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의 오아시스
‘Oasis’로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는 크러쉬의 음악은 젊고 스타일리시하고 또 야릇하다. 뜨거운 사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오아시스처럼. 물론 금세 사라지고 말 신기루는 아니다.
끝내주는 음악을 듣고 싶다면? 그저 검색창에 ‘크러쉬’라는 이름을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지난해 첫 정규 앨범 <Crush on You>를 발표하며 올해의 신인으로 떠오른 크러쉬는 요즘 가요계를 흔들고 있는 90년대생 라인의 중심이다. 사이먼디의 강력 추천으로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쳐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이언티, 그레이, 로꼬 등과 함께 비비드(VV:D) 크루로 활동해온 그는 좋은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능력은 물론,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지닌 만능 뮤지션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나온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힙합 앨범엔 어떤 식으로든 크러쉬의 이름이 꼭 등장한다.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지난 9일 정오에 공개된 신곡 ‘Oasis’는 순식간에 전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늘 그래온 것처럼 크러쉬의 음악은 젊고, 스타일리시하고, 또 야릇했다. 뜨거운 사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오아시스처럼. 그리고 지금 이 무더운 여름 한 가운데서 만난 크러쉬는 금세 사라지고 말 신기루가 아니다.
VOGUE(이하 V) ‘1위 가수’가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CRUSH(이하 C) 잠을 못 잤거든요. 너무 감사한데 이렇게 마냥 기뻐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고, 얼떨떨해요. 그래서 혼자 영화 보고 멍 때리다 해 뜰 때 잠들었어요. 어제 무슨 영화를 봤는데요? <인시디어스>! 제가 무서운 영화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V 무서워서 잠 못 잔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봐요.
C 진짜예요. 어제(9일) 정오에 음원이 공개됐는데, 그때부터 계속 휴대폰 들고 실시간으로 확인했어요. 되게 놀랐어요. 그리 대중적인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V 대중적인 노래란 건 뭘까요?
C 사실 저도 모르겠어요. 제 음악이 대중적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대중이 없죠. 흐흐.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도 최대한 제 색깔을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 뮤직비디오 감독님 집에 가서 사흘 동안 먹고 자며 편집 작업도 같이 하고.
V ‘Oasis’는 딱 요즘 같은 계절에 듣기 좋은 노래 같아요. 진짜 쿨해요. 언제 만들었어요?
C 오아시스라는 테마를 가지고 2년 전에 만들어놓은 스케치가 있었어요. 지금이랑은 편곡이 좀 다른 가이드 버전인데, 3월에 아메바컬쳐 형들이랑 뉴욕 공연을 다녀온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어요. 굉장히 영감을 많이 받아서 가사도 진짜 빨리 썼어요. 그다음에 수정을 많이 했죠. 그걸 핑계로 좀 쉬기도 했고. 뉴욕에 가기 전 한동안 음악적인 슬럼프였거든요.
V 한창 잘나가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C 그럼에도 공허하더라고요. 의욕이 떨어졌고 에너지가 없었어요. 회사와 계약을 맺은 후로는 한 번도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V 소속사에서 너무 일을 많이 시키면 좀 반항하지 그랬어요?
C 소속사 문제는 아니에요, 전혀. 오히려 절 좀 힘들게 하면 좋겠는걸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지친 거죠.
V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타입이군요?
C 전 항상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도 편하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고요.
V 미국에선 뭘 하고 놀았어요?
C 사실 이번에 처음 가봤어요. 일방통행 도로부터 모든 게 다 새롭고 충격적이었어요. 뉴욕은 서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한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쇼핑도 하고, 재미있는 공연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다 보니까 저절로 뭔가 다 흡수됐어요.
V 뜻밖이네요. 크러쉬 음악 처음 들었을 때 미국 교포 출신인 줄 알았거든요.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런 세련된 감성이 나오는 건지 궁금했어요.
C 집안 사정이 넉넉하진 못했어요. 중학교 때 살던 집은 단칸방이라 가족들이 다 잠들고 나면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녹음하곤 했어요. 다행히 고등학교 때 이사 가면서 각자 방이 생겼는데, 제 방만 보일러가 안 들어왔어요. 워낙 장비도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겨울엔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워서 파카 입고 작업하고, 여름엔 또 엄청 덥고. 심지어 정규 1집에 있는 노래가 거의 다 그 방에서 나왔어요. ‘눈이 마주친 순간’이라는 노래를 작업할 때도 지금 같은 한 여름이었어요. 녹음한다고 방문이랑 창문까지 봉쇄하고 땀 뻘뻘 흘리며 속옷만 입은 채로 작업했는데, 나중에 딱 들어보니까 매미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런 환경이었어요.
V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곡 작업을 시작했단 얘긴 들었어요. 무대에 서고 싶었던 거예요?
C 아뇨, 처음엔 작곡가요. 그래도 음치는 아니라서 직접 가이드를 하다 보니, 제가 만든 곡은 제가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된 거죠.
V 음치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음색이 상당히 좋은 목소리죠. 그런 얘기 못 들었어요?
C 글쎄, 전 별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제 목소리를 좋아해주니까 저도 뭐 좋게 들릴 때도 있고. 흐흐. 물론 연구도 많이 했어요. 모든 뮤지션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V 지코의 피처링에 대해선 100% 만족해요?
C 아우, 너무 만족하죠. 워낙 잘하는 친구니까 그냥 믿고 맡겼어요. 둘이 만날 때마다 우리 죽이는 거 하나 만들자는 얘길 하곤 했는데, ‘Oasis’가 바로 그 타이밍이었어요. 저랑 그 친구가 같이 작업하길 원해온 팬들에 대한 선물이기도 했고요.
V 둘은 언제부터 친해진 거예요?
C 3년 정도 됐어요. 제가 언더그라운드에서 공연하며 독립적으로 활동할 때 그 친구가 SNS에 제 음악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글을 올렸어요. 그렇게 온라인으로 먼저 인연을 맺고 어떤 공연 자리에서 만나게 돼 그때부터 친해졌어요. 공식적인 건 아니었지만 같이 작업도 했고요. 동갑이기도 하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나 성격도 잘 맞아서 최근에 자주 봤죠.
V 태양과 협업해도 꽤 재미있는 노래가 나올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서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봤거든요.
C 전 항상 원하고 있죠! 영배 형이랑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어서 언젠가 같이 좋은 작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V 올 초에 같이 프로젝트 앨범을 낸 자이언티도 이번에 한 소절 참여했죠?
C 자이언티 형은 원래 예정에 없었어요. 그냥 제가 하려던 부분이었는데, 형이 전화가 와서는 자기도 같이 하고 싶다고 녹음실로 찾아왔어요.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죠.
V 자이언티와는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면서요? 일면식도 없던 사인데 다짜고짜 “내 음악 좀 들어봐달라”고 먼저 말을 붙였다고요.
C 그랬죠. 그게 3년 전이에요. 그날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음악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고요.
V 첫 수입이 생긴 날이 언제였는지 혹시 기억해요?
C 2013년 크리스마스였어요. 홍대 V홀에서 열린 공연에서 오프닝으로 한 곡을 했어요. 예전에 스윙스 형이 만든 공연 브랜드에서 기획한 거였는데, 저희 비비드 크루(자이언티, 그레이, 로꼬, 엘로)가 거기에 참여했거든요. 전 원래 라인업에도 없었는데, 자이언티 형이 자기 시간을 따로 빼서 저한테 준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받은 페이의 일부를 선물처럼 저에게 줬어요. 과분할 만큼 많은 액수였어요.
V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네요. 대체 둘은 무슨 사이예요?
C 우린 서로의 비밀이나 상처에 대해 되게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형이 절 보면 보호 본능을 느끼나 봐요.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는 두 사람에 대해 “쌍둥이 같다”고 했어요. 어린애들이 같이 붙어다니는 것처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라고요. 닮은 듯하지만 사실 다른 점이 더 많죠. 전혀 다른 인격체예요. 자이언티 형은 저보다 훨씬 현명하고, 자기 사람들한테 잘하고, 또 음악도 잘해요. 우리 둘이 프로젝트 앨범을 계속하는 것과는 별개로 곧 나올 형의 다음 앨범에도 제가 참여할 거예요. 아직 어떤 곡을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V 그토록 원하던 음악을 하고 있는데, 언제가 제일 기분 좋아요?
C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공연할 때가 제일 짜릿하죠. 작업 중에 곡이 잘 풀려도 즐겁고. 그리고 저작권료 들어올 때. 흐흐
V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금시계는 혹시 롤렉스인가요?
C 작년에 샀어요. 언젠가 제 음악으로 돈을 벌면 꼭 하고 싶었던 것, 사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거든요. 어릴 때 외국 힙합 뮤직비디오 보면서 이런 반짝이는 액세서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손목을 볼 때마다 왠지 뿌듯해요.
V 로망 1순위는 뭐였어요?
C 부모님께 용돈 드리기. 빨리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었어요. 가족들한테 잘하고 싶고.
V 자동차는 관심 없어요? 블링블링한 액세서리만큼 힙합 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게 람보르기니, 벤츠 같은 고급 스포츠카잖아요.
C 제 차는 그냥 저렴한 붕붕이. 면허 딴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뮤직비디오에 오프로드 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신을 무조건 넣고 싶었는데, 제가 면허증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얘기 나오고 바로 다음 날 학원 등록했죠.
V 직접 운전해서 제일 멀리까지 가본 여행지는?
C 대부도요. 아버지 생신을 겸한 가족 여행이었어요. 전 일이 끝나고 가느라 밤에 따로 갔는데, 좋았어요. 운전이 재밌어요. 아직 초보지만 조심조심 잘하고 있죠.
V 드라이브엔 멋진 음악이 필수죠. 지금 휴대폰엔 어떤 곡이 담겨 있어요?
C 도니 헤더웨이라는 70년대 가수의 노래도 있고, 건반 연주자 로버트 글래스퍼의 앨범도 있어요. 요즘 핫한 R&B 싱어들의 음악도 듣긴 하지만, 주로 소울풀한 옛날 노래가 많아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스티비 원더 좋아하고. 지금 들어도 그는 전혀 올드하지 않아요. 물론 어셔나 크리스 브라운은 말할 것도 없지만, 크게 봤을 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스티비 원더예요.
V 클래식한 악기와 크러쉬의 힙합이 만나면 또 어떤 음악이 탄생할지 궁금해요.
C 그건 하반기에 나올 미니 앨범을 기대하면 돼요. 지금 골조를 만들어가는 중인데, 좀 아련하고 사랑스러운 곡 위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진짜 재즈도 해보고 싶고 어쿠스틱한 음악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V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C 집이오. 드디어 앨범이 나왔으니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야죠. 한 이틀 정도는 쉬지 않고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 에디터
- 이미혜
- 포토그래퍼
- JANG DUK HWA
- 스타일리스트
- 한종완
- 스탭
- 헤어/ 태현(미장원 by 태현), 메이크업/ 미애(미장원 by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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