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엠마 프렘페의 등잔 밑은 어둡지 않다 #여성예술가17

2023.09.06

by 김나랑

엠마 프렘페의 등잔 밑은 어둡지 않다 #여성예술가17

등잔 밑은 어둡지 않다. 엠마 프렘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길어 올린 생명력으로 붓을 움직인다.

스튜디오에서 마주한 엠마 프렘페.
Pivot, 2023. Oil, Acrylic, and Schlagmetal on Canvas. Courtesy of Emma Prempeh and Tiwan Contemporary

EMMA PREMPEH

팬데믹 시기, 엠마 프렘페(Emma Prempeh)에겐 걷기가 일상이었다. 작업을 위해 런던 남동부 수정궁 근처의 어머니 집에서 캠버웰에 자리한 스튜디오로 가려면 편도 2시간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골드스미스 대학의 2019년 졸업생인 그녀는 학교로부터 작업실을 제공받았으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멀리했다. 그렇게 어렵게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며칠씩 머물며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Waragi, 2023. Courtesy of Emma Prempeh and Tiwani Contemporary

이 시기에 그녀는 2020년 말, 런던의 브이오 큐레이션스(V.O Curations)에서 열린 개인전 <The Faces of Love>에서 작품을 공개했다. 이별의 아픔으로 온갖 감정의 풍파를 경험하며 작업에 몰두한 시기였다. 프렘페가 당시를 회상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스튜디오에 이불을 깔아놓고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 작업 중인 그림만 쳐다봐야 했으니까요.”
지난 5월 프리즈 행사로 뉴욕 전체가 떠들썩해지기 직전 마주한 그녀는 다행히 한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이었다. ‘프리즈 뉴욕’ 기간에 티와니 컨템퍼러리(Tiwani Contemporary) 갤러리 부스에서 새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첫 미국 여행을 앞둔 그녀는 잔뜩 설레어 있었다. 이번 신작은 현재 남자 친구가 생활하는 런던과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그린 것으로 프렘페는 이 도시들을 ‘작지만 예술이 번성하는 동네’로 일컬었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조명한 새 작품은 전부 ‘집’을 주제로 삼고 있다. 팔걸이에 덮개를 씌운 암체어는 조금 낡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을 상징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주방은 활기와 에너지로 가득하다. 전부 집이라는 공간에 깃든 생명력을 표현한 그림이다. 프렘페는 손때 묻은 사물과 주변 인물을 통해 향수와 사랑을 드러내는데 우간다의 수제 진인 와라기(Waragi) 한 병을 중심으로 남자 친구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그린 ‘Steal the Rum Cake from the Kitchen’(2023)이 그 예다.

프렘페에게 집(Home)은 중요한 삶의 화두다. 런던에서 대학에 다닐 때부터 왕립 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두 언니와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함께 살던 집에 계속 머물던 그녀는 꽤 오래전부터 집의 의미에 골몰했다. 물론 팬데믹이 미친 영향도 없지 않지만 그녀는 주변 사람과 환경이 자신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싶은 예술가였다. “특히 할머니 집에서 목격한 것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투영해요. 그림에 묘사된 레이스를 비롯한 여러 질감, 패턴, 색상 모두 할머니 집에서 영감을 받았죠.”

Emma Prempeh, Steal the Rum Cake from the Kitchen, 2023. Oil, Acrylic, Iron Powder, and Schlagmetal on Canvas with Projection. Courtesy of the Artist and Tiwani Contemporary

프렘페가 집과 가족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된 데에는 투병 생활이 미친 영향도 크다. 또래 아티스트보다 죽음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그녀는 열아홉 살에 볼프 파킨슨 화이트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심장이 정상보다 빠르게 수축하는 심장 이상 질환이다. 진단 후 두 차례나 수술을 받고 나서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회복한 상태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겪게 되는 두근거림은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죽음과 삶에 대해 겸허해졌어요. 존재 이유를 깊이 생각하는 실존주의 예술가가 되었죠.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아요. 그렇게 생명력을 뽐내는 사람들은 기쁨을 주죠.”

얼핏 보면 음울한 색조로 가득한 그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넘치는 생명력이 일렁인다. 표면이 반짝이는 유리잔에 가족의 만찬에 참석한 손님의 미소가 비치고, 작품 속 인물이 만개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프렘페는 2023 ‘프리즈 뉴욕’ 기간에 더 셰드(The Shed)에서 신작을 공개했다. <보그> 인터뷰 당시 그녀가 “직접 보고 놀라시기를 바라요”라고 말하며 힌트 주기를 아끼던 새 작품은 회화뿐 아니라 사운드 작업과 조명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작품의 면면을 감상하는 동안 머릿속에 프렘페의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주변을 통해 완성되어가는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여러 방법을 탐구하고 있어요.” (VK)

#여성예술가17

CHLOE SCHAMA
사진
ELLYSE ANDERSO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