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까지 유쾌한 시퀀스를 그린 사진가 듀안 마이클스 영면

2026.06.16

94세까지 유쾌한 시퀀스를 그린 사진가 듀안 마이클스 영면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자주 웃고, 남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우며, 다정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동기는 지천에 있습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막춤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할아버지, 서로의 손을 꼭 붙든 거리의 노부부, 색색으로 화려하게 입은 할머니, 그리고 듀안 마이클스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죠.

@theduanemichals

지난 2월 94세 생일을 맞은 듀안 마이클스는 40세 생일을 기념해 남긴 셀프 포트레이트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듀안 마이클스는 최근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죠. 그리고 2026년 6월 9일, 듀안 마이클스가 맨해튼에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악마로 분한 자화상, 94세 생일을 맞이하며”라는 코멘트와 함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사진. @theduanemichals
“마흔 살 생일에 악마의 모습을 한 자화상 (그 뒤에 어떻게 됐느냐고?)” 코멘트와 함께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사진. @theduanemichals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인 지난해 11월에도 보테가 베네타 캠페인을 위해 제이콥 엘로디를 그래머시 파크(Gramercy Park) 자택으로 초대했습니다. 자신도 모델이 되어 쉰다섯 살 터울의 제이콥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거나, 자신이 기르는 나무와 함께 담아냈습니다. 이 외에도 꽃송이, 깃털, 왜곡된 거울 등 평범한 사물을 낯설게 배치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그가 꾸준히 해온 방식이죠.

@newbott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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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모델 크리스 로이어(Chris Royer)는 듀안 마이클스와 함께 한 작업을 헝가리어 ‘킨치버다서트(kincsvadászat)’, 즉 ‘보물찾기’라고 표현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뭔가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 창의적인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요.”

어린 시절의 듀안 마이클스(오른쪽). @theduanemichals

듀안 마이클스는 1932년 2월 18일 펜실베이니아 맥키스포트(McKeesport)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있어 14세에 피츠버그의 카네기 인스티튜트에서 수채화 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53년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2년간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꾸며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했습니다.

듀안 마이클스의 ‘Hollywood Paintings’ 시리즈. @theduanemichals

듀안 마이클스의 ‘Hollywood Paintings’ 시리즈. @theduanemichals

그런데 1958년 소련 여행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여행 중 우연히 찍은 사진이 열정에 불을 지폈고, 마이클스는 아트 디렉터의 꿈을 접고 카메라 뒤에 서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그대로 1963년 뉴욕 언더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전시에서 선보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순수예술 사진가로서 작업을 발전시키는 한편, 마이클스는 콘데 나스트 소속 매거진과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의뢰 중 하나는 1969년 11월호 <마드모아젤(Mademoiselle)> 매거진을 위해 조니 캐시(Johnny Cash)를 촬영한 초상 사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초상 사진이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담는 것과 달리, 듀안은 창문 너머로 캐시를 촬영하며 호텔 방에 조용히 앉아 있는 스타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얹었죠. 이후 자신을 이미지에 포함시키는 것은 듀안 마이클스 작업의 중요한 구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마드모아젤’ 1969년 11월호 조니 캐시 화보.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듀안은 여러 이미지를 통해 내러티브를 만들고, 글을 서사 요소로 도입하는 방식을 개척했습니다. 비평가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 필립 게프터(Philip Gefter)는 <뉴욕 타임스>에서 마이클스를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 예술가이자 사진 서사 시퀀스의 아버지”라 표현했습니다. 그는 많은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꺼리던 시절,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밝힌 사진가이기도 했습니다.

@theduanemichals
@theduanemichals

마이클스는 1970~1980년대에 걸쳐 <보그>에 정기적으로 기고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1974) 촬영장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를 찍은 스틸 사진부터, 샌프란시스코 발레단과 주얼리 디자이너 엘사 퍼레티가 전설적인 스튜디오 겸 자택에서 작업하는 르포르타주, 그리고 이브 생 로랑, 더들리 무어, 필립 글래스 등 저명인사의 초상에 이르기까지 다채롭습니다.

‘보그’ 1973년 12월호, ‘위대한 개츠비'(1974) 촬영장의 제이 개츠비 역 로버트 레드포드.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보그’ 1974년 2월호, 더들리 무어.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1976년 마이클스는 <보그> 패션 페이지에 뚜렷한 족적을 남깁니다. 에디터 폴리 멜렌(Polly Mellen)과 제이드 홉슨(Jade Hobson)에게 봄/가을 컬렉션 촬영을 의뢰받은 그는 전혀 다른 성격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는데요, 두 작업 모두 그의 창의적인 모험 정신과 탁월한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콘데 나스트 본사가 있던 매디슨 애비뉴 350번지 <보그>에서 근무한 이들에게, 1976년 2월호에 실린 봄 컬렉션 화보는 특히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듀안은 모델을 ‘일하는 여성’으로 촬영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최적의 장소로 <보그> 아트 부서의 기획실을 택했습니다. 잡지를 실제로 만들던 공간이죠. 듀안은 여기에서 <보그> 스태프가 분주하게 스쳐 지나가고, 로이어와 또 다른 모델이 35mm 슬라이드를 검토하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가을 화보에서 그가 펼칠 세계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습니다.

‘보그’ 1976년 2월호, 매디슨 애비뉴 350번지 ‘보그’ 기획실에서 필름을 검토 중인 크리스 로이어(가운데).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보그’ 1976년 2월호,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크리스 로이어(오른쪽)와 동료.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보그’ 1976년 2월호, ‘일하는 여성의 옷’을 선보이는 구닐라 린드블라드(Gunilla Lindblad).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그해 후반 마이클스는 가을 컬렉션에서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야외촬영을 즐기던 평소 습관을 버리고 스튜디오를 택했지만, 그곳은 여느 스튜디오가 아니었습니다. 카네기홀에 있는 사진가 에디타 셔먼(Editta Sherman)의 작업실이었죠. ‘카네기홀의 공작부인’으로 불리며 60년 넘게 그곳에서 거주하고 작업하던 셔먼의 공간에 로이어를 비롯해 여러 모델을 모았습니다.

‘보그’ 1976년 10월호, 엠마누엘 웅가로 1976 가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들.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보그’ 1976년 10월호, 존 앤서니 1976 가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멜라니 케인(Melanie Cain), 비벌리 존슨(Beverly Johnson), 리사 쿠퍼(Lisa Cooper), 팻 클리블랜드(Pat Cleveland).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여러 촬영에서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했던 크리스티안(Christiaan)은 마이클스가 “다소 수줍어 보이지만 다정한 결단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천천히 움직이는 회전목마처럼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모두를 이끌었다”고 회상합니다. 그 결과물은 패션 사진의 정점으로 꼽힙니다. 다수의 모델을 능숙하게 통솔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셔터속도를 느리게 설정해 당시 패션 사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에너지와 감정을 사진에 불어넣었습니다.

‘보그’ 1976년 10월호, 제프리 빈 1976 가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리사 쿠퍼, 팻 클리블랜드와 모델들.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보그’ 1976년 10월호, 발렌티노 1976 가을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델들.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크리스티안은 촬영 초반만 해도 모두 현장에서 긴장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마이클스는 전형적인 패션 사진가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뭔가 특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다들 느꼈어요.”

‘보그’ 1972년 4월호, BMW 750 뒷좌석에 탄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디렉터 드레나 반 알렌(Drena Van Alen).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보그’ 1972년 7월호, 말의 질주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마부 마인즈(Mabou Mines) 극단의 데이비드 워릴로(David Warrilow), 조앤 아칼라이티스(JoAnne Akalaitis), 루스 말렉체크(Ruth Maleczech). Photographed by Duane Michals

듀안 마이클스가 2024년 9월 17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포스팅 전문

To Be Read When I’m Gone
내가 떠나고 없거든 읽어볼 것

When you hear that I have died
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You may cry and dream of me
그대는 눈물을 흘리며 내 꿈을 꾸겠지
We two will play hide and seek
그러면 우리 둘은 숨바꼭질을 하자
And peek-a-boo among the stars
별들 사이로 까꿍, 장난을 치며
and I will cry and dream of you
그럼 나도 눈물을 흘리며 그대 꿈을 꿀 테니

– Duane Michals
듀안 마이클스

Photo by Josiah Cuneo
사진 조시아 쿠네오

하솔휘

하솔휘

웹 에디터

2025년 4월 <보그>에서 시작했습니다. 패션 감각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글을 씁니다. 많이 듣고, 다니고, 읽고,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글을 재밌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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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Shaw
사진
Instagram, Courtesy of Duane Michals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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