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주얼리

보석 경매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2024.06.05

by 류가영

    보석 경매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전설적인 아가일 광산의 레드 다이아몬드부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자수정 목걸이까지, 이름값만으로 가슴을 울리는 보석 경매의 세계.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경매 전문가의 안내를 따라 그 아름답고도 비밀스러운 땅을 누볐다.

    지난 5월 13일 제네바에서 열린 필립스 옥션 보석 경매에서 평생 단 한 번도 실물을 구경하기 어렵다는 레드 다이아몬드가 등장했다. ‘아가일 피닉스’라는 이름에서 유추 가능하듯 이 레드 다이아몬드는 호주의 전설적인 아가일 광산에서 채굴된 것이다.

    2023년 1월 18일, 소더비 런던에서 진행된 로열 앤 노블 경매에 영국 왕실의 공식 주얼러 가라드(Garrard)의 자수정 십자가 펜던트가 등장하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버킹엄궁전에 입성한 듯 숨을 죽였다. 1920년대에 만든 작품으로 198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자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맨 처음 착용한 후 꾸준히 목에 걸며 명성을 떨친 주얼리였다. 무대 위에 등장하기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이 작품의 추정가는 8만~12만 파운드, 약 1억4,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였으나 최종적으로 무려 16만3,800파운드, 약 2억 8,300만원에 새로운 주인의 목에 걸렸다. 예상을 웃도는 낙찰가도 화제였으나 낙찰자가 알려지자 이 자수정 십자가 펜던트는 더 유명해졌다. 주인공은 바로 킴 카다시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소유물로 대담한 크기에 더해 빈티지한 매력을 뽐내는 이 자수정 십자가는 소더비 경매를 통해 셀러브리티 컬렉션의 일부가 됐다.

    지난해 제네바에서 진행된 크리스티 경매도 뒤지지 않았다. 크리스티가 내세운 회심의 작품은 투명한 초록빛으로 물든 억만장자 하이디 호르텐의 주얼리 컬렉션. 2022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녀의 유품으로 다이아몬드, 루비 같은 진귀한 보석과 반클리프 아펠, 까르띠에, 티파니 등의 명품을 비롯해 700점의 주얼리를 아우르고 있었다. 사실 호르텐은 유대인을 이용한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나치 당원 헬무트 호르텐의 미망인으로 그녀의 소장품에는 ‘나치 부역자의 보석’이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하이디 호르텐 컬렉션은 그녀의 이름에 덧씌워진 불명예와 상관없이 총 2억200만 달러, 약 2,700억원에 낙찰되며 크리스티 개인 보석 소장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이전 최고가는 2011년 낙찰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보석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지난 5월 13일 제네바에서 열린 필립스 옥션 보석 경매에서 또 한 번 환호성이 들려왔다. 평생 단 한 번도 실물을 구경하기 어렵다는 레드 다이아몬드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아가일 피닉스(The Argyle Phoenix)’라는 이름의 이 레드 다이아몬드는 폐광된 호주의 전설적인 아가일 광산에서 채굴된 것이었다. 레드 다이아몬드는 너무 희귀한 나머지 1캐럿 미만의 작은 크기로밖에 만날 수 없지만 필립스 경매에 출품된 레드 다이아몬드는 무려 1.56캐럿이었다. 더욱이 컬러 다이아몬드로는 아주 드문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으로 추정가만 100만~150만 달러, 약 13억8,000만원에서 20억8,000만원에 달했다. 이 경이로운 보석의 출현으로 필립스 옥션은 전 세계 컬렉터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돌이켜보면 지난해에는 유독 많은 형형색색의 전설적인 젬스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 듯하다.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혹은 보석 경매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걸까? 고민할 것 없이 보석 경매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먼저 진귀한 보석의 세계를 거닐고 있을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옥션의 보석 경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주얼리와 의미 있는 출품작, 보석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들만의 심미안과 최근 보석 경매 트렌드에 대해 모두 물었다.

    왕실이나 귀족처럼 프로비넌스, 즉 소장 이력이 중요한 작품의 경우 컬렉터의 관심은 한층 높아진다. 조세핀의 블루 문 다이아몬드, 마리 앙투아네트의 18세기 진주 펜던트와 함께 소더비 경매 역사상 뜨거운 관심을 받은 유명한 상속녀 바바라 허튼의 까르띠에 옥 목걸이. 약 370억원에 낙찰됐다.

    소더비의 첫 한국인 경매사 김유니로부터 답장이 왔다. 소더비 아시아 주얼리 세일즈 총괄을 맡고 있는 그녀에 따르면 소더비 보석 경매의 변함없는 큐레이션 원칙은 소장 가치가 높은 보석과 주얼리 브랜드별 희소성 있는 작품 수를 적절한 비율로 유지하는 것이다. 가장 높은 ‘팬시 비비드’ 등급을 받은 핑크 다이아몬드와 이국적인 패턴이 돋보이는 반클리프 아펠의 1980년대 이집션 리바이벌 컬렉션을 모두 아우르는 식이다. 최근 그녀의 눈에 포착된 흐름은 2019년 아가일 광산이 채굴을 중단한 후 점점 가격대가 치솟고 있는 핑크 다이아몬드와 컬러 다이아몬드의 인기. 물론 지금은 찾기 어려운 특정 아티스트의 빈티지와 앤티크 작품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예술적 가치가 다른 어떤 시기보다 높은 20세기 초반의 아르데코, 아르누보 작품도 희귀한 편이다. 여기에 왕실이나 귀족처럼 프로비넌스(Provenance), 즉 소장 이력이 중요한 작품의 경우 컬렉터의 관심은 한층 높아진다. “주얼리 경매의 역사를 말하자면 20세기 윈저 공작 부인의 1987년 경매를 빼놓을 수 없죠. 지난해까지 개인 소장품으로는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며 컨템퍼러리 주얼리 옥션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니까요. 그녀의 큐레이션을 통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설립되어 여전히 위상을 자랑하는 하이엔드 주얼리 하우스의 클래식한 디자인을 모두 엿볼 수 있었어요.” 조세핀의 블루 문 다이아몬드, 마리 앙투아네트의 18세기 진주 펜던트 역시 공개되자마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어떤 희귀한 보석은 박물관에 소장되기도 하지만, 프라이빗 컬렉션이 되는 경우 다시 만나기 힘들어지는데 보석 경매를 통해 평소 만나기 힘든 희소성 높은 다양한 시간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특별합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출품될 때 소더비는 이를 위한 전시를 열기도 한다. 소더비의 자랑이자 현재까지 보석 경매 최고가(약 966억6,600만원)를 기록 중인 59.60캐럿짜리 ‘The Pink Star’ 역시 낙찰되기 전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과 런던 자연사 박물관을 순회하며 하루에만 수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점점 커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소더비는 출품작의 희소성과 중요성,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보석의 소장 여부를 예리하게 가늠한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보석 감정원과도 꾸준히 교류하며 깊이 있는 조사 과정을 거친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보석을 감정하는 만큼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임한다. 김유니 경매사 역시 소더비를 통해 단순한 미술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적, 과학적 맥락까지 모두 살피며 보석을 해석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소더비의 첫 한국인 경매사로 여러 보석을 선보이면서 기념비적 작품이 한 세대를 거쳐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장면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마음이 뭉클합니다.”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소개된 팬시 옐로 VS2 다이아몬드 펜던트 목걸이 ‘The Moon of Baroda’. 마릴린 먼로가 착용해 널리 알려졌다.

    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지역 부사장 겸 주얼리 부서 스페셜리스트 로니 쉬(Ronny Hsu)는 보석 경매의 순기능을 굳게 믿는다. “보석 경매는 대중에게 공정한 시장을 제공합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공개되죠. 온라인 응찰이라는 새로운 창구를 통해 더 쉽고 편리하게 귀한 보석을 만날 수 있게 됐음은 물론이고요.” 고객 맞춤 프라이빗 세일로 잘 알려진 크리스티는 고객에게 미술 감정, 금융, 국제 부동산, 교육을 포함해 포괄적인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티가 NFT 미술 전용 경매 플랫폼을 경매 회사 최초로 출시했다는 점 역시 시장에 따라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이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다가오는 9월에는 새로운 아시아 태평양 본사가 홍콩의 최첨단 빌딩 ‘더 헨더슨’에 문을 여는데 경매와 전시, 이벤트가 진행될 이 새로운 랜드마크 역시 경매 참여자에게 한층 친밀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설계됐다. “크리스티는 구매자만큼 위탁자의 요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판매자는 곧 잠재적 구매자임을 잊지 않는 거죠. 다행히 크리스티는 다양한 부서와의 협업과 구매자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고객의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로니 쉬가 포착한 바에 따르면 최근 보석 경매 트렌드는 카슈미르, 미얀마, 스리랑카 원산지의 사파이어와 콜롬비아에서 물 건너온 파라이바 투르말린, 그 외 단종됐거나 한정판인 작품에 집중되어 있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크리스티 보석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5개 제품 중 4개가 다이아몬드였지만 말이다. 판매자에 대한 사려 깊은 관심과 세밀한 평가를 기반으로 크리스티는 2022년 홍콩 배우 관지림, 지난해 하이디 호르텐의 컬렉션을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280.84캐럿으로 만든 ‘The Amazon Queen’ 펜던트. 세계적으로 유색 보석과 다이아몬드, 유색 다이아몬드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소더비와 마찬가지로 최근 필립스 옥션에서도 핑크 다이아몬드에 열렬한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해 등장한 팬시 인텐스 핑크 다이아몬드는 1,320만 달러, 약 182억280만원에 낙찰되며 필립스 옥션 보석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가치와 별개로 필립스 옥션 주얼리 부문 글로벌 책임자 브누아 르펠랭(Benoît Repellin)은 보석 경매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상으로부터 매우 매력적인 견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 소개한다. 그뿐 아니다. 골동품 보석부터 현대 작품, 여러 주얼리 하우스의 사인이 겹겹이 새겨진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 물론 가격을 매기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특히 그 제품이 유명 인사의 개인 소장품이라거나 독특한 히스토리가 있을 때는 더더욱. 필립스 옥션은 보석의 품질, 장인 정신, 디자인, 서명, 주얼리의 제작 시기와 출처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가격을 책정한다. 때로 그들이 산정한 보석의 가치가 큐레이션 가능한 범위에 있더라도 적합한 고객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단호하게 경매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고객에게는 보석을 판매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안내한다. 최근 필립스 경매에서도 유색 보석과 다이아몬드, 특히 유색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패션계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빈티지 제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월 홍콩에서는 1985년 제작된 반클리프 아펠의 터콰이즈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58만4,302달러, 약 8억575만원에 낙찰됐으며 이는 최고 예상 판매가를 4배 가까이 웃도는 가격이었다. 1960년경 반클리프 아펠의 부티크 컬렉션에 포함됐던 퍼피 브로치 역시 최저 추정가의 거의 10배 가까운 금액에 판매됐다. 이 외에도 까르띠에의 아르데코 다이아몬드 팔찌와 뚜띠 프루티 브로치, 불가리의 모네떼 목걸이와 1980년대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주얼리 하우스의 아이코닉 모델이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판매 가능성과 별개로 보석과 주얼리의 합당한 가치를 찾기 위한 노력은 2015년 12월 비로소 첫 경매를 개최한 필립스가 아시아를 기점으로 경매시장에서 굳건한 입지를 차지한 비결이다.

    지난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판매된 세계적인 보석상 JAR(Joel Arthur Rosenthal)의 컬렉션 중 ‘Eye’ 뱅글. 추정치의 5배를 웃도는 85만6,800프랑, 약 12억8,650만원에 낙찰됐다.

    취향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3대 경매 회사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보석 경매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호화로운 놀이터에서 그치지 않는다. 높은 소장 가치와 매력적인 이야기를 지닌 보석을 만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장소이자 기회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발 빠른 MZ세대를 중심으로 보석 경매에 대한 허들은 날로 낮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소더비 아시아는 처음으로 라이브 주얼리 경매에서 ‘화이트 글러브(White Glove, 경매에 나온 모든 작품이 낙찰된 것)’를 달성했다. 당시 소개한 일본 필립스 가문의 컬렉션 200여 점을 입찰한 고객의 28%가 MZ세대였다. 보석 경매사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현재 한국 럭셔리 주얼리 시장은 세계 4위 규모다. 한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주얼리 업계 절대 강자들이 과감하게 마케팅을 펼치는 무대가 되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6월 30일까지 열리는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Cartier, Crystallization of Time)> 전시처럼 박물관 소장품 규모의 대형 보석 전시가 꾸준히 펼쳐지고, 티파니의 로제와 지민, 불가리의 리사, 까르띠에의 지수와 뷔처럼 국내 셀러브리티가 럭셔리 주얼리 하우스의 얼굴이 되는 것도 익숙한 즐거움이 됐다. 예상하건대 현재 미술에 집중된 국내 컬렉터의 관심 역시 머지않아 보석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보석 경매는 ‘최고’의 무언가를 맞닥뜨릴 수 있는 최적의 종착지일 테니까. (VK)

      민은미(주얼리 칼럼니스트)
      사진
      COURTESY OF CHRISTIE’S, PHILLIPS, SOTHEB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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