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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지는 밤’ 이지러지지 않는, 영혼 같은 여운

2022.09.23

by 민용준

    ‘달이 지는 밤’ 이지러지지 않는, 영혼 같은 여운

    실존과 부재의 경계에서 새어 나온 슬픔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달이 지는 밤> 포스터

    뜨고 지는 해에 대한 감각은 대체로 명확하다. 하지만 달은 어둠 속에서 떠올라야 비로소 인지되는 존재다. 떠오르는지도 모르게 떠 있고 지는지도 모르게 진다. 늘 거기 있지만 거기 있다는 것을 응시해야만 또렷해지는 감각이다. 빛이 드리우는 자리는 명실하지만 어둠이 드리운 자리는 늘 망실한다.

    애초에 떠오르지도 못한 것처럼 저물어버린 기억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 잊어버린 것을 애써 품은 기억이란 쓸쓸하고 아련할 수밖에 없음에도 끝내 절실하고 숭고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제의처럼 다가온다. 이미 끝났다고 여겨지는 생과 연의 뿌리에서 돋아날 새로운 숨을 기원하게 만든다.

    무주산골영화제의 장편영화 제작 지원 사업 ‘무주시네마프로젝트’의 첫 영화 <달이 지는 밤>은 무주를 배경으로 촬영한 30여 분 분량의 단편영화 두 편을 모은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다. 파트 1에 해당하는 첫 번째 작품 <방울소리>는 김종관 감독이, 파트 2에 해당하는 두 번째 작품 <달이 지는 밤>은 장건재 감독이 연출했다.

    두 작품은 서로 온도도, 기질도 달라 보이지만 끝내 가리키고 바라보는 곳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묘연처럼 엮여 있다. 아무래도 그건 무주라는 공간에서 비롯된 발상을 토대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 어둠이 채 달아나지 못한 새벽녘의 길거리를 바라보며 시작되는 <방울소리>는 곧 모두가 내리는 버스에서 뒤늦게 깨어난 여자를 응시한다. 전북 무진장 터미널에서 멈춘 버스에서 내린 여자는 뭔가 가득 담긴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걷기 시작한다.

    그 주변으로 적막한 자연, 한산한 도시 풍경과 사정이 거듭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깊은 산자락까지 다다르자 서서히 기울어가는 해와 함께 나무에 걸린 방울이 파르르 몸을 떤다. 그걸 바라보던 여자는 산에 묻힌 무언가를 파서 꺼내 안고 내려온 뒤 폐가나 다름없는 빈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짙게 내린 어둠 사이로 푸른 동이 틀 때쯤 몸을 일으켜 초에 불을 붙이고 계획을 실행한다.

    <달이 지는 밤>은 팔을 베개 삼아 테이블에 엎드려 죽은 듯 잠을 자는 남자를 지켜보며 시작된다. 그 뒤로 거듭 고개를 돌리는 선풍기가 되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찬찬히 시선을 돌리는 카메라 너머를 살펴보니 치킨을 파는 호프집 같다. 그리고 찬찬히 고개를 돌리듯 이동하는 시선 끝에 한 여자의 존재가 드러나고, 곧 다른 여자가 가게로 들어선다.

    그렇게 오랜만에 고향에서 재회한 두 친구의 대화는 먼 이국에 있다는 다른 친구의 소식까지 뻗어가지만, 곧 당장의 고민으로 돌아온다. 대화를 들어보니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친구는 거듭 떨어지는 시험과 함께 낙심하고 체념한 것 같다. 이를 위로하고 격려하던 친구는 자기 집으로 친구를 데려가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도중 귀신처럼 사라진 친구를 찾아 적막한 밤거리를 헤맨다.

    <방울소리>와 <달이 지는 밤>은 무주에서 촬영했지만 무주를 호명하지 않는다. 영화상 등장하는 지역은 분명 무주에서 촬영했으니 무주일 수밖에 없겠지만, 영화는 무주를 대변하거나 규정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에서 무주는 그저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그럼으로써 무주라는 터는 두 감독이 이야기를 길어 올린 원천으로 흐르는 동시에 감독 스스로가 빚어낸 이야기를 구현하는 무대로 자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 속 무주의 풍경은 원형이기도 하고 조형이기도 한, 현실의 영역이자 허구의 무대이기도 한 중의적 세계다. 분명 실존하는 세계지만 실재하지 않는 영화적 상상을 대행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진짜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끝내 가짜이기도 한, 기묘한 경계의 접점으로 제시되는 영화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두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은유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기도 하다. <밤을 걷다>, <아무도 없는 곳>처럼, 근래 들어 삶과 죽음을 소재로 삼은 영화를 더러 만들어온 김종관 감독은 <방울소리>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고, 과거에 본 어떤 풍경을 빌려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적용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런 아이디어는 장건재 감독의 <달이 지는 밤>을 구상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없는 사람을 추모하는 느낌’을 모티브로 ‘숨겨진 사연과 감정이 드러날 수 있는’ 인물들의 대사를 바탕에 둔 이야기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방인이 마주한 고유의 지역성을 독특한 리얼리티와 판타지 무대로 활용한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통해 일찍이 증명한 작법의 재능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은근한 페이소스가 극의 흐름과 함께 점차 스산하고 애잔하게 짙어지는 가운데 한기처럼 스며드는 환상성이 뜻밖의 장르적 형태로 구현되는 <방울소리>와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 사이로 축적되는 내러티브의 끝에서 초현실적인 풍경과 정서가 고개를 들고 걸어 나오는 <달이 지는 밤>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구현한 상상이 끝내 비슷한 정서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옴니버스다.

    이는 무주라는 공간성을 통해 환기된 정서이기도 하겠지만, 김종관과 장건재라는 두 창작자의 심연이 잘 조응한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작품을 나열한 <달이 지는 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옴니버스 영화 같기도 하다. 각기 다른 화술로 하나의 소재를 통해 추출한 두 개의 심상은 유사한 시선으로 맞닿는다.

    <달이 지는 밤>이 무주라는 지역 자체를 주 배경으로 삼은 옴니버스 기획이라는 사실은 두 영화를 잇는 접점의 소재를 더욱 유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두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낙후된 지방 도시의 현실을 환기한다. 한산한 풍경을 통해 지역의 사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읽히기도 하지만, 두 감독이 관찰하고 발견한 모티브를 통해 조형된 캐릭터와 구축된 서사를 통해 은유적인 제의로 승화된 인상이기도 하다.

    남루하고 허전한 지역의 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 안에 자리한 생은 그리 단순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을 것이다. 저간의 사연을 상상하고 연상해 다다라 구체화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신묘하고 비범하다. <달이 지는 밤>은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는 저편의 사정을 창작적 원료로 삼아 재현한 재생의 영화다.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만드는 감독들의 창작력을 살아 숨 쉬는 실감으로 끌어올린 배우들의 열연과 호연 또한 <달이 지는 밤>에 깃든 묘미일 것이다. <방울소리>에서 배우 김금순의 압도적인 열연은 극적인 분위기를 온전히 장악하는 기반이 된다. 이에 배우 안소희는 괴이한 신비를 끌어내고 고요한 박력을 선사하는 연출의 묘에 어울리는 이미지 자체로 온전히 투사된다.

    연출과 연기가 신묘하게 어우러진 형식은 형형하고도 허허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여운으로 가닿는다. <달이 지는 밤>에서 배우 강진아와 곽민규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 연기를 능숙하게 소화하며 현실성을 안배함으로써 역설적인 긴장과 신비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한다. 배우의 연기 자체가 극적인 의도를 온전히 떠받드는 액션의 예시로서 탁월하다.

    <달이 지는 밤>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존재를 떠올리듯 무주라는 지역성을 환기하는 영화다. 그것은 비단 해당 지역의 사정이 그러하다는 것을 대변하고자 마련된 사연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낯선 지역성을 기반으로 일으킨 예술적 영감을 목도하는 흥미와 없던 숨을 불어넣듯 이야기를 재현하는 영토로서 한 지역을 무대로 활용하는 영화적 재생을 관람하는 묘미를 제시하고자 마련된 프로젝트 같다.

    이는 지역이라는 테마를 제시할 뿐 창작적 동력을 훼손하지 않고 영화적 개성 자체를 배려한 무주산골영화제의 지향점이 반영된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창작 예술이 이룰 수 있고, 닿을 수 있는 고유의 결과를 신뢰함으로써 각기 온전한 두 세계가 한 줄기를 이루듯 어우러진 기연의 영화를 목도하는 반가움과 즐거움이 <달이 지는 밤>이라는 제목 아래 나란히 찾아왔다.

    그 반가움과 즐거움 끝에서 선명한 부재와 검질긴 상실 사이에서 명멸하는 생과 연을 향한 기원이 단정하게 깃드는 것만 같다. 사라진 것들을 부르고 마주하는 시간을 떠올리게 되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맑은 영처럼 따라 나오는, 이지러지지 않는 여운의 영화다. 좀처럼 지지 않을 것이다.

    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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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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