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써 마음을 나타내려는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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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써 마음을 나타내려는 의지

2022-12-17T08:40:43+00:00 2022.12.17|

강요배

지난 1월 얼마간을 제주에서 보내며 제주의 바람에 빚을 졌다. 1월이라 기온은 낮았지만, 이상하리만치 바람은 온순했고 온기마저 품고 있어 추위도 잊은 채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다. 그 힘으로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다시, 제주로 피정을 떠난다. 제주의 바람이 제주의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다와 별과 돌에 배어들어 빚어내는 오묘한 형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때 제주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를 그려온 화가 강요배의 <풍경의 깊이-강요배 예술 산문>(2020, 돌베개)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제주가 보인다. 보인다기보다는 제주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것 같다. 들어선다기보다는 자연의 제주, 특히 제주 바람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바람은 머나먼 시원으로부터 시간을 관통해서 불어온다. 바람 맞는 땅거죽은 거칠고, 나무들은 강인하다. 섬의 모든 사물은 바람이 빚어놓은 것이다. 그것들은 바람에 얽히고설켜 있다. 그것들은 바람과 더불어 소리를 낸다. 지나간 시간과 그 사연에 대한 전언으로서.”(p.76)

그림에 깃든 다른 절기, 다른 계절의 제주 바람은 보고 있는 나의 몸을 스치고 관통하며 에워쌌다가 슬그머니 비켜나 저만치 빠져나가 있다. 바람이 불러내는 공기의 내음, 진동, 부피와 밀도감, 질감이 그림 위에 흔적이 돼 넘실댄다. 평면의 그림 앞에서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운동을, 생기와 생동을, 공감각을 경험하는 희한한 순간이다.

화가 강요배의 산문집, ‘풍경의 깊이-강요배 예술 산문'(2020, 돌베개)

‘그림’이란 무엇인가. 화가는 말한다. 행위 방식이 점점 다양해져 이제는 시각 문화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미술 개념과 그림을 다르게 보고 싶다고.

“‘그림’이라는 말에는 조금 더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싶어 하고, 또 그리는 행위에는 어떤 마음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스며 있다. 어느 정도 평평한 곳에 몸을 써서 마음을 나타내려는 의지가 있다. 몸을 통해 흐르는 마음 같은 것이라 해야 하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한 탁월한 비평가의 비유대로 아직은 모호한 어떤 마음을 낚는 일인지 모른다.”

낚음의 방식을 찾는 과정이 곧 화가의 일생이자 일이요, 화가가 생각하는 ‘추상화’일 것이다. “어떤 것들은 사상하고 가장 강력한 것, ‘바로 그것’을 뽑아 올린다. 그러므로 ‘추상화’는 명료화 과정이다. (애매모호하게 흐리거나, 기하 도형을 반복하거나 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마침내 그림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림은 미술로부터 뛰어오른다.” 강요배의 그림 속 제주, 그곳에 이는 오늘의 바람은 강요배라는 한 사람의 마음의 풍경을 읽는 일과 다르지 않다.

‘바ᄅᆞ레(바다에)’, 강요배,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7×91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kgojae. 사진 제공 : 학고재

@visitjeju.kr

화가는 계속 소망한다. “더 밀어붙여서 더 나아가야 하고, 더 해체해야 한다. 소리 같은 것들, 물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해체한 다음, 다시 다른 식으로 리듬, 음향, 자연의 소리를 화면에서 조합하려고 한다. 그림에 음악과 춤, 리듬 같은 것만 남았으면 좋겠다.”(p.320) 화가의 이 문장을 읽으며 그의 소망이 글을 쓰는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더 간명한 방식으로, 핵심에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나아가 화가는 감동에 관해 정확히 짚는다. “성공적인 그림은 방식의 적절한 사용에 의해 참신해야 하고, 풍부해야 하고, 간결하며, 생동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창작자 자신을 놀라게 해야 하고, 다시 감상자의 마음을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그가 그림 앞에 섰을 때, ‘어!… 아하… 야~’ 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되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p.102~103)

이 문장 앞에서 비평 작업을 하는 나의 바람도 덧대어본다. “비평으로부터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가치 있는 것과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이라 했던 예술 철학자 겸 영화 평론가 노엘 캐럴의 말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 모두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만듦을 통해 새로이 세상과 만날 수 있다고 제안한다는 점만큼은 닮았다. 강요배의 그림 앞에서 제주를 새롭게 만난 것처럼. 그 마음을 기억하며, 다시, 제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