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의 대명사, 논픽션의 여섯 번째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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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의 대명사, 논픽션의 여섯 번째 향

2021-10-28T15:45:16+00:00 2021.10.27|

숲의 습기와 이마에 가볍게 부딪히는 바람 그리고 고요. 미지의 안식처로 우리를 초대하는 논픽션의 새로운 향.

나른한 초겨울 오후 연인의 품에서 나누는 오붓한 대화, 양면적인 낮과 밤의 온도, 소나기가 지나간 숲속 젖은 흙과 나뭇잎을 스치는 개운한 바람. 공감각적 스토리텔링과 ‘요즘’ 취향을 겨냥한 중성적인 향으로 유명한 논픽션의 신작 향수를 소개한다. ‘상탈 크림(Santal Cream)’ ‘젠틀 나잇(Gentle Night)’ ‘가이악 플라워(Gaiac Flower)’ ‘포겟 미 낫 (Forget Me Not)’ ‘인 더 샤워(In The Shower)’, 앞서 출시된 향기들처럼 이번 신작 또한 매혹의 이름을 지닌 향이다. MZ세대에게 향의 대명사로 통하는 논픽션의 여섯 번째 향은 또 어떤 감각으로 무장했을까?

이름하여 ‘포 레스트(For Rest)’, 그러니까 숲(Forest)과 휴식(Rest)의 중의적 의미다. 청량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고요한 숲에서 깊이 호흡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때 코끝을 스치는 향이란! 논픽션은 바로 그 순간 우리의 마음에 침전하고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기억과 감정을 담았다. “히노키 향을 머금은 숲속의 온천과 거기서 피어오르는 향긋한 수증기. 차갑고 신선한 유자 향에 너트메그와 블랙페퍼의 세련된 터치를 곁들이고, 싱그러움과 묵직함을 겸비한 프랑킨센스가 바람에 실려오듯 섬세하게 향기를 완성한다.” 이 시 같은 문장이 창작자의 의도다. ‘포 레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적인 조향사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최근 여러 글로벌 브랜드와 일하며 니치 향수계의 신성으로 등극한 바나베 피용(Barnabé Fillion)이다.

사진과 식물학을 전공한 바나베 피용은 천연 향료와 식물에 대한 애착, 대자연을 모티브로 한 미학적 혁신을 이루는 아티스트다. 자신의 작업을 ‘공간을 향으로 재현하는 일’이라고 표현하며 논픽션이 구상한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경험을 후각적으로 구현했다. 바나베 피용이 ‘포 레스트’의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한다.

 

본업은 사진작가였다. 조향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스위스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던 시절, ‘픽토리얼 인사이클로피디아(Pictorial Encyclopedia)’라는 회화주의 사진 작업을 진행한 적 있다. 피사체는 식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렌즈 대신 확대경을 장착해 초근접 사진을 촬영해 작품을 구성했다. 장노출로 담아낸 이미지를 보면 식물의 수많은 세포가 만든 소우주에 진입한 기분이 들었고 거기에 매료됐다. 눈으로 식물의 향기, 소리, 촉감을 감지할 수 있는 공감각적 경험이었다. 이때부터 식물의 형태와 향기, 소리 사이의 관계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나의 멘토이자 독립 조향사 고벵 도데(Gobin-Daudé)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어깨너머로 그에게서 조향 기술을 익히는 동안 식물학, 본초학, 아로마 요법을 공부하며 수작업을 통해 원료를 향료로 만드는 것을 배웠다.

당신의 향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한다. “나를 봐!”라고 소리치는 군중 가운데 말없이 눈빛만 전달하는 느낌이다.

자극적인 향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백화점 향수 섹션을 지나는 일이 매우 싫었다. 그런 내가 조향사가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웃음). 향을 구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지휘자 없이 모든 연주자가 협동으로 완성하는 실내악 공연 말이다. 연주자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자 지휘자인 공연처럼 내가 만든 향도 모든 향료가 각자의 소리를 내길 원한다. 각 향료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특징을 추출하고, 향료만의 고유한 노트를 매몰시키는 합성향료는 지양한다. 향수만의 독특한 존재감은 향료 간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으로부터 발현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향에서 원시 자연이나 미지의 영역을 떠올린다. 일상이 창작의 영감이 될 때도 있나.

나에게 향수는 하나의 ‘페티시’이자 호신부의 의미다. 향을 입는 행위는 택시에 타기 전, 낯선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처음 가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평온을 되찾기 위한 안식처를 만드는 식이다. 향을 ‘디자인할’ 때도 동일하다. 내가 만드는 향수는 미지의 영토로 착향자를 안내하는 통로이자 그들의 일상에 두 발을 견고히 딛는 존재이길 원한다.

그렇다면 ‘포 레스트’는 어디서 어떻게 비롯됐나.

향을 구상하는 동안 다양한 살결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침의 첫 햇살과 함께 고개를 드는 숲의 냄새, 습기를 머금은 깨끗한 살결이 ‘포 레스트’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숲, 습기, 피부라는 세 가지 이미지를 아우르는 히노키를 자연스럽게 베이스 노트로 사용했다. 히노키 노트를 앰브록산(세이지 원액에서 향 분자를 분리해 만드는 향료) 같은 세련된 향취를 지닌 머스크 향료와 조합해 신비로운 분위기의 우디 머스크 계열의 베이스 노트를 완성했다.

프랑킨센스는 남성적인 향조라고 여겨왔는데, 유자와 장미 향이 어우러져서 그런지 센슈얼하다.

논픽션만의 특정 장르나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에 이끌렸다. 쉽게 경계를 짓지 않는 중도의 상태, 그로부터 발현되는 우아함과 현대적 이미지를 프랑킨센스와 워터리 노트라는 다소 모순적인 조합으로 표현했다. 물기 어린 향을 내기 위해 싱그러운 수지 향과 아로마틱 향조가 도드라지는 프랑킨센스 원액을 중심으로 했고, 나무 향과 밀랍 향처럼 깊고 묵직한 프랑킨센스 앱솔루트를 소량 넣었다. 그리고 유자의 스파클링 시트러스를 오프닝 노트로 사용해 더 신선하고 가뿐한 뉘앙스를 부여했다. 시트러스 노트와 짝을 이루며 향에 세련된 터치를 더하는 블랙페퍼의 향이 휘발되고 나면, 우디 머스크 노트와 이슬 맺힌 장미의 청초하면서도 관능적인 플로럴 노트가 피어난다. 너트메그의 섬세한 스파이시 노트와 만난 장미 향은 미네랄 향조를 더하며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당신은 ‘고요한 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포 레스트’에도 그런 고요함이 흐르는 것 같다.

나에게 ‘고요한 향’이란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 향, 단번에 모든 메시지를 내주지 않는, 그렇기에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향이다. 후각적 경험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되는 이런 향은 향수병에 담긴 원료 하나하나의 뉘앙스와 면면을 제대로 감지할 수 있게 돕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포 레스트’에서는 머스크가 그 역할을 맡았다. 머스크는 따로 분리해 맡았을 땐 매우 미미한 편이지만 다른 향료의 텍스처를 살리고, 복잡한 향의 층위를 완성하는 마법의 묘약이다.

공감각자로서 ‘포 레스트’와 어울리는 작품을 하나 추천한다면.

히로시 요시무라(Hiroshi Yoshimura)의 1982년 데뷔 앨범 <Music for Nine Post Cards>. 그중에도 음표가 공기 속을 유영하는 듯한 ‘클라우드(Clouds)’다.

요즘 같은 시대에 향을 통해 ‘쉼’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상의 움직임 가운데 도처에 존재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향으로 포착하는 일. 어쩌면 이 일은 고요한 향을 향한 나의 애정과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여백을 남기는 향과 그 여백으로 우리가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은밀한 아름다움을 소환하는 것. 그런 향이야말로 우리에게 잠시 쉬어 가는 시간, 나만을 위한 공간을 선사하는 향이 아닐까.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