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복면의왕

2016.03.15

by VOGUE

    복면의왕

    한동안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이라는 웃지 못할 표현이 온라인을 달궜다. 하지만 최근 패션의 화두는 예쁘고 잘생긴 얼굴을 드러내는 대신, 복면 뒤에 숨기는 것!

    Raf Simons, A.F. Vandevorst, Comme des Garçons

    Raf Simons, A.F. Vandevorst, Comme des Garçons

    ‘1인 방송’ 시스템을 공중파에 도입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최근 합류한 인물은 디자이너 황재근이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올스타 시즌의 우승자로 ‘제쿤 옴므’를 이끌고 있는 그를 평소 잘 알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미스터리 음악 쇼’ <복면가왕> 속 기상천외한 복면을 만든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이상한 나라의 여우’ 등 독특한 작명과 딱 들어맞는 화려한 복면은 매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니까. 새로운 ‘인격’을 제공함으로써 익명의 노랫소리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복면이 패션쇼 무대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에디 슬리먼과 라프 시몬스는 출신부터 만드는 옷, 성격까지 도통 닮은 구석이 없는 디자이너들이다. 최근 2016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도 두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생로랑 쇼에는 ‘슬리먼의 아들’이라 불리는 셀러브리티 모델들, 딜런 브로스넌, 잭 킬머, 찰리 올드만이 등장해 화제를 모은 반면, 시몬스는 체크무늬 후드를 뒤집어쓴 모델들을 런웨이에 세운 것! 도무지 어떤 모델이 시몬스의 선택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Yohji Yamamoto, Marque’s Almeida, Maison Margiela

    Yohji Yamamoto, Marque’s Almeida, Maison Margiela

    이처럼 얼굴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모델들이 아슬아슬 워킹하는 무대는 이번 시즌 여성복 쇼에서도 여럿 눈에 띄었다. A.F. 반더보스트, 꼼데가르쏭, 자크무스, 요지 야마모토 등 기괴한 복면을 씌운 경우부터, 겐조, 웅가로, 랑방, 아크네 스튜디오 등 커다란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린 경우, 알렉산더 왕과 마르케스 알메이다처럼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내려 얼굴을 가린 경우까지. 골드, 혹은 실버 글리터로 얼굴 전체를 덮은 비현실적 메이크업을 보여준 릭 오웬스는 또 어떤가(남성복 쇼에선 원통형 가발을 머리 위가 아닌, 얼굴 위에 씌우기도 했다)!

    Min Ju Kim, Philipp Plein, Thom Browne

    Min Ju Kim, Philipp Plein, Thom Browne

    모델의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는 건,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다. 그 자신도 대중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얼굴 없는 디자이너’인 만큼, 자신의 모델들 역시 철저하게 익명성을 지켜준 것. 나오미 캠벨, 케이트 모스,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 ‘슈퍼모델’의 전성기,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인기 모델들 대신, 복면 뒤에 어떤 얼굴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모델들을 무대 위에 세운 건 분명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리고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로운 수장 존 갈리아노는 데뷔 컬렉션인 2015 F/W 꾸뛰르 쇼에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해골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복면을 쓴 모델들을 내보냄으로써 무슈 마르지엘라의 뜻을 이어받았음을 선포했다.

    얼굴을 가리는 것이 정말 패션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최근 유니클로에서는 ‘히잡 라인’을 출시해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2011년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법안이 제정되면서 히잡(머리와 목을 감싸는 스카프)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이슬람 여성에 대한 종교 차별 논란을 일으킨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컬렉션이다. 영국 출신으로 17세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디자이너 하나 타지마(Hana Tajima)와 함께 협업한 이번 컬렉션은 다채로운 색상과 패턴의 히잡으로 구성되었는데, 히잡을 ‘종교적 필수품’이 아닌, ‘패션 아이템’으로 다룬 첫 시도! 유니클로의 ‘에어리즘(AIRism)’ 기술을 활용해 여름에도 시원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물론이다. 유튜브에는 이미 다양한 히잡 스타일 아이디어를 공유한 영상이 한가득인데, 화사한 패턴의 히잡을 보니 이슬람 교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착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Lanvin, Rick Owens, Ungaro

    Lanvin, Rick Owens, Ungaro

    믿기 힘들겠지만, 중국에선 ‘페이스키니(Facekini)’라는 해변용 복면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속 작은 유럽이라 불리는 ‘칭다오(Qingdao)’에서 지난 2012년 처음 등장했는데, 알록달록한 폴리에스테르 소재 위에 눈, 코, 입 구멍을 뚫어놓은 그야말로 ‘얼굴용 수영복’이다. 얼핏 흉측한 디자인이지만, 자외선 차단 효과는 물론 해조류, 해파리에 쏘이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휴가철에는 없어서 못 팔 정도. 도무지 ‘패셔너블’한 면모는 없어 보이는 이 복면이 카린 로이펠트의 눈에 띈 경로는 알 수 없지만, 최신 <CR Fashion Book>에는 페이스키니를 착용한 모델들이 등장한 수영복 화보가 실렸다. 알렉산더 왕, 구찌,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고급진’ 수영복과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값비싼 주얼리에 매치된 페이스키니는 예상외로 멋스러워 보였으니, 조만간 지중해 리조트에도 상 륙할지 모른다.

    복면이 패션 아이템으로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패션 얼리어답터’ 리한나는 배트맨 마스크를 착용한 채 모스키노 쇼장에 모습을 드러내 관심을 끌었지만, 사실 그만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복면가왕>에 출연하는 뮤지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자신의 얼굴이 아닌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목소리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것. 디자이너들이 복면을 준비한 이유 또한 모델의 얼굴이 아닌 옷으로 이야기하고, 옷만으로 평가받고 싶은 속내가 반영된 건 아닐까?

    Junya Watanabe, Acne Studios, Rihanna

    Junya Watanabe, Acne Studios, Rihanna

      에디터
      임승은
      포토그래퍼
      JAMES COCHRANE,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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