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과 결혼한 미국 여성 9명은 누구?
얼마 전 영국의 해리 왕자와 결혼한 미국의 TV 스타 메건 마클.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신랑감인 해리 왕자를 친구를 통해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정확히 13개월 뒤 둘은 약혼했고 얼마 전 결혼에까지 골인했죠. 왕실 역사가이자 저자인 앤 세바(Anne Sebba)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리 왕자와 왕실 가문이 페미니즘과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좋은 일입니다. 메건 마클만큼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이슈에 대해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여성이 없죠. 그녀는 왕실 가문에 상당한 매력과 스타일을 불어넣을 거예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메건 마클과 같은 외국 여성이 왕실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녀 이전에 전 세계 곳곳의 왕실 며느리가 된 또 다른 미국 여성이 있었죠. 그레이스 켈리부터 리 라지윌까지,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메건 마클의 선배들을 만나보실까요?
모나코의 공주, 앨리스
앨리스 아인은 공식적으로 유럽의 주권 국가에 합류하게 된 첫 번째 미국 여성입니다. 1889년 10월 30일, 파리에서 모나코의 알베르 왕자와 결혼식을 올렸죠. 마데이라섬에서 처음 만난 이 불행한 운명의 연인들은 사실 이전 결혼 생활에서 얻은 아이까지 둔 상황이었습니다. 앨리스는 22세 나이로 전남편을 잃은 상태였고, 알베르 왕자는 루이 왕자를 낳은 뒤 이혼한 상태였죠.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반했다고 전해지네요. 하지만 알베르 왕자의 아버지 샤를 3세는 이 커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왕위를 계승받고 나서야 결혼할 수 있었죠.
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주, 아나스타샤
미국 클리브랜드 출신의 낸시 스튜어트는 남편을 잃은 채 홀로 살고 있던 미망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크리스토퍼와 결혼하기 위해 무려 6년을 기다렸죠. 1914년에 약혼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결혼을 연기했고 결국 1920년이 되어서야 스위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낸시는 곧 아나스타샤 공주로 불리게 되었죠. 크리스토퍼 왕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외국인과 결혼하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아나스타샤 공주는 3년 후 런던에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윈저 공작 부인, 월리스 심슨
“내가 사랑하는 여성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왕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에드워드 8세가 1936년 왕위에서 물러나며 대중에게 전한 말입니다. 그가 연설에서 언급한 여성이 바로 월리스 심슨이죠. 그의 자진 퇴위는 대중으로 하여금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월리스 심슨 전기의 저자 앤 세바는 “당시 사람들은 어떤 거만하고 옷을 잘 차려입은 여성이 갑자기 나타나 왕비가 된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두 번이나 이혼한 경험이 있는 사교계 명사는 1937년 왕실 가족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윈저 공작과 결혼식을 올리죠. 윈저 공은 자신의 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고, 결국 많은 사람으로부터 고립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리타 헤이워드
1949년 할리우드 배우 리타 헤이워드와 이탈리아 출신의 알리 칸 왕자는 칸에서 처음 만난 지 꼭 일 년이 되던 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알리 칸 왕자를 만나기 전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상태였죠. 이 둘의 결혼도 그래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헤이워드는 4년 뒤 왕자와 이혼했고 그녀의 딸 야즈민 아가 칸 공주와 함께 할리우드로 복귀했죠.
모나코의 공주, 그레이스 켈리
아마도 가장 유명한 미국 출신 공주가 아닐까요? 1956년 4월 19일에 열린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 레니에 3세의 결혼이야말로 “현대판 <신데릴라> 이야기”로 두고두고 회자되었습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레니에 3세가 그의 공주를 선택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에서 살게 될 것임은 물론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라고 묘사했죠. 레니에 3세는 그녀의 신부가 ‘모나코 공주’ 혹은 ‘그레이스 공주’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결혼식은 모나코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열렸습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미국의 여배우는 모든 신부에게 영감을 줄 헬렌 로즈 가운을 입었죠. 그녀의 아들인 알베르 2세가 현재 모나코의 국왕입니다.
그리스의 공주, 마리 샹탈
마리 샹탈 밀러는 그의 남편인 옛 그리스 왕국의 파블로스 왕세자와 소개팅을 통해 만났다고 합니다. 1992년 지인의 소개였죠. 이 둘은 1995년 런던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소피아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당시 이들의 결혼식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필립 왕자와 결혼한 1947년 이후 가장 많은 왕족이 모인 자리였다고 전해집니다. 사진 속 발렌티노의 웨딩드레스가 보이시나요? 무려 4m가 넘는 길이라고 하네요!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시민이었던 샹탈 공주는 2011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리 라지윌 공주
재키 케네디의 여동생인 캐롤라인 리는 1959년 폴란드의 왕자 스타니슬라프 라지윌과 결혼합니다. 두 사람은 캐롤라인이 1985년 브뤼셀 세계 박람회 미국관에서 개최된 <보그>의 전시를 감독하던 중 만나게 되었죠. 두 사람의 결혼은 캐롤라인에게는 두 번째, 스타니슬라프 라지윌 왕자에겐 세 번째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도 결국 1974년 이혼으로 막을 내렸죠. 결혼 생활 중 두 사람은 런던에 거주했습니다. 상당히 화려하게 꾸며진 조지 왕조풍의 타운하우스에 살며 여러 매거진에도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캐롤라인은 그 뒤로 다시 한번 영화감독 허버트 로스와 결혼한 뒤 이혼합니다. 세 번째 이혼 후 아이들의 성을 따라 ‘라지윌’이라는 이름을 다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가 칸 공주
시애틀에서 태어난 모델 켄드라 스피어스는 2013년 제네바에서 라힘 아가 칸 왕자와 결혼합니다. 프라다, 마크제이콥스, 돌체앤가바나 쇼에 서며 모델 활동을 하던 중 한 파티에서 나오미 캠벨이 왕자에게 그녀를 소개해주었다고 하는군요. 결혼 직후 ‘살와 아가칸 공주’라는 호칭을 얻었고,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요르단의 누르 여왕
엘리자베스 할라비는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미국 여성입니다. 하지만 요르단의 후세인 왕과 1978년 결혼하면서 ‘누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죠. ‘후세인의 빛’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녀는 한때 미국 태생과 자유로운 관점으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고 여왕의 의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결국 해외는 물론 요르단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죠. 그녀의 친구 클린턴 전 대통령은 누르 여왕을 두고 “미국의 딸이자 요르단의 여왕인 그녀는 두 나라를 모두 자랑스럽게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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