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베컴의 야심만만 스토리

20년 전 스파이스 걸스 멤버로 데뷔해, 네 아이의 엄마가 되고, ‘올해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선정되기까지,
빅토리아 베컴은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기어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녀의 야심만만 스토리.

빅토리아가 입은 카디건은 프라다(Prada),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켄트셔(Kentshire), 다이아몬드 팔찌는 반 클리프 아펠(Van Cleef&Arpels).

런던 템스 강 남쪽, 연녹색 잔디가 펼쳐진 배터시 공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빅토리아 베컴(Victoria Beckham)의 아틀리에. 이곳은 디자이너로 변신한 팝 스타의 절친한 친구이자 재정적 후원자인 전 스파이스 걸스 매니저 사이먼 풀러의 건물이다. 바닥에 자갈이 깔린 넓디넓은 안뜰을 지나 초인종을 누르니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이 열렸다. 커다란 거울, 아이보리색 소파들, 사무실 테이블에 놓인 인디아 마흐다비 램프. 빅토리아 베컴은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생로랑의 검정 캐시미어 톱, 자신이 만든 팬츠, 그리고 플랫 부츠(아찔한 킬힐 대신!)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깊은 보조개, 헝클어진 듯 빗어 내린 머리카락, 당당한 시선까지. 그녀는 특유의 억양이 흘러나오는 따뜻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빅토리아를 응원하고 이해하게 만든 인터뷰 말이다.

‘빅토리아 베컴은 절대 웃지 않는다’는 오해가 있지만, 어린 시절 사진들 속 빅토리아는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소녀였다. 당시 가족이었던 요크셔테리어 ‘멜라니’와 함께.

VOGUE 6년 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스위트룸에서 드레스 10벌로 당신의 첫 번째 컬렉션을 열었다. 그때 이야기가 듣고 싶다.

VICTORIA BECKHAM(이하 VB) 중요한 패션쇼가 넘쳐나는 패션 위크인 만큼, 겸손한 자세로 임하자고 생각했다. 쇼 스케줄 사이 잠깐 시간이 비는 기자, 바이어들이 찾아왔다. 그들을 몇 명씩 맞이해 드레스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지퍼를 내렸다 올리면서, 원단, 마감재, 코르셋 등을 하나하나 부각시켰다. 내 말을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 바이어들 앞에서는 끊임없이 설명을 늘어놓을 정도로 열정에 차 있었다!

VOGUE 다들 당신이 실패하기를 바라지는 않던가?

VB 많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쇼가 끝난 뒤 물품보관실에 맡겼던 소지품을 찾아갈 때, 그들의 선입견을 반납하고 간 것 같다. 내 친구 마크 제이콥스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했더니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크는 회의주의자들은 결코 자신의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생각을 바꿔놓는 것은 컬렉션 그 자체다. 나를 향한 바이어들과 고객들의 지지는 대단했다. 처음부터 10곳의 유명 편집숍 중 9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 베컴 컬렉션의 생산량은 적은 편이다. 드레스는 통틀어 400벌 정도만 제작한다. 품질 관리를 위해 모두 런던에서 생산하며, 지금도 이 방식은 변함없다. 나는 진정한 ‘품질 최우선주의자’다. 고객들은 내 의상을 구입할 때마다 스스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VOGUE ‘베컴 터치(Beckham Touch)’의 정의를 내린다면?

VB 품질, 심플함, 미니멀리즘!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심플함에 대한 이미지에서 한발 더 나아간 심플함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만든다거나, 점잖은 척한다거나, 머리를 쥐어짤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여성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싶은지, 어떤 라인을 갖고 싶은지,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라인이란 일반적 라인이 아닌, 360도 다각도로 보여주는 라인이다. 아주 오랫동안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입고 레드 카펫에서 자신 있게 워킹을 하며 터득한 것이다.

VOGUE 컬렉션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VB 모든 것! 특히 우리 가족에게서 얻는다. 어느 날 아들 로미오가 축구복을 입고 부엌으로 뛰어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대체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나의 시그니처룩은 등에 지퍼가 달린,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드레스다. 관능적이면서도 깨끗한 스타일! 출발점은 분명 그곳이지만 요즘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내가 금기시하던 것들이 또 다른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풍성한 실루엣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런 라인을 작업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VOGUE 2014 봄여름 컬렉션은 소년풍이었다.

VB ‘소년, 소녀를 만나다’ 컨셉을 원했다. 이것 역시 분명한 확신이 있지는 않았지만, 정체되지 않고 매 시즌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했다. 동일한 것을 반복하기는 싫었다. ‘빅토리아 베컴 패션사’는 매 시즌 새로운 기록을 남기고 싶다.

어린 시절,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여동생, 남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이 남아 있다. 똑같은 옷을 맞춰 입은 자매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VOGUE 지난 시즌의 깜짝쇼는 베컴이 딸 하퍼를 안고 프런트 로에 나타난 것이다.

VB 데이비드가 패션쇼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두 시즌 전부터다. 그전에는 내가 원하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모습을 드러내면 기자들의 이목이 그에게로 지나치게 쏠릴 텐데, 나는 기자들이 그가 아닌 내 의상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이제는 데이비드가 등장해도 내가 우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데이비드도 시간 여유가 생겼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하퍼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포즈를 취해줬다. 하하!

VOGUE 2011년 영국 패션 어워드에서 톰 포드와 스텔라 맥카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해의 디자이너 브랜드’로 선정됐다. 기분이 어땠나?

VB 정말로 감격스러웠다. 수상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시상식장은 한때 내 능력에 의구심을 가졌을 인물들로 가득했지만, 내게 그 상을 주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트로피를 전달하기 위해 마크 제이콥스가 파리에서 날아왔다. 나는 강인하고 이성적인 편이지만, 패션 디자이너로서 모든 것에 늘 감동을 받는다. 데이비드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쇼가 끝나면 왜 맨날 그렇게 감격하는 거야?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계속 눈물을 흘리잖아. 제발 그러지 마.” 하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 그건 해냈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창작을 할 때는 항상 부담을 느낀다. 컬렉션 작업 중에는 단 한순간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때가 없다.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고민에 고민을 계속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일하고, 이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를 체감한다. 피곤은 쌓여만 간다. 특히 아이들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오늘과 같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내가 매일 아침 일을 하러 집을 나서는 것을 재앙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VOGUE 그 결과는 대단하다. 빅토리아 베컴 브랜드는 오늘날 60개국 500여 개 부티크에서 팔리고 있다. 이런 성공을 예감했나?

VB 나는 뚜렷한 가치관이 있고,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을 좋아하며, 대단히 열심히 일하고, 내가 여성을 이해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성공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늘 나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서 대단히 행복하다. 다만 이 같은 성공을 즐기고 한숨 돌리며 여유를 가지고 싶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난 놀랄 만큼 큰 야망이 있으며, 경쟁심도 대단하다. 물론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이다. 만약 내가 훌륭한 컬렉션을 해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해도, 다음번엔 더 잘해내겠다는 욕심과 함께 곧바로 다음 컬렉션 준비에 들어간다.

VOGUE 지난해 8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패션 제국’을 건설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의미인가?

VB 그 이름만으로 여성들을 강하게 만들고, 그녀들의 매력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주며, 매력을 보장해주는 옷을 만들고 싶다. 패션 하우스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런 희망에서 나왔다. 그야말로 내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가는 ‘패션 제국’일 것이다. 내 곁에 있는 훌륭한 팀원들과 함께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꿈을 이뤄나갈 생각이다. 빅토리아 베컴이라는 브랜드가 20년, 30년, 40년, 더 나아가 50년 후에도 굳건히 건재하길 바란다.

VOGUE 자신의 야망에 대해 이토록 확실히 얘기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VB 야망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만약 당신이 목표를 완수하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알고, 야망을 지니고 있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당신도 알겠지만,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꼭 남자일 필요는 없지 않나!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빅토리아와 데이비드의 마음은 사회 초년생 무렵이나 20년이 지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14주년 결혼기념일에 찍은 사진.

VOGUE 언제부터 이런 확고한 신념을 지니게 됐나?

VB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최고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학교에서 특출하게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고, 인기도 없었으며, 오히려 약간 놀림을 받기도 했다. 춤과 노래를 배웠는데 뛰어난 댄서도, 가수도 아니었지만 열심히 연습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게는 놀랄 만한 천부적인 재능은 없지만,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믿음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다.

VOGUE 당신 남동생과 여동생도 당신과 비슷한가?

VB 우리 세 남매는 모두 엄청난 노력파다. 환상적인 남편과 살고 있는 여동생은 네 아이의 엄마다. 자선사업을 하는데 누구에게라도 무엇이든 다 해주며 헌신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남동생은 학교에서 IT 담당 업무를 하고 있다.

VOGUE 당신은 부모님과 잘 지내는 것처럼 동생들과도 무척 가깝게 지낸다.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는 어땠나?

VB 가정주부셨던 어머니는 늘 멋지게 차려입고 계셨다. 아직도 어머니가 쓰던 향수를 기억한다. 디올의 ‘포이즌’! 80년대에는 어깨를 한껏 강조한 패딩 점퍼를 즐겨 입으셨다. 아버지는 전기회사를 운영하셨는데 엄청난 워커홀릭이셨다. 내가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고교 시절 아버지께서는 나를 롤스로이스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는데, 나는 그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게 싫어서 늘 한참 전에 내려서 걸어가곤 했다. 지금 같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하. 우리 남매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스페인에 있는 바닷가 별장에서 겨울이면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여름이면 멋진 휴가를 즐겼다. 부모님에겐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게 행복한 결혼 생활의 열쇠가 아니었을까? 부모님은 정말 사이가 좋았다. 여전히 부모님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TV를 보신다.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이비드는 내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장모님이랑 장인어른, 오늘 저녁에 뭘 하신대? 같이 저녁 먹을까?”

VOGUE 데이비드는 어떻게 만났나?

VB 어느 날 매니저 사이먼 풀러와 함께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 후 선수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그곳에 데이비드가 있었다. 당시 그는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아직 1군에서 뛰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더니 다음 날 전화를 걸었다.

VOGUE 첫눈에 반했나?

VB 처음 볼 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데이비드가 선수들과 어울리는 대신 부모님, 막내 여동생하고 함께 있었던 점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가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첫눈에 반했다고 말할 수 있다. 데이비드는 무척 친절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패션 감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 패션 감각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내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어떻게 그런 옷을 입고 다닐 수 있었지? 후회 안 해?” 그럼 나는 해명한다. “그땐 다들 그렇게 입고 다녔단 말이야!”

VOGUE 패션 감각이 별로라고 해도 연애 전선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VB 데이비드는 나를 보러 여러 차례 런던에 왔다. 이듬해 나는 스파이스 걸스와 자주 파리에 갔다. 데이비드는 미니 프로펠러 비행기를 빌렸는데, 경기 시간 때문에 정기 비행기 일정을 맞출 수가 없어서였다. 나중에 그가 고백하길, 편한 맘으로 대서양을 건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공식 결혼 발표를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그건 우리 스스로도 관계가 지속될 거라는 확신이 없어서였다. 우리는 너무 어렸고, 너무 바빴다. 각자의 경력에 있어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디딘 것과 다름없을 때였으니까.



VOGUE 축구는 당신의 삶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VB 맞는 말이다. 생각보다 빨리 생긴 우리 아이들도 아빠가 거둔 성공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그에게 환호를 보내려고 경기장 관람석에서 선 채로 지켜본 경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데이비드와 나는 함께 많은 일들을 겪었다. 데이비드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준 사람은 없었고, 나보다 데이비드에게 더 많은 것을 준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둘이서 이 모든 것을 해냈다. 물론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VOGUE 가정을 중시하는 것 역시 두 사람이 일찍부터 공유해온 가치다.

VB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지구 상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은 바로 부모다. 나와 데이비드는 이 책임감을 상당히 진지하게 여겼다. 우리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우리가 만나기 시작할 때는 겨우 어른이 되던 시기였다. 만약 지금 나이에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아마 이런 얘기부터 하지 않을까? “결혼할까, 말까? 아이는 몇 명이나 낳지? 어디서 살까?” 하지만 그때 우리는 고작 열여덟 살이었다. 이런 질문들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으며, 정말 행복하게도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같았다.

VOGUE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당신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

VB 집에 도착한 순간 욕실로 직행하거나, 긴장을 푼다거나, 저녁 식사부터 하진 않는다. 부모이기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부터 챙긴다. 대개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숙제 해, 딴것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참는 법을 배워야 해, 양치질하고 컴퓨터게임도 그만하자. 얼른 가서 자야지.” 때로는 구속해야 하고, 엄하게 대해야 하며, 이런 일들이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라, 하며 끊임없이 꾸중하는 게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나는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출장 중이 아닐 때는 직접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다. 우리 어머니는 “여기 이렇게 할머니가 있잖니. 너는 좀더 자지 그러니?”라며 늘 말린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때문에 우리 부부는 외출할 시간도,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다. ‘가족, 직업, 사회생활’ , 이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현재로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예의 바르며, 자기 자신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개성과 유머 감각이 있다.

VOGUE 스파이스 걸스 시절의 기억 중 간직하고 있는 게 있다면?

VB 그 시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날들이었다. 나는 팝 스타였다. 항상 절제하기 힘든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모든 것이 내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일 스스로 다짐했다. “너는 굉장한 인생을 살고 있어. 이걸 깨달아야 해.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항상 감사하자.”

VOGUE 당시 스파이스 걸스는 ‘걸 파워’를 대변했다. 당신들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VB 남과 차별화되는 사람이 되자, 틀 안에 갇히지 말고 그 틀을 뛰어넘어 생각하자, 당신 스스로가 되자, 당신 자신을 신뢰하자! 지금도 나는 계속해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는 ‘소녀들의 소녀(Girl’s girl)’다. 내 친구들 중 최고의 친구들은 강인하고, 긍정적이며, 여성의 대의에 동참하는 여성들이다.

VOGUE 베이비 스파이스(Baby Spice), 진저 스파이스(Ginger Spice), 스케어리 스파이스(Scary Spice), 스포티 스파이스(Sporty Spice)가 있었고, 당신은 포쉬 스파이스(Posh Spice)였다. 이 이름들의 유래는?

VB 내가 ‘포쉬(posh, 화려한)였던 이유는 내가 세련된 의상들을 입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값비싼 의상들을 입고 좋은 레스토랑에 다니는 컨셉이었지만, 사실 내가 진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내성적이었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다른 멤버들은 거리낌없이 테이블 위에서 춤추고 노래했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내 스타일은 테이블이 무너지지 않는지,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행동 방법을 개발해야 했고, 결국 찾아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을 얼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그런 특징을 스스로 깨야 하는 상황이다. 디자이너에게 그런 성격은 장벽과도 같다. 유명세가 내게 끼친 부정적 영향이다. 그래도 중독 치료제 한번 사용한 적 없으니 이 정도면 잘 이겨낸 것 아닌가! 아마 더 나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빅토리아의 끼를 물려받은 딸 하퍼는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할 줄 안다. 빅토리아의 어린 시절을 꼭 닮은 모습. 지난봄 컬렌션 프런트 로에는 데이비드와 하퍼가 함께 참석해 안나 윈투어와 나란히 앉아 쇼를 감상했다. 컬렉션 준비 중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빅토리아는 매 시즌 쇼가 끝날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VOGUE 당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은 어떻게 찾아왔나?

VB ‘스파이스 걸스의 귀환(The Return of The Spice Girls)’을 위해 팀이 재결성된 2008년, 나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콘서트를 하던 날, 다른 멤버들은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쇼핑을 하고는 공연장의 사운드를 체크할 때 생기 있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기 위해 스포츠센터에 갔다.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약속이 정말 많았다. 몸에 딱 붙는 드레스를 입고 세 아이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한 것이다. 수천 명의 아티스트들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하기를 꿈꾸지만, 나는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고 싶었다. 우리 그룹이나 팬들을 향한 마음이 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일에 대한 내 열정이 사그라졌을 뿐이다. 그렇게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끝나게 됐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삶은 매 시즌마다 열정이 점점 더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난 매번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다.

VOGUE 20년 전부터 당신은 끊임없이 파파라치의 표적이 돼왔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VB 불평하고 싶진 않지만, 그리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런던에 돌아왔을 때 특히 더 힘들었다. 파파라치 무리들이 우리 집 앞에 주차해 있다가, 우리를 공격적으로 교양 없게 따라다녔다. 차를 위험하게 몰았으며, 아이들과 데이비드, 나의 삶에 엄청난 불편을 끼쳤다. 정말 싫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잠잠해졌다.

VOGUE 평범한 삶이 그립지는 않나?

VB 내 삶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삶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매주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가면, 하퍼는 내 허리에 찰싹 붙어 있고 브루클린은 카트를 꼭 잡는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듯, 아이들에게 “이건 안 돼, 저것도 안 돼” 말하면서 진열대를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마치 서커스를 보러 온 것마냥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어느 날 아들이 아파 급히 약국에 가야 했던 적이 있다. 약사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손님, 빅토리아 베컴을 닮으셨네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음, 손님이 더 나아요. 빅토리아 베컴은 슬퍼 보이거든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맞는 말씀이세요. 그 여자는 정말 고약한 것 같아요. 절대 웃지 않잖아요.” 그러자 우리 아들이 미친 듯이 깔깔댔다. 이런 류의 에피소드는 일상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내 운명일 뿐이다. 그래서 뭐, 괜찮다.

VOGUE 당신은 집안일을 좋아하는 주부인가?

VB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임은 분명하다. LA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기반을 잘 갖춘 뒤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이사 가기 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여러 차례 그곳에 가서 학교들을 함께 둘러보고 선생님들을 만나고 교실에 가보았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둘러보지도 않은 집 한 채를 구입한 뒤, 집을 꾸미고 정비해나갔다.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바랐다. 데이비드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운전사가 공항에 배웅을 나갔다. 데이비드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요리사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촛불을 밝힌 거실에 음악이 퍼져나갔다. 그가 ‘아, 우리 집에 왔구나’라고 느끼기를 바라며 준비한,
환상적인 시작이었다.

VOGUE LA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VB 나는 LA를 사랑한다. LA에서 살던 때는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VOGUE 이유가 무엇인가?

VB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서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LA는 유명 인사들의 재충전을 위한 놀라운 치료제와 같다.” 정말이었다. 누구나 편안한 차림으로 산책을 하고, 그 누구도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 날씨도 정말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태양이 빛나고 기분이 행복해진다. 아이들의 야외 활동을 위해서도 완벽한 곳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매일 야외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물론 나도 당시에는 덜 바빴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이곳 런던에서는 아침 6시면 기상한다. 무척 고된 생활 패턴이다. 마치 킬힐을 신고 레드 카펫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런던을 사랑하지만, LA에서의 삶이 훨씬 심플하면서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이었다.

VOGUE 패션 디자이너는 쉬운 직업이 아니다. 몇몇 디자이너들은 완전히 지쳐 보일 때가 많다. 요즘 당신은 굉장히 밝아 보이는데, 행복한가?

VB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내가 챙겨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이 직업에 대한 열정 때문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게 된다면, 엄마로서의 또 다른 빅토리아가 그로 생겨난 불균형을 채워줄 것이다.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항상 우리 아이들이다. 내가 횡설수설하며 허둥대거나, 지쳤다고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