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어떻게 하면 패션을 즐길 수 있을까?

2023.02.20

by VOGUE

    어떻게 하면 패션을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건강한 정신으로 패션을 즐길 수 있을까. 슈퍼모델 수주가 쓴 글은 이런 의문에 답이 될 수 있다.

    1월 18일은 ‘블루 먼데이(Blue Monday)’로 알려진다. ‘블루 먼데이’는 새해의 세 번째 월요일을 지칭하는데, 그날이 과학적으로 한 해의 가장 우울한 날이라고 한다. 연휴 이후 쏟아지는 신용카드 고지서, 적은 일조량과 추운 날씨, 새해 결심의 포기 등 복합적인 결과다. 우리는 현재 ‘전례 없는’ ‘팬데믹’에 이제 ‘변종’이라는 단어가 일상과 밀접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우리 모두가 불안과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 역시도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EBIT’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후원하게 되었다.

    패션계는 창의적인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가 이끄는 샤넬의 여성스러운 최신 트위드 재킷을 보며 흥분하지 않을 여성이 누가 있겠나. 디자이너 케네스 이제이(Kenneth Ize)의 전통적인 나이지리아 아소 오케(Aso Oke) 패브릭 의상을 입고 나오미 캠벨이 런웨이를 멋지게 질주하는 모습에 경이로움을 감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렇듯 패션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 ‘추리닝’ 바지를 입고 지저분한 머리를 한 채 보내는 단조로운 격리 생활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패션의 순기능 중 하나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망하고 ‘최신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패션계는 멘탈 붕괴와 번아웃(혹은 번아웃 증후군)을 일으키기에 최적인 불안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나는 모델로서 이런 현실에 면역력이 생기도록 나 자신을 적응시켜야만 했다. 겉으로는 이 모든 것이 멋지고 좋다는 듯이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웃었다. 그러나 내 안의 나는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 직업으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많이 가질 수 없었다. 미지의 무언가가 그림자처럼 어디든 나를 따라다녔다. 마지막 순간에 급하게 작업이 확정되면, 나는 내가 하던 것을 내려놓고 바로 일하러 뛰어가야 했다. 내가 촬영장과 런웨이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또 내 모습이 어떤 식으로 묘사될지는 결코 내 소관이 아니었다. 이는 헤어나올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었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좌절, 실망, 압도, 죄책, 분노 같은 우리를 조여오는 수많은 감정이 유발될 수 있다. 심지어 우울증마저 초래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식의 감정 상태에 빠진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먼저 어디서부터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몰랐다. 이를 인정하는 것 또한 두려웠다. 나 스스로가 불행함을 인정하는 순간 죄책감이 밀려올 것 같았으니까. ‘직업적으로 상당히 많은 일을 이뤘는데, 왜 이런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리고 격리 기간에 많은 일이 잠잠해지고 세상이 멈추자, 그 목소리는 더 커지고 말았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테라피와 심리 상담을 줌(Zoom)으로 받기로 예약했다. 자신을 진정으로 들여다보고 내 감정을 처리한다는 것이 꽤 참담했지만, 나만의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또 나만의 여정을 통해 나 자신에게 더 큰 역할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사이먼 화이트하우스(Simon Whitehouse)를 안 지는 3~4년 정도 된다. 한때 브랜드 JW 앤더슨의 전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트 파트너(Art Partner)의 CEO였던 사이먼은 지난해 8월 완벽한 프로젝트가 있다면서 내게 슬쩍 참여를 제안했다. 땀이 줄줄 흐르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톰킨스 스퀘어 파크의 줄지어 놓인 벤치에 앉았다. 우리가 2m쯤 떨어진 채 마스크를 쓰고 파리와 모기를 쫓고 있을 때, 그는 새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꺼냈다. ‘EBIT’, 풀어 말하자면 ‘Enjoy Being in Transition(과도기를 즐겨라)’이라는 뜻의 이 프로젝트는 사실 ‘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세전 이익)’라는 기업 재무 부문에서 통영되는 재무 용어의 재미있는 말장난이었다.

    그는 계속 EBIT를 가상 세계와 물질 세계(현실 세계)의 규칙을 가지고 놀며, 사진가, DJ, 사운드 큐레이터, 조각가, 그래픽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등등 재능 넘치는 인물을 한데 모으는 새로운 글로벌 360도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특히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한 간헐적 행사에 착수하게 될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 자리에서 사이먼은 이 일을 함께 기획하는 데 관심이 있는지 내게 물어왔다.

    나는 EBIT가 추구하는 유기적 접근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완전한 표현의 자유만 존재할 뿐이다. 일련의 아티스트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은 고무적인 방식을 통해 ‘정신 건강’이라는 개념을 다루자는 발상을 기반으로 둔 프로젝트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중에게 정신 건강 문제에 관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촉매제로서 말이다.

    사이먼이 패션계에서 오래 일해왔고 세간의 이목을 끌고 존경받는 전문가로 인맥을 구축한 덕분에, 우리는 조용하면서도 인상적으로 EBIT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M/M Paris가 로고 디자인과 브랜딩을 맡아주었다. 그리고 블루 먼데이를 위한 고유의 뮤직 믹스를 만들기 위해 미셸 고베르(Michel Gaubert)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미셸과 그의 파트너 라이언(Ryan)을 수년 동안 알고 지냈다. 미셸은 패션에 열정을 지닌 뛰어난 사운드 디자이너다(샤넬, 디올, 발렌티노, 로에베, 펜디, JW 앤더슨, 프로엔자 스쿨러, 사카이 등의 런웨이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담당해왔고 수십 년간 칼 라거펠트와 친구로 지냈다). 그는 소신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현실도피 또한 필수적이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 숨을 쉬고 감정을 가라앉힐 우리만의 창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과도기에 있어요. 서로 돕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트랜지션스 라디오(Transitions Radio)를 통해 2021년 1월 18일 EBIT 블루 먼데이 믹스를 론칭했다. 이 라디오의 호스트 존 딕위드(John Digweed)는 사이먼의 고향 맨체스터에서 하시엔다(Hacienda)와 르네상스(Renaissance) 시절부터 음악 현장에서 활동해온 영국의 전설적 DJ다. 그 믹스는 사운드가 매우 아름다운 데다 이 프로젝트와도 잘 맞는 작품이다. 미셸은 펫샵보이즈의 ‘It’s Alright’으로 믹스 작업을 시작했다.

    “한 세대가 떠나면 새로운 세대가 올 거예요. Generations will come and go (Will come and go) 그렇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어요. But there’s one thing for sure 음악이 우리 삶의 근간이라는 거죠. Music is our life’s foundation 그리고 앞으로 올 모든 세대를 이어줄 거예요. And shall succeed all the nations to come 예아 Yeahah 난 모든 게 괜찮기를 바라요. I hope it’s gonna be alright 음악이 영원히 나올 테니까요. Cause the music plays forever 난 모든 게 괜찮기를 원해요. I hope it’s gonna be alright”

    패션 비즈니스는 정신 건강 문제로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들을 잃었다. 불과 지난 몇 달 사이 우리는 스텔라 테넌트와 슈퍼모델 스테파니 세이모어의 아들인 해리 브랜트(Harry Brant)의 죽음을 애도해야 했다.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던 그들에게 정신 건강은 ‘맹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정신 건강은 공론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를 숙고해서 다뤄야 한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혼자만 그토록 침울함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나는 EBIT가 패션과 맞닿은 실재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사용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진 않게 말이다. 패션과 삶의 요소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내 소견이니까.

      글쓴이
      박수주
      사진
      Courtesy of EBIT, M/M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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