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무알코올 향수라는 아이러니

2023.06.09

by 송가혜

    무알코올 향수라는 아이러니

    바이레도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 퍼퓸 오일’ 청량한 장미 향의 롤온 퍼퓸. 에르메스 ‘카브리올 프래그런스 내추럴 스프레이’ 오스만투스, 허니서클, 샌들우드가 편안한 향을 완성하는 에탄올 프리 향수.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 ‘레 자뎅 프랑세 컬렉션 오 트리쁠 그로세이’ 싱그러운 여름을 표현한 워터 베이스의 향기. 디올 ‘쟈도르 퍼퓸 도’ 디올 최초 워터 베이스 포뮬러의 섬세하고 매혹적인 꽃 향. 르 라보 ‘떼 마차 26 리퀴드 밤’ 마차 티 어코드, 시트러스, 우디 노트가 어우러진 고요한 향기의 퍼퓸 오일. 에이딕트 ‘보이드 우드 오 드 퍼퓸’ 분사 전 흔들어 사용하는 무알코올 향수.

    더 순하지만, 진하게! 무알코올 향수라는 아이러니.

    향수를 애호하는 언론인과 과학자, 역사학자, 전문의 등이 모여 만든 단체 ‘콜렉티프 네(Le Collectif Nez)’가 출판한 향기 바이블, <향수 A to Z(Le Grand Livre du Parfum)>에 따르면 향수의 사용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구석기 시대부터 수렵 채집 사회까지, 사람들은 향이 나는 나무와 송진을 바치며 신을 숭배했고 기도가 신에 닿도록 연기를 피웠다. 주로 동물성 유지나 식물성 기름으로 제조된 고대의 ‘향유’에 이어, 지금처럼 향을 공중에 ‘분사하는’ 방식을 가능케 만든 것은 바로 13세기 말, 유럽에 등장한 ‘증류 추출법’ 기술이었다. 헝가리 여왕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되찾아준 것으로 알려진 로즈메리 주원료의 향이자, 중세 시대 알코올 추출물의 원류로 불리는 ‘기적의 향수’도 이 시기에 만들었다. 지금처럼 향기를 널리 퍼뜨리는, 알코올을 베이스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조향계가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1880년대 다채로운 향을 창조하는 합성 향료의 기술로 향수에 창의성과 추상성, 예술성이 더해지며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향긋해졌다.

    “Flowers, water, that’s it(꽃과 물, 그것이 다입니다).” 지난해 8월 크리스챤 디올 뷰티가 공개한 신작 ‘쟈도르 퍼퓸 도(J’adore Parfum D’eau)’의 캠페인에서는 향수 성분을 명시하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쟈도르’라는 향이 공개된 1999년, 새 시대에 대한 풍요와 낙관주의를 표방하던 향수는 전통적인 제조 방식에 혁신을 도입했다. 바로 ‘알코올 제로’. 용매 역할을 하는 알코올을 과감히 배제한 것이다. “알코올보다 휘발성이 낮은 물에 에센셜 오일을 혼합하면 자연 추출 성분의 향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매력입니다. 다만 알코올이 없으면 향은 금세 바래고, 화학 안정제 없이는 피부에 끈적임을 다소 남길 수 있죠.” 디올의 향을 위해 독점 협업 계약을 체결한 플로라폴리스(Florapolis) 농장의 운영 이사, 크리스텔 아셰(Christelle Archer)조차 이 대담한 방식에 우려를 표했지만, 디올은 스킨케어 기술을 설계한 일본 연구소의 ‘나노에멀전 기술’을 적용했다. 물과 플라워 오일을 극도로 높은 압력에서 섞으면 화학 첨가물이나 병을 흔들 필요 없이 두 물질이 융화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꽃 에센스처럼 풍성하고 진한 향이 탄생했다. 에르메스 향수의 핵심 코, 크리스틴 나이젤은 지난해 10월 만 3세 이상의 유아도 사용할 수 있는 ‘에탄올 프리’ 향수, ‘카브리올 프래그런스 내추럴 스프레이(Cabriole Fragrance Natural Spray)’를 공개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감을 표현하는 편안한 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후각적 기억을 담아냈죠.” 아이들의 연약한 머리카락, 피부에 닿아도 자극을 일으키지 않는 이 향수는 ‘오 드 상트르(Eau de Senteur)’, 향을 머금은 수성 분자로 구성된다. 두 가지 향수를 직접 사용해본 후기는 알코올 향수보다 살결과 부드럽게 융화돼, 퍼퓸 샤워 오일로 목욕하고 나온 직후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알코올 향수를 분사했을 때 톱노트 특유의 코끝을 톡 쏘는 짜릿함은 없지만, 대신 ‘살냄새’처럼 우아하고 편안한 향이 오래도록 남는다. ‘무알코올’과 ‘논알코올’, ‘제로’ 식품에 전 국민이 홀려 있는 지금, 향수마저 화학물질과 안녕을 고하는 중일까?

    기술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무알코올 향수’는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최초의 무알코올 향수는 인도와 중동에서 ‘아타르(Attar)’로 불리는, 에센셜 오일로 만든 고농축 향유였다. 오늘날 바이레도의 ‘롤온 퍼퓸’, 르 라보 ‘퍼퓸 오일’처럼 ‘롤온’ 타입으로 피부에 바르는 오일 제형의 향수를 생각하면 쉽다. 지보단(Givaudan)의 조향사 크리스틴 하산(Christine Hassan)은 “전통적인 오 드 퍼퓸은 알코올과 물의 비율이 높은 혼합물을 기반으로 합니다. 향기가 공기 중에 더 널리 퍼지도록 돕죠. 오일 타입은 오 드 퍼퓸보다 베이스 노트의 향이 강하고, 톱 노트가 상대적으로 약한 특성이 있어요. 향을 덜 확산시키되, 피부에 강하고 오래도록 남죠”라고 설명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콜로세움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발삼이 담긴 미스트를 뿌리고, 중세 여성들은 장미 에센스를 넣은 물로 손을 씻었다. 과거 풍습처럼 향료를 고농축으로 압축한 오일과 ‘물’을 사용한 것이 바로 수성 향수다. “비네그레트와 같은 드레싱에 비유해볼 수 있겠군요. 샐러드에 얹고 싶다고요? 먼저 피부에 바르고, 그다음 샐러드에도 뿌려보세요.” 알코올 성분 없이 오롯이 물과 농축액만 담은 ‘오 트리쁠’ 향수 시리즈에 대해 오피신 유니버셀 불리의 창립자 람단 투아미(Ramdane Touhami)는 농담조로, 하지만 강한 자부심을 갖고 말한다. 그만큼 자극이 거의 없다는 것. 민감한 피부 타입도 부담 없이 사용하도록 까다로운 제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쟈도르 퍼퓸 도’나 ‘오 트리쁠’처럼 향료와 베이스가 이미 블렌딩된 상태의 향수 또는 국내 무알코올 향수 브랜드 에이딕트(A’ddict), 노우라이(Nolie)의 제품처럼 오일 층이 분리된 상태로 분사하기 직전에 직접 흔들어 사용하는 타입으로 나뉜다. 대체로 톱-하트-베이스 3단계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구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공통점이다.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느껴지는 방식으로 향수를 만들고 싶었어요. 향기란 지울 수 없는 강렬한 흔적을 남기기보다 사용하는 사람과 친밀하게 섞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2017년 자신의 이름을 건 워터 에센스 향수 라인을 출시한 패션 디자이너 베나즈 사라푸어(Behnaz Sarafpour)는 <보그>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순수한 장미 추출물, 오렌지꽃 에센스와 증류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향은 꽃잎에 코를 대고 깊이 공기를 들이마신 듯한 만족감을 느끼도록 표현했다. 메모 파리의 설립자 존(John)과 클라라 몰로이(Clara Molloy) 부부는 향료 제조 기업 심라이즈(Symrise)와 협업해 수성 향수 브랜드, 헤르메티카(Hermetica)를 론칭했다. “향이 시간이 지나도 지속적으로, 피부에서 동일하게 발향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샴페인을 따르면 산소 거품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처럼요. 독점 기술로 오래 지속되고, 촉촉한 향을 만드는 분자 공식을 만들었죠.” 이 제조 방식은 천연 성분의 합성 물질만 사용해, 재생 가능한 향기를 생성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 앙투안 리(Antoine Lie)가 창립한 메종 사이브라이트(Maison Sybarite)의 향수는 알코올 대신 150나노미터의 미세 물방울을 사용하고,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유기 용매, 사포닌을 활용해 오일을 물과 혼합한 에멀전을 새롭게 창조했다. 그 결과 직관적이고, 정확하고, 알코올이 증발하길 기다리는 전통 향수와 달리 즉각적인 발향을 자랑하는 향기가 완성됐다.

    과거 향수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관심사는 향기의 노트, 피부에 남는 잔향, 그것이 주는 감정과 기억일 뿐 향수의 제조나 구성 방식, 알코올 또는 수성 여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면서 향수의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향수에 사용되는 변성 알코올, 에탄올이 주는 피부 자극, 결국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에 되돌아가는 화학물질을 줄이고자 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때문이다. 코티 기업은 미국의 탄소 재활용 기업 란자테크(LanzaTech)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자연 발효 과정을 통해 재활용한 알코올로 제작한 향수, 구찌 ‘웨어 마이 하트 비츠’를 공개했다. 이 방식은 끌로에, 버버리, 미우미우, 마크 제이콥스 향수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겔랑 역시 향수 사업 전반에 걸쳐 유기농 알코올로의 전환을 지난해에 발표했다. ‘향’의 베이스로 결코 대체되지 않을 것 같던 알코올에 대해 향수 월드가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무알코올 향수를 ‘대세’라고 칭하기는 시기상조지만, 수요가 증가하는 흐름만큼은 명확하다. 환경친화적이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며, 우리의 삶을 더없이 아름답게 만들어주니까. (VK)

      에디터
      송가혜
      포토그래퍼
      이호현
      소품
      전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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