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하여
“작가란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수전 손택이 한 이 말에 누구보다 충실하게 응답한 이는 다름 아닌 수전 손택 자신이다.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 영화와 연극에 두루 탁월한 비평을 쓴 평론가,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 인권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향한 경계심 없는 관심을 지성의 토대로 삼고 세계가 품은 내밀한 고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안에 담긴 가능성을 탐색한, 지난 세기 진정한 작가들의 작가. 예술의 형식과 매체의 특성을 정확히 꿰뚫으면서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고한 경계의 저변을 의심하고, 그 사이 모순을 드러내는 데 빼어난 눈을 지닌 손택은 끝없이 자신을 세계에 연루시키고 실천적 행동에 가담하며 예술에 복무했다.

그런 수전 손택의 세계에서 영화는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다. 영화 평론가와 영화감독이라는 이력과 수식은 잠시 뒤에 두더라도 그녀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 하나를 꼽으라면, 시네필일 것이다. 시네필이라는 자의식, 시네필로서의 실천. 일흔을 넘기고도 일주일에 다섯 번은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다고 말한 손택이었다. 영화사의 고전부터 현대 영화까지 섭렵하며 자기만의 영화 레퍼토리를 만들고, 좋았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한 것은 의식과 의례라기보다 거의 몸에 착 붙은 습관에 가까운 것이리라. 일상적 차원과 학문적 그것을 오가며 영화를 받아들인 사람이 남긴 영화에 관한 글이라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글을 엮은 선집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됐다. <영화에 관하여>(2026, 윌북)다.
1960년대 초부터 2004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수전 손택이 쓴 영화 비평, 그녀가 응한 영화 관련 인터뷰, 연출작 각본집 서문, 영화 트리트먼트, 영화인에게 보낸 편지, 영화 선정의 변, 일기에 적어둔 영화에 관한 메모 등 32편의 텍스트 모음이다. 두툼한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1부는 손택의 전문적 식견과 성실한 연구로 꼼꼼히 분석해나간 매체 비평이다. 영화와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옮긴다는 뜻인가, 사진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대한 손택의 대답이다. 2부는 브레송, 레네, 베리만, 그리고 고다르 등의 구체적인 영화에 관한 손택의 명민한 비평이다.

이 책의 첫 번째 글인 ‘영화의 한 세기’로 돌아가보자. 1996년 <뉴욕 타임스>에 ‘영화의 쇠퇴’라는 제목으로 손택이 기고한 글이다.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영화에 관한 수전 손택의 입장이 바로 이 글에 있다. 당시 손택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로 평가받던 영화가 20세기의 끝자락에 이르러 퇴락한 예술처럼 보인다고 진단한다. 그럼, 영화의 시작은 어떠했던가. ‘영화는 경이로 시작했다. 현실이 이렇듯 마법처럼 직접적으로 전사될 수 있다는 경이. 모든 영화는 그 경이로운 감각을 지속시키고 다시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16쪽) 그럼, 그 경이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에 납치당하려면 무엇보다 눈앞에 존재하는 이미지에 압도당해야 한다. … 영화에 납치당하려면 영화관에 가서, 컴컴한 곳에 앉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안타까워한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행하던 사라진 의식, 관능적이고 사색적인 의식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16~17쪽)
바로 그러한 이유로 수전 손택은 영화가 벌이는 어둠 속 납치극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주 5일이 부족하다는 듯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이를 두고 영화를 향한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바로 이러한 영화 사랑이야말로 손택이 말하는 지난 세기 이후 영화가 (되)살아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시네필리아가 죽는다면 영화는 죽는다. … 아무리 많은 영화가 만들어지더라도, 심지어 좋은 영화가 계속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되살아나려면 새로운 종류의 영화 사랑이 태어나야만 한다.’(22쪽)

손택의 저 말은 다급한 선언처럼 들린다. 저 말은 여전히 유효한가, 어떤 응답이라도 받았던가, 그리하여 새로운 사랑이 발생했는가, 태어났는가. 영화 산업의 위기를 마치 영화의 위기인 양 호들갑 떨거나 둔갑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토양이 비옥하지 않다는 증거는 여지저기 꽤나 많다. 그럼에도,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예민한 촉수로 세계의 이모저모를 드러내는 새로운 작가들은 분명히 있으니까.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 상영관을 찾는 새로운 관객이 늘었다는 소식도 들리기에. 비록 수가 적더라도, 그 열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더라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둠 안쪽으로 들어서서 종잡을 수 없는 영화 앞에서 기꺼이 압도되기를 바라는 새로운 이들의 영화 사랑이 지금도 곳곳에 있으므로.
그렇기에 <영화에 관하여>는 이 책을 펼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극장으로, 관능적이고 사색적인 당신만의 어둠 속으로 향할 시간이라고.

수전 손택영화에 관하여
(2026,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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