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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한강,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생함의 힘’이 특히 필요해요”

2026.05.12

2026년 한강,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생함의 힘’이 특히 필요해요”

얼마 전 미국 <보그>에 한강 작가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뜬금없는 그 이름에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도 ‘한강 작가의 희귀 인터뷰’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북미권에서 진행된 세 번째 인터뷰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미국 출판으로 진행된 2025년 1월 <뉴욕타임스> 인터뷰, 2025년 2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 이후 1년 만이다. 이번에도 <빛과 실(Light and Thread)>의 영문판 출간 일정에 맞춰 진행됐다. 귀하고도 귀한 그의 목소리를 놓칠 수 있나. 한글에서 영어로, 그리고 다시 한글로 돌아온 한강 작가의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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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2007년 이전만 해도 영어권 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인물이었다. 그해 가부장제의 야만성과 자기 결정권을 향한 투쟁을 육식 거부로 탐구하는 <채식주의자>의 출간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몇 년 동안 그의 작품 세계는 점차 넓어졌고, 개인의 이야기에서 사회적 서사로 확장된다. <희랍어 시간>(2011)에서는 목소리를 잃은 여성과 시력을 잃어가는 남성 사이의 교감을 통해 고립과 친밀함을 파고들었으며, <흰>(2016)에서는 상실과 슬픔에 대한 절절한 묵상을 담았다. <소년이 온다>(2014)와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통해선 세대를 관통하는 트라우마와 군사적 학살의 이야기를, 그리고 깊은 흉터로 남아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역사적 사건을 그려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처럼 끊임없이 넓어져온 그의 시선에 대한 응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출간된 <빛과 실>은 한강이 영어권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을 하나로 융합한다. 노벨상 연설문을 필두로 시와 에세이, 일기를 엮어내며, 작가의 내밀한 작업실과 정원을 엿볼 수 있는(정신적 의미까지 포함) 흔치 않은 기회다. 이 책은 작가의 기존 작품에 덧붙이는 일종의 부록으로 지금껏 감춰왔던 이야기의 주제와 문제들을 드러내고, 그의 작품이 싹트는 은밀하고도 내밀한 내면의 공간을 공개한다.

<보그>는 한강 작가와 만나 폭력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필요한 끈기, 그리고 ‘감각하고 상상하는 것’이 어떻게 절망에 대한 치유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통역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다.

'빛과 실' 영문판.

<빛과 실>에서 여전히 시를 쓰지만, 특별히 소설에 끌린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시는 문득 생각이 떠오를 때 가끔씩 써요. 하지만 소설은 몇 년에 걸쳐 질문을 품은 채 더듬더듬 나아가며, 오로지 의지로 밀고 나가는 작업이죠.

‘출간 후에’ 챕터는 문학 창작의 고통과 희열을 함께 담고 있더군요. 작가님에게 창작할 때 가장 힘들고도 설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 글을 쓰면서 저의 글쓰기 과정과 소설을 완성한 후에 겪는 일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소설을 쓰기 전과 후에 저는 항상 다른 사람이 되어 있거든요. 다행히, 쓰고 난 뒤의 제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끼죠.
글을 쓸 때의 저는 산책하는 것과 같아요. 자주 길을 잃지만, 글을 꼭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물론 어려운 순간도 있죠. 문득 길을 찾는 기쁨의 순간도 있어요. 글쓰기란, 그 모든 경험의 총합이라고 생각해요.

책 전반에 걸쳐, 특히 ‘작은 찻잔’에서 창작의 루틴이 되는 작고 일상적인 삶의 측면을 깊이 있게 다루셨죠. 실제 작가님의 루틴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치열한 루틴은 집필에 몰두하고 있을 때만 가능해요. 그 기간에는 할 수 있을 만큼 책상 앞에 있으려고 하죠. 하지만 쓰지 않는 시간에는 루틴 없이 느슨하게 지내요. 사실 돌이켜보면 제 삶의 많은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요.

정원을 가꾸는 것과 글을 쓰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결 고리가 있나요?

이 책을 엮으면서 책 전체가 빛으로 감싸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일기장 속에서 정원을 가꾸는 장면 몇 부분을 골랐죠. 제 정원은 아주 작고 북쪽을 향해 있어서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아요. 그래서 땅에 거울을 두고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위치를 옮겨 식물들이 빛을 쬘 수 있도록 하죠. 저는 이 이미지가 <빛과 실> 속에 담긴 빛과 공명하기를 바랐어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셨어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보며,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여기는지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폭력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늘 놀랍니다. 인간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잊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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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세상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최근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작별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불가능한 이별 대신, 그들은 끈질긴 애도 속에 머물기로 합니다. 칠흑 같은 밤, 그들은 촛불을 밝히죠. 저는 여전히 우리 안에 있는 그 깜박이는 빛을 믿고 싶고, 그것을 끈질기게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8년 한국군이 시위와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을 학살한 제주 4·3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나서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꼭대기가 잘려 나간 검은 나무들이 가득한 눈 덮인 들판을 걷고 있었어요. 그 나무들을 묘비 삼은 수만 개의 무덤이 늘어서 있었고요. 갑자기 벌판 저편에서 바닷물이 밀려와 발목까지 차올랐습니다. 무덤 속 유골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방법을 몰라 물속을 달리다 잠에서 깨었어요. 그 꿈의 기록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두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그 페이지들 다음에 무엇이 올지를 더듬으며 써 나갔어요.

2026년 현재, 한국 현대사 속 국가 폭력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증오와 배제, 그리고 말살의 시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세계의 긴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온 인간의 행위(Human Acts)예요. 우리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의문을 품고, 저항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일들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독자에게 그토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이 책은 폭력에 대한 거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절망, 여성의 침묵 속 절규를 겹겹이 쌓아 올립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해요.

생존자이자 작가, 유령의 시선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2019년 말씀하셨지요. 여전히 그렇게 느끼시나요? 그 작품의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기간은 1년 반으로 비교적 짧았지만, 밀도가 매우 높았어요. 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경험이기도 했고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두 소설을 쓰는 데 합쳐 9년 정도 걸렸어요. 정말 치열했죠. 하지만 다른 소설들 역시 모두 소중해요. 어느 하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토록 어려운 시대에 소설가와 소설의 역할은, 혹은 예술가와 예술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문학은 상상합니다. 그것도 매우 생생하게요. 저는 그 ‘생생함의 힘’이 지금 같은 시대에 특히 필요하다고 느껴요. 물론, 무언가를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요. 하지만 그 고통을 가까이 붙들고 계속해서 감각하고 상상해야 한다고 여겨요. 문학과 예술은 매 순간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읽고 듣고 보는 모든 이에게 ‘감수성’을 전염시켜 그들을 삶의 편에 서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예술은 결코 무용하거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죠.

미래에 대한 가장 큰 희망과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크고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비록 작고 연약할지라도 진실한 희망을 꺼트리지 않고 키워나갈 수 있다면, 절망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황혜원

황혜원

웹 에디터

<보그> 웹 에디터로 주로 패션 트렌드를 다루며, 웹사이트 전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쓰는 걸 좋아합니다. 돈이든 글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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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Hilden
사진
Getty Images, Courtesy Photos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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