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의 감각이 만들어지는 곳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워치스 앤 원더스’는 워치메이킹의 ‘지금’을 알리는 장이다. 클래식이 미래가 되고, 익숙함이 반전으로 찾아오는 시계의 세계. 2026년의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손목에 찬 시계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형태다. 정사각형, 원형 혹은 직사각형이나 타원형.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시계를 받아들이는 감각도 달라진다. 까르띠에는 2026년의 시계를 준비하면서 바로 그 형태에 집중했다. ‘형태의 워치메이커, 공예의 대가’라는 주제 역시 그 아이디어에서 따왔다. 올해의 형태를 대표하는 건 2002년 처음 선보인 로드스터 워치다. 재정비한 비율과 날렵해진 라인에서 미국적인 스포츠카의 형태가 엿보인다. 기존 로드스터가 ‘머슬 카’에 가까운 존재감을 자랑했다면, 재정비한 비율과 한결 날렵해진 라인은 스포츠카의 그것과 닮았다. 전형적인 시계의 스퀘어 형태를 대변하는 건 산토스-뒤몽이다. 빈티지한 메탈 브레이슬릿은 익숙한 디자인에 새로움을 선사한다. 타원형은 베누아가 대변한다. 1920년대 초부터 메종을 대표하는 모티브인 ‘끌루 드 파리’가 장식적인 멋을 더한다. 기하학적이고 독특한 볼륨감을 지닌 베누아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시선을 빼앗았다. 또 다른 형태의 미학은 미스트 드 까르띠에에서 정점에 달한다. 기하학적인 파베 다이얼의 돔 형태 크리스털과 오닉스 프레임이 까르띠에만의 세상을 완성했다면 신축성 있는 스트랩의 래커와 파베 섹션은 물결처럼 손목에 이어진다.
하우스는 마스터들이 스케치한 아이디어를 이토록 다채로운 형태로 완성한다. 대가들의 공예 기술을 대표하는 건 올해 10번째 에디션을 공개한 까르띠에 프리베다. 덕분에 전설 속 시계가 다시 한번 우리 눈앞에 등장했다. 1967년 비대칭 다이얼로 처음 등장해 그대로 전설이 된 크래쉬가 이번엔 스켈레톤 구조로 다시 태어났다. 로마숫자 형태로 디자인한 브리지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2시간씩 해머링 수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프리베는 플래티넘 소재가 돋보인다. 1934년 모델을 꼭 닮은 탱크 노말과 1998년 스타일의 똑뛰 크로노그래프 모노푸셔까지 차가운 듯 세련된 멋이 느껴지는 플래티넘이 인상적이다. 2년 전 새롭게 해석한 똑뛰도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아주 클래식하면서도 지극히 현재에 가까운 옐로 골드 디자인이 대중적이라면, 주얼 워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공방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에서 탄생한 샹르베(Champlevé) 에나멜 기법의 팬더 디자인은 소수를 위한 특별한 멋이다.

제네바에서 라쇼드퐁으로 향하는 길은 우리가 상상하는 스위스의 풍경 그대로다. 저 멀리 알프스의 높은 산이 보이고, 잔잔한 호수와 푸른 평원이 차례대로 펼쳐진다. 2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전통적인 하얀색 농가 한 채가 눈에 띈다. 17세기 베른 스타일 농가가 바로 까르띠에 워치메이킹 노하우와 주얼리 메종의 기술이 한곳에서 만나는 아틀리에 ‘메종 데 메티에 다르(The Maison des Métiers d’Art)’다. “지식, 공예, 재능, 노하우가 공존하는 생태계입니다. 이 네 가지가 전통적인 유산과 최첨단 기술 사이에서 근본적이고 고귀한 연결 고리로 엮이는 활발한 대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를 맞이한 까르띠에는 이곳을 이렇게 설명했다.
클래식한 농가를 닮은 곳은 로비를 지나자마자 장인의 작업실로 변모했다. “이곳에 까르띠에의 매뉴팩처가 자리하게 된 건 이 지방의 햇살이 무척 환하기 때문입니다. 섬세한 작업을 하기에 최고의 빛을 자랑하죠.” 안내하는 직원의 말처럼 햇살이 쏟아지는 공간에 자리한 장인들은 각자의 책상에서 신비로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팬더 시계의 금빛 몰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다이얼의 기요셰 패턴을 완성하고 있었다. 특유의 에나멜링 작업부터 섬세한 폴리싱까지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작업 단계는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대부분 문서화되지 않은 이 공예 기술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개발하는 것은 까르띠에에 꼭 필요한 일이자 의무입니다.” 양각과 음각에 맞춰 손으로 만든 골드 비즈에 레이저 용접 작업을 하는 장인의 손길이 불꽃 아래를 끊임없이 오갔다. “워치 다이얼을 완성하려면 불꽃 아래를 2,000번에서 3,000번 정도 통과해야 합니다.” 금속의 예술이라 불리는 ‘필리그리’ 작업, 나무와 짚, 장미 꽃잎 등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는 ‘마케트리’, 베네딕토 수도사에게서 영감을 받은 ‘그리자유 에나멜’ 작업도 까르띠에만의 자랑이다. 장인이 손에 쥔 시계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워치메이킹의 바통 같았다. “이들의 정신은 독특합니다. 혁신을 중심으로 무한한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에서 종종 잊히거나 거의 행해지지 않는 공예 기술을 보존하고 공유합니다.” 매뉴팩처의 디렉터 카림 드리치(Karim Drici)의 말이다.
메종 데 메티에 다르가 위치한 언덕에는 또 다른 까르띠에의 미래가 자리했다. 3만3,000㎡ 부지에 직원 850명이 시계 생산을 위해 일하는 ‘라쇼드퐁 매뉴팩처(La Chaux-de-Fonds Manufacturer)’는 현대적인 건물이 인상적이다. “디자인 스케치부터 시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곳에서 완성됩니다. 이곳을 살펴보면 까르띠에의 세계가 완성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디자인 스케치에서 3D 프린터로 모델의 레진 모형을 만드는 곳. 전날 제네바의 워치스 앤 원더스 전시장에서 만난 새로운 크래쉬 워치의 3D 프린트가 탄생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디자인과 공정이 정해지면 곧 이어지는 건 생산. 수공예 장인 정신과 최첨단 기술로 글라스, 핸즈, 링크 등을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까르띠에만의 미네랄 크리스털을 제작하는 모습. 유리창 너머로 살펴본 과정은 뜨거운 불꽃을 통해 크리스털 두께와 크기, 곡선을 조절하는 장인의 모습. 어떤 기계도 결정을 내리거나 제어할 수 없기에 완성도를 확인하는 건 오직 젊은 장인의 몫이다.
2002년부터 시계 핸즈를 자체 제작하고 있는 까르띠에는 이 공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형태를 완성하는 스탬핑, 수작업으로 곧게 펴는 과정, 폴리싱과 컬러링 등 12단계를 거치면 까르띠에 특유의 푸른색 핸즈가 완성된다. 시침과 분침을 오가는 핸즈를 완성하는 데만 7일에서 36일이 소요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85% 정도는 푸른색으로 완성되지만 특별한 시계는 또 다른 컬러로 제작한다. 살펴본 핸즈 디자인 카탈로그에만 900개 제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위스 라쇼드퐁에 자리한 까르띠에 아틀리에, 메종 데 메티에 다르. 이곳에서 스위스 워치메이킹 기술과 프랑스의 하이 주얼리 공정이 어우러져 현재로 이어진다.

스위스 라쇼드퐁에 자리한 까르띠에 아틀리에, 메종 데 메티에 다르. 이곳에서 스위스 워치메이킹 기술과 프랑스의 하이 주얼리 공정이 어우러져 현재로 이어진다.
이전 작업까지는 전통적인 방식에 가까웠다면 시계 브레이슬릿을 완성하는 링크 제작에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철근을 찍어내는 기계가 자리한 작업실에서는 30초 만에 링크를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 내구성과 완성도를 체크하는 검사 과정, 전 세계 고객이 의뢰한 수리를 직접 진행하는 복원 시스템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까르띠에 전시에서 만나는 고귀한 피스도 이곳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
“까르띠에의 모든 워치메이킹 노하우를 보존∙발전시키는 동시에 책임감 있고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산업으로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드리치의 말을 되새기며 매뉴팩처의 마지막 풍경을 돌아보았다. 넓은 창과 천장에서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직원들은 묵묵히 핸즈 크기를 분류하고, 오래된 시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며, 완벽한 각도의 크리스털을 완성하기 위해 고온의 불 앞을 지키고 있었다. 고매한 책임감 덕분에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공간이 더 반짝이는 듯했다. TG
- 패션 에디터
- 손기호, 신은지
- 포토그래퍼
- Anaïck Lejart, Julien T. Hamon, Valentin Abad, Laure Sée
- COURTESY OF
- CARTIER
- SPONSORED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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