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매력적인 남자들, 베이비걸
해리 스타일스, 오스카 아이삭, 제레미 스트롱은 가장 먼저 ‘베이비걸’의 칭호를 얻은 이들입니다. <솔트번>의 배리 케오간과 제이콥 엘로디, <디 아이언 클로>의 해리스 디킨슨, <바튼 아카데미>의 도미닉 세사(Dominic Sessa)가 뒤를 이었죠. 방탄소년단의 RM, 스트레이 키즈의 필릭스, F1 레이서 루이스 해밀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23년은 베이비걸의 해였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특히 활발하게 사용하며 모두가 아는 단어가 됐고요. 하지만 베이비걸이 정확히 어떤 남자를 지칭하며, 이 현상은 패션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작가이자 대중문화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에반 로스 카츠(Evan Ross Katz)는 오직 잘생긴 외모만으로 베이비걸이 될 순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또 베이비걸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습니다.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많은 사랑을 받죠.
조금 더 ‘패션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볼까요? 베이비걸은 남성성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과감히 도전하며 성 관념을 부수는 걸 즐기죠. 최근 페드로 파스칼, 티모시 샬라메, 배리 케오간까지 여성 컬렉션 룩을 입고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베이비걸의 영향인지, 많은 전문가들이 2023년 최고의 트렌드로 ‘여성복 입는 남자들’을 꼽기도 했습니다. 브랜드 역시 앞다퉈 이들에게 백을 협찬하기 시작했고요. 루이 비통의 스피디 백, 보테가 베네타의 안디아모 백, 셀린느의 메신저 백을 든 제이콥 엘로디의 사진을 본 적 있을 겁니다.
피트 데이비드슨과 셀린 송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는 브릿 테오도라(Britt Theodora)는 현 상황에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 배우들이 다양한 스타일링에 도전하는 걸 보는 게 즐겁다고 말했죠. 그녀는 최근 여성복이나 중성적인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남자 배우에게 기프트를 보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도 언급했습니다. 핸드백을 협찬받으려는 남자 배우들 역시 훨씬 많아졌고요.
애인의 옷을 뺏어 입은 듯한 차림의 여성은 예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누가 봐도 사이즈가 안 맞는, 거대한 후디나 티셔츠를 ‘툭’ 하고 걸친 그런 룩 말이죠. 테오도라는 베이비걸 스타일도 똑같다고 말합니다. 큰 키에 우람한 덩치의 스타들이 자기 손바닥만 한 핸드백을 들고 있으니까요. 브랜드 컨설턴트이자 홍보 담당자, 데이비드 시위키(David Siwicki) 역시 여성스러운 아이템을 재해석하는 남성 스타들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왜 지금일까?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은 에이셉 라키, 키드 커디와 해리 스타일스입니다. 베이비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드레스와 스커트를 즐겨 입던 이들이죠. 카츠는 베이비걸의 등장이 사회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패션에 관심을 갖는 남자는 여성스러울 거라거나 게이일 거라는 선입견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옷을 신경 써서 입는 것을 오히려 쿨하다고 여기는 때입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패션 관련 영상을 업로드하는 로만 델발리(Romane Delvallee) 역시 카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패션은 결국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성 관념과 개성에 대한 탐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베이비걸이 등장했다고 말하죠.
스타일리스트 킴 러셀(Kim Russell)은 소셜 미디어 역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숏폼 영상과 직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금은 그 누구도 ‘남성복=수트’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죠. 팬들 역시 핸드백을 든 ‘최애’ 사진을 업로드하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고요. 러셀은 어느 때보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교류가 활발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리테일 매장 역시 변화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마이테레사의 남성복 바잉을 총괄하는 소피 조던(Sophie Jordan)은 여성용으로 출시된 더 로우의 마고 백이 남성 세일즈 부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말하죠. 조던은 보테가 베네타, 로에베, 더 로우 같은 브랜드의 백 컬렉션을 둘러본 뒤, 이를 참고해 남성용 백을 바잉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진실한 모습인가?
패션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거대한 마케팅 수단이기도 합니다. 대중문화 평론가 메건 포드(Megan Ford)는 남성 셀럽들과 스타일리스트들이 어느 때보다 미디어 노출에 목말라 있다고 말합니다. 델발리는 마고 로비와 라이언 고슬링의 룩을 중심으로 홍보 활동을 펼친 영화 <바비>를 예로 들었죠.
여성복을 입은 베이비걸을 가장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레드 카펫입니다. 하지만 남성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스트리트 포토죠. 레드 카펫 룩은 스타일리스트의 작품이지만, 스트리트 룩은 셀럽이 원하는 대로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스트리트 포토 역시 스타일리스트의 작품이죠). 대중은 쿨하게 차려입은 셀럽의 스트리트 포토를 보며, 그가 패션에 푹 빠져 있다고 생각하죠. 카츠는 이런 사진이 셀럽에게 현실성과 진실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합니다.
베이비걸의 미래는?
트렌드는 시시각각으로 바뀝니다. 베이비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일러링이 트렌드가 된다고 해서 배리 케오간과 제이콥 엘로디가 1년 내내 수트만 입고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아예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났다는 뜻이죠. 데이비드 보위와 프린스처럼 중성적인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스타들은 예전에도 있었죠.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그 숫자가 압도적으로 늘었다는 것. 테오도라는 불과 5년 전, 한 브랜드가 여성 셀럽에게 남성용 수트 협찬을 거절했다는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며칠 전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 로에베의 2024 S/S 남성복 수트를 입고 참석한 그레타 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베이비걸의 등장은 ‘변화하는 남성복’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의 일면일 뿐입니다. 러셀은 아주 오랫동안 남성 셀럽들의 스타일링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변화를 더 환영한다고 덧붙였죠.
최근 밀라노 패션 위크가 막을 내리며, 이 거대한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조짐입니다. ‘보그 런웨이’의 컨트리뷰터, 티치아나 카르디니(Tiziana Cardini)는 백스테이지의 무드보드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성 모델의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밝혔죠. 점점 더 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중성적인 남성을 그려낼 겁니다.
카츠는 “베이비걸 열풍이 어디까지 갈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처음에는 제이콥 엘로디가 핸드백을 든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익숙해졌다고 말하죠. 카츠는 베이비걸 열풍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얼굴의 등장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그런 스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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