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우유 vs 원유, 더 건강한 선택은?

2024.04.09

by 송가혜

    우유 vs 원유, 더 건강한 선택은?

    천연, 자연 그대로, 날것일수록 좋다는 유행은 우유의 선택지마저 늘렸다. 웰니스와 공중 보건의 경계에 선 논란의 생우유.

    하루에도 수천 개의 기이한 뷰티 팁이 등장하는 틱톡. 수용보단 걸러야 할 것이 더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뷰티 & 헬스’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웰니스’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콘텐츠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전 세계가 집중하는 만큼 사람들의 다채로운 건강 루틴과 레시피를 살펴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도 없으니까.

    최근 SNS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른 것은 바로 ‘#RawMilk’라는 해시태그다. 말 그대로 가공하지 않은, 젖소나 염소의 젖에서 갓 짜낸 원유를 커다란 유리병째 들이마시는 영상이 2억만 건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이다. 버터를 녹인 듯한 색감과 걸쭉한 질감, 가끔은 응축된 덩어리가 목격되기도 하는 원유를 물처럼 꿀떡꿀떡 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이 메슥거리는 기분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학창 시절 매일 2교시 직후 내 앞으로 배달되던 우유도 코를 틀어막거나 초콜릿 분말을 가득 넣어야 간신히 마실 수 있었을 만큼 흰 우유와 친밀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누군가에겐 고소하지만 누군가에겐 텁텁하거나 비린 맛을 선사하니까. 한층 농밀한 맛은 분명 장벽이 존재할 텐데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인플루언서들은 원유를 마시며 찬미한다. 그 오묘한 맛과 찝찝함을 감수할 만큼의 효과가 대체 무엇이기에?

    지난 7월 <뉴욕 타임스>에서는 원유 판매를 합법화하는 미국의 주가 늘어나자 그 안전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비친 적 있다. 그럼에도 원유는 가장 뜨거운 웰니스 화두로 떠올랐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자 커뮤니티 ‘더 스키니 컨피덴셜(The Skinny Confidential)’의 창립자 로린 보스틱(Lauryn Bosstick)은 SNS와 블로그를 통해 원유의 다양한 장점을 홍보했다. 정신 건강 의학박사이자 180만 이상의 팔로워를 지닌 폴 살라디노(Paul Saladino)는 오스틴의 한 농산물 직거래 시장에서 약 4리터의 원유를 1만8,000원에 구매해 매일 운동 전 커피에 넣거나 복숭아처럼 달콤한 간식과 곁들여 마신다. 그가 설립한 영양제 기업 ‘하트&소일(Heart&Soil)’의 틱톡 채널 가운데 한 영상에서는 세 명의 젊은 남녀가 서로 원유를 건네며 마신 뒤 “사람들 대부분이 원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어요. 마트에서 판매하는 저온살균 우유는 전부 인간의 왜곡을 거친 부산물이죠”라고 말한다.

    가공을 거치기에 미세 플라스틱의 위험성도 있다는 조롱 섞인 지적도 덧붙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원유의 장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단백질과 지방이 이상적으로 혼합돼 있으며, 인간에게 이로운 미생물을 그대로 함유하고, 적절한 포만감을 주면서 유당 불내증을 가진 사람에게도 부담이 적다.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염소나 낙타의 원유 한 잔을 ‘귀한 약’이라 표현하며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팬데믹 이후 무수한 정제 과정이 인류의 탐욕처럼 여겨지고 특히 식품 분야에서 ‘천연’ ‘클린’이라는 키워드가 중대해진 지금,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든 우유의 가장 자연스러운 보존 상태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어찌 보면 자명한 이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98년부터 2018년까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원유로 발생한 질병은 총 2,645건. “공포스러운 일이군요. 부디 한국에선 유행하지 않길 바랍니다.” 취재차 만난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김민식 교수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24개 주에서 원유 판매를 합법화하고 있는 미국, 국가별 지침에 따라 원유 조달을 허가한 뉴질랜드와 프랑스, 영국, 덴마크, 독일 등 유럽 몇몇 국가와 달리 한국은 살균 처리하지 않은 생우유는 법적으로 판매가 금지돼 있다. 가축이 밟는 흙, 마시는 물, 섭취하는 건초와 사료 등 다양한 환경에서 비롯된 수없는 미생물 가운데 원유에는 슈퍼박테리아, 브루셀라 등 사람과 동물에게 동시에 병을 일으키며 항생제가 통하지 않는 감염원은 물론 식중독 사고의 원인균인 캠필로박터, 병원성 대장균, 살모넬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성 미생물이 존재한다. 이 균을 걸러내는 가공 과정에서 원유의 장점이라 주장하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무기질, 비타민 등의 이상적인 혼합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원유와 가공 우유 모두 지방과 단백질이 현탁된 ‘콜로이드’ 혼합물입니다. 식품을 섭취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선 체내 소화 과정을 통해 식품 구성 성분을 분해하고 흡수하게 되는데, 원유와 가공 우유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은 락토오스, 즉 젖당으로 동일하죠. 결국 에너지 측면에서 다를 것이 없어요.”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김도균 교수는 설명한다. 양측 모두 유당을 그대로 함유하기에 원유가 유당 불내증에 이롭다는 사실 역시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영양학적으로 원유와 살균 처리된 우유를 비교군에 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고, 혹시 모를 원유 속 위협을 고려하는 보건과 위생의 개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 같은 불순물이 없다는 의견 역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식중독균의 위험성을 줄이는 살균 공정은 가열을 통한 것이기에 그 위험성이 적고, 다만 원유 가공을 위해 송유관 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플라스틱이 혼입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가축의 생활환경에서 기인하거나 착유 과정의 리스크와 거의 유사한 정도죠.” 김민식 교수는 부연했다.

    흥미롭게도 이 논쟁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우유를 주제로 1만 년의 인류 문명사를 다룬 책 <우유의 역사> 저자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는 우유를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음식’이라 표현한다. 우유로 인한 수많은 발병 스캔들과 아기들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끓였다 식힌 우유를 먹이던 시대를 지나, 1860년대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최초의 저온살균 공법은 수십 년 후 과학자들에 의해 우유에 적용됐다. 우유를 끓는점 바로 아래서 20분 동안 가열한 후 빠르게 식히면 상하지 않으며 결핵, 탄저병, 콜레라 같은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은 오늘날 식품 안전의 보증이자 공중 보건의 시초였다. 이를 통해 유산균이 더 효과적으로 보존되며 단백질 변성이 적어 원유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저온살균법의 표준화를 통해 대량생산이 용이한 반면 생우유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까다롭기에 원유를 금지한다는 주장은 19세기 초부터 꾸준히 지속돼왔다. 누군가는 원유가 알레르기와 다른 여러 질병을 막아준다고 내세운다. 낙농가에선 비싼 생산 단가를 감수하고, 무리한 관리를 유지하면서 품질을 보증한 원유라면 위험성이 적다고 이야기하며 정부 및 과학자들과 첨예한 대립을 이어왔다. 점차 원유를 허가하는 지역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수준 높은 품질을 제공하는 농장이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저한 관리에도 미생물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으며, 그 위험성을 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통제 바깥이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는 끊임없이 강조된다.

    과연 한반도에서도 원유를 경험하는 미래가 도래할까? 젖소에게서 발병되는 브루셀라병이 사람에게서 감염된 전례가 있는 국내 규제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행인 점은 ‘원유와 가장 가까운’ 우유를 섭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우리 주변에 충분히 널려 있다는 것. 한국은 낙농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덴마크에 견줄 만큼 수준 높은 품질의 우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전담 수의사를 두며 젖소의 건강을 관리하고, 염증에 의해 증가하는 원유 내 체세포를 이중 검사하며 원유의 집유와 생산, 출하까지 전 과정에 정보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공장으로 가동한다. 유당 불내증이 있다면 최근에는 우유 섭취 후 불편감을 덜 유발하는 ‘베타카제인 A2’ 단백질만 만들어내는 선별된 젖소로부터 착유한 ‘A2 우유’라는 옵션도 있다.

    물론 해외에서 원유를 맛본다고 불법으로 간주되거나 반드시 식중독이나 다른 병원균에 감염된다고만 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면역 체계는 모두 다르니까. 다만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타거나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자동차를 몰 수는 있어도 그 행동이 가져올 만일의 위해를 감수해야 한다. ‘웰니스’를 표방하며 끊임없이 등장하는 신문물에 대해서는 스스로 어느 정도의 제어 장치를 두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나의 건강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웰니스의 진정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VK)

    포토그래퍼
    정우영
    프롭
    전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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