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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100’의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다?

2023.02.19

by 이숙명

    ‘피지컬: 100’의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다?

    양궁 선수 안산은 2022년 월드컵을 보면서 트위터에 명언을 남겼다. “올림픽 보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남의 노력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거 너무 좋다.” 스포츠를 보는 심리를 한마디로 꿰뚫은 통찰이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을 보는 우리 마음도 그렇다. 

    <피지컬: 100>은 종목과 체급과 성별을 막론하고 피지컬에 자신 있는 100인이 모여 몸 쓰는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쇼는 참가자들의 토르소를 공개하면서 시작된다. 그건 그저 아름다운 몸이 아니다. 뛰어난 기능을 가진 몸, 근육 한 가닥 한 가닥을 재창조하는 노력과 독한 식단과 불타는 승부욕의 결정체, 그들 삶의 치열함을 증명하는 보증서로서의 몸이다. 그것을 감상하는 데서 오는 경외심과 대리 만족은 이 쇼의 첫 번째 매력이다. 흥분한 참가자들이 티셔츠를 벗어 던질 때의 불순한 짜릿함은 덤이다. MBC가 이 값비싼 쇼를 지상파에서 소화할 수 없다며 넷플릭스에 판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 몸들은 섹시해 보이려고 거기 있는 게 아니어서 오히려 더 섹시하다. 참가자들이 승부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우리는 게걸스러운 카메라 워킹에 감사하며 그들의 성난 근육과 땀으로 번들거리는 피부를 조각조각 음미한다. 

    <피지컬: 100>의 두 번째 매력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훈련한 인체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예측하고 확인하는 일이다. 아이스 클라이머이자 산악 구조대원 김민철은 첫 번째 게임인 오래 매달리기, 최종 5인 선발전 종목 중 밧줄 타기 1위를 했다. 그는 스튜디오 인터뷰에서 “아이스 클라이밍을 알리고 싶어 출연했다”고 했는데 그 목표는 완벽하게 적중했다. 두 번째 개인전 1:1 공 뺏기에서는 투기 종목 선수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올림픽이 아니고서야 TV에서 여성 투기 종목을 감상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 레슬러 장은실이 근육질 몸으로 날렵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이 신선한 스펙터클을 제공했다. 장은실은 이 쇼가 탄생시킨 최고 스타다. 배우 김다미를 닮은 호감형 외모에 늠름한 말투, 탁월한 리더십, 압도적 신체가 눈길을 끈다. 출렁다리를 만들고 모래를 날라야 하는 팀 경기에선 시설 안전에 민감한 스턴트 배우 김다영이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100명의 천하장사’가 아니라 ‘100개의 피지컬’이라는 테마에서 시청자가 기대하는 반전에 가장 근접한 순간이었다. ‘헬스장에서 만든 근육은 보기만 좋지 실용성은 떨어진다’는 편견과 달리 보디빌더들이 다양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것, 군인 계열 참가자들이 초반에 다수 탈락한 것, 1:1 공 뺏기에서 비슷한 체급끼리는 기술이 승부를 결정하고 다른 체급끼리는 근력이 기술을 압도한 것도 인상적인 결과다. 어떤 예측은 들어맞고 어떤 예측은 빗나간다. 이 쇼는 결국 최고의 검투사들을 콜로세움에 몰아넣고 즐기는 공짜 도박이다. 

    참가자들은 보는 사람조차 가끔은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싶을 만큼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피지컬: 100>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제작진은 단숨에 끝나는 근력 대결보다 체력의 한계까지 참가자들을 밀어붙여서 근성을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더 스트롱맨: 짐승들의 대결>(tvN) 우승 전력이 있는 자동차 딜러 조진형과 스켈레톤 코치 김식이 바위 덩어리를 들고 90분 넘게 버티는 모습은 보는 이가 숙연해질 지경이다. 아직 40대 후반이지만 이 쇼에서는 고령에 속하는 추성훈이 100킬로그램짜리 바위를 밀고 경사를 오르는 모습도 감동을 준다. 추성훈은 이 쇼의 최고 스타다. 출연을 대가로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 할당을 요구하거나 적당히 시늉만 하다 퇴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가치가 무도인이라는 특수한 정체성에서 기인함을 잊지 않는다. 경사에서 바위를 미는 대결에선 결국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도 참가했다. 윤성빈이 휴게실에서 제자리 뛰기로 자기 가슴 높이 매트에 안착하는 모습이 ‘인체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나?’라는 운동과학적 탐구심을 불러일으켰다면 그가 죽기 살기로 바위를 미는 장면, 그때의 우뚝 솟은 등허리 근육은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제작진의 게임 운영은 초반부터 영리했다. 첫 게임으로 오래 매달리기를 선택한 건 성별, 체급, 종목을 뛰어넘는 피지컬 대결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불식시키는 탁월한 한 수였다. 뒤로 갈수록 근력이 중요해져서 결국 여성이나 체구가 작은 남성들은 우승권과 멀어졌지만 첫 게임으로 기선 제압을 확실히 한 덕에 형평성 논란은 나오지 않았다. 위기는 있었다. 공 뺏기에서 여성 보디빌더 김춘리를 니온벨리(상대 선수의 복부를 무릎으로 눌러 호흡과 동작을 방해하는 기술)로 제압한 이종격투기 선수 박형근은 여성 갤러리들의 야유를 받고 비매너 논란에 휩싸였다. 성별을 떠나 근력이 비슷할 때 보디빌더보다 투기 선수가 유리한 게임이었고, 빠른 제압이 오히려 신체 접촉을 최소화할 방법이었다 생각하면 박형근은 잘못이 없다. 그러나 그림이 잔혹했던 터라 충격받은 시청자가 많았다. 시청자들은 혼성 육탄전이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해치지 않는가라는 본질적 질문보다 악역을 자처한 참가자를 비난하는 쪽에 집중했다. 참가자들이 자기들끼리 승부를 벌이는 동안 제작진은 시청자들과의 승부에서 요령 좋게 승점을 챙긴 것이다. 중반부터 팀 경기를 배치해 출연진의 다양성을 유지한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근력이 절대 요소처럼 보였던 팀 대항 배 끌기 대회조차 사실은 모래와 도르래라는 보완 장치가 있었다. 모든 참가자가 그것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은 ‘100프로 피지컬만 쓴다고 제목이 <피지컬: 100>인가’라는 책상머리형 인간들의 의문을 자아냈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감동은 있었다. 여성들, 체구 작은 남자들, 부상자로 이뤄진 팀이 오로지 힘을 이용해 완주를 해낸 건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피지컬: 100>은 이제 최종 5인 대결을 앞두고 있다. 3억 상금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승자는 이미 정해졌다. 좋은 게임을 펼친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숙명(칼럼니스트)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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