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우울증 치료를 위한 환각 버섯?

2022.12.21

by 송가혜

    우울증 치료를 위한 환각 버섯?

    신비롭지만 타협의 여지조차 없는 금기의 식물. 환각 버섯이 우울증 치료의 새로운 이슈다.

    마약은 금물(Just Say No)!’ 1980~1990년대 미국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표어였다. 전반적인 마약류는 예외 없이 ‘나쁜 것’으로 치부되는 터부였다. 영부인 낸시 레이건과 레슬링 선수 출신 영화배우 미스터 티(Mr. T)가 이끌던 마약 반대 순회 투어도 있었고, 마이클 조던이나 피위 허먼(Pee-wee Herman)이 출연한 마약 관련 공익광고가 아침 만화영화 중간에 송출됐다. 늦은 밤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시트콤 스타들이 마약 복용 후 유리창을 뛰어넘어 도망가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라 부를 수 없다는 한반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마약류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하고 일상생활에서 뿌리 뽑기 위해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등 상품명에 ‘마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상표 마케팅을 규제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공포 전술로 우리의 문화 의식엔 ‘마약=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유해한 것’이라는 관념이 뿌리박혀 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다. 그런데 최근 중증 우울증 치료제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마약 성분이 있다. 뉴스에서나 들어볼 법한 당황스러운 그 이름, 바로 환각 버섯이다.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이 정신과 치료제가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불안과 우울을 낮추는 용도로 활용되는 의료용 대마, 칸나비디올(CBD)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의료계에서 꽤 급진적 연구가 이뤄지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하여 실로시빈(Psilocybin). 버섯에서 발견되는 향정신성 화합물로 체내에 흡수되면 환각 작용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법률로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치료제의 기능성 측면에서 이 실로시빈과 관련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로시빈이 심각한 우울증, 알코올 중독에 항우울제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몇몇 허가된 국가에서 그 치료는 현재 진행 중이다.

    환각 버섯을 소지하는 것은 당연히 금물. 다만 미국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는 버섯에서 추출한 ‘치료용’ 실로시빈을 합법화했고, 적지 않은 도시가 그 과정을 밟고 있다. 암스테르담에선 이 실로시빈을 활용하는 특별한 클리닉, 필드 트립 헬스(Field Trip Health)가 존재한다. 이곳에서 진료와 치료를 직접 체험한 <보그 브리티시>의 필자 알렉산드라 마샬(Alexandra Marshall)의 후일담은 꽤나 흥미롭다. 숙련된 상담사와 간호사를 옆에 두고, 실로시빈 극소량을 복용한 그녀는 소파에 두 눈을 감고 누워 헤드셋으로 흘러나오는 잔잔한 기악곡을 들으며 상담한 내용을 매우 감동적인 여정으로 기억했다. 무엇보다 이런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기능보다 더 나아가, 클리닉에서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핵심은 바로 뇌를 ‘젊게’ 해준다는 점이다. ‘젊은 두뇌’가 대체 뭐냐고? 쉽게 말해 뇌가 덜 지치고, 더 나은 회복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로시빈의 즉각적 효과가 감소하고 나면 나이 혹은 트라우마로 인해 경직된 신경 회로에서 사고가 벗어나도록 도움을 준다는 사실. 클리닉에서 한 번의 투여 이후 주로 6개월에서 1년 사이 신경세포가 가장 유연한 상태에 이르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갱년기 불안과 강박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만큼 개개인에 대한 철저한 상담과 장기적인 치료 세션이 동반되는 것은 물론이다.

    “실로시빈의 1회 복용만으로 심각한 불안감의 지속적 변화가 유발될 수 있다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바버라 박사가 말했다. 존스홉킨스대는 지난 2월 실로시빈 치료를 통해 심각한 우울증에 최대 1년까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고, 지난해 환각 관련 연구 및 치료 센터를 개관한 텍사스대 오스틴 델 의과대학은 현재 실로시빈을 사용해 불안감,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관한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워싱턴대 의과대학에서도 종양학 전문의 앤서니 백(Anthony Back) 박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발된 우울감과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의료진을 위해 실로시빈을 사용한 심리 치료를 연구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까지 꽤 전도유망한 결과가 나왔다. “굉장히 극적 순간을 목격했고, 실로시빈이 사람들에게 ‘리셋’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걸 알아냈죠.” 앤서니 백 박사가 말했다.

    지금까지의 연구가 초점을 맞춘 대표적 질환은 바로 우울증이다. FDA는 이 물질을 우울증의 ‘획기적 치료제’로 지정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큽니다. 이제 결정적 증거와 안전성까지 충분히 확보됐기에, 일반 우울증과 치료 저항성 우울증에 대한 실로시빈의 보조 요법이 효과 측면에서 잠재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료된다는 거죠.” 환각제 활용 치료에 중점을 둔 클리닉과 실험실을 겸하는 정신 건강 관리 기업 누미너스(Numinus)의 의료 및 치료 서비스 책임자 데본 크리스티(Devon Christie)가 설명했다. 그다음으로 결정적 증거가 많이 확보된 질병은 불안증이다. 특히 극도의 고통이 따르고 불치 진단을 받은 불안증에 대한 효과가 입증되었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이 연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의사들은 실로시빈이 광범위한 정신 건강 문제, 특히 반복되는 부정적 사고가 일으키는 특징적 문제를 치료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실로시빈을 해당 개별 성분으로 보기보단, 크게 환각제의 의료적 활용의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현재 발표되는 연구의 추세나 일부 선진국의 관련 규제 완화를 보면, 향후 실로시빈 등의 환각제가 일부 상태에 한해 기존 정신과 약물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죠.” 동의대 한방신경정신과 권찬영 교수도 동조하는 의견을 내비쳤다.

    여기서 핵심은 치료용 실로시빈은 쾌락용 실로시빈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의료용 대마에 적용되는 ‘마이크로도싱(Microdosing, 최소 용량으로 여러 번 복용하는 것)’의 개념과도 다르다. “오늘날 복용량에 관한 엄격한 프로토콜, 준비 작업, 전문 치료사와의 통합된 데이터가 기반이 된 실로시빈 사용을 통해 최고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바버라 박사가 말했다. 정신 요법 프로토콜에 따라, 실로시빈은 관리 감독이 가능한 조건이나 임상 환경에서 종종 25mg 정도가 1회 복용량으로 제공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창의적 사고가 고조되고,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나죠.” 특정 세로토닌 수용체에 영향을 미치는 실로시빈의 작용을 앤서니 백 박사는 ‘뇌의 리부팅’과 동일시한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 뇌의 부분들을 더 유연하게 연결하는 거죠.”

    결론적으로 우울증 치료에서 실로시빈의 강점은 무엇보다 효과가 즉각적이라는 것이다. 항우울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것과 달리 단회 투여에서도 지속적 효과를 보여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항우울제로 유의미한 항우울 효과를 얻지 못했거나 치료에 실패한,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대한 제2요법으로서 가능성이 있죠. 생각보다 이 케이스의 환자 비율이 상당한 편이니까. 그러나 사실상 아직까지 엄격한 규제로 국내에서는 연구조차 침체된 것이 현실이다. 실현되기 위해선 대중의 인식, 의료인 및 환자의 연구, 마약성 물질에 대한 법적 규제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뇌전증 등 뇌 질환 치료제로 활용되는 대마 성분 의약품의 제조와 수입이 허용된 데 이어, CBD를 다량 함유하는 헴프(Hemp)를 마약류에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사례를 본다면 불투명한 이야기도 아니다. 우울증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기존 치료제에 대한 한계점은 계속 제기되기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는 향후 2년 내 실로시빈 치료법의 완전한 승인을 고려하고 있다.

    팬데믹은 정신 건강을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더 첨예하게 초점을 맞추도록 우리를 진화시켰다. 정신 건강 관리 기업 누미너스의 데본 크리스티는 “우리에겐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집단적 인식도 있죠”라고 말한다. 해결책을 향한 절박함과 안도감을 향한 갈망이 과연 금단의 영역을 넘어설 수 있을까? 새로운 에이스 또는 금기의 독버섯. 현재 실로시빈이 그 갈래에서 자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VK)

    에디터
    송가혜
    FIORELLA VALDESOLO
    사진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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