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롬하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티 보이(Matty Boy)는 경쾌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선보이며 크롬하츠 제2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펑크 록과 1980년대 하드코어 음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음악은 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죠.” 매티 보이의 타이포그래피 ‘Form’이 돋보이는 티셔츠를 착용한 지코.
차가운 물성이 가득한 공간,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한 지코. 그가 착용한 셔츠와 팬츠에는 크롬하츠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곳곳에 더해졌다.
크롬하츠의 주얼리는 여러 개 레이어드할수록 매력적이다.
“지금의 저는 10년 가까이 기분을 축적해온 피사체 같아요.” 데뷔 10주년을 맞은 지코는 본인의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쓰는 방식을 터득했다. 그가 착용한 독창적인 디자인의 십자가 모티브 주얼리는 크롬하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편안한 실루엣의 티셔츠와 청바지에 볼드한 주얼리를 매치했다.
검은색 크롬하츠 점퍼에 매티 보이의 타이포그래피를 더한 티셔츠를 입은 지코. 의상과 액세서리는 크롬하츠(Chrome Hearts).
몇 년 사이 인상이 순하게 변했다고요. 예전에도 사납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의외로 그렇게 여기는 분도 있지만, 사나워 보인다는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해를 사는 일도 종종 있었고요. 그런 이미지를 무대에서 스타일로 활용하는 건 좋았지만, 사적 영역으로까지 투영되면 뭐랄까. ‘대미지’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상처를 받았나요?
그런 건 아닌데, 사람들이 저에게 편히 말 걸고 다가오게 하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요.
그런데 성격이 변한 거 아니에요? 얼굴만 변할 순 없잖아요. 사람의 얼굴엔 지나온 길이 새겨지는 법이니까.
성격도 엄청 변했죠. 저도 그걸 체감하고 있어요. 거울을 보면 그날 기분이 비치잖아요. 지금의 저는 10년 가까이 기분을 축적해온 피사체 같아요.
기분을 축적했다는 말이 재밌군요.
그러니까 지난 10년간 내가 어떤 기분으로 살았는지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거죠. 일부러 인상을 쓰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방어 기제에서 조금은 풀려난 게 아닐까요.
그런 여유도 어느 날 문득 생기는 것은 아니고 그간 해온 것들이 쌓여서 나오는 자기 신뢰라고 봐요.
여유라기보다는 조금 숙성됐다고 해야 할까요?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쓰는 지혜가 생겼어요. 뭔가를 할 때 힘을 반드시 100% 쓰지 않고 조절하는 능력. 대신 예전처럼 파격적이거나 날 선 모습은 조금 줄었죠.
그런 변화를 주변 사람도 느끼나요?
그럼요. 특히 팬들이 많이 느껴요.
반응이 어떤가요?
사실 저에게 유하고 둥근 부분이 있다는 걸 팬들은 이미 너무 잘 알아요. 미디어에 노출되는 피상적인 모습 말고 실제 저의 모습요. 그것들이 이제 약간 평형상태를 이루게 되었다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팬들만 알고 있는 지코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비로소 많은 사람이 알게 되어 기쁜가 봐요.
그런 걸까요?(웃음)
팬들을 향한 마음이 깊은 것 같아요.
보통 팬의 사랑을 받는다고 말하잖아요. 우리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요. 연예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겪는 우여곡절이 있잖아요. 지난 10년간 저의 그래프는 상당히 다이내믹했어요. 팬들은 일련의 과정과 희로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지금까지 제 곁을 지켜주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어떤 동질감을 느껴요. 이제 팬과 아티스트라는 카테고리로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나 밀도 높은 사이가 되지 않았나 싶고요.
지난해는 프로듀서로서 활약한 해였어요. 보이 그룹 ‘보이넥스트도어’를 세상에 선보였죠. 본인이 아티스트로서 전면에 나설 때와는 또 다른 성취감이 있었을 텐데요.
가장 강렬한 순간을 꼽자면 아무래도 몇 년간 품에 두고 있었던 친구들을 처음 세상 밖으로 내보냈을 때. 그때가 가장 유의미한 순간이었죠. 내가 선택과 집중을 했는데 그게 틀리지 않았구나.
‘틀리지 않았구나’라고 느낀 때가 대중의 반응을 접했을 때인가요, 아니면 그들의 무대를 봤을 때인가요?
그들의 무대를 봤을 때예요.
누구보다 자기 확신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내가 틀렸으면 어떡하나, 떨리고 무서울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땐 어떻게 돌파하나요?
당연히 무섭죠. 그런데 세상에 모든 사람이 ‘이건 100%’라고 보장할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확률 싸움 같은 것에 기대를 걸지 않아요. 그냥 하는 게 중요하죠. 실천하는 행위로 그 일을 100%가 되도록 만드는 거죠.
과거 인터뷰를 보면 잠재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해요.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고 자기답게 잘 자라게 하는 일이 프로듀서의 역할이 아닌가 싶은데, 경험해보니 어땠나요?
나 자신을 키워나갈 때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어요. 스스로에게는 관용이 부족한 편인데, 멤버들의 성향에 따라 피드백 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고요.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할 때 저는 그걸 짚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각자에게 퍼스널 컬러가 있듯 퍼스널 음악, 퍼스널 댄스, 퍼스널 비주얼도 있을 수 있어요. 동시에 아티스트로서 그들의 자주성과 자립성도 필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려하고 선택하는 필드를 더 넓혀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들에게 납득이 되는 말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보이넥스트도어 멤버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흥미로워서 기억해뒀는데, 프로듀서 지코는 “듣고 싶은 말보다는 꼭 필요한 말을 해준다”고. 아, 듣고 싶은 말이 있었구나 싶었어요.(웃음)
제가 칭찬에 인색하다고 여기나 봐요.(웃음)
섣부른 칭찬이 자칫 독이 될까 봐 아끼는 건가요?
아뇨. 의도적인 건 아니고 그냥 제 성격이에요. 저는 진짜 아쉬우면 아쉽다, 잘했으면 잘했다 바로 얘기하는 편이거든요.
자기평가에도 객관적일 것 같은데, 그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예전보다는 확실히 느슨해졌어요. 과거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를 완벽하게 가다듬으려는 강박이 있었는데, 내 의도만큼은 잘 어필했다고 간주하게 된 지점이 있었어요. 그 후부터는 시야를 나의 내면으로 돌렸어요.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거죠. 이를테면 나의 심리나 건강 상태, 주변 사람과의 유대 관계 같은 것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요즘 상태는 어때요?
굉장히 정신없는 상태. 물리적으로도 할 일이 많지만 생각이라는 걸 멈추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신경이 계속 곤두서 있죠.
스위칭이 잘되어야겠군요. 아티스트로서든 프로듀서로서든. 사적 영역에서도 스위치가 여러 개 있나요?
그런 것 같아요. 가족과 있을 때, 친구들과 있을 때, 반려묘와 있을 때, 약간 다르죠.
고양이들과 있을 때는 어때요?
그들 중에서 대장 고양이가 되죠.
와, 신기해요. 보통 고양이 집사들은 자신을 가장 하위 계급에 두던데요.(웃음)
우리 집에서는 제가 서열이 제일 높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저한테 고양이 같은 느낌이 있는지, 애들이 저를 아주 큰 고양이로 보는 것 같아요.(웃음)
혼자 잘 있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 중요도가 삶에서 몇 정도를 차지하나요?
10 중에 7 정도요. 혼자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른 에고가 나오거든요. 늑장 부리고, 줄곧 누워 있고, 몽상에 잠기는 스타일이에요. 그렇게 저를 환기해야 밖에 나가서 또 전투적으로 살 수 있어요.
지코는 시대정신을 읽고 공감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티스트예요. 그건 아주 난도가 높은 일이잖아요. 트렌드를 이끌며 대중의 공감을 얻는다는 게.
‘자, 내 테이스트를 좇아와’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공급자보다는 소비자의 편에서 음악을 해요. 트렌드라는 것도 우리는 아이디어 정도만 주는 거고, 그걸 선택해서 문화로 만들고 직접적으로 즐기는 당사자는 소비자예요. 그래서 항상 그들 편에
서서 판단하려 하죠. 지금쯤 어떤 음악을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러니까 그게 어려운 거잖아요. 아무나 못하죠. 타고난 감각에 기대나요? 아니면 평소에 그런 방향을 의식하며 사고하나요?
그 모든 요소가 한 번에 맞물릴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요. 가령 ‘아무노래’도 팬데믹 전에 썼는데 공교롭게도 그 노래가 나왔을 때 시대 상황과 겹쳤잖아요. 치밀한 전략이나 머릿속에서 나온 흥행은 아니었어요. 어떤 시기가 나에게 찾아왔을 때 준비되어 있었을 뿐이죠.
그러기 위해 다양한 정서적 경험이 필요할 것 같은데, 주로 책을 통해 얻나요?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글쎄요. 요즘엔 특히 동기부여 카테고리의 책은 잘 안 읽으려고 해요.
이미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 사람 같은데요.(웃음)
그런가요?(웃음) 저자마다 스탠스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누구는 지금을 즐기라고 하고, 누구는 잠을 줄이라고 하죠. 확실한 리더가 되어라,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아라 하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라, 항상 칭찬해주라고 하죠. 도대체 그 기준을 누가 정하는 거지? 지금의 저는 타인의 삶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저의 상황에 빗대기보다 절대적으로 그 사람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봐요. 사람에 따라 고통과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르니까요.
그건 리더로서도 좋은 자질이고 필요한 덕목이죠.
그런데 마냥 공감해주는 게 꼭 옳은 방향이라고는 또 얘기할 수 없어요. 때로는 배타적으로 내 주장을 펼치는 게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고요. 정답이 없죠. 지금 저는 여러 차례의 실험과 도전을 통해 그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단계예요.
마냥 공감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한 건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죠. 여전히 책임감이 제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죠.
즐거운가요?
솔직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요. 그런데 전 그걸 기꺼이 해내는 것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에요. 벼랑 끝에 몰아넣어야 나를 넘어서는 뭔가가 나오니까요.
20대에 천재 소리를 듣고 싶었나요?
듣고 싶지 않았어요. 천재로 보여서 얻을 건 부담감밖에 없잖아요.
그 이치를 빨리 알았군요. 하지만 천재 소리를 듣고 있잖아요.
그건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을 했기 때문 아닐까요.
유튜브 채널 ‘가내조공업’에서 그 얘기했잖아요. “천재처럼 보이는 방법을 안다.” 그건 어떤 걸까요?
평소에 나도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얘는 어떻게 이런 걸 가사로 쓸 생각을 했지?’ 하는 느낌이랄까요. 주변에 있는 현상이나 사물을 살짝 다른 사이드에서 보면 건져 올려지는 게 있거든요. 대단한 시적 표현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일상에 있는 것들을 위트 있게 전달하고 싶어요. 실제로 모두가 사용하고 있지만 전시하지는 않은 아이템을 찾으려고 하죠.
과거에는 “나에게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말을 더러 했어요. 여전히 그런가요?
일종의 자기암시였죠. 일을 할 때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드문드문 있는데 그때 아무런 손도 못 쓰고 뻗어버리면 나 자신한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싫었거든요. 자존심도 상하고요.
그 기조에는 변함이 없군요.
대신 ‘한계 없는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을 다그치다가 나를 다치게 하는 일은 안 생기게 할 거예요. 그간 나를 너무 홀대하면서 살았거든요.
그건 어떻게 인지하게 됐나요?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깨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목표 지향적인 삶은 건강하지 않다. 전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없어요. 진짜 최선을 다해서 살았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연료가 바닥난 상태의 저를 발견한 거예요. 그런데 억지로 시동을 걸려고 하니까 여기저기 삐걱대고 시동도 안 걸리고, 휴식이 필요한 단계인 것 같은데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의아했죠. ‘나를 돌볼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그 10년을 그렇게 노력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겼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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