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코

불리 1803 창업자 부부의 더없이 불규칙한 집

2025.06.12

불리 1803 창업자 부부의 더없이 불규칙한 집

‘불리 1803’ 창업자 투아미 부부가 빚은 집은 문마다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대담한 상상력으로 펼쳐낸 예술적 세계.

사진가 루크 카스텔(Luc Castel)이 촬영한 람단 투아미와 빅투아르 드 타야크 투아미 부부. “집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가장 솔직한 질문이죠. 매일 아침 눈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이 공간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파리 9구의 번잡한 거리를 벗어나 걷다 보면, 평범해 보이는 오스만 양식 문 너머로 3층짜리 하얀 석조 주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키 큰 나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 저택은 한때 파리 상류층의 비밀스러운 사교 공간이었고,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의 거처였다. 이제는 ‘불리 1803’의 창업자 람단 투아미(Ramdane Touhami)와 빅투아르 드 타야크 투아미(Victoire de Taillac-Touhami) 부부의 남다른 미감이 깃든 영감의 요람으로 재탄생했다.

“첫눈에 반했어요. 사실 새집을 찾진 않았죠. 매물로 나온 저택을 먼저 둘러보고 흥분한 남편의 전화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 곧 짐을 싸야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어요.” 빅투아르가 눈빛을 반짝이며 회상했다. 바로 다음 날, 저택을 함께 방문한 부부는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정했다. 저택의 존재를 안 뒤 일주일 만에 계약을 마무리했고, 람단은 곧바로 인테리어 계획에 착수했다.

성급한 결정에 후회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람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민은 제게 시간 낭비일 뿐이죠. 차라리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삶의 철학이 담긴 대답처럼 그의 창의적 도전은 4년 전, 불리 1803을 LVMH에 매각한 후에도 숨 가쁘게 이어졌다. 모이나와 크리스토플의 로고 리뉴얼부터 스위스 뮈렌의 유서 깊은 드라이 베르게 호텔(Drei Berge Hotel) 리모델링, 400년 역사의 씨흐 트루동 부활 프로젝트까지, 열정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모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남프랑스에서 자란 람단 투아미는 독학으로 디자인을 익혔다. 20대 초반에 파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던 그는 인생을 불굴의 의지와 창의성으로 일궜다. LVMH와 거래가 마무리되자마자 그는 마레 지구에 위치한 사무실을 떠나 벨 에포크 시대의 사교 살롱이었던 661㎡ 규모의 스튜디오로 이사했다. 그곳을 8개월 만에 새로운 공간으로 꾸민 그는 창의적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는지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예술과 역사가 교차하는 투하미 부부의 초현실적인 거실.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이 저택의 전 주인 장 클로드 카리에르에게 선물한 타로 카드를 벽난로 장식으로 사용했다. 람단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특별히 만든 펠트 소파와 오토만 체어가 현대 감각을 더한다.

이 저택은 안뜰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쌍둥이 건물 형태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남다르다. 탈인상주의 회화의 거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을 시작으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와 알퐁스 알레(Alphonse Allais)도 이곳에 머물렀다. 아르데코 시대에는 한 장인의 작업실로 활용되었으며, 1970년대부터 투아미 부부가 매입하기 전까지는 <세브린느> 등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Jean-Claude Carrière)의 소유였다. “집 안에는 예술품과 책이 가득했어요. 메자닌(중이층)을 철거한 것 외에는 큰 틀과 장식을 보존하기로 했죠. 나머지는 모두 남편에게 맡겼어요. 그의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살아보는 특별한 기회였으니까요.” 빅투아르의 전적인 믿음에 힘입어 람단은 예술가의 열정으로 작업했다. 하루 세 번씩 현장을 방문하며 9개월 동안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결정하고 감독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쪽엔 아나클레토 스파차판(Anacleto Spazzapan)의 빨간 알루미늄 체어와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콘솔, 로베르 콩바스(Robert Combas)의 작품을 두었다.

부부는 2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18번 이사했다. 17번째 집은 <보그>에 소개하기도 했다. “집을 소유한다는 건 축복인 동시에 묘한 도전이죠. 금방 지루해질 수 있거든요. 호텔처럼 모든 방이 비슷해 보인다면 정말 따분할 거예요. 그래서 방에서 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문을 열면 놀라움이 숨어 있는 집을 만들고자 했어요.” 람단의 말이 끝나자 빅투아르가 말을 보탰다. “18번 이사를 하며 깨달은 것이 있어요. 완벽한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충실해야 해요.”

흑단목 무늬 벽의 모서리가 벗겨질 듯 착시를 일으키는 거실의 베니어 벽면.

두 사람의 확고한 미학과 신념이 구석구석 빛난다.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틀면 나오는 거실은 그야말로 ‘시선 강탈’. 빈티지 가구와 다섯 가지 색의 펠트가 거대한 종이테이프처럼 뒤엉킨 소파가 있고, 정교하게 다듬은 벽난로 위에는 16세기 베네치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2인치 두께 흑단목 무늬 벽의 모서리가 벗겨질 듯 착시를 일으키는 거실의 베니어 벽면이 보이고, 아래로는 18세기 양식의 석고 표면이 수줍게 드러난다.

“자연스러운 곡선을 표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남편의 디자인 스케치를 본 시공 팀의 첫 반응은 ‘절대 불가능합니다’였어요.” 빅투아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프랑스식 사고방식은 그런 말이 대화의 출발점일 뿐이죠. 보세요, 결국 해냈잖아요.” 두 사람은 프랑스 동부의 재능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내는 데 마음을 다했다. 덕분에 베니어 벽면을 비롯해 여러 장인의 손길이 집 안 곳곳에 닿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테라코타 타일로 감싼 부엌에 우아한 빛이 맴돈다. 람단은 이곳을 누구나 반기는 따뜻한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빅투아르가 가장 아끼는 공간으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에서도 장인 정신은 이어진다. 움브리아에서 수작업으로 만든 점토 타일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져 중세 시대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친구, 가족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걸 좋아해요. 테라코타 타일의 따스함과 표면에 반사되는 빛이 정말 매력적이죠. 이곳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공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람단의 디자인 철학이 오롯이 빛나는 다이닝 룸. 반짝이는 마호가니 붙박이장과 테이블, 의자와 테라초 바닥이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맞은편 다이닝 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아르데코 시대 호화 여객선 선장실이 연상되는 공간에는 람단이 디자인한 광택이 나는 길고 둥근 테이블이 중앙을 차지한다. 테이블을 둘러싼 붙박이장 문에는 크리스티앙 푸르니에가 복원한 모슬린 유리의 원형 창이 달려 있다. 천장에는 샹들리에 대신 거대한 금속 거미 조명이 달려 유쾌한 반전을 선사하고, 몰딩으로 시선을 돌리면 저택에 흔적을 남긴 과거 주인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중이층을 철거해 만든 부부의 침실. 공간을 밝히는 큰 창 아래 만 레이(Man Ray) 벤치, 알라브레 이지 체어 등 여러 시대의 가구가 놓여 있다.

아이들의 침실을 지나 꼭대기 층에 있는 부부 침실에서는 람단이 수십 명의 장인을 설득해 만든 석고 프레스코화가 정교한 비율로 점점 작아지며 이어진다. 이런 고전적인 장식은 그가 사랑하는 미래주의와 멤피스 가구가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부부는 옥션 같은 경매장이나 앤티크 마켓도 즐겨 찾는데, 우아한 이탈리아산 침대도 우연히 발견한 빈티지 피스다. “세 아이도 각자 개성이 담긴 멋진 침실을 갖고 있어요. 좋아하는 색상과 가구를 직접 고르게 했죠.”

저택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층에 마련된 웰니스 공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강한 신념을 지닌 부부답게 웰니스는 두 사람의 핵심 철학으로 꼽힌다. 모자이크 타일로 둘러싸인 수영장은 열렬한 수영 애호가인 빅투아르를 위해 특별히 설계한 것이다. “지하에 이런 수영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해, 저녁에는 사우나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며 그날을 마무리하죠.”

람단은 집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환경이 기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잊기 쉽습니다. 이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가족의 꿈과 영감, 과거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살아 있는 캔버스예요.” 각기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방은 삶의 다양한 면모를 비추는 거울이자,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럭셔리’가 특정 브랜드의 로고와 화려함으로 축소될 때, 투아미 부부의 집은 더 근본적인 사치를 일깨운다. 바로 규칙을 뛰어넘는 자유와 상상력의 망망대해를 항해할 용기다. 진정한 집이란 단지 사는 곳이나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공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표현하는 살아 있는 선언문이다. 이곳에서 그 선언문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만났다.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우주연(컨트리뷰팅 에디터)
사진
김민은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