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송은미술대상의 주인공, 전혜주가 만드는 작고 작은 세계

2023.01.27

by 류가영

    송은미술대상의 주인공, 전혜주가 만드는 작고 작은 세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제22회 송은미술대상의 주인공, 작가 전혜주가 작고 작은 세상을
    거듭 들여다보며 발견한 겸허한 삶의 진리다.

    제22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전혜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수집하고 탐구해왔다. 이번에 선보인 ‘Hummer’는 대기 중에 떠다니는 꽃가루의 생태적 법칙과 군사 무기 기술을 비교하고 나열함으로써 또 한 번 미시적 세계를 비췄다.

    “왜 그토록 작은 세상을 열심히 들여다보세요?”라는 질문은 작가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질문처럼 들릴까 봐, 최대한 순수한 어투로 건네고 싶었다. 소박하게 웃으며 “모르겠어요. 제가 그냥 그런 사람인가 봐요”라고 답한 전혜주의 투명함에 분위기는 금세 다정해졌고, 이후 우리의 대화는 솔직하고 내밀한 세계를 향해 순항했다. 1985년생 전혜주는 총 20인의 작가가 참여한 ‘제22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 수상자다. 그 역시 이번에 선보인 설치 작품 ‘Hummer’에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녹여냄으로써 다른 참여 작가와 교신했다. “파악할 수 없는 지경까지 교묘해진 기술과 시스템 안에서 저 또한 선택과 능력이 박탈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주도권을 갖고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술가는 안갯속에서도 순결한 두 손으로 뭔가를 쥐고, 길어내려는 사람이 아닌가. 지난 몇 년간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부지불식간에 희생되는 수많은 개인을 보며 전혜주의 눈과 손은 그런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한결 바삐 움직였다.

    전혜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단서는 그가 ‘잘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천에서 열린 전시 <Piece of Island 조각섬>(2020)에서는 서해안의 미세 입자를 관찰했고, 연주 퍼포먼스를 곁들인 영상 사운드 설치 전시 <All-Over>(2022)에서는 땅속에 묻혀 있던 토양을 적출했다. 더 거슬러 올라간 전시 <무심(無心), 한 물줄기의 이름 Nomind, the name of a stream>(2017)에서는 재개발 과정에서 제멋대로 파괴되고 파묻힌 철근 덩어리를 꺼내 모았다. 설치와 영상, 사운드, 텍스트, 아카이브 작업을 아울러온 전혜주는 이번에도 열심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했다. 그는 ‘Hummer’에서 꽃가루의 생태적 법칙과 군사 무기 기술을 비교하며 관찰한 경과를 사운드와 아카이브 작업으로 비교하고 나열해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전시 공간에서 가장 어둑한 구역을 폐쇄적으로 점하는데, 맨 처음 영역을 나눌 때 이곳을 택한 사람은 참여 작가 중 전혜주가 유일했다. “자칫하면 웅장한 전시장이 작품을 압도할 수 있는데 여기라면 공간을 장악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기다란 표본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양옆으로 초지향성 스피커(초음파를 뿜어내며 소리의 직진성이 뛰어나 군사 무기로도 활용한다)를 설치하자 몰입도가 높아졌죠.” 그가 가장 공들인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스토리텔링. 표본 테이블 위에 나열된 레퍼런스 이미지는 각각 글, 그림, 도표 등 빼곡한 정보로 채워져 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돋보기도 준비돼 있다.) 초지향성 스피커로 뿜어 나오는 규칙적인 신호음이 계속 몸을 뚫고 들어오는 가운데, 관람객은 자연스러운 동선을 따라 이미지의 흐름을 눈으로 좇게 된다. ‘천연우라늄이 원자력발전에 의해 농축되고, 핵폭발로 이어진다 → 꽃가루가 형성되고, 꿀벌에 의해 확산된다 → 다양한 음향 공격 무기가 개발된다 → 이명과 난청이 뇌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이미지를 배열할 때 전혜주는 비약을 경계했다. 그러나 우라늄, 꽃가루, 음향 공격 무기 등 그간 개별적인 전시 주제로 삼던 소재를 한데 모으자 탄생한 연결성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실제로 ‘드론’이라는 벌의 종류가 있고, 호러와 SF 장르에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앰비언스 음악을 ‘드론 뮤직’이라고 하는데 그런 일련의 이야기가 결코 무관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벌, 드론, 드론 뮤직 모두 실제로 알 수 없는 불안을 부추기며 진동하는 것들이잖아요.” ‘윙윙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Hummer’라는 단어는 이윽고 작품 제목이 됐다. 고요한 세상을 뒤흔드는 의미심장한 파동. 전혜주는 그런 것에 관심이 있었다.

    이번 작업에서도 기분 좋은 컬러 포인트가 된 꽃가루는 전혜주가 어느 순간부터 가장 즐겨 다뤄온 소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보이지 않는 확산에 대한 공포가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때, 보안여관에서 열린 기획전 <식물계 Plantae>(2020)에 참여한 그는‘도시와 식물’이라는 전시 주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식물 단위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육안으로 보기 힘든 꽃가루가 과연 어디까지 확산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런 호기심으로 주변을 탐색해나갔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 입자 틈에서 전혜주는 꽃가루를 낱낱이 추적했다. 법의생태학자 퍼트리샤 윌트셔(Patricia Wiltshire)의 책 <꽃은 알고 있다>는 고마운 단서가 됐다. 자연이 남긴 아주 작은 실마리를 찾아나간 윌트셔처럼 전혜주는 이후 현미경 관찰과 표본 채취 등 과학적인 연구 방법의 힘을 빌려 예술을 펼쳤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과학자로 오해했다. 이해심을 좀 더 발휘한다면 과학 전공자 출신의 예술가로 보거나. 어쨌거나 베를린에서 아트 앤 미디어를 전공하며 다양한 매체를 실험해온 전혜주에게 또 하나의 강력한 신무기가 더해진 셈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어릴 적 꿈꾸던 예술가와 실제 모습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 배치와 색감 등 미학적인 부분에도 분명 신경을 쏟긴 하지만 저조차도 ‘이게 과연 예술인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이게 제 숙명인 것 같아요. 눈으로 확인하고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데서 희열을 느껴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든 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겸허한 깨달음으로도 이어졌다. “한 자밤의 흙에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미생물과, 아주 오래전 과거의 흔적과, 도저히 섞여 있을 수 없다고 믿었던 물질까지 모두 포함돼 있어요. 세상에 갑자기 생겨나는 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죠. 무심하게 떨어져 있는 꽃잎도, 무심하게 펼쳐진 풍경도, 결코 무심하게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더라고요.” 2021년 열린 전시 <Yellow Border 노란 경계>에서 그는 노란 우라늄 정제 가루와 꽃가루를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며 분리 불가능한 세계에 대해 말했다. 과거와 현재, 인공과 자연, 너와 나,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전혜주는 그래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됐을까. “위안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말은 곧 순환을 뜻하기도 하잖아요. 세상은 근본적으로 공평한 곳이라는 거죠. 그게 저를 겸손하게 만들어요.” 이쯤에서 2019년 선보인 그의 설치 작품 ‘회전(Whirl)’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두 개 층으로 나뉜 전시장, 한쪽에서 달걀이 구르며 내는 소리가 증폭되어 다른 층에 천둥 같은 울림으로 전달되도록 만들며 현대인의 불안과 문명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던 작품은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을 겨냥하지 않았다. 되레 생명은 돌고 돌며, 어둠 뒤에 다시금 빛이 오리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은 것을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전혜주 역시 한때 자신의 예민함을 창피하게 여겼다. 그런 면에서 ‘Hummer’는 사회적으로 ‘과민증’이라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항변이기도 하다. 작가가 직접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도시 소음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The Hummers’라는 소사이어티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미세한 소리로 인한 고통은 개인 문제로 일축될 뿐이다. 전혜주는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기꺼이 개입했다.“ 2009년쯤 독일에서 공부할 때였어요. 어느 날, 전부 밖으로 나가 할 일을 찾으라는 교수님의 엉뚱한 주문에 아주 작은 글씨로 ‘복사 오류’라고 인쇄된 투명한 비닐을 길가의 복사기 유리 면에 붙여놓았죠.” 미세한 표식이 붙은 채 복사된 종이가 아무도 모르게 사회에 퍼져나가는 현상을 한동안 즐겁게 음미한 그는 예술적 개입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10년 전, 올라퍼 엘리아슨 스튜디오의 공간실험연구소에 참여하면서 확신하게 된 것 역시 아티스트는 결국 공간(세상)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술은 실천해야 했고, 전혜주는 실천가가 됐다.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는 없었다지만, 몸을 투과해 들어오는 온갖 신호의 직진성과 폭력성을 키네틱 사운드 설치 작품으로 구현한 전시 <Body Check>(2020)는 안보 문제에 경종을 울렸고, <드러난 땅은 기억이 없다>(2022)는 군사독재 시기, 비극적인 학살의 장소가 된 대전 골령골의 상흔을 가시화하는 데 일조했다. 전혜주는 그렇게 세상에 공명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다. 제22회 송은미술대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잠시 귀국한 전혜주는 지난해 12월부터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아카데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을 횡단하며 크고 작은 전시를 여느라 모든 영감이 소진된 채 도피하듯 향한 그곳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작가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동안 그는 활력을 되찾았다. 전혜주의 믿음에 따르면 사라진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오는 법. 사소한 발견에 대한 호기심도 다시금 피어올랐다. “고기를 먹는 사람이 정말 몇 안 되더라고요. 저녁 메뉴를 정할 때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어요. 각자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점이 다른데 그런 차이를 목격하는 일이 참 재미있어요.” 더 많이 볼수록 더 행복해지냐는 물음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아름다운 것을 우리가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저는 이상주의적인 예술가가 맞는 것 같아요.” 전혜주에게 ‘없다’는 말은 ‘아직 보지 못했다’는 기약의 표현으로 읽힐 뿐이다. (VK)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김태구
      헤어 & 메이크업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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