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자전거가 우리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바이크 쇼츠를 즐기기 위해 사이클 페달을 밟을 필요는 없다. 지금 가장 화끈한 하의, 바이크 쇼츠.
설마 저게 팔리겠어?” 내가 외친 말을 난 분명히 기억한다. 올해 초 런던 소호의 어느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패션 브랜드를 준비 중인 친구와 만나 이렇게 외쳤다. 친구는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프레젠테이션’하며 내게 조언을 구하던 참이었다. 그녀가 꼽은 트렌드는 꽤 동시대적이었다. 셀린을 닮은 투명 플라스틱 백은 히트 칠 게 분명했고, 더 로우를 닮은 셔츠 드레스는 블로그 마켓에서 품절을 기록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아이템에 난 손사래를 쳤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저 스타일을 시도했는데, 한번도 유행한 적 없어.” 내가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을 가로저은 아이템은 바이크 쇼츠였다. 친구는 내 말에 바이크 쇼츠를 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파파라치 사진이 뜬 아이패드 화면을 황급히 닫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그리고 6개월이 흐른 지금, 내 확신에 찬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알렉산더 왕, 오프화이트, 마틴 로즈 등이 선보인 바이크 쇼츠는 지난 상반기 가장 뜨거운 아이템으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켄달 제너와 벨라 하디드는 무릎 위로 올라오는 사이클링 반바지를 입고 칸 파티장에 입성했고, 킴 카다시안은 남편 칸예 웨스트가 디자인한 쇼츠 차림으로 파파라치들을 흥분시켰다. 여동생 카일리 제너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 크리스털 7,000개를 장식한 점프수트 스타일 바이크 쇼츠를 입고 등장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러자 전 세계 패션 사이트 에디터들은 “7일 동안 사이클링 쇼츠 입기” “바이크 쇼츠를 위한 속옷” 등의 기사를 전송하느라 바빴다. 이 중 흥미로운 뉴스는?
사실 애슬레저(Athleisure) 룩과 놈코어(Normcore) 등의 유행은 어떤 아이템도 패셔너블해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힙색과 어글리 스니커즈가 유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바이크 쇼츠의 환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건 지난해 등장한 단어 ‘고프코어(Gorpcore)’다. “전혀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옷이야말로 스타일리시하다는 것이 바로 고프코어의 전제입니다.” 아소스(ASOS)의 시니어 에디터 수잔나 터커(Susannah Tucker)는 이 새로운 유행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프코어에서는 기능성이 가장 중요하죠.” 설악산에 오르지 않아도 파타고니아의 플리스 재킷을 즐겨 입고, 마라톤을 뛰지 않아도 나이키 러닝화를 신는 것도 일종의 고프코어라는 얘기다. 투르 드 프랑스 레이스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바이크 쇼츠를 입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유행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한창 멋에 눈뜨기 시작하던 90년대의 산물이죠.” 이미 바이크 쇼츠 스타일에 올라탄 <보그> 디지털 디렉터 김지영은 고프코어와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한다. “94년쯤이었을까요? 무릎 길이의 짧은 레깅스나 무릎까지 딱 붙는 청반바지가 유행한 것이 기억나요. 90년대가 쿨해 보이는 시대적 트렌드 때문에 다시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죠.” 그녀는 <보그>의 쇼핑 계정인 ‘@myvoguekorea’를 위해 직접 바이크 쇼츠를 시도하며 스타일링 비법도 깨달았다. “상의를 무조건 크게 입어야 합니다. 큼직해야 비율도 좋고 세련되어 보이죠. 셀린의 남성적인 오버사이즈 재킷 혹은 발렌시아가의 구조적인 재킷을 곁들인 뒤 간결한 샌들이나 큼지막한 스니커즈를 신는 거죠.” 그녀는 이런 반바지가 재킷이나 코트처럼 부피가 큰 외투와 더 잘 어울리기에 바이크 쇼츠의 유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 덧붙였다.
모두가 생로랑 버전의 레이스 쇼츠를 입을 순 없다. 그렇다고 바이크 쇼츠 유행을 연출하기 위해 라파(Rapha)를 비롯한 자전거 전문 브랜드로 향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사이클 안장에 앉지 않는 한 전문 사이클 쇼츠에 부착된 패드는 불필요한 존재다. 룰루레몬 혹은 아웃도어 보이시스(Outdoor Voices)를 비롯한 애슬레저 브랜드의 바이크 쇼츠도 충분히 ‘시크’할 수 있다. 게다가 뛰어난 기능성은 더 큰 편안함마저 선사한다. 나가타(Nagnata), 업사이드(The Upside) 등의 새로운 스포츠 브랜드 역시 쇼핑 목록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 만약 유행의 원조를 찾아가고 싶다면? 카다시안 자매가 즐겨 입는 이지(Yeezy)의 카키색 레깅스만큼 세상 쿨한 건 없다. 단, 드롭(Drop)이 되기만 하면 즉시 품절되는 아이템을 손에 넣을 능력부터 길러야겠지만.
더 패셔너블한 스판덱스 쇼츠를 원한다면 좀 기다려도 좋겠다. 아크네 스튜디오와 알토(Aalto) 등은 벌써 내년 봄 컬렉션에 바이크 쇼츠를 포함시켰으니 말이다. 알렉산더 왕도 짧디짧은 가죽 바이크 쇼츠를 스웨트셔츠 등과 매치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유행하던 오클리(Oakley)를 닮은 사이클링용 선글라스도 다시 등장했다. 알렉산더 왕, 프라다와 MSGM 남성복 쇼에서 포착된 스타일은 매트릭스 선글라스의 뒤를 이을 예정이다. 덕분에 바이크 쇼츠의 유행은 든든한 아군을 만났다. 그리하여 ‘고프코어’ 유행은 계속된다.
- 에디터
- 손기호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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