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떠난 프리다 지아니니의 새 무대, 로마 레스토랑 빅시오
구찌에서 9년 동안 열정을 불사르고 여전히 패션계의 사랑을 받는 프리다 지아니니가 레스토랑 빅시오를 열었다. 4대에 걸쳐 로마에 살아온 가족들에게 위안을 준 비스트로와 바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9년 동안 구찌에서 열정을 불사른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는 현재 요식업에 뛰어들어 외식 사업가로 변신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사업 목적이 아니에요. 4대에 걸쳐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 된 것이 바(Bar)였어요. 그 전통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게 목적이었죠”라고 말한다. 로마 몬테베르데(Monteverde)에 위치한 ‘빅시오(Bixio)’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수의 VIP를 비롯해 로마 현지인과 외국인을 모두 맞이할 단장을 마쳤다. “이곳에 오시면 우리 매장에서 직접 구운 참벨로네(Ciambellone, 도넛 모양의 아침 식사용 이탈리아 케이크)를 맛보실 수 있어요.”

프리다 지아니니는 일간지 1면에서 접한 금발 미녀의 이미지와 달리 중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흥분을 감출 수가 없어요.” 10년 가까이 구찌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했던 그녀는 지난해 11월 로마 몬테베르데 베키오(Monteverde Vecchio) 중심부에 오픈한 레스토랑 빅시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묻는 내 전화에 열정적으로 응대했다.
빅시오는 로마 통일 운동의 애국자 중 한 명인 니노 빅시오(Nino Bixio)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1935년부터 파우스티니(Faustini) 가문이 대를 이어 운영해온 지역 주민들의 ‘파우스티니 바’가 있던 자리다. 현재 이곳은 켜켜이 쌓인 추억과 이야기가 프리다의 삶, 주민들의 삶과 함께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제 프리다의 빅시오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어보자.
‘프리다’라는 이름이 참 아름다워요. 어떻게 지은 이름일까요?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문화 예술에 열정이 남다른 미술학도셨죠. 프리다 칼로의 팬이라 제 이름을 프리다라고 지으셨어요. 반면에 아버지는 가수 프레드 봉구스토(Fred Bongusto)를 좋아하셨는데, 그의 노래 ‘바닷가 로터리(Una Rotonda Sul Mare)’가 크게 히트할 때 제가 태어나서 우리 사이에 남다른 상징성이 있다고 여기셨죠.
구찌를 떠나 하루 종일 운영되는 카페 비스트로를 열어 모두를 놀라게 했어요. 옛 아지트 분위기를 보존하고 싶었다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지키고 싶었나요?
입구의 바 자리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정취요. 우리가 직접 만든 참벨로네 외에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멜팅 포트 같은 동네 특성에 맞춰 카페 아메리카노도 준비했어요. 실제로 몬테베르데는 스웨덴 연구소(Swedish Institute), 노르웨이 아카데미(Norwegian Academy), 아메리칸 스쿨(American School) 등이 있는 다문화 지역으로 예술가와 배우, 뮤지션이 어우러져 살고 있죠. 사실 이곳에 가게를 오픈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런데 이 자리에 그저 그런 아시아 음식점이나 네일 숍이 들어오는 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이곳을 인수해 저와 주민들을 위한 추억의 장소로 만들었죠.


리모델링 기간 동안 난니 모레티(Nanni Moretti) 감독이 오픈 일정을 알기 위해 자주 들렀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정말 그랬어요. 언제 오픈하는지 확인하러 계속 찾아오셨죠. 이곳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 많은 유명 인사가 사랑하는 동네예요. 로코 파팔레오(Rocco Papaleo), 엠마(Emma), 파올라 코르텔레시(Paola Cortellesi)도 근처에 살고 있어 이곳에서 만날 수 있죠. 베니니(Benigni)는 가까운 곳에 살지는 않지만 자주 방문하고요. 파솔리니(Pasolini)는 옛 파우스티니 바의 안뜰로 카드놀이를 하러 오곤 했대요. 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아서 매일 들렀고요. 전 주인 알베르토(Alberto)는 배우 알베르토 소르디(Alberto Sordi)처럼 재치 넘쳐서 우리가 ‘알베르토네(Albertone)’라는 애칭으로 불렀는데, 그의 어머니가 제가 이곳을 인수하길 진심으로 바라셨죠.
옛 파우스티니 바에 얽힌 또 다른 추억이 있나요?
조이스틱으로 하는 레이싱 게임을 몇 시간씩 했어요. 열두세 살쯤이었을 거예요. 고학년이었는데, 아이처럼 주인아저씨에게 용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고요. 그럴 때면 어머니가 제 뺨을 얼마나 많이 때렸는지 몰라요.
당신이 요리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요?
당연히 요리를 하죠! 전 세계를 돌며 살았지만 어떤 집이든 주방을 가장 먼저 리모델링했어요. 제게 요리는 일상이라 화구 2개와 넓은 공간이 필수예요. 어머니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외부 활동이 잦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직접 집밥을 해 먹거나 빵이나 크래커를 먹곤 했죠. 그게 호기심으로 이어졌어요. ‘뭘 해 먹어야지’ 하는 정해진 계획 없이, 레시피 북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즉흥적인 창작 요리를 즐깁니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뭔가요?
단연 봉골레 스파게티예요. <파이낸셜 타임스>에도 소개된 적 있죠. 사바우디아(Sabaudia)에 있는 집으로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대접했는데, 입에 맞았나 봐요. 제 요리를 맛보고는 “이 근처를 지난다면 셰프 프리다의 집에 꼭 들러보라. 미쉐린 1스타급 요리를 맛본 기분이었다”고 기사를 썼더군요.
친구나 가족들을 위해서도 자주 요리하나요?
그럼요. 친구들은 물론 제 딸을 위해서도요. 가사 도우미가 있지만 요리만큼은 매일 손수 하려고 해요. 제철 식재료를 중시해 트러플 시즌엔 직접 구하러 가고, 무청 수확 철엔 풀리아에서 공수하죠.
빅시오의 인테리어 가구도 직접 고른 건가요?
네, 인테리어 디자인 큐레이팅부터 디테일까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꼼꼼히 챙겼어요. 패션계에서 일할 때도 인테리어 분야에 관심이 많아 즐겁게 작업하곤 했죠. 제 집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애장품도 몇 점 갖다놓았어요. 베니니가 디자인한 무라노산 유리등, 카운터의 코르텐강 금속 표면을 은은히 비추는 비아비추노(Viabizzuno)의 원통형 조명, 포르나세티(Fornasetti) 거울 등이 모두 우리 집에 있던 것들이죠. 화장실은 세이지 그린부터 포레스트 그린까지 다양한 그린 계열 색상을 선택하고 어머니 댁에 있던 18세기 판화 두 점으로 장식했는데, 고대 로마 황후인 리비아와 폼페이우스 장군을 묘사한 것이죠. 빌라 아우렐리아와 아쿠아 파올라 분수 등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를 묘사한 아주 멋진 판화로 장식했어요. 여기에 1960년대의 오리지널 스칸디나비아 테이블과 1950년대 카를로 라티(Carlo Ratti)의 룰리(Lulli) 의자를 배치했어요. 카운터 주변에 놓은 이 가구는 소파, 원형 대리석 커피 테이블, 그린 색상에 금색 포인트가 곳곳에 더해진 벽지가 인상적인 라운지 공간과 조화를 이루게 했습니다.


왜 로마에 열었나요?
이 도시와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로마는 정말이지 우리를 속물로 만드는 도시예요! 특히 로마의 특정 지역, 즉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아보면 정말 눈만 높아져요. 저는 런던 노팅힐과 공원이 있는 피렌체의 고급 주택, 1930년대에 지은 밀라노의 아름다운 저택에서도 살아봤지만 저의 ‘집’은 언제나 로마였어요. 로마로 돌아와 자니콜로 언덕에서 모든 것을 감싸는 핑크빛 햇살을 마주할 때면 늘 매료되죠. 여전히 평온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그렇게 저는 이처럼 특별한 동네를 원했죠. 로마는 낭만적인 퇴폐미와 끊임없는 새로움이 공존하는 특별한 곳이에요.
이 동네에 오픈하면서 뭘 기대했나요?
몬테베르데 주민들뿐 아니라 외부인도 많이 찾아주셨으면 했어요. 그리고 이 동네가 그 역사적인 옛 바의 따뜻한 분위기를 되찾는 것이 목표죠. 주방은 셰프 다리오 폼페이(Dario Pompei)에게 맡겼어요. 단순한 바질 토마토 스파게티조차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앞으로 이 지역에서 추진하고 싶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나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향후에 많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북 프레젠테이션을 열어도 좋겠죠. 지금은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원 외벽의 벽화 작업에 참여할 아티스트를 섭외하고 싶어요. 지역 주민들의 평온함을 존중하면서도 이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을 다양한 이벤트를 열 거예요.
열정이 넘치는군요. 몇 달 전 런던 리버티 백화점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는 독점 한정판 컬렉션 ‘리버티 런던(Liberty London)’으로 공백기를 깨고 패션계에 복귀했어요. 리촐리(Rizzoli) 출판사에서 도서도 출간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 중이죠.
‘리버티 런던’ 프로젝트는 제게도 놀라운 도전이었어요. 힘든 시기일수록 과감한 도전이 필요했죠. 책 <A Journey into the Style and Music of My Icons Since 1969 – The Year of the Big Bang>은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며 얻은 시간을 활용하고, 제 아카데미아(Accademia) 졸업 논문을 확장시킨 결과물이고요.
동네 비스트로를 또 열어보는 건 어때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말아요!(웃음) 지금 이곳에 모든 힘을 쏟고 있거든요. 이 일을 시작한 건 사업적 목적보다는 4대를 이어온 전통, 다른 시대를 살아온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 된 바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지금은 이곳에 집중하고 싶은데, 앞으로 계획은 또 모를 일이죠.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요? VL
최신기사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Maria Grazia Filippi
- 사진
- Courtesy of Bixio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