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의 1로 축소한 인형으로 한복의 원형을 알려온 인형 연구가이자 우리 옷 연구가 허영. “한복의 아름다움은 신비에 가깝다”고 전한 그의 말대로 한복에는 시대를 초월한 절대미가 있다. 한국 전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표현해온 사진가 구본창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가 한복 인형에 단아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2000년 타계한 허영은 ‘가장 한국적인 한복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생활 한복이 유행할 때도 전통 한복의 원형을 살리고 역사를 보존하는 데 앞장섰다.
1980년대 중반 한복을 입히는 마네킹이 서구형 얼굴뿐인 현실이 안타까워 한국인의 모습을 한 인형을 만들며 인형 연구가로도 활동했다. 평생 전통 한복에 천착하며
문헌, 벽화, 탱화, 민화, 출토품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고대 의상을 재현했다. 그가 남긴 한복과 한복 인형은 한복의 영속성을 전한다.
‘귀부인’, 1992, 한산모시... 1993년 <일간스포츠>와 인터뷰 중 허영은 “우리 옛 선조들의옷에 나타난 멋스러움은 볼수록 감탄스러워요.예술적 감성이 곰삭아 배어나는 맛으로 양복과는 전혀 개념이 달라요.옷이 살아 있다는 걸 자꾸만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기녀’, 1996, 모본단... 기녀는 당시 최고의 패션 리더였다. 수자직(繻子織)으로 직조한 비단인모본단의 광채와 선명한 색상이 당당함을 더한다.
색상 대비가 인상적인 꽃신이 단풍과 함께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귀부인’, 1992, 한산모시... 허영의 한복 사랑은 유명했다. 상고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5000년 우리 민족의 의복을 망라한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귀부인’, 1989, 한산모시... 가체 머리는 조선 시대에 성행했다. 허영은 머리카락을 일일이 심을 정도로세심하게 인형을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검무’, 1984, 명주... 검무는 무예를 겨루듯 칼을 휘두르며 추는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춤이다. 나부끼는 옷자락에서 회전하는 춤사위가 느껴지는 듯하다.
허영은 사람을 위한 한복을 짓듯 인형의 한복을
만들었다. 도토리, 쑥, 치자, 양파 껍질 등 자연 재료로
물들인 치마가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귀부인’, 1992, 한산모시... 삼베에 비해 결이 고운 모시는 여름에 주로 입었는데, 그저 흰색에는 담을 수 없는 천연스러움이 있다.
‘귀부인’, 1995, 한산모시... 허영의 한복 인형은 단순히 한복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세심한 묘사를 통해 당시 생활 방식과 풍취까지 상상하게 한다.
‘귀부인’, 1992, 한산모시... 조상들은 부채를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았다.얼굴이나 신분을 가리기 위해서도, 글이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부채의 우아한 곡선미와 단아한 멋이 한복과 닮았다.
‘귀부인’, 1997, 관사... 허영은 삼국 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과 왕비를 비롯해 시녀, 귀족, 평민 등 다양한 계층의 한복을 선보였다. 화려한 노리개에서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
‘귀부인’, 1989, 한산모시... 한복은 평면 재단이지만 입은 모양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인다. 움직임에 따라 유연해지는 한복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
허영은 의상뿐 아니라 장신구, 머리 모양 등에도 집중했다. 비녀 하나에도 옥, 금, 나무 등 다양한 소재를 세심하게 사용했다.
‘활옷’, 1991, 손수, 모본단... 조선 중기와 후기 여자의 혼례복인 활옷. ‘百福之源(백복지원), 二性之合(이성지합)’이라고 수놓인 활옷에서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읽힌다. 모란꽃, 연꽃, 물결, 불로초, 어미 봉, 새끼 봉, 호랑나비 등이 화려하다.
살풀이’, 1986, 실크... 살풀이춤은 흰 치마저고리에 쪽을 찌고, 흰 수건을 들고 춘다. 춤을 추는 표정과 손매, 움직임까지 더없이 정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