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취향을 낳은 위대한 도시, 로마에 관하여

2023.06.09

by 류가영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취향을 낳은 위대한 도시, 로마에 관하여

    펜디 가문은 풍요로운 역사와 현대적인 멋을 모두 품은 로마의 부흥을 굳게 믿는다.
    타고난 믹스 매치 능력을 지닌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와 함께 그녀의 취향을 낳은 위대한 도시,
    로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959년 개장한 포로 이탈리코 수영장의 1985년 모습. 펜디는 패션 하우스 최초로 이곳에서 패션쇼를 선보였다.
    스위스 출신 아티스트 조피 토이버아르프(Sophie Taeuber-Arp)가 펜디 2015 F/W 패션쇼에서 선보인 작품.

    “어머니께서 2004년에 이 호텔을 매입했는데 살짝 낡은 부분은 그대로 두자고 하셨어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19세기에 제작된 금박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이 호텔’은 테베레(Tevere) 강변에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은 호텔 빌라 라에티티아(Villa Laetitia)다. “과도한 리모델링은 모든 걸 망쳐요. 우린 살짝 녹청색으로 바랜 그윽한 멋을 간직한 호텔을 원했죠. 로마에서는 항상 이런 걸 목표로 삼아요. 낡은 것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걸요.” 2009년 탄생한 피카부 백을 2020년 피카부 아이씨유 백으로 탈바꿈하며 또 한 번 여성의 욕망을 자극한 실비아가 말했다. 그녀는 과거의 유산에서 계속 간직해야 할 부분과 새롭게 매만져야 할 부분을 본능적으로 감지해내는 사람이었다. 이는 실비아뿐 아니라 로마 출신 디자이너라면 모두가 공감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비아는 여전히 로마의 데 리티스(De Ritis)에서 디자인한 셔츠와 맞춤 케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오늘 그녀는 펜디 블랙 재킷과 스토브파이프 팬츠, 블랙과 브라운으로 물든 가죽 브로그, 딸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Delfina Delettrez Fendi)가 디자인한 보석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바뀐 헤어스타일. 펜디 트렁크 쇼를 선보이면서도 중간중간 맨해튼 클럽 스튜디오 54에 단골로 드나들고, 현기증이 날 정도의 높은 힐을 신고, 대서양에서 열리는 사교 행사를 주름잡던 그녀가 20대부터 고수해온 시그니처 스타일인 금발의 단발머리가 보이시한 짙은 갈색 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호텔 이용객이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벽과 대조를 이루는 모던한 그림을 슬금슬금 감상하며 로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아무도 패션계 유명 인사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새로운 헤어스타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비를 부각하는 것은 실비아가 즐기는 디자인 방식이기도 하다. “과거 폐발전소가 근사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고대 조각상 박물관 첸트랄레 몬테마르티니(Centrale Montemartini)를 떠올려보세요.” 그녀가 이탈리아인 특유의 제스처로 양손을 꽉 쥐며 말했다. “공장에서 쓰이던 눈금판과 기계가 그대로 보존된 건물 안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우아한 조각상이 놓여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박물관이 간직한 가장 매력적인 아름다움이죠. 그런 대비 효과 말이에요.” 어깨를 으쓱한 실비아가 뒤로 기대앉으며 미소 지었다. “여기는 로마입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항상 대립하죠. 물론 로마인들은 보통 자기가 어떤 것을 더 추구하는지 모른 채 열띤 논쟁만 거듭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대화가 오가죠.”

    로마 프라티 지역에 자리한 펜디 가문의 호텔 빌라 라에티티아.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은 건물 천장을 복원했다.

    펜디 가문은 오래전부터 갈등과 논쟁을 마주하길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여성이 이끌어왔다. 1950년대, 이탈리아인 대부분이 여성이 집 밖에서 일하는 걸 생각할 수조차 없을 때, 실비아의 할머니 아델레(Adele)는 1926년 시작한 가문의 모피 사업을 다섯 딸 파올라(Paola), 알다(Alda), 프란카(Franca), 카를라(Carla), 안나(Anna)의 도움으로 잘나가는 액세서리 사업체로 키워냈다. 그리고 막내 안나를 필두로 한 다섯 자매는 독일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1965년 펜디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당시 꼬마 숙녀였던 실비아는 10여 년 후 기성복 라인을 론칭하고 펜디라는 브랜드가 자리 잡고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현재에도 힘든 여정일 것이다. “어머니 안나는 다섯 자매 중에서도 유독 창의적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어머니 본인도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사람도 모두 인정했죠. 이 호텔은 그걸 증명하는 좋은 예입니다. 디자인부터 패션, 인테리어까지, 모든 측면에서 엄마가 얼마나 미감을 타고났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발휘했는지 알 수 있어요. 직접 경험했기에 그 모든 부분에서 성공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란 걸 알고 있죠.”

    이름난 가문에서 성장하며 실비아는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화려한 사회의 일원이었고, 엄마 손에 이끌려 걸음마를 떼던 순간부터 하염없이 거닐던 펜디 아틀리에의 단조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다(그녀는 바비 인형보다 아틀리에 장인들과 함께 장난치며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실비아는 1987년 펜디시메(Fendissime)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그녀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 것은 1997년 바게트 백을 선보인 후였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가 거리에서 도둑맞은 바로 그 가방이었다.

    어느덧 예순을 넘긴 실비아는 펜디 남성복과 액세서리 부문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는 펜디의 기풍을 이루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과 미래, 오랜 아카이브가 품은 철학과 새로운 디자인을 결합하며 펜디 유니버스를 만들어간다.

    고요한 주거 지역에서 힙스터들에게 입소문이 난 오스티엔세(Ostiense)는 실비아가 로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로마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거예요. 전혀 웅장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일상적인 분위기가 흐르죠.” 로마의 역사 중심지와 치네치타(Cinecittà, 이탈리아 영화 산업 부흥을 위해 1937년 설립된 영화 촬영 스튜디오로 펜디 가문의 소중한 친구인 페데리코 펠리니가 한때 다섯 자매에게 그들의 컬렉션 런웨이 장소로 활용하라고 적극 권장한 곳이기도 하다)만큼 오스티엔세는 펜디 가문에 소중한 장소다. 우선 안나부터 실비아, 델피나까지, 3대가 모두 단골손님인 109년 전통의 트라토리아 식당 알 비온도 테베레(Al Biondo Tevere)가 있다(불멸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역시 이곳 단골이었다). “델피나가 아주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식당이에요. 아마 직원들은 실비아가 식당 부엌에 들어가 나중에 먹을 음식을 포장해 가도 뭐라고 안 할 거예요.” 식당 안뜰에는 양치식물과 생기 있는 컬러의 플라스틱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다. 전통적인 이탤리언 양식으로 꾸민 실내는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 밝은 조명으로 가득했다. “이런 소박함이 아주 좋아요. 의자 하나하나까지 제 맘에 쏙 들죠. 이런 작은 것들이 식당을 계속 지켜온 것들이거든요. 역사와 사연이 더해지며 보기 좋게 손때 묻은 의자는 그 어떤 의자보다 매력적이죠.” 실비아가 말했다.

    실비아는 관광객 눈에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로마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예를 들어 로마 중심가의 18세기 궁전을 차지하던 펜디 본사가 8년 전, 로마 외곽의 파시스트 정권 시절에 지어진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Palazzo della Civiltà Italiana)로 옮겨간 것은 순전히 건축적이고 미적인 측면에서 이해받아야 해요.” 그러면서 실비아는 충분히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묵살’을 의미하는 또 다른 이탈리아식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여전히 많은 로마 사람이 파시스트 정권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요. 그렇지만 팔라초가 품은 아름다움은 정말 놀라워요. 그리스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 느낌도 들죠. 본사를 옮기는 건 펜디와 디올을 거친 루이 비통의 회장 겸 CEO 피에트로 베카리(Pietro Beccari)의 아이디어였어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정신 나간 거 아냐?’라고 여겼지만 공간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와 채광이 환상적이더라고요. 6층짜리 건물이지만 로마에서는가장 높은 빌딩이거든요. 언덕 위에 있으니 전망도 최고죠. 미켈란젤로와 헨리 무어가 조각하던 시절부터 애용한 카라라 대리석으로 건축한 것도 끝내주고요. 아주 합리적인 설계에, 순수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져요.”

    실비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진정성이야말로 그녀에게 중요한 가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점은 펜디가 2010년 출간한 책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은 이탈리아 장인을 총망라해 소개하는 그녀만의 안내서다. “요즘은 사람들 취향이 정말 제각각이죠. 도쿄에서 모디카 초콜릿을 구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고, 모든 것이 정말 혼재되어 있어요.” 책장을 넘기던 실비아는 라보리 아르티지아날리 페미닐리(Lavori Artigianali Femminili)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스페인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이 아름다운 아동복 부티크를 바라보는 실비아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태어난 순간부터 이곳의 옷을 입었어요. 델피나도, 손녀 엠마(Emma)도 마찬가지죠. 어린 시절 저에게 옷을 피팅해주던 몇몇 직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정말 멋진 일이죠.”

    기억과 역사를 간직한 채 로마를 지키는 그런 장소야말로 “문화적이고 미적인 감각을 키워주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도록 만들어주는” 선생님이라고 실비아는 말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로마의 모든 곳이, 이곳의 모든 것이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다는 신비를 깨달았어요.” 로마의 특별함은 그런 것이다. “당신이 로마에서 자랐다면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핏속에 흐른다고 할 수 있죠. 물론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로마인도 있어요. 우리에게 고대의 돌길을 걷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거든요.” 다시금 책장을 넘기던 실비아는 모서리 부분이 접힌 페이지에서 손길을 멈추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펜디는 이런 공간처럼 기억되어야 해요.” VL

      포토그래퍼
      Benoît Peverelli
      Maria Shollenbarger
      에디터
      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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