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이 4집 앨범을 들고 돌아온다. 평균 나이 30대 중반의 록 밴드가 들려줄 노래는? 두근두근 연애 얘기다. [ (시계 방향으로)장기하의 셔츠는 푸시버튼(Pushbutton). 정중엽의 반팔 셔츠는 김서룡(Kimseoryong), 선글라스는 르스펙스(Le Specs at Optical W). 이종민의 실크 셔츠는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 선글라스는 카렌 워커(Karen Walker at Optical W). 전일준의 화이트 셔츠는 비욘드클로젯, 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요헤이의 그레이 셔츠는 김서룡, 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 이민기의 실크 셔츠는 비욘드클로젯, 선글라스는 젠틀몬스터. ]
<보그>는 2년 만에 4집 앨범으로 돌아오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밀의 정원으로 불러냈다. 하늘은 푸르렀고 세상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로커들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햇빛에 노출된 드라큘라처럼 창백하게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섰다. 순간 한 스태프가 챙겨온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롤링스톤스의 ‘Paint It, Black’이 흘러나왔고 장기하와 얼굴들이 비로소 관절을 풀기 시작했다. ‘흥부자’들의 귀환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공개를 한 달 앞둔 4집 이야기를 전해 듣기 더없이 좋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왼쪽부터)요헤이의 화이트 실크 블라우스는 에트로(Etro), 드로잉 패턴의 화이트 코트는 라프 시몬스(Raf Simons),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장기하가 입은 실크 가운은 로브로브 서울(Lovlov Seoul), 카멜 컬러 트렌치 코트는 라프 시몬스, 블랙 팬츠는 김서룡(Kimseoryong), 슈즈는 프라다(Prada). ]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해서 오전에 촬영 시간 잡기가 어려웠다. 로커 중에 아침형 인간도 있나. 장기하 그나마 내가 가장 아침형 인간이다. 보통 오전에는 일어난다. 매니저 다른 멤버들은 몇 시에 자는지 물어보는 게 맞을 거다. 이민기 오늘은 아침 5시에 자서 10시에 일어났다. 갑자기 만화책을 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3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장기하 3집 키워드는 로큰롤이었다. 밴드가 연주하기 신났던 앨범이다. 가사 양이 적었고 반복도 많았다. 이번 앨범은 듣는 사람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노래, 재미있는 가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처음 ‘장얼’을 접했을 때 느낌과 가까울 거다.
어느덧 밴드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30대 중반이 됐다. 지금 장얼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하더라. 장기하 연애 노래다. 사실 앨범 발표를 앞두고 너무 정확히 지금 얘가 이렇게 연애를 하는구나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연애 상대가 알려진 게 처음이다 보니까. 지금 하고 있는 연애가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이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대놓고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나도 이제 서른다섯이니까. 이제는 내 방식대로 연애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노래로 앨범을 채웠다.
목소리는 더 맑고 청아해진 것 같다. 단어가 노래 속에서 튀어나와 귓속으로 또르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장기하 목소리 자체는 예전이 훨씬 어렸을 거다. 말투가 투박해서 목소리도 투박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라이브를 하면 할수록 능숙해지는 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경계하려고 했다. 능숙해지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니까. 나는 능숙한 걸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재능 있는 보컬리스트가 아니다. 처음에 어떻게 노래를 불렀지? 이 부분에서 꼭 바이브레이션을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불렀다. [ 체크 패턴 수트와 꽃무늬 실크 블라우스, 모피 블로퍼는 구찌(Gucci). ]
멤버들은 이번 앨범을 어떻게 느끼나. 연주하기에 재미있는 앨범인가. 하세가와 요헤이 연주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듣는 사람은 모를 거다. 그래서 좀 알아줬으면 한다.(웃음)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밴드 마스터링했던 분이 이걸 기타로 쳤냐고 놀라며 신시사이저라고 생각했다더라. 그 말을 듣는데 사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해냈다! 그런 쾌감. 우리가 어려움을 즐기는 면이 좀 있다. 장기하 이렇게 할 거면 프로그래밍 쓰지 뭐하러 실제 밴드 연주를 녹음했냐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손으로 연주하는 것과 기계로 찍어내는 소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밴드계에도 없고 일렉트로닉계에도 없는 소리를 내는 거다.
타이틀곡을 정할 때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고르나. 이 과정에서 멤버들과 만장일치를 보나. 장기하 만드는 입장에서는 다 좋다. 듣는 입장에 대한 감은 점점 더 없어진다. 여태까지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곡을 골랐는데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정했다. 밴드 내부에서 투표도 했는데 결과는 기각됐다. 사실 멤버들이 듣는 음악이 옛날 음악이거나 요즘 음악이지만 인기가 없는 것들이다. 타이틀곡 정하는 데 도움이 되겠나.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취미가 있다면. 정중엽 일준이만 아직 레코드에 입문을 안 했고 나머지는 “판 사러 가자!” 그러면 좋아하며 우르르 간다. 기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악기 덕후다. 이민기 외국 나갔을 때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음반을 같이 사러가곤 한다. 사실 정보가 있어야 살 수 있는 건데 양평이 형이 계셔서 너무 좋다. “이거 어때요?” 하고 물어보면 “조금 비싼 거 같은데”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아예 모르는 뮤지션을 추천해주시기도 한다. 양평이 형은 한국 집에만 LP판이 5,000장 넘게 있을 거다.
밴드로 살면서 타협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해준다면. 이종민 가짜로 연주하라는 것. 장기하 소위 핸드 싱크는 안 한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핸드 싱크를 하며 MR을 틀어놓고 보컬만 노래를 해야 한다. “불러주셔서 감사하지만 실제로 설 수 있는 무대만 서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계속 안 나갔는데 잘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방송 관계자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밴드가 생방송으로 라이브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록 스피릿이란 뭐라고 생각하는지 한 말씀해달라. 이종민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아멘. 하세가와 요헤이 우리가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는 게 록이지 않을까. 다른 거 안 하지 않나.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는 거다. 이 이상의 록 스피릿은 없는 거 같다. 장기하 ‘마리텔’ 나오셨잖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