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The 할류우드

2019.08.16

by 송보라

    The 할류우드

    외국에서 내 국적을 밝힐 때 “노스 오어 사우스?”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 영화 얘기가 나오면 한결 대화가 수월하다. <올드보이>와 ‘강남스타일’이 몇 년간 그 역할을 해줬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러니까 내가 인도네시아에 산 2년 동안,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은 놀랍도록 높아졌다. 한국인이란 말에 한두 가지 히트 상품을 대는 정도가 아니라 반가움과 선망으로 눈을 빛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이제 놀랍지 않다.

    내가 사는 발리는 한국 연예인들이 화보 촬영을 자주 온다. 그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공항에 현지 팬들이 마중 나간다. 몇 달 전 신인 배우를 데리고 화보 촬영을 온 캐스팅 디렉터는 이런 말을 했다. “한류 스타도 아니고, 인지도가 높지 않아 제작비도 간신히 모았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팬들이 나와 있는 거예요. 아니, 이런 친구들까지? 정말 신기하더라니까요.” 그 정도로 놀라면 안 된다. 북미와 유럽에선 BTS 덕분에 이제 막 한류가 메이저로 진입하는 단계지만 아시아에서는 이미 현지 대중문화의 일부다. 한국 TV에서 케이팝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시아나 남미, 때로 유럽 청소년들을 보여줄 때, 방송사의 침소봉대와 촌스러운 국수주의를 익히 아는 한국 시청자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방콕과 쿠알라룸푸르의 빌보드나 인터넷 배너에선 한국 연예인이 방긋 웃으며 물건을 팔고, TV 쇼 프로그램에서는 현지 연예인들이 케이팝 댄스를 카피하고, 멀티플렉스에는 한국 영화가 자주 걸린다. 인도네시아 시골 길거리에선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이 ‘붐바야’를 부르며 뛰어놀고, 시장에 가면 과일 팔던 아주머니가 “오빠 사랑해요”라고 K-드라마에서 배운 말로 인사를 건넨다. 나도 모르는 한국 드라마 줄거리를 줄줄 읊어주는 외국인도 몇명 만났다. 미국 여성도 있었고, 동남아 남성도 있었다. 발리에 자리한 단골 술집 사장님은 아내가 블랙핑크에 푹 빠져 그들 스타일로 옷을 입고 한국으로 여행 가자고 노래를 부른다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리의 클럽에서 만난 20대 여성 DJ는 현아가 자기의 스타일 아이콘이라고 했다. 밝게 염색한 머리, 강렬한 레드 립, 하이웨이스트 쇼츠, 탱크 톱 조합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봐도 명백히 케이팝 스타일이었다. 지난 연말 파티에서 만난 20대 인도네시아인 여행 코디네이터는 자기 친구들이 모두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에게 으레 하는 덕담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왜 하필 한국이냐, 거기 뭐 볼 게 있냐는 나의 반문에 그가 답했다. “다들 한국을 ‘Something New’라고 생각하거든.” 이곳 슈퍼마켓에서 인터넷 번역기로 뽑아낸 게 분명한 브로큰 한국어 카피를 흔히 볼 수 있는 게 그 때문인가 보다.

    다른 대륙의 반응을 체감할 기회도 있었다. 며칠 전 30대 프랑스 남성이 내게 말했다. “케이팝 대단하긴 한가 봐.” 2년 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내 국적을 듣고 그가 보인 반응은 “한국은 잘 모르겠고 일본은 가보고 싶어”였다. 동양인 얼굴을 잘 구별 못하고 자막 읽는 것도 귀찮아서 프랑스어, 영어 콘텐츠가 아니면 소비하지 않는 친구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니까 그가 한 말은 이랬다. “인도네시아 직원들이 매일 한국 드라마, 케이팝 틀어놓고 그게 인기라 그럴 때 솔직히 별생각 없었거든. 그런데 프랑스의 가장 큰 스타디움에서 축구 경기 대신 케이팝 콘서트를 한다잖아. 하긴 축구가 무슨 대수겠어. 아이돌이 최고지.” 나는 그에게 시대감각을 좀 업데이트하라고 조언했다.

    요즘 교양 있고 트렌디한 유럽인들이라면 한국 영화 몇 편쯤은 알고 있다. 최소 10년간 유럽인들이 “나 한국 영화 좋아해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올드보이>를 봤다”는 뜻이었는데, 요즘은 별별 작품 얘기가 다 나온다. 물론 자막이 제공되는 한에서고, 한국어의 통번역 문제는 여전히 한국 영화, 드라마, 출판 시장의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이 할리우드에 가장 가까운 문법과 리듬감을 가진 장르 영화를 만드는 나라이며,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는 작가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정도는 영화 팬이라면 이제 누구나 안다. 얼마 전에는 60대 프랑스 여성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보고 흥분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시즌 2는 언제 나오는 거야!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하지만 무엇보다 내게 한국 문화의 저력을 보여준 사건은 따로 있었다.

    며칠 전 발리의 허름한 식당에 들렀다. 노부부가 일을 하는 가운데 서너 살 먹은 손자가 TV에 넋을 놓고 있었다. TV에선 <꼬마버스 타요>가 방송되고 있었다. 무심코 “앗, 타요다”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TV와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타요! 타요!” 하고 반갑게 외쳤다. 조카들이 그 아이만 할 때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타요 버스’를 보러 광화문 나들이를 한 기억이 떠올랐다. 겨우 버스 전면에 눈깔 두 개, 입 한 줄 그렸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열광했다. 서울 버스는 아이들의 스타였고, 부모들은 버스에서 내리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달래며 서로 ‘그쪽도 같은 신세네요. 이해합니다’라는 듯 난감한 시선을 교환했다. 나는 그 인도네시아 어린이가 한국에 여행 가서 서울 시내버스를 실물로 목격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했다. 그 아이에겐 서울 자체가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보일 거다. 물론 나도 어릴 때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지만 그게 제작국에 호감을 불러일으키긴커녕 배경이 어딘지도 몰랐다. 애들 콘텐츠에 자국 홍보 영상을 끼워 팔다니, 내 나라임에도 한국 콘텐츠 산업이 얄밉고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류의 힘은 통계로도 대략 파악된다. 최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산업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88억1,444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46.7% 증가했다. 게임이 59억2,300만 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캐릭터, 지식 정보, 음악, 출판 등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 무역수지 흑자는 76억1,009만 달러에 달한 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해외 콘텐츠 시장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2017년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약 2.6%를 점하고 있다. 압도적 1위인 미국(37.1%), 최근 일본을 꺾고 2위로 올라선 중국(11.2%),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일본(8.2%), 독일(4.7%), 영국(4.4%), 프랑스(3.3%)에 이어 세계 7위다. 부문별로는 한국의 시장 규모가 게임 4위, 출판 7위, 영화 7위, 음악 9위, 캐릭터ㆍ라이선스 15위권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권이라는 점, 미국처럼 플랫폼 자체를 전 세계에 제공하는 대신 개별 상품이나 창작자에 의존하는 상황, 중국과 일본처럼 인구가 많거나 유럽처럼 통번역이 원활하지도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게다가 콘텐츠 산업 통계라는 것이 광고 시장부터 노래방까지 몽땅 포함한 데이터임을 고려할 때, 쇼 비즈니스에 국한한 한류 현상과 그로 인한 한국 대중문화의 존재감은 수치가 보여주는 것 이상일 거다.

    아쉽게도, 한국인으로서는 이 모든 현상이 자랑스럽진 않다. 인력을 갈아 넣어 연명하는 영상 산업, 끔찍한 성 감수성을 퍼뜨리고 노동자 보호, 청소년 보호 따위 안중에도 없는 케이팝과 게임 산업의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이미 버닝썬 사건이 세계 메이저 언론에 비중 있게 소개되었고, 유튜브에선 전직 케이팝 아이돌들의 고발이 넘쳐난다.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동양인이고 한류가 그 시장을 섭렵할 수 있는데도 아직 사대주의에 ‘쩔어’ 있는 올드한 콘텐츠 제작자들의 헛발질은 BTS가 빌보드를 석권하고 벽안의 청소년들이 자국 아이돌을 선망하는 시대를 사는 한국 젊은이들의 감각과 너무 달라 자주 실소를 자아낸다. 미투 운동을 오히려 윤리 의식 제고와 캐스팅의 다양성 확대의 계기로 삼아 세계관 업그레이드에 나선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한국 영화, 드라마의 안일한 자기 복제는 안타까운 수준이다. 마이너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나 기업 차원의 전략도 아쉽다. 다른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덩치는 커졌지만 아직 그 덩치에 걸맞은 시스템과 철학, 윤리 의식, 국제적인 비즈니스 감각, 책임감 따위는 갖추지 못한 내 나라 쇼 비즈니스의 상황을 알기에 한류가 마냥 편하지 않은 거다.

    한국이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될 수 있냐고? 글쎄, 한국을 ‘뭔가 새로운 것’이라 말하는 한류 팬들은 순순히 ‘그렇다’고 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 새로움을 바탕으로 양적 성장을 이룬다면 이제 산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할 때다. 현실 인식도 필요하다. 한류는 더 이상 미디어가 기대에 차서 꾸며내는 ‘국뽕’ 조작극이 아니다. 한류는 거기 있다. 세계인이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국의 모습이 지금 이대로도 좋은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에디터
      조소현
      이숙명(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션
      조성흠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