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서울에서 펼쳐지는 마르지엘라의 우주

2022.12.16

by 김나랑

    서울에서 펼쳐지는 마르지엘라의 우주

    그의 ‘아트’가 서울에 온다. 진짜다.

    ‘Martin Margiela at M WOODS’, Installation View, 2022, M WOODS Hutong, Beijing. Photo by Zhao Yihan, Tian Yu. ©MWOODS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패션 매체의 관심으로부터 피해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9월 파리의 어느 갤러리 책자에 마르탱 마르지엘라라는 아티스트 이름이 게재됐다. 2021년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Lafayette Anticipations)’에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전시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 디자이너의 창작품은 예술과 많이 관련됐지만, 그의 실제 예술 표현 방식은 전혀 알려진 바 없다.” 당시 나는 몹시 설렜다.

    10년 넘게 패션계를 떠난 디자이너에게 이 전시회는 모든 사람이 품은 의문인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어디에 있지?’에 대한 답이 됐다. 그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를 1988년 설립했고, 2002년 디젤의 렌초 로소(Renzo Rosso)의 투자를 받았고, 2009년 은퇴하면서 떠났다. 그 후 벨기에 출신의 이 패션 영웅은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혁명적인 경력을 쌓던 20여 년간 한 번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부재는 그의 신화를 더 신비롭게 했다.

    60대인 그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파리를 걷는 그를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청바지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마르탱’이라는 남자를 소개받았고, 나중에 디자이너 마르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예술계에서도 조심스레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가 큐레이터, 아티스트들과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패션계 출신의 이 예술가가 이야기를 전개할 때 10대 소녀 팬 같은 보디랭귀지를 사용하는 바람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를 컨설팅하는지 그에 대한 추측도 끊이지 않았다.

    2017년 드디어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활동의 징후를 보였다. 앤트워프의 모무 패션 박물관(MoMu Fashion Museum)에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며 발표한 에르메스 컬렉션의 전시회가 열렸을 때, 그는 그 도시에서 열린 에르메스 언론 행사를 위해 큐레이터 올리비에 사야르(Olivier Saillard)와 협업했다. 이 행사에서는 상당수의 오리지널 디자인이 특색을 이뤘다. 1년 후인 2018년에는 사야르가 승인과 자문을 맡아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관장으로 일한 팔레 갈리에라(Palais Galliera)에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작품을 위한 회고전을 개최했다. 두 전시회 모두 서적으로 발간됐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의견이나 생각은 전혀 실리지 않았다. 팩스나 제삼자를 통해 인터뷰하기로 유명한 이 디자이너가 서적에 의견을 싣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영화감독 라이너 홀제메르(Reiner Holzemer)가 다큐멘터리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In His Own Words)>를 개봉한 것이다. 그는 2017년에 마르탱의 동료이자 앤트워프 출신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드리스(Dries)>를 제작하기도 했다. 사상 처음으로 이 디자이너가 자신의 경력, 학력,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기에 그의 익명성과 전설에 익숙한 이들은 무척 놀랐다.

    이 영화의 한 챕터는 1994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S/S 컬렉션에 할애된다. 마르탱은 “그 컬렉션에서는 전반적으로 ‘모방’이 핵심이었다”고 회상하며, 끊임없이 모방하는 패션 산업에 그가 초창기에 미친 영향을 언급했다. “저는 ‘그래,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언론이 ‘사람들은 그가 맨 처음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해!’라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그대로 다시 하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앞서 선보인 아홉 개 컬렉션을 혼합해 열 번째 컬렉션을 ‘최고의 컬렉션’으로 발전시켰다.

    소셜 미디어의 부상 이후,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신화는 패션계의 향수에 젖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활기를 띠었다. 그 과정에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이름은 더 유명해지고, 그의 예전 런웨이 사진이 다시 돌아다니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여러 브랜드가 너도나도 디자인을 베낀다.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편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2009년 떠났고, 지금은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브랜드에 남겨진 그의 아카이브는 존 갈리아노의 천재적인 손에 들려 있다. 그는 2015년 이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고 일찌감치 설립자 마르지엘라로부터 인정받았다. “마르지엘라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그는 ‘DNA에서 원하는 것을 취하고, 자신을 보호하고, 스스로 해내세요!’라고 말해주었죠.” 갈리아노가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말을 떠올렸다. 은퇴한 디자이너에게 표할 수 있는 가장 큰 존경이 그의 이름으로 작품 세계를 계속 확장하는 것이라면, 갈리아노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보여주는 작품은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갈리아노 특유의 언어와 마르지엘라가 남긴 유산 간의 점진적인 대화를 통해, 이 브랜드 특유의 코드가 진화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마르지엘라는 디지털이 패션계 인프라에 미친 영향을 그가 은퇴한 이유로 꼽으며 애석해했다. “이것이 패션계에서 다른 니즈가 생겨나는 시점이라고 느꼈고, 제가 그 니즈에 맞출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죠.” 그렇지만 패션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요”로 답했다. 영화 상영장에서 홀제메르 감독은 미국 <보그>에 “그가 다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알 수 없다.

    어쨌든 디자이너들이 패션계를 떠나 드물지 않게 예술계에 입문하고 있다. 그의 동료이자 1990년대 아이콘 헬무트 랭도 성공적으로 활동 영역을 바꿨다.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의 전시회 프로그램 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드로잉, 조각, 콜라주에 이르기까지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신체 분할, 익명성, 재활용과 실험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찬 우주를 멈추지 않고 만들어간다.”

    그리고 이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우주를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롯데뮤지엄은 그의 예술을 조명하는 개인전을 12월 24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 전개한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부터 작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탐구해온 예술, 물질과 신체, 시간, 젠더, 관객 참여를 한자리에서 보여줄 것이다. 이는 마르지엘라가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선보여온 주제이기도 하다. 2021년 파리 라파예트 앙티시파시옹 전시를 시작으로 베이징 엠 우즈 미술관 그리고 서울 롯데뮤지엄으로 이어진 이 전시에 <보그>가 함께한다. (VK)

    ANDERS CHRISTIAN MAD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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