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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이 현대로 타임 슬립 한다면? ‘멋진 신세계’

2026.05.15

장희빈이 현대로 타임 슬립 한다면?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SBS)의 주인공 강희빈, 본명 강단심(임지연)은 장희빈을 모티브로 한 듯한 인물이다. 후대 사람들은 강희빈을 희대의 악녀라 칭한다. 하지만 이는 정적들의 모략이다. 단심은 곤궁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궁인이 된 후에도 천출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 왕의 총애를 입고 희빈이 되어서는 사대부의 견제에 시달렸다. 왕은 결국 강희빈을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사약을 먹고 쓰러진 강단심은 사극 촬영장의 단역배우 신서리가 되어 눈을 뜬다. 작품은 강단심과 신서리를 통해 조선 시대와 현대 한국의 신분제를 병치한다. 신서리는 고시원에 산다. 통장 잔고는 바닥났다. 주변 사람들은 이 젊고 배경 없는 여성을 너나없이 하대한다. 이곳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희빈은 우연히 마주친 지체 높은 인물에게 들러붙으려 한다. 재벌 3세 사업가 차세계(허남준)다.

<멋진 신세계>에서 ‘재벌’은 기업 형태가 아니라 세습 신분을 뜻하는 말에 가깝다. 극 중 대중과 미디어는 어느 그룹 대표니 상무니 하는 타이틀 대신 ‘재벌’이라는 표현을 그들의 직함처럼 쓰곤 한다. <21세기 대군부인>이 공주, 왕자 역할극을 위해 가상 왕조를 가져왔다면 <멋진 신세계>는 그런 치장조차 없이 현대 한국 사회를 신분놀이의 무대로 삼는다. 남자를 이용해 천민에서 희빈으로 신분 상승한 전력이 있는 강단심은 ‘나는 이 게임을 해봤어요’라는 태도로 차세계에 접근한다.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현대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를 조선 시대와 대놓고 오버랩하는 시도는 어찌 보면 짓궂은 블랙코미디 같다. 하지만 작가가 사회 비판 의도를 담아 이런 설정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악랄한 기업 사냥꾼 이미지를 가진 차세계가 알고 보면 무능한 기업가를 응징하는 똑똑한 인물이고, 그에게 고용 승계를 부탁하는 인품 좋아 보이는 중소기업 사장이 알고 보면 원료 바꿔치기로 소비자를 기만한 나쁜 사람임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자. 캐릭터 구축 과정에서 불쑥 등장하는 이 에피소드는, 정의는 위선이고 위선이야말로 악덕 중의 악덕이라 믿으면서 제 평생 말 한 번 섞을 일 없는 조만장자들을 ‘형님’이라 부르는 부류에 더 통쾌하게 다가갈 것이다.

다행히 주인공의 기세로 많은 결점이 해결된다. 단심의 진취적인 성격은 세계관의 보수성을 중화시킨다. 극적 개연성을 포기하고 과장된 묘사로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에서는 임지연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시선을 압도한다.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강단심이 여느 신데렐라와 다른 점은 정치가 몸에 익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어떤 상황에서건 위풍당당하다. 가문의 뒷배도 없이 내명부 최고 권력을 얻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답다. 궁중 사극 말투로 고사성어를 읊어대는 단심의 모습과 어리둥절한 현대인들의 표정 대비는 자주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궁중에서 끊임없이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도 발달했다. 현대에 당도한 후 그 능력으로 차세계를 구해낸 단심은 자신을 보호자로 고용하라고 세계에게 제안한다.

차세계 역의 허남준은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이 처음이다. 여성 주연들의 연령대는 높아지는데 이 장르에서 그들과 호흡을 맞출 성숙하고 호감 가는 이미지의 남배우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남준의 발견이 반갑다. 그는 개성 강한 외모와 안정된 연기, 신선함을 바탕으로 임지연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임지연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허남준이 넉넉하게 받아치는 구도라 그들이 함께하는 신에서는 섹시한 긴장이 감돈다.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SBS ‘멋진 신세계’ 스틸 컷

이야기 구성의 신선함은 중반부터 빛을 발한다. 강단심이 신서리로서 만나는 남자들은 과거 혹은 전생에서 단심과 인연이 깊었던 사람들이다. 과거의 궁중 암투는 현대 재벌가의 후계 싸움 형태로 재현된다. 그 과정에서 주연들의 인연이 어떻게 반복되고 극복될지가 서사의 핵심이다. 이성과 감정을 크게 소모하지 않고 몰입할 드라마를 찾는 시청자에게 권한다.

이숙명

이숙명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프리미어>, 패션 잡지 <엘르>, <싱글즈>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8년부터 발리에 거주 중이며 대중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칼럼을 주로 씁니다. 저서로는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사물의 중력>, <나는 나를 사랑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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