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유쾌하고 더없이 솔직한, 폼 클레멘티에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오갤)>가 끝난다. DC에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만든 제임스 건이 마블로 돌아와, 지난 2편의 시리즈에 이은 최종장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를 만들었다. 제임스 건 감독을 비롯한 ‘팀 가디언즈’의 한국 홍보 방문보다 이틀이나 앞서 폼 클레멘티에프(Pom Klementieff)가 <보그> 촬영을 위해 도착했다. 오전부터 온종일 진행된 화보 촬영에도 지친 기색이 없다. “폼, 그 에너지로 당신이 극장가를 살려줘야 한다”고 말하자,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먼저 영화를 봤는데 기대해도 좋다.” 다행히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최고의 마블 영화라는 해외 리뷰를 발견했다!
폼이 <가오갤> 시리즈에 참여한 건 2편부터. 2017년부터 그녀는 마블 유니버스, <어벤져스> 시리즈의 일원으로 활약해왔고 곧 <미션 임파서블> 새 시리즈 개봉까지 앞둔, 할리우드의 블루칩이다. 천재 괴짜 제임스 건 감독의 ‘안테나’는 프랑스 독립 영화계에서 활동하다 <올드보이> 리메이크 판으로 막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린, 신예 배우에게서 비범한 능력을 발견했다.
프랑스 태생, 한국인 어머니, 어린 나이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조현병 같은 폼 개인의 ‘아픈’ 가족사는 마블 안에서도 ‘별종’인 맨티스와 묘하게 연동되는 지점이 있다. 다른 히어로처럼 ‘그 흔한’ 액션 하나 없이, 한 번의 터치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읽고 조종하는 능력을 갖춘 ‘맨티스’의 비범함을 떠올리며 폼과 마주했다. 웬걸. 코스튬을 벗고 만난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솔직한 화법을 갖춘 매력적인 사람인지 아직 마블 유니버스에서는 반도 보여주지 못했다. 할리우드에 떨어진 신선한 사과, 폼(Pom, 사과의 프랑스어 발음)의 매력은 지금부터 시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때가 처음이었고, 2019년 코믹콘 행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한국 방문이다. 이제 ‘한국에 가면 해야 할 것 리스트’가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오는 게 아주 즐겁다. 특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 작은 멸치 ‘멸치볶음!’ 발음이 어려운데, 그게 나한텐 ‘Merci Beaucoup’처럼 들린다(웃음). 프랑스어로 ‘감사합니다’라 의미도 좋다. 달콤한 맛, 매운맛에 사로잡혀서 정말 많이 먹었다.
지금은 뉴욕에서 온 건가? 며칠 전엔 프랑스 칸에 있었다.
뉴욕에 살고 있어서 물건이 다 거기 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닌다. 뉴욕을 베이스로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덕분에 항상 수트케이스와 함께한다(웃음).
오늘 촬영은 어땠나?
<보그>와 촬영해서 정말 영광이다. 작가님의 세계가 정말 창의적이고, 작품에 열정이 보인다. 강렬하고 시적이고 로맨틱하기도 하다. 어두운 지점도 있는데, 그런 모든 부분이 몹시 마음에 든다.
맨티스 코스튬에 익숙해서 그린이 시그니처 컬러처럼 다가왔는데, 오늘 촬영에선 정말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강렬한 레드 드레스가 그랬다.
내추럴한 컬러부터 강렬한 블랙과 레드로 의상을 달리했는데, 더없이 아름다웠다. 블랙과 레드는 정말 완벽한 조합이다. 러브 앤 패션(Love and Passion)! 평소와 다른 헤어와 메이크업을 시도해 더 즐거웠다.
블랙의 캐주얼하면서도 시크한 의상을 입은 모습을 자주 봤다. 마블 코스튬을 입지 않을 때 주로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나.
매번 다르다. 어떤 때는 정말 편한 옷을 입다가, 팬시한 의상을 입기도 한다.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서울에 온 지금 분위기는?
아미 셔츠에 알렉산더 맥퀸 팬츠와 이자벨 마랑 부츠. 이건 카우보이 부츠 스타일이다. 말 타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이 부츠가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재킷에 달린) 버튼은 <세일러 문>의 고양이 ‘루나’다. 빈티지 숍에서 찾았는데, 루나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 빈티지도. 전에 이 옷을 입었던 누군가의 사연, 스토리가 있어서 흥미롭다.
평소 무척 활동적인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복싱 클립에 에너지가 넘친다. 루틴인가?
데일리 루틴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항상 여행을 다니다 보니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일어나서 밖에 나가고 헬스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하는 거다. 그래서 요가, 복싱, 러닝도 즐겨 한다. 강가에서 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루틴은 없지만, 그러고 보니 난 항상 무언가 다른 걸 시도한다. 매일 똑같은 걸 하는 건 너무 지루하다.
무려 6년 만의 속편으로 ‘팀 가디언즈’와 함께 왔다. <가오갤>의 맨티스로 지구를 구하는 것과 동시에, 폼 클레멘티에프로는 침체된 극장가를 구해줄 거라는 믿음도 있다.
오 마이 갓! 극장가를 구하다니, 정말 재치 있다!(웃음) 나는 ‘팀 가디언’의 일원일 뿐이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관객을 만난다는 게 흥분된다. 코로나로 모든 게 봉쇄되었을 때, 배우로서 많이 힘들었다. 배우는 그런 위기의 순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영화가 주는 일종의 현실도피를 통해 우리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걸. 이런 역할도 세상에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그런 면에서 관객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참여한 배우로서 이 작품의 매력은?
3편은 정말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시리즈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거다. 이번엔 ‘로켓(브래들리 쿠퍼)’의 이야기로 더 깊이 들어가는데, 그가 유년기에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정말 아름답게 펼쳐진다. 얼마 전에 나도 영화를 봤는데,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제임스 건 감독의 비전, 영화의 아름다운 음악도 놓칠 수 없다.
제임스 건 감독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나? 그는 정말 천재면서 괴짜다(웃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2017)로 처음 만나 당신이 마블의 일원이 되는, 지금의 스타덤에 오르는 계기가 되기도 한 만남이었다.
정말 친절하고 자신감 있고 그러면서도 침착하고 비전을 가진 감독이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이 놀랐다. ‘곤충처럼 보이는 캐릭터’에 관해 설명해줬는데, 맨티스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가 이미 그에게 있었다.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좀 더’ 이런 마음으로 들었다. 내가 이 작품에 캐스팅되지 않더라도 이 영화를 꼭 보고 싶고, 이 캐릭터를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알다시피 내 삶을 바꾸게 해준, 나에게 날개를 달아준 감독이다. 감사해서 보답의 의미로 동물을 사랑하는 그에게 고양이 영상을 자주 보낸다. 너무 많이 보내지는 않으려고 자제하는 편이다. 마블과 DC 유니버스 모두가 가족이니 얼마나 바쁘겠나(웃음).
고양이로 연결되어 있구나! 작품 성과도 이런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것 같다. 맨티스 분장도 일방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 더듬이부터 눈동자까지 모든 걸 제임스 건과 함께 만든 걸로 안다. 눈동자를 모두 덮는 콘택트렌즈 때문에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3편까지 하니 적응되던가?
분장에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다행히 더듬이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웃음). 콘택트렌즈는 촬영 내내 쓰는 대신 클로즈업 컷에만 착용하는 걸로 절충했다. 눈동자 전체를 덮는 렌즈라 눈이 너무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안구에 흰자가 보이지 않게 전체를 덮으니, 사람이 아니라 동물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힘들어도 분장은 캐릭터처럼 보이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맨티스는 접촉만으로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춰서 액션 연기를 따로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디즈니+에서 공개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에서는 액션이 과감해졌다. 이번 시리즈에서 맨티스가 활약할 액션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맞다. 그때 좀 보여줬지(웃음). 지난 몇 년 동안 액션 훈련을 해왔고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더 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번 편에서 맨티스의 파워를 볼 수 있을 테니 기대하기 바란다. 심지어 꽤 웃기기까지 하다.
스스로 맨티스를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슈퍼별종(Super-Weirdo)’이라고 정의했다
괴짜 맞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이상하고 독특한 면이 분명 있다. 부모 없이 혼자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주변 사람과 함께하는 데 서툴렀다. 다행히 이번엔 조금씩 주변인과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연기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나?
배우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극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이후 연기를 배우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무대에서 평범함에서 벗어난 이상한 연기도 해보고, 많은 작품을 하면서 감정 연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과거에 사람들은 내가 할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되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난 미국 악센트가 완벽하지 않아 할리우드 영화에서 연기하는 건 힘들 거라고. 지금은 물론 그런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미국식 악센트를 가졌는지가 배우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라서 외형적으로도 아시아인 느낌이 많다. 지금의 폼을 특징짓는 ‘아름다움’이 활동 초기엔 편견이나 차별로 다가오기도 했겠다. 오디션에 어려움은 없었나?
아시안 혼혈이다 보니 정말 얼굴부터 다른 배우들과 달랐다. 프랑스 영화계에는 거의 없는 유형의 얼굴이었다. 전형적인 캐릭터는 할 수가 없고, 내게 맞는 캐릭터도 찾기 어려웠다. 에이전트도 그때는 내게 잘 맞지 않는 역할에 나를 밀어 넣으려고 했다. 이 일을 하면서 항상 그 정해진 ‘경계’를 넓혀나가려고 한다. 지금은 확실히 그 부분이 좀 더 수월해졌고, 기회가 많아졌다.
맞다. 플랫폼의 확장으로 다양한 서사, 배우의 참여가 가능해졌다. 당신처럼 편견을 깨고 활동하기를 원하는 배우도 많다. 그들에게 조언한다면.
내가 조언할 수 있을까 싶지만 (웃음)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해보자면, 자신을 ‘이상하게’ 유지해라. 프로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해라. 참을성을 가져라. 호기심을 키워라. 당신이 가진 비전을 좁은 틀 안에 가두지 말고 확장해라. 다른 길의 삶을 경험해라. 미국에서도 이제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경험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배우가 더 많이 필요해졌다. 배우로서 당신이 그 환경에 있고 또 바꿔나갈 수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개봉을 기다린다. 프랑스 작품뿐 아니라 스파이크 리가 리메이크한 <올드보이>(2013)로 할리우드 영화 경력을 시작했고, 현재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나라 영화든 다 좋아해서 프랑스 영화, 할리우드 영화를 모두 찾아본다. 독립 영화도 흥미롭다. 대단한 작품이 많다. 한국 영화도 아주 좋아한다. <올드보이>는 16세에 보고 너무 좋아서 마음을 확 뺏겼다. 더 영화를 하고 싶게 만든 작품이다.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아주 좋아한다. 봉준호 감독도 정말 대단하다. <기생충>으로 오스카를 받을 때 정말 기뻤다. 언젠가 함께 작업할 날도 오지 않을까(웃음). 정병길 감독의 <악녀>도 그중 하나고 너무 좋아한다. 한국 영화에서 정말 영감을 많이 얻는다.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다 됐다.
극장에서 만나자.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좀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 시리즈는 정말 내 삶을 바꾼 아름다운 기회였다. 마침 내 생일날 개봉해 더 뜻깊다(웃음).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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