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오로즈코가 서울에 선물한 조각 정원

2026.06.06

가브리엘 오로즈코가 서울에 선물한 조각 정원

현대미술가는 정원도 작품으로 만든다. 멕시코 미술가 가브리엘 오로즈코가 서울에 새로운 명소를 선물했다.

리움미술관에 자리한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을 방문한 작가. 그는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뜻하는 세한삼우에서 영감을 얻어 정원을 설계했다.

당신이 즐겨 산책하는 정원은 어디인가? 리움미술관 1층 야외 데크에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이 문을 열었다. 그간 이곳에는 알렉산더 칼더, 루이즈 부르주아, 아니쉬 카푸어의 대형 조각이 전시돼 있어 야외 조각 공원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는 아예 살아 숨 쉬는 작품으로서 정원을 선보였다. 지난 4월, 정원 공개에 맞춰 한국을 찾은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백당나무, 설유화, 찔레나무, 운남소국, 물매화 등 흰 꽃 식물이 가득한 정원입니다. 1년 내내 흰 꽃과 초록 잎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그간 수많은 드로잉을 그리고, 정원사처럼 생각해왔지요. 정원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며, 팀과 논의하기가 쉽지 않아요. 새로운 정원이지만 오랜 시간을 담은 것 같은 따뜻한 풍경을 보니 행복합니다.”

그는 그린과 화이트를 소재로 단순하면서도 통일감이 느껴지는 정원을 만들길 원했다. 너무 많은 색은 지양했기에 흰 꽃이 피는 식물을 선정했고, 보령석으로 만든 회색 바닥 타일과 어울리는 다채로운 녹색 잎이 흐드러진 정원을 만들었다. 가볍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흰색과 초록색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작가는 우리나라와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멕시코 출신이지만 정원의 주제는 ‘세한삼우(歲寒三友)’다. ‘한겨울에도 푸르른 세 친구,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를 의미하는 고사성어다. 힘든 상황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은유하기도 한다. 흰 꽃과 초록 나무 정원이 한겨울에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평안을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선택했다. “먼저 미술관 주변의 식물과 이 정원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바랐고, 한국 전통 정원에 대해 조사하면서 세한삼우를 알았어요. 소나무는 겨울에도 생존하는 힘을 보여주고, 대나무는 유연하지요. 매화나무는 그렇게 겨울에 살아남아, 일어나야 할 일을 생기게 합니다. 한남동 주거지 한가운데 놓인 정원으로서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잘 살아남아, 찾아오는 사람들의 영혼에 힘을 실어주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정원의 중심이 되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나무뿐 아니라 백당나무, 설유화, 찔레나무, 운남소국, 물매화 등의 식물은 한국에서 친근하다. 하지만 그가 거주하는 곳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질문에 가브리엘 오로즈코는 미소를 지었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유목민처럼 생활한다. 멕시코시티, 뉴욕, 도쿄, 부르고뉴 등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정해진 작업실도 없기에 직접 가꾼 집 정원에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 나이가 되어서 돌아보니 정원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더 풍요롭게 해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는 여러 나라마다 역사의 일부로 등장하며 각기 다른 상징성이 있어요. 멕시코와 뉴욕에서도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는 중요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모두와 감응하길 기대해요.”

또 하나 기대한 것은 사계절 내내 초록색이 유지되는 정원이었다. 미술관 주변의 숲에는 이미 소나무와 매화나무가 있었고, 서울의 사계절은 뉴욕이나 도쿄처럼 아주 춥거나 덥기도 하지만 초록빛을 잃지 않도록 구성했다.

리움미술관 정원 작품은 사우스 런던 갤러리의 오로즈코 정원, 멕시코 차풀테펙 국립공원(Bosque de Chapultepec)에 이어 그가 선보인 세 번째 정원 프로젝트다. 사우스 런던 갤러리 정원은 2016년에 완공했으며, 약 330㎡(100평) 정도의 아담한 크기다. 지난해 정원이 완공된 차풀테펙 국립공원은 남미에서 가장 큰 공원이자 센트럴 파크 두 배 크기인 793만3,884㎡(240만 평)의 엄청난 규모다. 주제와 규모가 완전히 다른 세 개의 정원이 그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세 개의 정원은 특정한 맥락과 스케일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관점은 비슷합니다. 그 공간과 인근 장소를 연결한 것이지요. 사우스 런던 갤러리 정원과 차풀테펙 국립공원의 정원은 모두 역사와 장소의 맥락을 연구하고 연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 리움미술관 정원도 유사하게 접근했지만 조금 더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져서 만족합니다. 1,652㎡(500평) 규모의 리움미술관 정원도 크기는 작지만 미술관 건물과 남산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정원의 규모와 인체의 비율을 고려해서 계획을 시작하는데, 미시적·거시적 측면에서 공원과 인간 몸의 관계를 감안하는 것이 조각적 실천에서 중요합니다.”

정원 프로젝트는 그에게 하나의 조각품과 마찬가지라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2016년 그가 처음 맡았던 사우스 런던 갤러리의 정원은 여전히 의아한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아 있다. 정원을 가꾸는 전통을 중요시하는 영국인들이 왜 멕시코 미술가인 자신에게 이를 의뢰했는지 그때도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농담을 했다. “왜 나에게 정원을 만들어달라고 하느냐고 물어봤죠. 하지만 결국 요청을 수락했고, 50여 종의 식물을 포함한 영구 설치 작업을 완성했지요. 계획에는 없었지만 많은 것을 배운 우연한 발견이었습니다. 나도 집에서 취미로 정원을 가꾸고 있지만 많이 알지 못했는데, 정원 연작을 통해 더 좋은 정원사가 되었죠. 건축가는 아니지만 차풀테펙 국립공원 프로젝트에서 보행자가 지나다닐 수 있는 칼사다 플로탄테(Calzada Flotante) 다리까지 짓다 보니 예상치 못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을 준비 중인 현장. 작가는 이 작품이 사람들의 영혼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가브리엘 오로즈코.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남승록

리움미술관 정원을 포함해 10년간 지속해온 정원 조각 프로젝트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고, 그의 작품 세계뿐 아니라 미술 애호가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념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각은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집 거실에서 볼 수 있다고 대부분 생각하는데, 정원이 된 조각 위를 관람객이 직접 거닐 수 있다는 발상은 얼마나 신기한 경험인가!

이곳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을 걸어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동그란 맨홀이 있다. 당연히 배수를 위한 맨홀 같았지만, 이는 그의 작은 유머다. 진짜 맨홀이 아니라 레플리카이며, 얼굴의 작은 매력 점처럼 눈에 띄는 장치다. 정원에 정체성과 미소를 안겨주는 중요한 조각적 터치다. “차플테펙 국립공원은 규모가 큰 만큼 이런 조각적 터치가 많아요. 사우스 런던 갤러리 정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받았던 현장이라서 그곳의 오래된 벽돌로 벤치를 만들고, 부서진 벽돌을 중앙에 쌓기도 했죠. 중요한 것은 이렇게 역사적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는 디테일입니다. 리움미술관 정원은 식물이 매일매일 성장하고, 아무도 맨홀 뚜껑 같은 것은 눈여겨보지 않겠지만 미술가인 내게는 중요합니다. 관람객도 새로운 관점으로 이를 눈여겨보시길 바라고요.”

그의 작품 세계는 ‘원의 배열’ 모티브에 기반해왔다. 동그라미가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였고, 리움미술관 정원 조각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리움미술관 정원은 큰 동그라미 10개로 연결되어 있고, 맨홀은 SF 영화 속에 나오는 우주선 같은 원형의 궤도를 그린다. 정원의 모든 것은 유동적 상태로 궤도를 지나며 무한 회귀를 하는 움직임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맨홀은 정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식물을 비롯해 자연이 작품 세계를 관통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지요. 나는 다른 유명 미술가처럼 작품을 만드는 대형 공장도 없고 조수도 없어요. 난 산업화된 작가와 같이 축적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같이 홀로 작업합니다. 유기적 아이디어 발현에 관심이 있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우연에 접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는 정원 연작에 대해 식물처럼 생각하고 식물처럼 숨 쉬어본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수년간 지속하면서 <식물도감(Diarios des Plantas)>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의 개인 정원의 식물을 프린트하고 그 위에 드로잉을 한 시리즈다. 이 작업은 화이트 큐브 서울뿐 아니라 세계 여러 갤러리에서 전시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드로잉은 과정 중심의 작업이지요. 정원 가꾸기와 비슷합니다. 정원 가꾸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해야 하는 것처럼, 예술을 바라보는 것에도 유기적 관점이 중요합니다. 정원을 자라게 하려면 나무에 물을 줘야 하듯이, 작가는 예술 안에서 창조성을 지속적으로 가꿔야 하지요.”

정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숙해지는 존재다. 좋은 예술품과 와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이 정원이 우리에게 신선한 영감과 에너지를 전해주길 기대한다. 오늘과 5년 후는 다르고, 이는 예술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작품보다 사람이 더 빨리 변하기에, 예술은 많은 유지 보수가 필요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변하기 때문에, 가벼운 예술품은 시간이 지나면 의미를 잃는다.

아마도 많은 이가 짐작하듯, 이 정원의 탄생은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개인전을 리움미술관에서 조만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두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과정을 즐길 수 있지요. 예술과 정원 가꾸기, 노래와 요리를 통해 만드는 자체를 즐길 수 있어요. 예측 불가능한 것이 과정에 있음을 이해하면,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정적으로 고정된 작업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로 스스로 변화하며 작업에 임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의 한국 미술관 첫 개인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VL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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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디렉터
    김나랑
    이소영(미술 전문 저널리스트)
    사진
    김형상
    COURTESY OF
    LEEUM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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