만큼, 고급화된 생수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바니스 뉴욕 뷰티의 양숙진 이사는 말한다. 노르웨이 청정 지역에서 취수한 ‘노던라이츠 워터’는 낮은 칼슘과 마그네슘 함유량으로 물의 경도가 낮아 부드럽고 청정한 맛을 자랑한다. 직접 시음해보니 물이 가진 특유의 맛이 느껴졌다. 목으로 넘어간 다음 혀에 살짝 씁쓸한 맛이 맴돈다고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입안을 상쾌하게 정화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와인과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 타깃층이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유럽의 왕족과 귀족은 온천으로 휴가를 떠났고, 그만큼 희귀한 물은 수 세기 전부터 신분의 상징이었다.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워터를 선택하는 데는 비싼 물이 건강상 특별한 이점을 제공한다는 다소 근거 없는 믿음도 있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증명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라고 트렌드 전문가 다니엘 레빈(Daniel Levin)은 설명한다. 해외 레스토랑에서 “스틸 워터와 스파클링 워터 중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라고 묻던 웨이터는 머지않아 물의 브랜드나 원산지를 질문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 보고서는 ‘21세기가 물 분쟁의 시대’가 될 것으로, 미래 예측 전문지 <퓨처리스트(Futurist)>에서는 ‘물은 엄청난 사업으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자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상기후로 물 부족은 심각해지지만, 물의 소비량과 질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도처에 존재하고 우리가 무료로 맘껏 이용해온 물은 점차 불평등해질 수도 있다. 물론 럭셔리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이미 자리 잡았다. (VK)

    포토그래퍼
    장덕화
    모델
    장민영
    헤어
    장혜연
    메이크업
    이숙경
    스타일리스트
    이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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