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드레싱 룸에 관한 이야기

2016.03.17

by VOGUE

    드레싱 룸에 관한 이야기

    폭신한 양털 카펫이 깔린 바닥, 반짝이는 거울로 뒤덮인 사방 벽, 수십 켤레의 무지갯빛
    루부탱 슈즈로 가득한 수납 칸, 디자이너 의상이 계절별로 단정히 정리된 옷걸이.
    당신이 꿈꾸는 모습 그대로는 아니어도 깔끔하고 효율적인 드레스룸은 이제 필수다.

    노르딕브로스 디자인 커뮤니티의 신용환 실장이 설계한 주거 공간. 침실, 부엌, 화장실의위치와 동선을 고려해 드레스룸 위치를 정했다.

    10대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엄마의 잔소리 중 하나. “어쩌면 이렇게 뱀 허물 벗듯 몸뚱어리만 쏙쏙 빠져나가는지, 원!” 외출이라도 할 때면 방은 옷장에서 꺼내 입고 벗기를 반복한 옷들로 뒤덮이기 일쑤였다. 치우기 귀찮은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옷이 점점 쌓이고 쌓이는 요즘, 의자 위에 던져놓기 시작했다간 옷 더미가 패총을 이루는 데 채 일주일도 안 걸린다. 쌓인 옷을 하나씩 정리하다 큰맘 먹고 산 디자이너 옷이 형편없이 구겨진 걸 발견하면 정말이지 후회막급. 게다가 액세서리는 필요할 때마다 어디로 숨는지 당최 찾을 수가 없다. 찾기 쉽고 정리하기 편한 드레스룸은 어디 없는 걸까?

    인테리어 디자이너 겸 건축가 필리파 쏩(Philippa Thorp)은 최근 드레스룸이 보편화되는 추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젊은 전문직 종사자일수록 옷을 아무렇게나 쌓아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패션이 중요한 세계(혹은 시대)에 자랐고, 옷과 신발에 투자하는 에너지와 애정은 믿을 수 없을 정도죠.” 3~4년 전만 해도 드레스룸은 연예인이나 방이 여섯 개쯤 있는 큰 집에 한정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20평대 전셋집에 사는 싱글족들도 ‘워크 인 클로짓(걸어 들어가 물품을 꺼내고 보관할 수 있는 규모의 수납실)’을 마련하기 위해 침대를 거실에 마련하는 추세다. 드레스룸을 꾸미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을 위해, <보그>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첫 번째 단계는 드레스룸의 위치 정하기. ‘노르딕브로스 디자인 커뮤니티’의 신용환 실장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부터 독신 생활을 하는 패션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의 주거 공간을 디자인해왔다. “드레스룸의 기본 목적은 보관입니다. 방마다 옷장을 두는 건 비실용적이고 깔끔하지 않죠. 흔히 가장 큰 방을 침실로, 가장 작은 방을 드레스룸으로 꾸미는데, 저는 그 반대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대체로 가장 작은 방이 조도가 낮은 음지에 위치해 잠을 청하기 좋고, SPA 브랜드 덕분에 패션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수납할 옷과 액세서리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방에 화장실이 딸려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파우더룸으로 쓰면 딱이니까요.”

    꾸밈바이의 조희선 이사가 룸 by 룸 형식으로 설계한 침실과 붙박이장.

    꾸밈바이’의 조희선 이사는 공간을 쪼개는 ‘룸 by 룸’ 형식을 제안한다. “작고 아기자기한 부티크 호텔처럼 침실 한쪽 공간을 작은 드레스룸으로 꾸미는 거죠. 붙박이장을 설치하거나 파티션처럼 수납장을 세울 수 있습니다.” 신용환 실장은 가족 규모는 점차 축소되는 데 반해, 한국의 주거용 건물 내부 구조는 여전히 전통 방식인 점을 지적한다. 내부 구조에 변형을 가미하면 보다 효율적인 드레스룸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 “공간만 허락한다면 독립 공간으로 구분하기보다 동선상에 설치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잔 마시는 것부터 동선이 시작된다고 보면, 주방, 화장실, 드레스룸 순으로 이동하겠죠.” 그는 아이가 있는 부부의 40평대 집을 디자인할 때 두 개의 화장실(안방 화장실과 공용 화장실)을 하나로 합쳐 아이 방-화장실-드레스룸-거실-침실의 동선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적이 있다.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응용한 외국의 경우엔 책장처럼 거실벽을 따라 수납 공간을 설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거주 형태를 고려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좁은 공간에서는 양쪽 벽을 따라 수납장을 설치하고, 여유가 있을 땐 벽을 따라 빙 둘러서 수납장을 설치한 다음, 중앙에 아일랜드 서랍장을 두는게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라는 것.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여주인공 드레스룸처럼!

    S&N 디자인퍼니처의 맞춤 주문형 워크 인 클로짓.

    공간을 마련했다면 다음은 내부 구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치호앤 파트너스’의 김치호 대표에 따르면 요즘 부부들은 드레스룸도 각자의 공간을 분리하고 구분해 사용한다(성별로 아이템 종류가 다르기 때문). 싱글 라이프의 독신들은 요구 사항이 더 구체적이다. 계절과 컬러, 종류에 따라 효과적으로 구분하고, 취미나 여가 활동에 관련된 섹션을 별도로 구성하는 등 철저히 개인적인 취향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옷을 입어보는 피팅 공간과 수납 공간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드레스룸 내부를 기능적으로 분리하는 것도 새로운 추세입니다. 세면대나 파우더룸을 배치해 한 장소에서 착장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죠.” 이 정도의 옵션이 가능한 집이라면 전문 맞춤 업체에 맡기는 것도 한 가지 방법. 고급 주거 공간용 가구 회사 ‘S&N 디자인퍼니처’는 1:1 상담을 거쳐 집의 크기와 분위기, 용도에 맞는 드레스룸을 맞춤 제작한다. 기간은 주문 접수부터 완성까지 보름에서 한 달이 소요된다. 송영규 상무는 S&N의 장점으로 내부 가구 표면재의 색과 질감을 고를 때 선택의 폭이 넓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맞춤 제작을 의뢰하거나 직접 시스템 가구를 구입하려 해도,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이다. 가장 무난하고 기본적인 방법은 드레스룸으로 꾸밀 장소의 크기에 맞춰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수납할 수 있도록 캐비닛을 짜 넣는 것. ‘옐로플라스틱 디자인’의 전성원 실장은 갖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 종류, 선호하는 보관 방법이 수납 형태를 결정한다고 전한다. “티셔츠는 대부분 접어서 보관하지만, 옷걸이에 걸어 보관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가방이 많으면 선반도 그만큼 필요하고, 긴 코트와 드레스가 넘쳐나면 옷봉 아래 공간도 길게 둬야 하죠. 수납 공간이 넉넉지 않을 땐 다른 계절의 옷을 박스에 보관하는 것도 팁입니다.” TV나 영화 속에서 드레스룸 한쪽에 색색의 하이힐이 늘어선 신발장을 볼 때면 그 벽장과 신발 컬렉션은 마치 처음부터 한 세트였던 것처럼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지미 추 힐을 걸어놓은 구두 걸이, 색색의 버킨 백이 얌전히 놓인 선반은 꼼꼼히 체크한 아이템의 개수와 사이즈(하이힐의 굽 높이와 각도까지 체크하는 경우도 있다)에 맞게 제작된 것. 결국 보기 좋고 쓰기 좋은 드레스룸을 만들려면 본인의 패션 취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우선이다. “정확하게 분류하길 원하면 선반보다 서랍이 낫습니다. 아이템의 종류를 반소매 티셔츠와 긴소매 티셔츠, 여름 바지와 겨울 바지 등으로 세분화해 긴 서랍 네 개 대신 짧은 서랍 여덟 개에 종류별로 분류하면 훨씬 찾기 쉽고요.”

    한샘의 드레스룸 가구 ‘알토’로 구성한 드레스룸의 예.

    한샘의 드레스룸 가구 ‘알토’의 ㄷ자 구성.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2~3년 사이 줄지어 출시되는 국내 가구 브랜드의 시스템 가구는 주문 제작 방식을 선호하는 전문가들도 훌륭하다고 인정할 정도다. 한샘은 신혼부부의 가장 대중적인 주거 형태가 방 세 개짜리 24평 전세 아파트인 조사 결과를 반영, 지난 2011년 드레스룸 가구 라인 ‘알토’를 론칭했다. 비교적 크기가 작은 안방을 온전한 침실로 꾸미고, 작은 방 하나를 드레스룸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유사한 주거 조건을 갖고 있다면 집중해서 읽으시길!). “일반적인 일자(ㅡ)나 기역(ㄱ)자 대신, 디귿(ㄷ)자로 설계하면 수납량을 훨씬 늘릴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 서랍장, 3단 서랍장, 선반 정리장, 얕고 넓은 액세서리 서랍, 스커트와 바지 걸이, 인출식 거울, 공간 활용 바스켓 등 용도에 따른 다양한 수납 모듈을 갖췄습니다.” 한샘 홍보팀은 고급스럽고 깔끔한 취향에겐 ‘알토 5000 ’, 수납성이 좋고 실용적인 걸 원하는 사람에겐 ‘알토 I’를 추천했다. 까사미아는 금속 소재 프레임의 ‘더 로브’와 목재인 ‘티룸’ 두 가지 스타일로 드레스룸 모듈 가구 라인을 판매 중이다. 짧은 옷장과 공간 활용이 좋은 코너 옷장이 인기 아이템. 일부 매장에선 코디네이터와 상담도 할 수 있다. 까사미아 홍보팀은 상담시 참고 사항에 대해 귀띔한다. “역시 드레스룸의 크기와 구조, 동선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또 방의 크기를 측정할 땐 문과 창문의 위치도 고려해야죠. 붙박이장이 있다면 붙박이장의 문 크기도요.”

    까사미아의 드레스룸 가구 ‘더 로브’의 ㄱ자와 아일랜드 수납장 구성.

    한편 조희선 이사는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지적했다. “기성품을 사용하다 보면 아래 공간이 어중간하게 남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자리를 박스로 채우면 지저분해 보입니다. 옷봉의 위치를 조정한 뒤 위쪽에 수납하면 먼지도 덜 쌓이고 남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죠. 그 밖에 고려할 사항으로 김치호 대표는 조명을 꼽았다. “옷의 색상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도의 확보도 중요합니다.”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코크란 디자인(Cochrane Design)’의 션 코크란(Sean Cochrane)은 남성용 수트처럼 명도와 채도가 비슷할 때 조명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검은색, 남색, 짙은 회색이 뒤섞여 있으면 어떤 색인지 헷갈립니다. 재킷과 바지의 짝을 맞추는 것도 힘들어지죠.” 색깔에 예민하다면 LED 조명을 옷걸이 위아래에 각각 한 줄로 설치해 옷에 선명한 빛을 준다면 금상첨화. 거의 낮처럼 밝아 색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드레스룸은 매일 아침 하루를 여는 공간이자, 그날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이다. 수납과 정리를 위한 실용적 장소인 동시에 애지중지하는 것들(디자이너 백과 슈즈, 예쁜 옷)을 소중히 보관하고 전시하는 나만의 쇼룸. 그러나 여자들이 드레스룸에 대한 첫 로망을 품게 되는 장면이라면, 외출하기 위해 옷장에서 가장 예쁜 옷을 고르고 반짝이는 보석을 이리저리 대보는 엄마의 모습이다. 20~30년 전에는 평범한 안방과 거대한 자개장롱이 배경이었다. 이제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나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우리가 동경하던 바로 그 드레스룸이 실제 배경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기타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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