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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서울’을 원하십니까?

2022.03.21

by 조소현

    ‘탈서울’을 원하십니까?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삶에서 초연해질 수 있을까. 인서울과 탈서울 사이, 각자의 초록빛 정원을 찾아서.

    ‘Night Glow Series’ 2016. 나름의 사연을 지닌 채 오늘을 살아내는 새로운 세대를 도시 풍경과 더불어 촬영하는 사진가 이강혁. 그의 카메라가 인천 청라국제도시 인근의 재개발 지역을 포착했다. 경제 논리에 따르는 도시는 일면 기묘함을 드러낸다.

    서울을 향한 갈망의 첫 기억은 한 살 터울의 오빠가 대학교 입시를 치른 후였다. 명문 대학의 분교와 특정 학과만 유명하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 사이에서 오빠는 망설임 없이 ‘인서울’을 해야겠다고 했다. 서울이 아니면 싫다고 했다. 이 선택은 훗날 오빠 앞길에 걸림돌이 됐는데 정작 당사자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직은 서울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이라는 집단에 들어가면서부터 ‘사는 곳’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됐다. 고향은 부모의 재산, 집안 환경, 즉 부와 신분을 드러냈다. 서울 부동산 시세표를 다들 머릿속에 넣고 다녔고 소위 잘사는 동네에 살면 세부적인 질문을 받았고 그저 그런 동네에 살면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집에 대해 질문하고 판단하고 재단했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지금 밟고 있는 서울 땅이 더 간절해졌다. 취직을 하고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는 등 삶의 변곡점마다 현실은 더 또렷이 보였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언제 뿌리가 뽑힐지 몰라 불안했고,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에 터를 잡았어도 언제 튕겨 나갈지 몰라 불안감에 시달렸다.

    ‘집값이 급등하고 덩달아 전셋값도 폭등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한 2030세대가 외곽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통용되는 단어 ‘탈서울’만큼 우리 세대를 비참하게 하는 말도 없다. 지난 몇 년간 경기도와 인천으로 이주한 인구만 40만이 넘는다며 쏟아지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전쟁 피란길이 떠올랐다.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화성, 김포, 시흥, 남양주, 광주 등 서울 경계에 아파트가 솟아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수백 년 뒤 역사서에 2022년 서울을 둘러싼 성곽의 정체는 아파트로 기록되리라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성곽의 값도 미친 듯이 올랐다고 적혀 있겠지만.

    어느 후배로부터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수원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미식 경험이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까지였다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도산공원 파인다이닝, 합정동 원 테이블 레스토랑까지 넓고 깊게 누리고 있었으며, 콘서트, 뮤지컬이나 연극에 대한 경험치도 높아서 인생의 시작점이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후배는 서울의 집이라는 자본이 더 큰 자본으로 증식하는 걸 20~30대 내내 목격했다. 게다가 ‘인서울’은 시간의 풍요를 의미했다. 칼퇴근을 하고 광역 버스를 견뎌 뜀박질하듯 집에 가도 저녁 8~9시. 허기진 배 속에 저녁밥을 밀어 넣을 때마다 후배는 노력과 상관없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결혼 후 전셋집에서 내몰리듯 나와 부천이라는 선택지를 택한 또 다른 친구는 ‘탈서울’은 서울에서 탈락했다는 의미 아닌가 되물었다. 서울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그리고 경기도로 이동했으니 서울에서 밀려난 건데, 앞으로 자신이 벌 수 있는 수입이 예상되는 40대로서 다시 서울로 이사 가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고단한 출퇴근의 대가로 조금 더 넓은 주거 공간을 얻었지만 쫓겨나듯 했던 선택을 과연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다시 되물었다. 한때 유행하던 ‘집방’ 프로그램 제목처럼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프로그램 제목 <Bye Seoul 여기, 살래?!>처럼 정부는 개인에게 살길을 찾으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폭발적인 집값 상승은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과 유사한 시기에 일어났고 우리는 과연 집이란 무엇인가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 소도시 한 달 살이, 워케이션이 유행처럼 번졌고, 유튜브에서는 탈서울 당한 김에 전원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영상이 빠르게 확산됐다. ‘탈서울 했더니 푸른 정원이 생겼습니다’ ‘서울 아파트 반값으로 펜트하우스 만든 사연’ ‘탈서울 후 리틀 포레스트 도전기’처럼 클릭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제목을 단 영상은 서울의 품 대신 대자연의 품에 안기라 권하고 있었다. 지역뿐 아니라 거주의 형태를 재고해보란 주문이었다. 한때 획일적이고 지루하다고 욕했던 아파트가 우릴 배신했으니까. 우린 너무 오랫동안 집에 몸을 맞춰 살았으니까.

    나는 윗집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걸음에 담기라도 한 듯 쿵쾅거리며 다닐 때마다, 경제 뉴스에서 속 뒤집어지는 부동산이나 주식 이슈가 흘러나올 때마다 탈서울 영상을 재생했다. 아치형 통창에서는 햇살이 쏟아지듯 들어왔고 테이블에는 소설책이 놓였다. 마당 텃밭에서는 루콜라와 상추, 토마토가 무럭무럭 자랐고 토마토 페이스트, 루콜라 샐러드로 변신해 식탁에 올라왔다. 삼각 지붕 다락방에서는 아이가 뒹굴며 책을 읽고 잔디밭에서는 복슬복슬 강아지가 귀를 펄럭이며 뛰어다녔다. 커피를 끓이고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의자를 만드느라 망치질을 하는 모든 소리가 백색소음이라 ASMR로 손색이 없었다.

    반면 그 삶을 들여다볼수록 또렷해지는 것도 있었다. 탈서울 해서 마당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 중 매일 아침 9시까지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직업은 없었다. 운전을 못하거나 차가 없는 경우도 없었다. 그러니까 영상은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돈은 어떻게 벌 겁니까? 마당의 잡초를 뽑을 체력이 있습니까? 하루 종일 집 안을 쓸고 닦을 시간이 있습니까? 아이에게 홈 스쿨링을 시킬 소신과 실력이 있습니까?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투자처로서는 가치가 없는 집을 선택함으로써 혹시라도 찾아올 금쪽같은 기회를 놓쳐도 배가 아프지 않겠습니까!? ‘유흥가 불빛이 창문에 번쩍이는 서울 중심가 오피스텔 VS 치킨 배달 안 되지만 밤하늘에 별 보이는 시골집’ ‘녹물 나오는 30년 된 아파트 VS 편의점까지 도보 30분 걸리는 신축 타운하우스’ 같은 밸런스 게임이 아니었다. 탈서울을 비극이 아니라 변화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부터 바로 서 있어야 했다.

    재무 컨설턴트에게 “요즘 서울에 집을 사지 못할 바에 지방의 주택으로 이사 가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던데 실감하나요?” 질문한 적이 있다. “극소수일 뿐 대다수는 여전히 서울의 집을 원해요. 누가 뭐래도 직주권이 최고인걸요. 서울에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외곽에서라도 거주의 안정을 찾는 거지, 귀촌과는 달라요. 저런 라이프스타일은 직업이 자유롭거나 아이에게 자연을 접하게 해주기 위해 불편함을 감당하기로 한 경우죠. 게다가 타운하우스라고 하지만 집 사이 간격이 좁고 주차난이 심각한 곳도 많아요. 쾌적한 곳은 강남 아파트만큼 비싸고요. 그 삶이 자신과 맞는지부터 봐야 하니 전세로 들어가기도 하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다 알면서 뭐 하러 묻냐며 덧붙였다. “20대엔 청년 정책으로 오히려 서울에 기회가 많아요. 스스로도 기회가 더 있을 거라 믿고요. 30대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해도 전보다 자금이 있고 40대엔 은퇴까지 고려하니 더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야죠.”

    내 주변에도 서울을 떠나 산자락 아래로 들어간 사람이 없으니 일부의 사례이고, 그런 선택으로 돌연 인생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 변화를 감행함으로써 심적 변화를 겪은 사람도 존재한다. “이곳에 온 후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을 위해 일하게 됐다” “서울에 있을 때는 쉬는 날에도 맛집이라도 찾아가야 안심이 됐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조급하지 않다” “서울을 벗어나니 비로소 남들과 비교를 멈추게 됐다” 같은 ‘탈서울’ 경험자의 인터뷰를 읽으며 ‘인서울’은 남들보다 잘살거나, 적어도 남들처럼 살기 위해 우리 사회가 조작해놓은 조건값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삶’을 내려놓을 수 없어 서울을 열망했다는 진실도.

    부동산이 근로소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창출해온 한국 사회에서 집을 매물이 아닌 삶의 양식으로만 바라보기는 여전히 너무 힘들다. 파리에서도 고속 전철에 시달리느니 고속 철도를 타겠다며 보르도, 리옹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고, 도쿄에서도 후쿠오카, 나가노 등으로 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도시로 발전을 이뤘지만 인류는 도시가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고민을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는 얼마 전 2022년 인테리어 트렌드로 코티지코어(Cottagecore)를 선정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MZ세대가 전원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하면서 초록 식물, 나무로 만든 가구, 시골집을 연상시키는 꽃무늬 패브릭 등을 집 안에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누군가는 서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고 누군가는 편리함과 편안함을 등가교환하며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누군가는 완전히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정권이 교체되고 또 어떤 부동산 정책이 삶을 뒤흔들지 숨죽이는 요즘,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초록빛 정원을 들인다. (VK)

    에디터
    조소현
    포토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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