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브리티 스타일

전지현이 소화할 수 없는 스타일은 없다

2023.07.18

by 이소미

    전지현이 소화할 수 없는 스타일은 없다

    전지현의 캐릭터는 늘 옷을 잘 입었습니다. 출연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아이코닉한 패션을 탄생시킨 그녀죠. 물론 거적때기를 입어도 아름다운 전지현이거니와 스타일리스트의 공도 크겠지만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유일무이한 현상은 2013년 전지현과의 만남에서 <보그>가 담은 이 말로 설명하고 싶군요.

    “처음 그녀를 스타로 만든 프린터 광고나 최근에 나온 휘슬러 광고에서 인상적인 건 몸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외적인 분위기 자체이자 활용하기 좋은 재료로서의 몸.”

    배우 전지현은 몸을 잘 씁니다. 비단 액션 장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언제나 캐릭터에 걸맞은 움직임을 만들어내죠. 스타일 역시 원래부터 그 옷을 입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고요. 벨트를 바짝 조인 트렌치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주변을 살피고(영화 <베를린>), 손등까지 덮인 롱 카디건의 소매로 머리를 쓸어 넘길 때(영화 <시월애>), 우리는 옷이 내는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늘하늘한 핑크색 원피스에 남자 운동화를 신고 과격하게 달리는 모습(영화 <엽기적인 그녀>)과 단아한 트위드 수트 스커트 차림으로 다리를 뻗어 하이힐을 다급하게 신는 몸짓(영화 <도둑들>)에서는 전에 없던 스타일의 통쾌함이 느껴지고요. 전지현의 작품 속 패션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훌륭한 ‘옷발’ 때문이 아니라 전지현이 정직하게 씹고 삼키며 소화해낸 캐릭터의 힘이 크죠. 앞으로도 끊임없이 회자될, 전지현의 아이코닉한 스타일이 등장한 작품을 모았습니다. 스크롤을 다 내리고 난 뒤에는 꼭 작품으로 다시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군요. 전지현이 보여준 패션의 매력은 몸을 움직이는 전지현에게서 더 잘 느껴지거든요.

    <시월애>, 2000

    아날로그 감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영화 <시월애>. 주인공 ‘은주’로 분한 전지현의 패션은 미니멀 그 자체였습니다. 롱 코트와 스커트를 비롯한 모노톤 위주의 아이템을 활용해 영화 전반에 흐르는 희뿌옇고 쓸쓸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죠. 알찬 포인트 역할을 해낸 건 두 주인공을 이어주던 우체통이 연상되는 레드 컬러 아이템이었습니다. 특히 초반부, 붉은 니트를 입고 화이트 팬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은 명랑하면서도 차분한 ‘은주’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장면 중 하나죠.

    <엽기적인 그녀>, 2001

    2000년대 스트리트 패션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죠. 전지현의 패션에서 돋보인 건 컬러감입니다. 파스텔 톤을 베이스로 한 톤온톤 룩으로 주인공 ‘그녀’의 과격한 행각과는 정반대 무드를 보여주었거든요. 덕분에 캐릭터가 지닌 매력이 더욱 강렬하게 와닿았죠. 핑크색 체크 셔츠에 그보다 진한 핑크색 카디건을 레이어드하거나, 옅은 데님 재킷에 하늘색 팬츠를 매치하는 식이었습니다. 감히 시도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 올 핑크 룩은 지금 봐도 놀랍군요.

    <데이지>, 2006

    이번엔 암스테르담 거리의 화가 ‘혜영’을 맡았습니다. 자유롭고 순수한 화가의 느낌과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다운 아련함을 모두 머금고 있어야 했죠. 전지현은 레이어드 스타일링, 니트 소재 아이템, 와이드 팬츠 같은 여유로운 핏의 아이템으로 걸리시하면서도 루스한 ‘혜영’의 실루엣을 이뤄냈습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2008

    전지현의 리즈 시절을 검색하면 최상단에 나오곤 하는 그 ‘짤’이 바로 이 작품에서 탄생했습니다. 오버사이즈 화이트 셔츠, 스트레이트 진, 여기에 걸친 수트 베스트까지! 매니시한 차림으로 땀벅벅이 된 채 도시를 누비는 모습은 현실적인 다큐멘터리 PD ‘송수정’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트레이드마크인 긴 생머리를 잘라내고 엉성하게 묶은 머리, 최소화한 메이크업, 거침없는 그의 제스처가 여기에 힘을 보탰고요.

    <도둑들>, 2012

    전지현이 왜 전지현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품이죠. 화려한 레오퍼드 프린트,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낸 쇼츠, 타이트한 ‘작업복’ 등 노골적으로 관능미를 드러낸 스타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진 걸쭉한 입담, 어딘가 건들건들하면서도 속 시원한 동작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예니콜’의 매력에 부스터가 되어주었죠.

    <베를린>, 2013

    모진 운명을 지녔던 ‘련정희’. 그래서일까요? 타 작품과 달리 여기에서만큼은 트렌치 코트를 꼭 여민 채로 등장했습니다. 몸에 꼭 맞는 화이트 셔츠와 펜슬 스커트, 단정함 펌프스에서 캐릭터의 흐트러짐 없는 성격을 알 수 있었고요. 시종일관 불안하고 예민해 보이던 전지현의 표정 때문에 캐릭터가 더욱 철저하게 외롭게 보였습니다.

    “뭐든 열심히 했고, 지금도 그래요. 열심히 해야 그게 다 제 것이 되는 기분이에요.”

    2013년 <보그>와의 만남에서 전지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간 그가 맡은 캐릭터와 스타일을 되짚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그리고 10년 만에 <보그 코리아>와 재회한 전지현은 이번에도 버버리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죠. 지금 아래 링크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해보세요. 전지현이 소화해내지 못할 스타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란 걸 알게 될 겁니다.

    포토
    각 영화사 공식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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