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숲을 이룰 때까지, 2026 송은 아트스페이스
‘인물이 없다.’
패션계를 비롯해 최근에는 영화와 음악, 문학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10년간 마주해온 문장입니다.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창작자를 찾는 업의 특성상 “누구 없나?”라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요. 특출난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돌림노래가 거리마다 들려왔고, 게으르게 믿어버렸죠. 그래서인지 1월만 되면 가슴이 뜨끔했던 것 같습니다.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송은미술대상전>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벌써 25회째입니다.


송은문화재단은 숨어 있는 소나무라는 의미의 ‘송은(松隱)’, 그 이름처럼 국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앞장서고, 그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왔습니다. <송은미술대상전> 또한 그 일환입니다. 젊음을 정의하는 기준은 제각각이겠지만, 이 전시를 마주할 때면 20대 시절이 떠오릅니다. ‘왜 날 알아봐주지 않는 걸까?’라며 한탄했던 20년 전의 제가요. 증명하고 싶었고, 드러내고 싶었죠. 그 때문에 송은이란 재단이 아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결을 키워나가는 젊은 소나무로 읽혔습니다. 때로 소나무 뒤로 자신만의 숲을 이루기 시작한 작가들도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러합니다.
총 556명의 지원자 중 20인이 본선에 올랐고, 그중 이아람 작가가 최종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의 매체를 통해 장소와 권력,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뤄온 이아람 작가는 ‘밟힌 벌레마다 별이 된다’는 영상을 소개했습니다. 작품은 미군 기지로 사용되었던 용산 기지의 역사를 따라갑니다.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소였다더군요. 130년 이상 한국인이 출입할 수 없는 서울의 중심 땅이었습니다. 이아람은 식민과 점령, 군사적 폐쇄 속에서 변위되고 외부화된 땅의 기억을 추적했습니다. 사람이 아닌 일명 ‘땅의 디아스포라’입니다. 130여 년간 기억이 사라지고, 감각이 단절된 순간 땅의 입장을 실제 디아스포라로 살았던 자이니치 3세 김영옥(가네야마 유노)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하죠. 단순히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핵실험으로 역시 단절된 네바다의 땅, 재일 한국인의 터전이던 이타바시까지 엮어내면서 이야기의 층위를 단단히 합니다. 이아람 작가의 말처럼 결국 “‘밟힌 벌레’들이 ‘별’로서 귀환하는 취약한 존재들의 우주적 회복을 상상하는 사변적 서사”입니다.


심사위원단은 “서구 제도적 맥락에서 발견한 자료를 재배치해 소외되고 주변화된 내러티브를 가시화하며, 문화 구조를 전복적으로 사유하는 작업을 선보였다”라고 평했더군요. 어렵게 읽히지만, 작가는 누구의 눈을 통해 바라보았는지, 누구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퍼지는지 살펴보며, 나는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종국에는 ‘인간’에 대한 사유로 넘어가죠. 그가 나무 뒤편으로 꾸려놓은 숲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명의 작가가 모두 그러합니다. 이아람 작가를 비롯해 고영찬, 고요손, 권현빈, 김무영, 김민정, 김주원, 김한샘, 봄로야, 비고, 신민, 요이, 우정수, 윤미류, 윤정의, 이수지, 이승재, 이진형, 정가희, 최태훈까지 작가들은 정체성, 자본주의, 노동,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역사 등 동시대 미술의 주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이문정 심사위원의 비평처럼 각 작품의 내러티브가 강화되었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은 흥미 있는 서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장르 간 확장과 교차도 있었지만, 회화나 조각, 영상 등 각 장르의 특수성에 대한 실험도 있었습니다. 작품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인상과 더불어 저마다 이루는 숲의 모양이 확실하게 느껴져 보기 좋았습니다. 이들의 전시는 2월 14일 토요일까지 진행됩니다.



아쉬워할 필요 없는 것이, 이아람 작가는 3년 이내에 송은에서 개인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11년 개편 이후 선정된 40인의 작가가 예술계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 중이죠.
송은문화재단은 <제25회 송은미술대상전> 다음으로 오는 4월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Spring Fever’ 공모에 최종 선정된 김재현, 박지호, 최리아 3인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Spring Fever’는 2002년에서 2020년까지 운영한 송은 아트큐브 공모 형식을 가져와 신사옥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가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개인전 개최 경력 2회 이하 미술 작가를 대상으로 총 822명이 지원했고, 그중 선발된 3인의 작품을 선보이죠. 이름처럼 이들의 새로운 에너지가 관람객들을 기분 좋은 봄의 열병으로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뒤를 이어 6월에는 제22회 송은미술대상의 주인공, 작가 전혜주 개인전이 열립니다.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미시적 생명의 움직임이 기술과 정치, 자본으로 얽히는 방식을 시각화해온 작가가 이번에는 보이지 않던 감각과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포착합니다. 2023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던 그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지, 무엇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이고 들리고 느끼게 해줄지 기대를 모읍니다.

8월에는 송은미술대상 제정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송은 × 언박싱 프로젝트: 송은미술대상 25주년 기념전(가제)>을 선보입니다. 특별전은 25년간 대상을 포함한 역대 수상자 및 최종 후보 작가 182인을 아우르며, 한국 신진 작가들의 동시대 미술을 꾸준히 지원해온 송은의 여정을 조망합니다. 특히 프리즈 서울,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 미술 축제 기간에 개최돼 송은미술대상의 제도적 역할과 의미를 재조명합니다. 더불어 해당 전시는 언박싱 프로젝트와 협력해, 전시적 장치 및 스케일에 의존하기보다 작품과 작가 자체에 집중하는 큐레토리얼(Curatorial) 접근을 통해 대작과 명성으로 접근하는 현대미술의 현재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어서 2월 2일에서 6일까지 공모된 작품을 바탕으로 12월, 송은의 연례 프로그램인 <제26회 송은미술대상전>이 진행됩니다. 올겨울 또 어떤 나무와 숲을 만나게 될까요? 단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곳에 실존하고 있을 새로운 숲을, 세계를 우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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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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