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지금 가장 인상적인 ‘한 테이블’을 만드는 케이터링 전문가 4

2024.03.29

지금 가장 인상적인 ‘한 테이블’을 만드는 케이터링 전문가 4

단 하나의 테이블에서 딱 한 번 펼쳐지는 꿈같은 맛의 황홀경. 식재료와 메뉴, 식기와 소품, 음악과 조명, 인테리어와 분위기까지, 모든 손재주와 마법을 집약해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을 창조해온 케이터링 전문가 4팀을 〈보그 라이프〉로 초대했다.

Fantastic Night

by 원형들 뱀파이어의 파티가 열린다면 아마도 이런 테이블이 차려지지 않을까? 몇 해 전 을지로의 오래된 건물 4층에 슬그머니 문을 연 디저트 카페 겸 와인 바 원형들이 최근 케이터링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로 궁금증을 키우던 참이었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보낸 초대장에 “정말 재미있는 기획인데요!”라며 화답해온 박용준 대표는 요정 같은 팀원들과 함께 등장해 꿈이나 환상 속에서 볼 법한 테이블을 완성했다. 나비 떼가 착지한 파이, 새하얀 채소와 새카만 젤리, 반짝이는 구슬… 한때 핑크 딜 케이크와 고수 케이크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점령한 원형들의 솜씨와 노하우가 집약되자 준비된 탁자 위가 금세 풍성해졌다. 정갈한 지중해 음식을 추구하는 요리사 사바토(Sabato), 케이크의 마법사 소피아 스톨츠(Sophia Stolz), 잊지 못할 최후의 만찬을 선보이는 고샤 부로(Goshá Buro) 등 동시대 마술사에게서 받은 영감을 축적하고 실험한 결과다. “원형들은 디저트를 중심으로 디자인, 조형, 그래픽, 영상, 케이터링 등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케이터링이야말로 모든 작업의 집합체 같다는 생각을 해요. ‘원형들’이라는 이름처럼 온갖 작업이 하나로 이어져 원형에 가까운 완성 형태를 이루길 바랍니다.” 어떤 작업을 의뢰받든 제약 없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원형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판타지를 구현할 생각이다.

Rice Chaos

by 입말음식 전부 쌀이다. 바닥을 뒤덮은 둥근 라이스페이퍼부터 분출하는 쌀 면과 오브제 표면에 붙은 밥알, 대롱대롱 매달린 모빌 안에서 딸기, 바나나와 함께 춤을 추는 알록달록한 주먹밥에 이르기까지.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과 식재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입말음식은 최근 태국 셰프 이브(Eve), 디자이너 하니프(Hanief)와 함께 한국과 태국 이산 지역을 탐방하며 받은 감명으로 달큼한 밥 냄새가 생의 욕구를 자극하는 한 상을 마련했다. “한 사람, 한 부엌, 한마음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때론 훨씬 많아요. 발품으로 만난 보석 같은 레시피와 이야기를 한 그릇의 음식과 공간에서 연결해 표현하는 작업을 추구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위대함과 나약함,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한데 어우러져 기분 좋은 혼돈이 피어나는 테이블을 꾸리는 거죠.” 한국과 세계의 입말음식을 벌써 11년째 기록하고 소개해온 하미현, 요리사 유정인과 에이코 최, 빛나는 재능을 지닌 객원 팀원들이 손을 바삐 놀려 완성하는 이들의 판타지는 레퍼런스 없이 오직 생생한 경험과 순간의 감각, 내면의 소리를 따라 완성된다. “먹는다는 것은 300만 년이 넘은 인류의 역사에서 한결같이 이어온 행위입니다. 인간의 본능과 찰나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테이블을 통해 앞으로도 더 다양한 사람과 세계를 연결하고 싶어요.” 2년 남짓 제주에서 머물며 사라져가는 제주의 입말음식과 식재료를 기록한 소중한 책 <입말음식 제주 우영팟>(2020)처럼 꾸준한 아카이빙 작업에도 열중하는 입말음식이 그렇게 비밀스럽게 전승되는 맛의 역사를 이어간다.

Hidden Forest

by 먼데이 모닝 마켓 푸드 디렉터 김혜미와 비주얼 디렉터 김어진이 조경한 푸른 초원. 이끼로 덮인 풀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애피타이저에서 메인과 디저트 코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달걀 껍데기에 안착한 감자 무스를 지나면 김부각과 비프 크로켓으로, 그리고 얼그레이 브라우니로 이어지는 식이다. 야생의 숲이 동물에겐 양식의 천국인 것처럼 이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은 핑거 푸드를 하나하나 맛보며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누리게 될 것이다. “새빨간 토마토, 기묘한 형태의 치아시드처럼 모든 식재료는 본연의 형태와 색, 텍스처가 이미 완성도 높은 하나의 오브제예요. 그래서 케이터링은 무에서 유가 아니라 유에서 더 멋진 유를 더하는 작업처럼 느껴지죠. 맛있는 음식뿐 아니라 시각적인 효과와 재미까지, 모두가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을 꿈꿉니다.” 빽빽한 계획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케이터링, 레스토랑, 델리 사업을 이끄는 먼데이 모닝 마켓은 브랜드와도 열린 마음으로 협업한다. “케이터링은 행사 성격과 분위기에 잘 조응해야 합니다. 브랜드 담당자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이유예요.” 어두운 지하실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마시멜로를 구워 먹었던 MMK 쇼룸 오프닝과 음표 모양 치즈가 턴테이블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게끔 연출한 타이니 데스크의 케이터링은 그렇게 탄생했다. 해외 브랜드와의 협업과 베일에 싸인 레시피 북 등 올 한 해 더욱 열린 마음으로 전진할 생각인 먼데이 모닝 마켓의 최근 관심은 ‘테크’에도 머물러 있다.

Wonderland

by 머스타드 스튜디오 동화 속 상상의 나라를 뜻하는 원더랜드. 맛과 시각적인 판타지를 연결하는 케이터링 작업에서 머스타드 스튜디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위트다. “뻔한 건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테이블 위에서도, 실제 삶에서도 적절한 위트는 여유와 균형을 가져다주죠.” 한 폭의 정물화를 연상시키는 정갈한 테이블 위에 머스타드 크루의 손을 본떠 만든 쿠키가 눈에 들어온다. “테이블이 너무 화려해 주인공이 되어서도, 너무 평범해 존재감이 없어서도 안 돼요. 특히 색깔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음식과 소품을 아울러 색감이 잘 어우러질 때 작업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예술적인 작업으로 특히 전시 공간(프린트베이커리, 디파인 서울 등)과 가구 브랜드(까시나, 프리츠한센, 이스턴에디션 등)의 잦은 부름을 받아온 머스타드 스튜디오는 요즘 세심한 코스 요리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열린 룰루레몬 아시아 행사에서 다양한 식습관과 취향, 국적을 가진 게스트 40명을 위해 맞춤 코스 요리를 준비한 일은 특별히 도전적인 프로젝트였다. “예쁘기만 할 줄 알았다거나 행사장 음식은 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편견을 깰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순간적인 이목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케이터링의 기본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올해 머스타드 스튜디오는 다시 기본에 집중할 생각이다. 특정 장소에서만 머스타드 스튜디오의 손맛을 만날 수 있었던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시그니처 디저트와 메뉴 개발에 착수한다.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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