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야삼의 푸른 낙원을 가다
다니엘 아샴의 에메랄드빛 새로운 낙원을 탐방했다. 잭 세글릭이 설계한 그의 브리지햄프턴 집은 재치 있는 디자인과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뉴욕 브리지햄프턴에 머문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낼 땐 아침에 눈뜨자마자 일본식으로 꾸민 정원을 돌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모래에 갈퀴질을 한 다음 나무와 함께 배치한 이끼, 돌, 조각품 주변으로 물결무늬를 만들어요.” 이어 아샴은 교토 승려들에게 배운 독특한 의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무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정원의 아름다움은 매일 새로운 풍경을 자아낸다는 데 있습니다.”

이 같은 ‘낯선 아름다움’이란 아샴이 포르쉐, 포켓몬 캐릭터, 아폴로 흉상 같은 과거와 현재의 아이콘을 본래 있었던 시간과 장소에서 분리한 다음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는 작업을 통해 자주 고찰해온 개념이다. 정원에서 눈에 띄는 그의 작품 ‘부식된 청동 멜포메네 흉상(Bronze Eroded Bust of Melpomene)’을 주목하라. 이는 아샴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주형을 사용해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원본이 되는 동상은 박물관 조각 정원에 있지만, 산화된 머리와 뺨, 쇄골을 수정으로 장식한 아샴의 버전은 고대 유물 이미지와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발산하고 있다.

회화부터 거대한 동상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여온 아샴이 최근 푹 빠진 대상은 다름 아닌 집이다. “흥미로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뭔가로 다시 태어날 잠재력이 있는 부지를 오랫동안 찾아다녔어요.” 아샴은 1970년대에 식료품 체인점 딘앤델루카(Dean&Deluca)의 미학을 완성한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잭 세글릭(Jack Ceglic)이 2009년 설계한 독특한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 부지에서 완벽한 이상을 발견했다. “아주 직선적인 공간이죠.” 에나멜로 덮은 조립식 강철 패널로 설계한 두 동의 건물에 대해 아샴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느덧 여덟 대에 이르는 그의 포르쉐 컬렉션과 자신의 생활과 작업 무대가 될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는 동시에 그리 머지않은 과거의 유산과도 같은 공간을 당시의 빛나는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아샴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소는 집의 고고학적 가치였다.

“처음에는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어요.” 아샴이 말했다. 그는 실내 정원을 만들어 두 동으로 나뉜 건물을 하나로 잇고, 원래부터 존재하던 콘크리트 바닥을 새로 마감했으며, 콜러(Kohler)와 지난해 협업한 새 컬렉션을 활용해 욕실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조립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려 했어요.” 이는 콜러와 함께 만든 ‘(랜드셰이프스(Landshapes)’ 컬렉션에 대한 설명으로도 들렸다. 구불구불한 나무 프레임을 두른 거울, 흰 천을 뒤집어쓴 형상으로 제작한 벽 조명, 만화에서 볼 법한 독특한 형태의 싱크와 욕조를 모두 아우르는 이 컬렉션은 일상용품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재고하게 했다. 특히 그의 예전 집에 있었던 스나키텍처(Snarkitecture) 욕조에서 영감을 받아 재창조한 욕조는 손으로 매만진 독특한 텍스처 덕분에 그의 조소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샴이 들뜬 목소리로 “랜드셰이프스 컬렉션에도 포함된 욕실 타일은 전부 욕조, 수전, 변기 주물에서 나오는 폐자재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랜드셰이프스 컬렉션은 이 집을 장식하는 수많은 협업 제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레이블 스나키텍처의 공동 설립자인 아샴은 늘 예술과 디자인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즐겼고, 퍼렐 윌리엄스부터 디올까지 수많은 아티스트, 브랜드와 관계를 맺어왔으니 말이다. 애니메이션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캐릭터를 이름으로 앞세운 ‘디노(Dino)’ 의자, ‘가주(Gazoo)’ 테이블 램프, ‘베드락(Bedrock)’ 다이닝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석기시대를 연상시키면서 다소 만화적인 인상을 주는 가구는 직선적인 건축물에 위트를 더하고 있었다. 벽난로 근처의 아늑한 좌석 섹션은 피에르 잔느레 스타일을 살짝 비튼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빈티지 메신저 백의 캔버스 천을 활용해 다시 만든 거예요.” 아샴이 친구 사무엘 로스(Samuel Ross)가 디자인한 칵테일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샴과 로스는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가구를 전시했다.) 그 밑에는 모로코 여행에서 공수해온 다소 ‘평범한’ 디자인의 러그가 깔려 있었다.


각각의 방은 아샴의 ‘아이돌’이 한데 모인 집합소다. 스튜디오 거실에는 빈티지 마리오 벨리니 소파가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Akari)’ 조명, 아샴이 자신의 스타일로 복제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캐릭터 R2-D2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줌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뒤쪽에 루브르 컬렉션 아카이브의 로마 황제 루키우스 베루스의 부식된 흉상을 석영으로 장식한 아샴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이어 그 옆에 걸린 아샴의 새 작품 ‘분절된 아이돌(Fractured Idols)’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멈췄다(아샴의 순수 회화 작품은 전부 페로탕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만화 캐릭터와 고대 조각상이 아수라 백작처럼 절반씩 섞인 작품이었다. “그림은 한두 달 정도 여기 걸려 있다가 갤러리로 옮겨질 거예요. 이 집 덕분에 제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찬찬히 뜯어볼 기회가 생겨서 기뻐요.”

티파니와 협업으로 만든 농구 골대, 데본 턴불(Devon Turnbull)과 디자인한 커스텀 사운드 시스템뿐 아니라 아샴의 수많은 포르쉐 컬렉션을 뒤덮은 그의 시그니처 청록색을 언급하자 아샴이 10여 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제 작업실을 상징하는 동시에 제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삼을 만한 뭔가를 갖고 싶었어요.” 예술가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예상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아샴다운’ 이야기로 들렸다. 그의 작품은 늘 과거와 현재, 고급과 저급, 예술과 기능 같은 전형적인 이분법적 요소를 뒤섞어왔지만, 뭐가 됐든 아샴이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식별할 수 있다. 특유의 ‘아샴 그린’ 컬러는 깨진 유리 모서리가 빛을 투영하며 발산하던 푸르스름한 초록빛에서 영감을 받아 제조했다. “유리 부스러기를 모아 그릇에 담으면 볼 수 있는 색이 바로 그 색이었어요.” 공교롭게도 그 색깔은 뮤츠, 푸린, 파이리 같은 포켓몬 캐릭터를 오마주한 작품처럼 아샴이 조소 작업에서 자주 사용하는 재료인 산화된 청동 빛깔과도 일치했다. 그 포켓몬 작품은 외부와 맞닿은 데크에 진열되어 있었다.


브리지햄프턴과 뉴욕시 사이에 거주하는 아샴이 아시아에서 보내는 시간은 작업을 하고, 요리에 몰두하며, 단풍나무와 짙푸른 이끼를 돌볼 때처럼 조용하고 차분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쉴 새 없이 선보이는 신작부터 친구 농장의 흙길에서 오프로드 랠리용 포르쉐를 모는 즐거운 기회 등 크고 작은 도전과 모험을 위해 꼭 필요한 연료가 된다. 아샴이 교토에 갔을 때 방문한 일본식 정원과 마찬가지로, 그가 집에 꾸민 정원 또한 완벽하게 정돈된 상태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공을 차거나 주변 부지의 나뭇잎이 돌풍에 실려 날아오면 말끔한 상태는 금세 흐트러지기 일쑤다. 그러나 아샴은 개의치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정원을 다시 정돈한다. “영구적이면서도 덧없다는 것이야말로 이 정원의 핵심이죠.”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Hannah Martin
- 사진
- Isabel Parra
- 아트
- ©Daniel Arsham / Perrotin Gallery, Jason Revok / Library Street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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